4월9일 개막전을 위해 LG는 인천원정경기에 나섰다. 개막전의 중요성을 고려, 전날 인천 송도비치에다 전진캠프를 차렸다. 감독, 코칭스태프, 선수단, 구단직원들 모두가 ‘진인사대천명’의 자세로 개막전을 기다렸다.
LG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돼 OB를 이기고도 최종순위가 4위로 결정돼 순위에 따라 잠실 개막전의 권리를 OB에게 내줘 꼴찌팀인 태평양의 홈구장 인천으로 방문경기를 갖게 된 것이었다.
양팀선발은 김태원과 안병원이었다. 타순에서는 이감독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 톱타자로 박준태를 세웠고 중심타자는 노찬엽―한대화―김동수로 꾸몄다. 신인 가운데 김재현이 2번, 유지현은 9번타자로 기용됐다. 관심을 모은 1루는 경기경험이 많은 김선진이 일단 서용빈을 제치고 선발로 출장했다.
LG는 개막전을 적지에서 4―2로 승리, 상큼한 출발을 끊었다. ‘검객’ 노찬엽은 개막전 축포 2점홈런을 작렬시켰고 이종열, 한대화가 적시타를 날렸다. 93년 필승카드 강봉수―김용수로 이어지는 불펜도 여전히 건재했다. 나란히 1. 1이닝씩을 던져 선발 김태원의 승리를 지켜주었다. 34살의 베테랑 김용수는 삼진 3개를 빼앗으며 역투, 세이브를 올렸다. 개막전은 전체 시즌의 126분의 1에 불과했지만 일단 첫단추는 잘꿴 셈이었다.
호사가들은 LG가 홈런 1개, 2루타 6개를 포함해 장단 13안타를 퍼붓고도 겨우 4점을 뽑는데 그쳤다며 공격의 결정력부족을 꼬집었다. 그렇지만 신인들의 데뷔는 성공작이었다. 김재현은 5타수2안타1득점, 유지현은 2개의 포볼을 골라 뛰어난 선구안을 과시했고 6회 대타로 들어선 서용빈은 중월2루타를 터뜨렸다.
다음 경기에서는 타순이 약간 조정됐다. 톱타자로 유지현을 내세웠고 서용빈이 선발1루수 자리를 꿰차고 9번타자로 들어갔다.
결과는 안타수 8―6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태평양에 2―3으로 역전패했다. 선발 김기범은 5회 2사후 포볼을 시작으로 연속3안타를 얻어맞아 패전투수가 됐다. 고무적인 것은 2사2, 3루 위기에서 등판한 인현배가 발등의 불을 끈 뒤 3이닝을 1안타 무실점으로 막은 것. 위력적인 볼은 아니었지만 홈플레이트 외곽을 찌르는 코너워크가 절묘했다. 전날 2루타로 데뷔전을 치른 서용빈은 또다시 중월2루타를 날리며 3타수3안타의 맹타를 휘둘러 “호, 제법이네”하는 찬사를 받았다.
LG는 적지서 1승1패를 마크, 그런대로 만족할 수 있었다. 주초 잠실서 치르는 삼성과의 3연전이 고비였다. 2승1패를 해야만 사직 원정길이 가벼울 수 있었다. 4월12일 봄비가 대지를 촉촉히 적셔 일정은 3연전에서 2연전으로 줄었다. 13일 잠실구장은 평일에도 불구하고 1만3천여명이 몰려들었다. 정삼흠과 성준이 격돌한 두팀은 선발투수예고제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미국 텍사스 레인저스 마이너리그팀에서 연수하고 돌아온 롯데 김용희감독이 앞장서서 시도한 선발투수예고제는 해태 OB를 제외하고 확산됐다.
원래 선발투수예고제는 이광환감독이 OB시절 실시했다가 다른팀 감독들의 비협조로 중도에서 폐지됐었다. 그로부터 4년뒤 고려대 후배 김용희감독이 다시 선발투수예고제를 바람을 일으키고 있으니 이감독으로서는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선발예고제에 앞장서지는 않았다. 예전에 “미국야구를 알면 얼마나 아느냐”는 투의 비아냥과 시기섞인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었기 때문이었다.
삼성과의 첫경기는 노찬엽의 3점, 한대화 유지현의 솔로홈런포가 터져 5―1로 승리했다. 올해부터 주장을 맡은 노찬엽은 예년에 볼 수 없던 파워배팅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2차전도 11안타를 적시에 터뜨려 8―3으로 쾌승. 삼성 에이스 김상엽과 맞붙은 김태원은 타선의 지원을 받아 5. 1이닝을 던지고 2연승을 올리는 기쁨을 누렸다. 지난해까지 지지리도 승운이 없었던 김태원으로서는 타격의 도움을 받아 승리투수가 되는 기분이 너무나 짜릿했다. 93시즌에는 자신이 마운드에 섰을 때는 무려 5차례나 영패를 당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무튼 김태원은 시즌 스타트가 좋으니 어깨춤이 절로 났다.
4월15일 부산으로 이동, 롯데와 상견례를 했다. 롯데는 지난해 사직구장에서 ‘압축방망이’ 시비를 걸고나와 LG가 타격침체에 빠지는 원인을 제공했던 팀. 결국 이 사건은 LG가 4위로 추락하는 빌미가 돼 롯데와는 악감정이 없지 않았다. 강병철감독이 자리를 옮긴 뒤 93년11월 롯데―LG 연합팀으로 한일친선경기를 치르고 김용희감독으로 사령탑이 바뀌면서 두팀간의 껄끄러운 감정도 없어졌다. 지난해 겨울 강병철감독 사퇴로 어수선했던 롯데는 젊은 김용희감독을 영입하면서 팀분위기는 최상이었다. 다만 주력급투수 염종석, 윤형배, 김상현과 유격수 박계원, 도루왕 전준호 등이 동시에 방위소집돼 전력공백이 드러나는 게 흠이었다.
좌완 이상훈과 하와이 윈터리그에서 체인지업을 갈고 닦은 가득염이 선발대결을 펼쳤다. 게임은 아쉽게도 3―4로 패했다. 이날 경기의 결과는 여러 모로 LG에게 부담을 주었다. LG는 0―4로 뒤지고 있다가 9회말 구원에 나선 신인 강상수를 두들겨 3―4까지 따라붙고나서 무사만루의 역전기회까지 만들었다. 타석에는 좌타자 김재현이 들어섰다. 롯데로서는 4―0으로 앞서가다가 4―3까지 쫓기자 배수의 진을 쳐야 했다. 흔히 이런 경기를 지고나면 후유증이 오래남는 법이었다.
롯데 김감독은 18살의 억대고졸출신 좌완 주형광으로 밀어부쳤다. OB전에 선발로 나섰다가 3이닝동안 5안타 5실점으로 난타당해 데뷔 신고식을 혹독하게 치른 주형광이었다. 고졸랭킹 1, 2위를 다툰 투수와 야수가 프로유니폼을 입고나서 처음 갖는 대결은 너무 극적이었다. 기(氣)싸움 그 자체였다. 깊숙한 외야플라이나 땅볼만 쳐도 동점이 되는 상황. 롯데 내야진은 전진수비를 펼쳤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김재현의 타구는 1루수 김응국의 글러브로 빨려들어갔다. 1루수―포수―1루수로 이어지는 최악의 병살타! 노찬엽 타석에 들어온 호주동포 김태민이 2루땅볼로 물러나 LG는 무사만루의 황금같은 찬스를 물거품으로 만들고 말았다.
LG가 시즌내내 유독 롯데에게는 질질 끌려다닌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됐다. 주형광은 이후 자신감을 갖고 LG타자들을 농락했다. 가득염도 쌍둥이라면 두팔을 걷어부치고 나섰다. 이상훈은 좌완투수이면서도 좌타자들이 즐비한 롯데타선에게 어이없이 얻어맞곤 했다. 스포츠에서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준 중요한 경기였다.
이감독은 경기후 선수미팅을 통해 선수단에게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감독이 잘못해서 졌다”며 선수들을 위로했다. 이감독이 작전실패를 시인한 이유는 8회를 마치고 사실상 게임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8회초 공격을 마치고 중심타자 노찬엽과 한대화를 빼버렸다. 스코어는 0―4였고 4번타자 한대화가 타격을 끝낸 터라 9회 공격에서 다시 타석이 돌아오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았던 것. 18살의 주형광이 만루상황에서 변화구공략에 능한 노찬엽을 상대하는 것과 2군선수나 다름없는 김태민과 대결하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LG로서는 롯데를 막다른 골목까지 몰고갔다가 제풀에 주저앉은 꼴이었다.
94시즌의 LG야구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 가운데 하나는 연패가 없다는 점이다. 4월16일 롯데와의 두번째 경기는 15―1 대승으로 끝냈다. LG는 신인 인현배가 프로입단 후 처음 선발등판했고 롯데는 방위병투수들의 훈련부족으로 인해 신인 김정훈을 선발로 내세웠다. 이감독은 태평양전에서 수비도중 왼쪽 발가락을 다친 노찬엽을 6번타순으로 내렸고 서용빈을 3번타자로 올리는 파격적 용병을 단행했다.
개막전부터 보여준 서용빈의 타격은 범상치 않았다. 연습경기 뿐만 아니라 정규게임에서도 통할 수 있는 타격솜씨임을 과시했다. 5게임을 지나면서 LG 1~3번의 상위타선은 유지현―김재현―서용빈으로 이어지는 신인일색으로 꾸며지기에 이르렀다. 신인들이 1~3번을 독차지한 예는 일찌기 없었다. 이감독은 “신인들의 기량은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이들을 신뢰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날부터 LG 신인트리오는 94시즌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행운의 사나이 인현배는 6회동안 4사구를 무려 11개나 허용하면서도 단 1실점으로 막아내는 진기록을 남겼고 만루위기를 3차례나 무사히 넘기는 대담성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4월16일은 서용빈의 날이었다. 프로통산 6번째 사이클링히트를 작성했던 것이다. 루키로는 사상 최초. 1사1루 첫타석에서 우중간을 가르는 3루타로 타점을 올렸다. 두번째는 중견수플라이. 세번째 타석에서는 중전안타를 날렸다. 스코어가 4―0으로 벌어지자 롯데는 선발 김정훈에서 고졸2년생 서정민으로 마운드를 교체했다. 서용빈은 7회 무사2루에서 사직구장 오른쪽 펜스를 넘기는 우월2점홈런을 작렬시켰다. 이때만 해도 서용빈의 사이클링히트를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감독은 점수가 7―0으로 벌어지자 김선진을 테스트하려고 서용빈과 교체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니까.
덕아웃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2루타만 쳐내면 사이클링히트”라는 얘기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LG의 8회초 공격은 7번타자부터 시작됐다. 안타와 포볼을 골라 서용빈까지 이어졌다. 이것이 마지막 타석이 될 것이었다. 투수는 다시 바뀌어 언더핸드스로 김청수. 긴장감이 감돌았다. 야구를 시작한 이래 이렇게 많은 관중앞에서 자신에게 시선이 쏠리기는 처음이었다. 바깥쪽 볼을 혼신의 힘을 다해 후려쳤다. 좌익수 전준호 앞에 떨어지는 좌전안타. 사이클링히트는 운과 실력이 겸비돼야 이뤄진다는 말이 맞긴 맞았다. 서용빈의 안타가 1사후에 터진 터라 타자일순해서 다시 타석이 돌아오기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하늘도 서용빈을 도왔다. 롯데의 4번째투수 박지철이 나오자마자 6번 김태민부터 연속3안타를 터뜨려 9번타자에서 8회 공격이 마무리됐다. 이로써 9회초 공격에서 무조건 서용빈 타석이 보장돼 있었다.
길고 긴 8회가 끝나고 9회초 톱타자 유지현부터 공격이 시작됐다. 좌익수플라이. 6타수4안타를 몰아친 김재현은 투수앞 땅볼. 서용빈이 타석에 들어서자 부산팬들은 비록 적이지만 “사이클링 히트!”를 외치며 대기록 작성을 기대했다. 롯데 벤치도 정면대결을 지시했다. 속좁은 감독이라면 고의4구로 걸리는 것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프로 13년동안 그런 일은 종종 일어났으니까.
박지철은 가능한 한 바깥쪽으로 던지려 했다. 볼카운트 1―2. 제4구째가 홈플레이트 위로 들어오자 서용빈의 배트가 바람소리를 냈다. 타구는 좌중간으로 쭉쭉 뻗었다. 여유있는 2루타였다. 사직구장의 모든 관중들은 신인의 대기록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2루에 선 서용빈은 두손을 불끈 쥐고 3루측 덕아웃과 카메라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했다. 서용빈의 94시즌 행보를 예감케 하는 의미있는 기록이었으며 새로운 ‘스타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사실 스포츠전문기자들 사이에서는 서용빈의 타격이 이미 오키나와에서부터 예사롭지 않다는 평이 나돌았다. 사이클링히트로 그의 이름은 전국적으로 회자됐고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모든 매스컴은 ‘서용빈이 누구인갗라는 인간스토리를 실으며 무명의 신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서용빈의 신데렐라 스토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5위쯤으로 평가받던 LG전력은 예상을 빗나가기 시작했다. 1~3번타순을 신인들로 채운 이감독의 승부수는 핵폭탄처럼 연쇄반응을 일으켰다. 서용빈은 사이클링히트로 스타탄생을 알렸고 다음날 19살의 김재현은 연타석홈런으로 야구계를 뒤흔들었다. 전날 김재현은 프로데뷔 첫홈런을 사직구장에서 터뜨렸다. 서용빈이 사이클링히트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는 바람에 고졸신인의 홈런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넘어갔다.
4월17일 사직구장은 3만1백54명이 모여 시즌 첫 만원사례를 이뤘다. 롯데 선발투수는 백전노장 윤학길. 김재현이 야구유니폼을 입은 이래 이렇게 많은 관중앞에 나서기는 처음이었다. 첫타석서 범타로 물러난 김재현은 4회초 1사후 베테랑 윤학길로부터 우월솔로홈런을 빼앗았다. 우측스탠드 중단에 꽂히는 대형아치. 프로세계의 단맛쓴맛을 다본 33살의 윤학길이 막내동생뻘되는 김재현에게 허를 찔리는 순간이었다. 적어도 이때까지는 그랬다.
1―0으로 앞선 6회초. 타순은 4회와 똑같았다. 톱타자 유지현부터 공격이 시작됐다. 중견수플라이로 원아웃. 곱상한 얼굴의 김재현이 타석에 섰다. 롯데 마운드의 ‘황태자’ 윤학길은 초구를 한복판에 찔렀다. 승부가 빠른 윤학길 스타일이었다. 놓치지 않았다. 맞는 순간 윤학길도 김재현도 홈런임을 직감했다. 첫번째보다 더 멀리 날아갔다. 사직구장 백스크린 오른쪽 상단을 두들기는 130m짜리였다. 슬러거 장종훈이나 칠 수 있는 홈런을 이제 겨우 19살짜리가 연타석으로 쳐내다니. 롯데벤치도 LG벤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유지현―김재현―서용빈이 이끄는 LG 타선은 활화산처럼 피어 올랐다. 그리고 그 기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자신의 예상이 잘못됐음을 자인한 것은 시즌 초입이던 4월말이었다.
첫댓글 06시즌 시즌초반 투수진이 얼마나 버텨줄수있느냐가 관건인듯합니다..테이블세터인 박경수선수와 중심타선의 박용택 마해영선수가 전형적인 슬로스타터로써 그들이 정상괘도에 올라설때까지 투수진의 활약이 중요할듯하네여..
글 잘봤습니다. 그때 기억이 생생하게 나네요. 94년 겨울 스토브때 LG에 대한 기사는 트레이드한 한대화 얘기가 아니라..서용빈 얘기로 수를 놓았죠..전지훈련에서 이렇게 무명신인이 주목받았던 적도 없었던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퍼갈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