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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역사게시판 유럽 독일 통일 이전의 독일 - 바이에른과 작센
이름짓기귀찮아 추천 1 조회 942 18.01.02 01:18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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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8.01.02 02:12

    첫댓글 독일의 귀족들은 여전히 잘산다더군요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18.01.02 15:04

    아우구스트의 정력적인 관심이 빚어낸 결과물ㄷㄷ

  • 18.01.02 17:35

    작센, 바이에른과 브란덴부르크의 중요한 차이점은 이거죠. 본령이 분할되느냐, 유지되느냐.
    비텔스바하는 라인궁중백과 바이에른으로 갈아진 것에 이어 바이에른도 1392년에 넷으로 찢어진 뒤에 서로 싸우는 수준. 1503년에 재통합된 뒤로는 종교개혁이다, 황제다, 계승전쟁이다로 개판.
    작센의 베틴가는 에른스트계와 알브레히트계로 갈라지고, 그 중 에른스트계는 선제후위도 빼앗긴데 더해 남은 땅도 계속 분열.
    그에 비해 호엔촐레른가는 아킬레스 시절에 프랑켄쪽은 분할상속시키는 대신 브란덴부르크변경백령의 분할상속을 금지하고, 결혼으로 획득한 프로이센, 클레페-마르크도 여기에 묶어버려서 본령이 분할없이 확대.

  • 18.01.02 17:49

    아, 그리고 본문에 1540년대에 알브레히트공국과 에른스트 선제후국이 통합되었다는 것은 약간 잘못된 설명입니다.
    1547년에 슈말칼덴전쟁의 결과로 선제후 자리와 대부분의 영토가 종가인 에른스트계에서 방계인 알브레히트계로 넘어가긴 했습니다만, 튀링겐지역은 에른스트계의 손에 남아서 통합되지 않았습니다.
    알브레히트계의 모리츠가 비록 황제편에 서긴 했지만 역시 루터파이고, 또 카를 5세 입장에서는 못 믿을 놈이라(실제로 1552년에 황제를 공격), 작센의 통합 자체는 황제가 막아버림.

  • 18.01.03 20:11

    어...정확히 말해서 브란덴부르크가 가장 클 수 있었던건 프로이센 상속이 더크죠. 게다가 바이에른의 쇠퇴가 분할상속이다 보긴 애매한게 독일지역에서 가장 빨리 분할상속을 도입한게 이쪽이라;; 되려 브란덴이 클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변방인데다가 중앙권력과 먼 운빨이 아닌가 싶습니다(...)

  • 18.01.03 22:35

    @모리야 전제국 프로이센의 상속은 브란덴부르크가 확장하는데 그렇게 큰 도움은 못 되었습니다. 그단스크나 엘블롱크같은 도시들은 모두 왕령 프로이센에 속하고, 공작령에는 쾨니히스베르크 정도만 남은데다가 월경지라 통행도 어렵다보니.
    프로이센의 영유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왕위를 만들 때 정도인데, 프리드리히 2세는 비웃었지만 어쨌든 브란덴부르크변경백이다, 마크데부르크공작이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왕 아래에 묶인 것이 국가통합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평가죠.
    사실 브란덴부르크의 성장에 있어 결정적인 순간은 프랑스가 북독일에 좀 큰 세력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하고 베스트팔렌에서 힌터폼메른이랑 마크데부르크 먹여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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