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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17:1
의기투합하면 건들자가 없을 만큼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형 동생 하며 지내던 에브라임과 다메섹의 모습이 철지난 건달들 같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깡패 의리를 지킬 것인가, 하늘이 무너진 자리에서 새 사람이 될 것인가. 다메섹과 운명을 같이한 에브라임의 길을 보라! 공주야! 속지 말자. 하나님의 뜻을 역주행하면서도 무사하고 무탈할 것이라고 하는 말을. 동시에 속단하지도 말자. 심판의 목적이 파괴나 파멸 자체가 아니라 회개이고 회복이며 변화라는 것을 말이다.
There was a time when, when we came together, we were doing so well that there was no room for a single rival. Ephraim and Damascus, where we used to call each other brother and younger brother, now look like out-of-season thugs. Will you keep your gangster loyalty even if the sky falls, or become a new man in the place where the sky has fallen. Look at the path of Ephraim, which shared its fate with Damascus! Princess, don’t be deceived. Saying that, even while going against God’s will, one will be safe and unharmed. At the same time, let’s not jump to conclusions either. It means that the purpose of judgment is not destruction or ruin itself, but repentance, restoration, and trans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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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가혹한 징계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비를 놓치지 말자. 또 한편 안전과 풍요를 바라며 이방과 연대한 결과는 풍성한 결실이 아닌 상처와 상실이지만 그러나 심판으로 우상을 바라보던 이들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힘자랑을 하던 이들이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게 된 것은 결국 시련을 통해 마음과 시선이 달라진 부분도 있다. 아람과 이스라엘이 손잡을 때만 해도 기세등등하였다. 둘이 합치면 앗수르도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However, even amid the harsh reality of disciplinary action, let us not lose sight of God’s mercy. On the other hand, the result of uniting with the Gentiles in hope of safety and abundance is not a rich harvest, but rather wounds and loss. However, those who once looked to idols through judgment have come to look to God, and those who boasted in their own strength have come to hold the rock of power in their hearts. Ultimately, through trials, there is also a change in both heart and perspective. When Aram and Israel joined hands, they were full of swagger. If the two of them joined forces, it seemed like even Assur could be defe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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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자신들의 실체는 보지 못했다. 이제 하나님이 손을 드실 때 그들은 무너진 무더기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사라지고 양들의 거처가 될 것이다. 살진 야곱의 몸이 파리해지고 남김없이 추수하고 이삭까지 주워 담듯이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추수되고 제거될 것이다. 원래 자신들은 언제든지 그런 신세가 될 수 있을 만큼 하나님의 주권에 의존하는 존재임을 알고 있어야 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심판을 받고 나서야 눈이 열릴 것이다.
But they were unable to see their true form. When God lifts up His hand, they will become a heap of rubble. People will disappear, and it will become the dwelling place of sheep. Just as the flesh of fat‑laden Jacob becomes limp and is harvested without leaving anything behind, even the heads, Israel will be harvested and destroyed by Assyria. They should have known that, in the first place, they were beings dependent on God’s sovereignty to the extent that they could become such a state at any time. If there is any relief, then there is. Only after being judged will the eyes o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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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지으신 이가 보이고 그가 인생의 주관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더는 자신들이 만든 우상 제단을 보지 않을 것이다. 너무 늦은 후회인지 때맞춰 온 회개인지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러나 너무 늦지 않도록 지금 눈을 열어 보게 해달라고 구하자. 이스라엘이 왜 심판을 받아야 했는가? 왜 그 옛적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났을 때 가나안 사람들이 남기고 간 수풀 속의 처소 같은 신세가 되었는가?
You will see the One who created you and realize that He is the sovereign of life. I will no longer look at the idol altar they made. Only God knows whether it is a regret that comes too late or repentance that comes just in time. But don’t wait too long—ask to have your eyes opened now. Why did Israel have to be judged? Why did they become like the dwelling place in the thicket that the Canaanites left behind when God’s power had appeared long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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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 출애굽의 하나님, 가나안 정복을 이끄신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을 마음에 두지 않고 잊었기 때문이다.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이는 부모 없이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과 같지 않은가? 그만큼 악독했고, 하루아침의 실수가 아니다. 켜켜이 쌓인 죄악이 하나님에 대한 기억마저 지워버린 것이다. 그럴 수 있다. 그렇게 양심에 화인 맞기 전에 돌아서야 한다.
Because they forgot and did not keep in mind the God of Egypt, the God who led the conquest of Canaan, the God of salvation, and His power. How could you possibly forget? Isn’t this the same as the idea that one can exist without parents? It was that vicious, and it was not a mistake made overnight. The layers of accumulated sin had even erased even the memory of God. It can be. We have to turn back before we get burned by our con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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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민족들이 파도가 밀려오듯 예루살렘을 향하여 진격하였지만, 주님께서 이 성을 점령하도록 허락하지는 않으신다. 침략하도록 그냥 두시지만 넘겨주지는 않는다. 그분의 꾸짖음으로 그들이 폭풍 앞에 티끌 신세가 될 것이다. 하나님 없으면 폭풍 앞에 등불이요 파도 위의 돛단배 신세가 될 우리임을 기억하자. 주님이 지금 두려움의 밤과 시련의 밤을 허락하신 뜻이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고 어서 그분께 돌아서자. 누구와 손잡고, 누구를 따라 살아야 하는가? 풍요를 추구한 결과를 보면서도 그래도 돈 타령만 할 것인가? 나만 하나님이 독재자처럼 느껴지는가?
Many nations advanced toward Jerusalem as the waves surged, but the Lord did not allow them to capture this city. You just leave it to invade, but you don't hand it over. By his rebuke, they will be dust before the storm. Without God, we are a lamp in the midst of a storm Let us remember that we are destined to be a small sailboat on the waves. Let us turn back to Him now, looking back at what the Lord’s purpose is in allowing us to have nights of fear and nights of trial. With whom should I hold hands, and to whom should I live following? Even after seeing the results of pursuing abundance, will you still keep complaining about money? Am I the only one who feels that God is a dict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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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과 이스라엘의 심판(1-6)
a.폐허가 되는 다메섹(1-3)
b.사라지는 야곱의 영광:4-6
우상 숭배에서 떠나는 날(7-8)
a.자기를 지으신 이를 바라봄:7
b.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바라보지 않음:8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린 이스라엘(9-11)
a.결과, 황폐해 지는 성읍들:9
b.원인, 구원자를 잊은 이스라엘:10a
c.결과, 풍요의 실상:10b-11
침략자들의 멸망(12-14)
a.시온을 침략하는 민족들:12
b.민족들을 꾸짖으시는 하나님: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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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메섹에 관한 경고라(1a)
보라 다메섹이(1b)
장차 성읍 모양을(1c)
이루지 못하고(1d)
무너진 무더기가(1e)
될 것이라(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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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엘의 성읍들이(2a)
버림을 당하리니(2b)
양 무리를 치는 곳이 되어(2c)
양이 눕되(2d)
놀라게 할 자가(2e)
없을 것이며(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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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의 요새와(3a)
다메섹 나라와(3b)
아람의 남은 백성이(3d)
멸절하여(3e)
이스라엘 자손의(3f)
영광 같이 되리라(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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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군의 여호와의(4a)
말씀이니라(4b)
그 날에(4c)
야곱의 영광이 쇠하고(4d)
그 살찐 몸이 파리하리니(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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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추수하는 자가(5a)
곡식을 거두어 가지고(5b)
그 손으로(5c)
이삭을 벤 것 같고(5d)
르바임 골짜기에서(5e)
이삭을 주운 것 같으리라(5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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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오히려(6a)
주울 것이 남으리니(6b)
감람나무를 흔들 때에(6c)
가장 높은 가지 꼭대기에(6d)
실과 이 삼 개가(6e)
남음 같겠고(6f)
무성한 나무의(6g)
가장 먼 가지에 (6h)
사 오개가(6i)
남음 같으리라(6j)
이스라엘의 하나님(6k)
여호와의 말씀이니라(6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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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7a)
사람이(7b)
자기를 지으신 자를(7c)
쳐다보겠으며(7d)
그 눈이(7e)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7f)
바라보겠고(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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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손으로 만든 단을(8a)
쳐다보지 아니하며(8b)
자기 손가락으로 지은(8c)
아세라나 태양 상을(8d)
바라보지 아니할 것이며(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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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9a)
그 견고한 성읍들이(9b)
옛적에 이스라(9c)
엘 자손 앞에서 버린바 된(9d)
수풀 속의 처소와(9e)
작은 산꼭대기의(9f)
처소 같아서(9g)
황폐하리니(9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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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네가(10a)
자기의 구원의 하나님을(10b)
잊어버리며(10b)
자기의 능력의 반석을(10c)
마음에 두지 않은 까닭이라(10d)
그러므로 네가 기뻐하는(10e)
식물을 심으며(10f)
이방의 가지도 이종하고(1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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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심는 날에(11a)
울타리로 두르고(11b)
아침에 너의 씨로(11c)
잘 발육하도록 하였으나(11d)
근심과 심한 슬픔의 날에(11e)
농작물이 없어지리라(1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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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 많은 민족이(12a)
소동하였으되(12b)
바다 파도의(12c)
뛰노는 소리 같이(12d)
그들이 소동하였고(12e)
열방이 충돌하였으되(12f)
큰물의 몰려옴 같이(12g)
그들도 충돌하였도다(12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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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방이 충돌하기를(13a)
많은 물의(13b)
몰려옴과 같이 하나(13c)
주께서 그들을(13d)
꾸짖으시리니(13e)
그들이 멀리 도망함이(13f)
산에 겨가(13g)
바람 앞에 흩어짐 같겠고(13h)
폭풍 앞에 떠도는(13i)
티끌 같을 것이라(13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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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저녁에(14a)
두려움을 당하고(14b)
아침 전에(14c)
그들이 없어졌나니(14d)
이는 우리를(14e)
노략한 자의 분깃이요(14f)
우리를 강탈한 자의(14g)
보응이니라(14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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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광의 끝이 오리라_The glory will come to an end.
그날에 비로소 눈이 열리리라_It will not be until that day that the snow will open.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린 자들을 심판하라_Judge those who have forgotten the God of salvation.
주께서 자기 백성은 꾸짖어 보호하시리라_The Lord will scold his people and protect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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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뒤에 자기백성을 권고하사 양식주시는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지난해 보다 더 어려운 가계와 흉흉한 인심가운데 여기저기 터져 나오는 탄식소리는 지금 우리의 삶이 리턴 되어야 함도 깨달아지게 하옵소서. 내 자식이 예쁠 때 그 분께 감사하게 하시고 내 공동체가 소중하게 느껴질 때 우리가 주안에 있는지 늘 점검하게 하옵소서.
We hear the voice of the Lord, who calls us back to God, who recommends his people after the judgment. Let us realize that our lives should now be returned to us, with the more difficult families and the shudder of humanity than last year.Be grateful to him when my child is pretty and always check that we are in the state when my community feels precious.
2026.8.5.wed. Clay
신학 비평//
우리는 지금 누구를 바라보며 살아가는가, 하나님인가 아니면 우리가 만든 안전장치인가? 이사야 17장은 다메섹과 에브라임의 멸망을 예언하는 심판의 장이지만, 그 중심에는 '무엇이 무너지는가'보다 '누구를 바라보게 되는가'라는 더 깊은 주제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도시를 폐허로 만드는 분이 아니라, 잘못된 시선을 거두어 참된 시선을 회복시키시는 분입니다. 글의 핵심은 매우 분명합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정치적 연합을 절대적 안전으로 착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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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경은 동맹 자체를 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동맹을 더 신뢰하는 순간, 그 연합은 우상이 됩니다. 결국 심판의 원인은 군사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원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능력의 반석을 마음에 두지 않았기 때문"(17:10)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심판을 받고 나서야 눈이 열릴 것이다"라는 통찰입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가 반복하는 패턴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무너뜨리시기 위해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보게 하시기 위해 흔드십니다. 그래서 7절은 이사야 17장의 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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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 사람이 자기를 지으신 이를 쳐다보겠으며." 결국 심판의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시선의 회복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독재자처럼 느껴지는가?"라는 질문은 조금 더 신학적으로 다듬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변덕스러운 권력자의 폭력이 아니라 언약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엄중함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징계한다고 독재자가 되지 않듯, 하나님 역시 백성을 버리기보다 돌이키기 위해 개입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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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7장은 하나님의 절대권력을 드러내는 장이면서 동시에 회복을 포기하지 않는 언약의 사랑을 증언하는 본문입니다. 마지막 적용도 오늘의 시대와 잘 연결됩니다. 우리는 돈과 기술, 인맥과 정치적 진영을 새로운 안전장치처럼 붙잡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들을 모두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먼저 하나님을 붙들라고 말씀하십니다. 풍요는 죄가 아니지만, 풍요가 하나님을 대신하는 순간 우상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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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사야 17장은 심판의 예언이 아니라 기억의 회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 죄의 시작이라면,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 아니라, 나를 다시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마지막 초청입니다. 지금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심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