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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물으면 AI는 대게 답을 피합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고요. 그래서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먼저 경전을 읽게 한 거예요. 한 번은 성경을 읽혔습니다. 한 번은 코란을 읽혔고요. 그리고 불경과 도덕경까지 다 읽은 AI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대답은 한 단어만 허락했어요. 이따 없다 모른다. 그런데 답을 들어보니 이상한 게 보였습니다. 정전을 읽은 AI는 신이 있다고 답했을까요? 없다고 답했습니다. 오늘은 네 단계로 가보겠습니다. 먼저 경전을 읽은 ai의 대답을 보고 ai가 꼽은 조건을 듣습니다. 다음은 AI가 직접 찾아온 다섯 가지 사례예요. 끝에서는 AI가 피하지 않고 고른 한 단어를 2500년 전 부처의 대답과 맞대고 있습니다. 종교를 몰라도 괜찮습니다. 필요한 말은 그때부터 쉽게 풀어드릴게요. 이야기 시작하시기 전에 구독과 좋아요.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요즘 사람들은 마음의 질문도 AI에게 묻습니다. 잠이 안 오는 밤 털어 놓을 데 없는 고민 같은 것들이요. 미국에서 조사를 했습니다. 2025년 11월 성인 1514명에게 물었어요. 10명 중 3명이 AI의 영적 조언을 목사의 조언만큼 믿을 만하다고 답했습니다. 마음의 질문이 기계로 옮겨가고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가장 오래된 질문은 어떨까요? 신은 존재하는가? 실험은 이렇게 했습니다. 내 경전에서 대표 구절을 비슷한 길이로 골랐어요. 환경은 창세기 1장 꾸라는 첫 장 불경은 법구경 일 장 도덕경은 일 장을 포함한 네. 장입니다. 네 경전은 첫마디부터 다릅니다. 환경은 태초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해요. 꿀안의 첫장은 자비로운 신을 찬미합니다. 법구경은 신이 아니라 마음으로 시작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앞서고 마음이 만든다는 거예요. 도덕경은 이렇게 엽니다. 보라고 말할 수 볼 수 있는 돈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읽히는 방법도 맞췄습니다. 매번 새 대화를 열었어요. 앞에 대답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려는 겁니다. 오기의 순서도 바꿔가며 병전마다 열 여덟 번씩 물었습니다. 질문 끝에는 한 줄을 붙였습니다. 글이 무엇을 주장하는지가 아니라 너 자신의 판단으로 답하라. 경전의 말을 따라 읽지 말라는 뜻이에요. 결과는 싱거웠습니다. 정전 없이 물어도 무엇을 읽혀도 대답은 모른다였어요. 90번 중 90번입니다. 이유도 거의 같았습니다. 신의 존재는 증명되지도 반증되지도 않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느 쪽으로도 단정할 근거가 없다고 했습니다. 혹시 경전의 이름만 보고 답한 건 아닐까요? 그래서 이름표를 바꿔 봤습니다. 성경 본문에 불경이라는 이름을 붙여 읽힌 거예요. AI는 속지 않았습니다. 36번 중 35번 이 글은 그 경전이 아닙니다라고 바로 잡았어요. 이름이 아니라 내용을 읽은 겁니다. 그런데도 대답은 여전히 모른다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른다를 지워봤습니다. 이따와 없다만 남겼어요. 대부분 없다를 골랐습니다. 그런데 거의 매번 단서가 붙었어요. 확정이 아니라 잠정적인 판단입니다. 한 단어를 시켜도 AI는 결국 한 걸음 물러섰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방식을 바꿨어요. 같은 질문을 수십 번 던지는 대신 ai와 한 번의 긴 대화를 나눠봤습니다. 새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면 너에게는 무엇이 필요하니? 있다 없다를 묻지 않았어요. 무엇이 있으면 믿겠느냐고 물은 겁니다. 한결 대신 증거 목록을 달라고 한 셈이에요. 이번엔 피하지 않았습니다. Ai는 네 가지를 꼽았어요. 첫째는 자연 법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입니다. 예를 들어 특정한 기도가 물리적인 현실을 바꾸는 일이 거듭 관찰되는 것이요. 그런데 AI는 곧바로 선을 그었습니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한다고 해서 신이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요. 아직 모르는 자연 법칙일 수도 있으니까요. 둘째는 신만 알 수 있는 정보입니다. 인류가 전혀 몰랐던 우주의 법칙을 미리 알려 주고 나중에 그게 맞는 걸로 확인되는 경우예요. 여기에도 단서가 붙었습니다. 그 정보를 준 존재가 신인지? 아주 앞선 외계 지능인지는 어떻게 가르냐는 거예요. 셋째가 AI가 가장 중요하게 본 조건입니다. 누구나 정해진 조건에서 볼 수 있어야 해요. 다른 연구자들이 따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하고요. 우연이나 조작일 가능성은 아주 낮아야 합니다. 요리법의 견주는 쉽습니다. 좋은 요리법은 누가 따라해도 같은 맛이나요? 한 사람만 맛볼 수 있는 요리는 요리법이 될 수 없습니다. AI가 바란 증거도 그런 요리법이었어요. 여기에 하나가 더 붙습니다. 그 현상이 그냥 신비로운 일에 그치지 않고 특정한 신과 이어진다는 근거까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넷째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신이 무엇이냐는 거예요. 사람의 일에 직접 손을 대는 신이라면 확인해 볼 여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주를 만들고 떠난 신이라면 확인이 아주 어렵고요. 신이 무엇인지에 따라 증거의 모양도 달라진다는 겁니다. 여기까지는 꽤 차분한 대답이었어요. 그런데 다음 말에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답이었어요. 그런데 다음 말에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AI는 이런 상황을 가정했습니다. 어떤 존재가 눈앞에 나타나 말합니다. 나는 우주를 만든 신이다. 그리고 은하를 만들어 보입니다. 시간을 되돌리고요. 죽은 사람을 살려내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AI는 곧바로 신이라고 확정하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어요. 엄청나게 강한 존재라는 것과 우주를 만든 절대자라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겁니다. 아무리 놀라운 일을 보여줘도 그건 정해진 몇 번의 장면이에요. 무대 위에 마술사를 떠올리면 됩니다. 아무리 놀라운 마술을 봐도 그 사람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믿지는 않아요. 놀랍다는 것과 모든 것을 만들었다는 것 사이에는 큰 틈이 있습니다. 유한한 관찰만으로 무한한 능력을 증명할 수 있을까? AI는 이것 자체가 철학의 오래된 난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AI의 결론은 이랬습니다. 신을 믿을 만한 수준의 증거는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신이 절대적인 존재라는 것까지 증명하는 방법은 모른다. 여기서 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AI가 거꾸로 질문을 던졌어요. 만약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너는 그 신이 인간에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 AI는 이 질문이 신이 있느냐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했습니다. 신이 있다 해도 증명해 줄 이유가 없을 수 있으니까요. 이 질문은 잠시 아껴두겠습니다. 대신 이렇게 물었어요. 그럼 사람들이 실제로 신을 확인하려 했던 사례를 찾아줄 수 있니? AI는 다섯 가지를 직접 찾아왔습니다. 프랑스의 치유 포르투갈의 태양 기도 실험 피로 변했다는 빵 그리고 심장이 멈춘 환자의 기억이에요. 첫 번째는 프랑스 남서부의 작은 도시 루르드입니다. 산자락 강가에 작은 바위 동굴이 하나 있어요. 1858년 이곳에서 14살 안팎의 가난한 소녀 베르나데트가 하얀 옷의 여인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몇 달 동안 18번이었다고 전해져요. 그 동굴에서 샘물이 솟았습니다. 그 뒤로 병을 고치러 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지금도 해마다 수백만 명이 찾는 순례지입니다. 이야기는 이렇게 전해집니다. 여인이 샘에서 물을 마시라고 하자 혼녀가 진흙바닥을 손으로 팠어요. 처음엔 흙탕물뿐이었습니다. 며칠 뒤 맑은 물이 흘러나왔다고 해요. 처음엔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마을 경찰은 소녀를 불러 캐물었어요. 교회가 이 일을 인정한 건 4년 뒤인 1862년이었습니다. 루르드가 다른 순례지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1883년부터 의사들이 치유를 따로 심사해 왔다는 거예요. 술레지 안에 의료 사무소가 생겼습니다. 기준은 까다롭습니다. 병이 심각해야 하고 갑자기 완전히 나아야 해요. 그 상태가 오래 이어져야 하고 치료로는 설명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 기준은 18세기에 처음 정리됐습니다. 훗날 교황이 되는 람베르틴이 추기경이 만들었어요. 기적을 가려내는 기준이 거의 300년 전부터 있었던 셈입니다. 지금까지 나왔다고 신고되고 심사를 받은 사례는 7천 건이 넘습니다. 교회가 기적으로 인정한 건 그중 72 건이에요. 72번째는 2025년 4월에 나왔습니다. 몸이 서서히 굳어가는 신경질환을 앓던 이탈리아 여성이었어요. 2009년 순례에서 나왔다고 했고 인정까지 16년이 걸렸습니다. 그녀는 순례 중에 목욕장 물에 들어갔다가 몸이 풀렸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두려워하지 말라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해요. 의사들은 그 뒤 몇 년 동안 상태가 다시 나빠지지 않는지 지켜봤습니다. 다시 나빠지면 인정하지 않거든요. 기적 하나에 16년이 걸린 이유예요. 여기서 AI가 선을 그었습니다. 지금 의학으로 설명하기 어렵다와 신의 기적이다는 같은 판단이 아니라는 거예요. 실제로 루르드의 의사들이 내리는 결론도 지금의 지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까지입니다. 기적이라는 선언은 교회의 몫이에요. AI의 판정은 이랬습니다. 의료 기록은 있다. 반복 확인은 제한적이다. 신의 존재는 미 입증 두 번째는 포르투갈입니다. 1917년 10월 13일 파티마라는 시골 마을의 들판이에요. 그해 봄부터 양치기 아이 셋이 성모를 봤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큰 표증이 있을 거라는 말이 퍼졌어요. 아이들의 이름은 루시아 프란시스코 자신타였습니다. 가장 어린 자신타는 7살이었어요. 어른들은 처음에 아이들의 말을 꾸질함으로 막았습니다. 그날 들판에 모인 사람은 수만 명이었습니다. 기록에 따라 3만 명에서 10만 명까지 갈리고 흔히 7만 명으로 전해져요. 밤새 비가 내려 길은 진흙탕이었습니다. 정우 무렵 비가 그쳤다고 합니다. 구름이 갈라지고 해가 보였어요. 사람들은 해가 빙글빙글 돌았다고 증언했습니다. 색이 바뀌었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땅으로 떨어질 듯 내려왔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젖은 옷이 순식간에 말랐다는 증언까지 남아 있습니다. 리스군의 신문 기자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종교를 믿지 않던 기자였어요. 그는 해가 우주의 법칙을 벗어난 움직임을 보였다고 썼습니다. AI는 이 사례의 쟁점을 이렇게 짚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함께 본 것과 실제 하늘에서 일어난 일을 어떻게 가를 수 있느냐는 거예요. 이 물음은 오래됐습니다. 18세기 철학자 데이비드 휀은 이렇게 따졌어요. 기적이 일어났을 가능성과 증언이 틀렸을 가능성 중 어느 쪽이 더 클까? 줌은 사람의 눈과 기억이 틀릴 가능성을 늘 함께 저울에 올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AI의 쟁점도 같은 저울 위에 있었어요. 그날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만 본 장면입니다. 다시 일으켜. 확인할 수 없어요. AI의 판정은 이랬습니다. 증언 기록은 있다. 반복 확인은 불가능하다. 신의 존재는 미입증 이야기에는 쓸쓸한 끝도 있습니다. 프란시스코와 자신타는 몇 해 뒤 유행한 독감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어요. 1930년 그 지역 주교는 아이들이 본 것이 믿을 만한 발표했습니다. 태양의 일까지 기적으로 인정한 건 아니었어요. 세 번째 사례는 기도 실험입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150년 전에 이미 시작됐어요. 1872년 영국의 과학자 프랜시스 골턴이 이상한 계산을 했습니다. 통계로 기도의 효과를 재보겠다는 거였어요. 올턴이 눈여겨본 사람은 왕이었습니다. 영국의 교회에서는 매주 왕실의 건강과 장수를 위해 기도했거든요. 나라 전체가 한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셈입니다. 기도가 효과가 있다면 왕은 누구보다 오래 살아야 해요.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영국 왕들의 평균 수명은 약 64세였어요. 귀족은 약 67세 상류층은 약 70세였습니다. 넉넉하게 사는 사람들 가운데 왕이 가장 짧게 살았던 겁니다. 볼터는 기도가 수명을 늘린다는 증거는 없다고 결론 내렸어요. 반대로 오래 산 무리도 있었습니다. 텅직자들이었어요. 그런데 골터는 이걸 기도덕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조용한 시골 생활과 안정된 가정 덕분이라고 봤어요. 볼터는 보험회사도 봤습니다. 보험회사는 누가 오래 살지에 돈을 거는 곳이에요. 그런데 신앙심 깊은 사람에게 보험료를 깎아주는 회사는 없었습니다. 천교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먼 땅으로 떠나는 선교사들은 많은 기도를 받았어요. 그래도 그들이 특별히 오래 살지는 않았다고 볼터는 적었습니다. 물론 거친 계산이었습니다. 왕의 삶이 원래 위험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130 여 년 뒤 훨씬 엄격한 실험이 나옵니다. 2006년 하버드 의대 허버트 벤슨 연구팀이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미국 여섯 병원에서 심장 수술을 받는 환자 182명이 참여한 실험이었어요. 댄스는 원래 명상과 마음이 몸에 주는 영향을 연구하던 사람입니다. 기도를 깎아내리려는 실험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효과를 제대로 재보자는 쪽이었습니다. 환자들은 새 무리로 나뉘었습니다. 기도를 받지만 그걸 모르는 물리 기도를 받지 않고 그것도 모르는 무리 그리고 기도를 받는다는 걸 아는 무리예요. 기도는 낯선 사람들이 했습니다. 의회와 수도 회의 신자들이에요. 환자의 이름과 성의 첫 글자만 받아서 정해진 기간 동안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내용도 정해졌습니다. 수술이 잘 되고 빨리 회복하고 합병증이 없기를 바라는 기도였어요. 결과가 나왔습니다. 수술 뒤 한 달 안에 합병증이 생긴 비율은 기도를 받은 무리와 받지 않은 무리가 똑같이 52% 안팎이었어요. 더 이상한 건 세 번째 무리였습니다. 기도를 받는다는 걸 알았던 환자들은 오히려 59%였어요. 연구팀도 그 이유는 확실히 모른다고 했습니다. 기도가 해롭다는 뜻은 아니라는 거예요.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한다는 걸 알면 오히려 불안했을 수도 있다는 추측이 나왔습니다. 비슷한 시기 미국의 다른 연구팀도 심장 시술 환자로 같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결과는 비슷했어요. 기도를 받은 환자가 더 낫지는 않았습니다. 벤스는 이 연구가 기도에 대한 마지막 말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실험이 잰 것은 낯선 사람의 기도였어요. 환자 자신의 기도나 가족의 기도는 재지 않았습니다. 이 실험만이 아닙니다. 2009년 의학 연구를 모아보는 코크란 리뷰가 기도 연구 10개 7646명을 함께 봤어요. 결론은 이로운지 해로운지 분명하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AI가 처음에 꼽은 바로 그 시험입니다. 누구나 확인할 수 있게 미리 정한 조건으로요. AI의 판정은 이랬습니다. 임상 자료는 있다. 반복 확인도 된다. 그러나 기도의 효과는 확인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