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4장,
박정구는 다음날도 선미를 찾아온다.
“오셨어요?”
침대에 누워있던 선미는 몸을 일으키면서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어때요?
이제 내일 수술을 받으실 거죠?“
“네!
선생님덕분에 많은 용기도 생기고 힘도 얻었어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소!
어떻게 하든 수술을 잘 받고 완쾌되는 모습을 보고 싶소이다.“
그리고 박정구는 다음난 선미가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병원엘 온다.
가족들은 그런 박정구를 고맙고도 반갑게 대한다.
선미 또한 그런 박정구가 너무나 반갑다.
“수술 잘 받고 나오시오.
그저 한숨 푹 자고 일어나면 되니까 겁먹지 마시고 씩씩하게 다녀오시오.“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무 고맙습니다.
용기를 주시고 힘을 주시니까 정말 수술을 잘 받고 이겨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박정구는 선미의 수술이 다 끝나도록 수술실 앞을 지킨다.
김 여인은 그런 박정구를 보면서 한 가닥 희망의 꿈을 키운다.
어쩜 부질없는 욕심이 될지는 몰라도 그래도 선미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사람이다.
지금까지 선미가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에서 새 희망의 끈을 잡은 것만 같았다.
오늘도 박정구는 어김없이 선미의 병실을 찾는다.
“어젯밤은 아픈데 없이 잘 잤어요?”
“네!
조금 잤어요.
매일같이 이렇게 들려주시니 너무 고맙고 미안합니다.“
“환자가 별것을 다 신경을 쓰네요.”
박정구는 처음에는 궁금해서 병원엘 들렸고 수술실에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자꾸만 병원엘 오게 되었고 이제는 아침에 눈을 뜨면 병원을 들려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것이다.
선미의 상태가 조금씩 호전되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고 선미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면 함께 아파오는 것만 같았다.
“날씨가 오늘은 매우 추워요.”
“이제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았지요?”
“그럼요!
이제 한 보름 남았어요.
그 전에는 퇴원을 할 수가 있을 것 같은데요?“
“모두가 선생님 덕분이에요.”
“아닙니다.
선미씨가 살고자 하시는 의욕이 있어서 경과도 좋은 겁니다.“
“선생님이 힘이 되어 주셨어요.
정말 무엇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어요.
퇴원을 하고 건강을 다시 회복한다면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게요.“
“하하하..........
꼭 그렇게 하셔야만 합니다.“
김 여인은 어느새 슬그머니 병실을 나선다.
언제부터인가 박정구가 오면 김 여인은 집으로 향한다.
남편이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 둘만의 사이에 자신이 끼어드는 것은 선미를 위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박정구는 김 여인이 돌아오기 전에는 돌아가지를 않는다.
겨울방학이 되어서 학교의 강의도 없었고 선미를 혼자 두고 갈수도 없었다.
식사 때가 되면 선미를 챙기는 모습은 다정한 연인사이거나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는 부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김 여인은 혼자서 욕심을 내 본다.
선미의 눈에도 그를 기다리는 모습이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었다.
그러다 김 여인은 머리를 흔든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고 해도 암을 수술한 딸자식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치료를 받아야하고 많은 날들을 고생을 할지 모르는 딸자식이다.
김 여인은 깊은 한숨을 내 쉰다.
좀 더 일찍 서둘러 재혼을 시키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다.
그랬더라면 자식이라도 두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 가슴을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는 여자로서의 생명이 다 끝난 선미를 생각하니 오히려 박정구의 출현이 선미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앞선다.
김 여인이 집에 도착을 하자 성경화가 집안을 깨끗하게 치우고 시어머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님!
진지 드세요.“
성경화는 예전의 게으르고 불만이 잔뜩 쌓였던 모습이 아니다.
맏며느리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해 내는 모습이다.
“아버지를 보고 나서 먹자!”
안방으로 들어서니 남편의 눈에는 반가움의 눈물이 글썽인다.
“잘 주무셨어요?”
남편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선미도 많이 좋아졌어요.
얼마 안 있으면 퇴원을 해서 집으로 돌아올 수가 있어요.“
“그럼 안 죽어?”
“네!
안 죽어요.“
“엉!”
다시 남편의 눈에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남편은 좋은 일이 있으면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말은 하지 않았어도 자식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아팠던 모양이었다.
“정말 선미가 집에 와?”
다시 묻는다.
“네!
며칠만 있으면 퇴원을 해서 집에 와요.“
“허허허..........”
“기쁘세요?”
“엉!
그래도 제일 착한 딸인데....“
”그럼요!
우리 선미가 제일착하고 이쁘기도 하지요.“
김 여인은 남편을 안심 시키고는 주방으로 간다.
이미 식탁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머님!
형님이 퇴원을 하시고 나서 그 분을 집으로 초대를 해야겠어요.“
“아무래도 그래야겠다.
어디 매일처럼 그렇게 들여다보는 것이 쉬운 일이더냐?“
“그러게나 말이에요.
형님이 완쾌가 되시고 그분하고 좋은 인연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야 말을 해서 무얼 하겠니?
허지만 그건 우리의 욕심일 게다.
어디 사람이 없어서 암 수술을 받은 여자를 선택을 하겠니?“
“그것이 인연이라면 될 수도 있지요.”
“과한 욕심은 갖지 말자!
그저 이 정도에서 선미가 건강해지기만을 바라자!“
김 여인은 밥을 몇 술 뜨다가 수저를 놓는다.
입안이 깔끄럽다.
“어머님!
조금이라도 눈을 붙이셨다가 가세요.
아니면 오늘은 제가 가서 형님을 돌봐드릴까요?“
“아니다!
너보다는 아무래도 내가 가야한다.
그래야 환자의 심리도 안정이 될 것이고 내 눈으로 봐야만 마음이 편하다.“
”그럼 조금이라도 주무시고 가세요.“
성경화는 안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본다.
김 여인은 며느리가 보아준 자리에 몸을 눕힌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쉽사리 잠이 오지를 않는다.
자꾸만 박정구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는다.
김 여인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선미의 행복을 욕심낸다면 사람을 어떻게 하든 잡고 싶은 마음이다.
단 한 순간만이라도 남편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선미의 모습을 보고 싶다.
남편에게 사랑받으며 행복해 하는 선미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인가?
그러나 내 딸의 행복을 위해서 엉뚱한 사람을 고생시킬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김 여인이 그러고 있는 시간에 병실에서는 박정구가 선미에게 시를 낭송해 주고 있다.
“내 몸속에 흐르는 혈관 속에
사랑은 살아서 콸콸 흐르고 있다.
내 허전한 머리를 덮은 머리카락처럼
죽음도 검게 일어나
나와 함께 매일을 빗질하고 있다
깎아도 또 생기는 단단한 껍질
남모르게 자라나는 나의 손톱처럼
보이지 않는 신앙도
보이지 않게 크고 있다
살아있는 세포마다
살아있는 사랑
살아있는 슬픔을
아무도 셀 수가 없다
산다는 것은
흐르면서 죽는 것
보이지 않게
조금씩 흔들리며
성숙하는 아픔이다“
선미는 눈을 감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맑고 청아한 그의 음성은 너무나 선미의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박정구는 여러 권의 시집을 가져다주었다.
자신의 시집도 있고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집들이다.
그의 시집은 그리움이 너무나 많이 담겨져 있었다.
그리움의 세월 속에 너무도 목마른 그의 영혼이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이 시는 이해인 수녀님이 쓰신 것인데 난 언제나 혼자서 낭송하기를 좋아하는 시라오.”
“너무 좋은 시 같아요.
그리고 선생님의 음성이 너무나 맑고 청아해서 듣기에도 좋고요.“
선미는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한다.
“선미씨!
선미씨의 아픈 모습이 자꾸만 내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소.
내가 아니면 보호해줄 사람이 없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내 혼자만의 생각일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자꾸 마음이 쓰인다오.“
“선생님!
보잘것없는 저로 인해서 그렇게 신경을 쓰시게 해서 미안합니다.“
“그런 말이 아니오.
선미씨를 위해서 무언가를 할 수만 있다면 난 그것으로 만족하오.“
“제가 선생님께 그러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나요?”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사랑받을 자격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지요.
선미씨는 충분히 보다 많은 사랑을 받을 자격을 가지고 있고말고요.“
선미는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이 무척이나 행복했다.
그의 시를 읽다보면 고독을 너무나 즐기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다.
고독한 사람이 아니라 고독을 즐기고 있는 사람처럼 생각이 되는 것은 그가 고독하다고 해도 불행해 보이지 않기 때문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박정구는 선미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주고 있었다.
선미는 그가 사다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맛있게 잘 먹는다.
박정구는 매일 다른 죽들과 과일들을 사다 정성껏 선미를 먹이곤 한다.
김 여인은 그런 박정구의 노력에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모르면서 매일 그를 기다린다.
언제나 거의 같은 시간에 나타나는 박정구를 선미와 김 여인은 말없이 기다린다.
선미는 크리스마스를 삼일 앞두고 퇴원을 한다.
박정구는 자신의 승용차로 선미와 김 여인을 태우고 집으로 향한다.
선미의 퇴원을 축하하기 위해서 형제들이 다 모여 있었다.
조촐하게 축하하는 자리가 마련이 되어 박정구는 선미와 나란히 상석의 자리에 앉게 된다.
“오늘 우리 선미를 위해서 그동안 애쓰시고 수고를 해 주신 박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김 여인이 깊은 감사의 인사를 한다.
“제가 뭘 한 것이 있어야지요.
이런 자리까지 베풀어주신 어머님께 저도 감사를 드립니다.
가족들의 이런 사랑이 선미씨를 삶의 의욕을 불어 넣어주고 있는 것 같아서 제 마음이 상당히 기쁘군요.“
“아닙니다.
우리 선미가 그동안 박 선생님의 은혜를 얼마나 많이 입었는지 누구보다도 어미인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박 선생님께서 우리 선미를 살려주신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집안의 분위기는 박정구로 인해서 많은 호기심과 기대가 가득하다.
박정구는 그런 분위기를 간파를 하고 있었다.
그 또한 그런 분위기가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함께 분위기에 빠져든다.
선미는 온 몸의 떨림이 오면서 가벼운 흥분이 일기도 한다.
박정구는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 선미를 찾아온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감사히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수고 하셨슴니다 .
잘 보고 갑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