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열전 2의 히로인. 배우 장영남을 만나다.
지난 2004년. 15편의 작품으로 17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관객을 동원한 연극열전이 4년 만에 관객들의 곁으로 다시 찾아왔다. 장진 감독의 3년 만의 연극 연출. 배우 한채영의 연극무대 데뷔, 류승룡, 강성진, 장영남 등의 스타캐스팅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서툰 사람들’의 히로인 장영남을 관객들이 모두 떠난 텅 빈 객석에서 만나보았다.
“연극열전2…. 부르주아 냄새가 나긴 하죠.”
‘내 동생의 머리를 누가 깎았나.’에서 세상의 풍파를 너무도 일찍 겪어버린 큰딸 이금. 늦게 만난 사랑에 고민하는 ‘멜로드라마’의 성공한 큐레이터 강유경에 이어 그녀가 선택한 작품은 코믹 소란극을 표방한 ‘서툰 사람들’이다. 약간은 무거운 배역을 연달아 하다 푼수기가 가득한 25살 영어교사로 변신했다.
“연애극이자 코믹 소란극이에요. 서툰 도둑과 서툰 영어교사의 따뜻한 연애극이라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따뜻함이 지나쳐 서툴기까지 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연극열전2의 성공이 침체된 대학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긴 하지만 관객 쏠림으로 인한 대학로 연극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가져오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자 잠시 멈칫한다. 부자들에게 가난이란 사랑의 리퀘스트 ARS에서만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녀는 자신을 부르주아라고 표현하면서도 힘든 환경과 악전고투를 하고 있을 동료가 내내 마음 쓰이는 모양이다.
“사실 부르주아 냄새가 좀 나긴 하죠. 함께 연극을 하는 동료에게 눈치도 보이고 미안하기도 해요. 관객을 뺏는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고. 연극열전2는 스타시스템을 도입해 친숙한 공연으로 관객들을 대학로로 불러 모으자는 취지인데, 기존에 대학로의 배우들과 함께하면 더 좋겠지만 그러지 못해 씁쓸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요. 하지만, 연극열전2가 연극에서 멀어진 관객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발걸음을 무대로 불러올 수 있다면 긍정적이라고 봐요.”
연극열전2의 작은 성공이 외려 미안함으로 다가오는 연극계의 오랜 침체가 안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극단 골목길의 ‘골목길 햄릿(박근형 연출)’이 무대에 오릅니다. ‘골목길 햄릿’을 비롯해 대학로에 오시면 좋은 공연이 많으니, 연극열전2도 사랑해 주시고 다른 연극도 많이 관심 가져 주셨으면 해요.”
죽거나 혹은 미치거나. 깨는 여자 장영남.
배우 장영남은 얼마 전 개봉한 ‘헨젤과 그레텔’을 비롯해 ‘아는 여자’, ‘거룩한 계보’, ‘연애’ 등등의 영화와 TV단막극. 그리고 드라마 ‘달자의 봄’에서 기중 아내 역을 맡으며 무대가 아닌 스크린이나 브라운관에서의 필모그래피도 쌓아가는 중이다. 오랜 시간 무대에서 단련된 연기를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지만 정작 연기호흡을 묻는 말엔 겸손을 내세운다.
“연극은 자르는 법 없이 한 호흡으로 배역에 몰입해 연기하면 되지만, 영화나 드라마처럼 끊어가는 것이 아직 익숙하진 않죠. 순간집중력을 상당히 요하는 작업인 것 같아요. 감정이 떠나지 않게 촬영에 들어가서 끝나기까지 계속 펌프질을 하고 있죠. 조금씩 알아가는 과정 속에 있는 것 같아요.”
‘버자이너 모놀로그’나 ‘달자의 봄’에서 엽기적인 기중 아내처럼 자그맣고 예쁜 외모에는 어울리지 않는 배역들을 많이 맡았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뭔지 궁금했다.
“(대본을)읽었을 때 재밌는 것, 그리고 연출하시는 분이 어떤 분인가가 작품을 선정하는 기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것이든 저한테 잘 맞겠다거나 괜찮겠다 싶은 배역보다는 저한테 없는 것, 좀 깨보고 싶고 바꿔 보고 싶은 역할을 많이 했죠. 그래서인지 정형화되거나 양식화 된 역할 대신 미치거나 혹은 죽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웃음)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우울해지더라고요… ….”
연기를 위해 일상마저도 단순화하는 감정노동자.
소비자의 이해와 요구를 이뤄주고자 자신의 감정을 배제하면서 항상 웃어야 하는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가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다. 배역에 따라 감정을 통제하고 억눌러야 하는 배우 또한 감정노동자가 아닐까?
“제가 굉장히 무기력하게 느껴지더라고요.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고 중간에 하루 이틀 쉬잖아요. 근데 할 게 없어요. 내 생활이 없었던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게 뭐지? 나도 모르게 의식하지 않은 세계에서 그 사람(배역)을 표현하고자 무대 위에서 열성을 다했지만 정작 나를 위해서 가꾼 것은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내 특기가 뭔지, 내 취미가 뭔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점점 일상에서 멀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곤 해서 속상할 때가 잦아요.”
소설가 오정희 선생은 소설을 쓰기 위해 생활을 단순화 시키는 대신 단조로운 일상을 확대시키는 것이 자신의 글 쓰는 방법의 하나라 얘기했다. 연기를 위해 일상을 단순화시키는 배우 장영남의 모습에서 오정희 선생의 담담하지만 치열한 예술가적 삶의 자세가 오버랩된다.
연기했던 인물 중 자연인 장영남과 가장 닮아 있는 배역을 물었다.
“유화이 역도 좀 닮은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분장실’이란 작품에서 맡았던 배역은 본받고 싶은 캐릭터죠. 여배우의 대사를 무대 뒤에서 읽어주는 프롬프터 역할인데 자기가 여배우라는 착각에 휩싸여 결국 미치는 역할이죠. 하고자 하는 배역에 대한 열망이나 집념이 상당히 강한 친구였어요. 그래서 그 인물이 제게는 숙제 같았고 공부가 되었던 배역이에요. 닮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연기뿐만이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하고자 할 때 집념 같은 것. 그 집념이라는 게 나한텐 얼마만큼 있나 계속 궁금하게 했던 배역이었어요.”
“하루에 한 번씩 배우라는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람은 늘 다른 삶을 꿈꾸지만 막상 삶에 ‘갑자기’가 끼어들어 일상을 흔들어 버리면 과거의 평온한 일상을 간절하게 그리워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늘 다른 삶을 꿈꾼다. 마치 그것만이 조용한 일상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일탈을 소망한다. 배우라는 직업을 삶의 당연처럼 받아들인 듯한 장영남이지만 배우라는 이름 자체를 버리고 싶었던 적은 없었을까?
“매 순간 있어요. 하루에도 한 번씩은 생각하죠. 그러나 길진 않아요. 배우라는 게 힘들죠.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계획적으로 나를 다듬고 만져주지 않으면 금방 지치게 돼요. 그리고 무대 위에서 매번 평가받아야 하는 그런 것들이 좀 두렵더라고요. 어느 순간, 그게 두렵다고 느껴질 때…. 그리고 연기라는 게 정답이 없잖아요. 1번 답, 2번 답. 이런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보는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들이 다 다르니까 똑같은 걸 봐도 느낌이나 감상이 다 다르잖아요. 정답이 없으니까 한계가 없어요. 그냥 계속 가야 된다는 것.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르고 막연하게…. 그런 게 두렵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생각하죠. 아주 잠깐씩. 그래도 이걸 한 게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인홀트 메스너라는 산악인이 있다. 히말라야 14좌를 최초로 등정하고 에베레스트를 산소통도 없이, 게다가 혼자서 등정한 사람이다. 산에서 동생을 잃기도 했다. 그는 산을 오르기 전 장비를 챙기면서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그 눈물의 이유는 다름 아닌 두려움이다. 무서워서 운다는 것이다. 울다가 너무 무서우면 짐을 다시 풀고 그러다 좀 괜찮아지면 다시 울면서 짐을 싼다고 했다. 그러길 몇 차례 반복한 후에야 눈물을 흘리면서 저벅저벅 산을 향한다고 한다. 그녀에게 있어 연기란 메스너의 산 같은 것일까? 두렵지만 눈물을 흘리면서도 향할 수밖에 없는 연극이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까?
“이젠 그냥 제 생활의 일부분이죠. 내가 배고파서 밥을 먹는 것처럼 그냥 하고 싶어요. 안 하면 땡기고, 너무 갈증 나고,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힘들어질 것 같아요. 연기가 주는 활력이 굉장해요. 제가 평상시에 하지 못했던 것을 해소해주는 카타르시스가 있어요. 연기를 하면서 정화되기도 하고, 회복되기도 하죠. 저를 해소해주고 치유해주는 병원 같은 것이에요.”
좋은 배우와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즐거움.
장영남이라는 이름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었으면 하느냐는 질문에 한참을 망설이다 겨우 입을 뗀다. “글쎄요. 그냥 배우 장영남이면 좋겠어요. 굳이 덧붙이라면 따뜻한 배우, 사람냄새 나는 배우였으면 해요.” 배우로서 열심히 살다 나이가 들면 자그마한 극장을 하나 만들어 좋은 사람, 좋은 공연과 함께할 수 있으면 너무 행복하겠다고 말하며 천진하게 웃는 그녀에게서 따뜻한 사람냄새가 스친다.
그녀의 연기는 늘 기다려진다. ‘서툰 사람들’의 지방공연이 끝나는 4월이 되면 장진 감독의 새 영화에 출연할 예정이라고 한다. 약간의 설렘과 함께 그녀의 연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훌륭한 배우가 있고 그의 연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에겐 상당한 즐거움이리라. 장영남이라는 배우가 사람들의 눈에 좀 더 많이 익었으면 한다. 올핸 좀 더 ‘낯익은 당신’이 되길 바란다.
<글 / 풍금, 사진 / 양진식, 정의철>
첫댓글 배우 장영남도 멋지지만.. 어째 이 기사에서 라인홀트 메스너라는 산악인 얘기에 가슴 먹먹한.. 감동이~
고마워 이거 읽느라 일을 못한다.^^
“이젠 그냥 제 생활의 일부분이죠. 내가 배고파서 밥을 먹는 것처럼 그냥 하고 싶어요. 안 하면 땡기고, 너무 갈증 나고, 무기력해지고, 우울해지고, 힘들어질 것 같아요". <------ 요 부분이 참 공감가네...... 치열한 공연 끝나면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못할것(안할것) 처럼 그러지만 그 마음이 체 일주일도 못간다... 무슨 닭세끼도 아닌데...^^; ... 그래서 사람들은 환쟁이, 예수쟁이, 등과 더불어 우리를 "연극쟁이" 라고 부르나 보다. 그러고 보니 "쟁이" 라는 말이 그리 나쁜말은 아닌듯 싶다... 어?... 뽕쟁이도 있네 젠장...!!!
배우 "장영남"... "참 배우처럼 생긴 배우다"...라고나 할까?..나도 연극판에 끼어든지 10년...대학로 공연 보러 다닌지는 더 오래 되었는데...이런 배우를 왜 지금 알았지?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참 매력적인 배우다. 연극"서툰 사람들" 의 공연을 보고 단연 압도적으로 인상에 남는 배우...여태것 그 수많은"서툰 사람들" 을 봤어도 그렇게 "유화이" 같은 사람은 처음본다... 그녀의 눈빛, 행동, 말투, 그 경이로운 백치미 까지... 마치 극 중 "유화이" 의 현신을 보는듯한 느낌... 걱정이다... 오래전 배우 "길혜연" 씨 에게 그랬고 배우 "이승비" 씨 에게 그랬고... 폭 빠지면 또 미치는데... 나 스토킹 들어가면 누가 좀 말려줘요~~~오...!
형 하지만 쉽진 않을게야~ 주위에 장영남씨 팬이 얼마나 많은데...내가 아는 한 동생은 이미 스토킹 시작했어.!! 어제 악수를 했다고 하더라고 술도 같이 먹고...모라고 더 했는데 잠시 한눈 판 사이 술집이 지 방인냥 자더라고..ㅋㅋ 암튼 형 경쟁자 많아.!!
장영남이가...팬이그리많나.....
멋있어요, 언니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