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월요시편지_364호]
책을 덮다
김이안
당신은 오독했다
근거는 미약하다
당신이 간간히 긋고 간 밑줄들
연필이거나 볼펜이거나 혹은 노란 형광펜 자국으로 인해,
책 속의 흔적은 오독을 부인한다
-나는 분명히 읽었어!
그러나 당신이 읽고 싶은 것을
당신의 취향과 방식대로 읽었을 뿐,
당신은 처음부터 읽지 않았고
끝까지 읽지 않았고 혹은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 당신 손바닥 위에 놓여 있다
냉정한 당신의 눈을 통해, 나는
시시껄렁하고도 복잡·난해한 나를 읽는다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예각이 기척을 하기 시작한다
읽다 만 111쪽 페이지를 접고 나는
책장 구석에 책을 잘 꽂아두기로 한다
당신은 읽히지 않는다
더 이상 오독의 위험은 없을 것이다
예각은 무뎌디지 않은 채
단지 우리는 잠시 서로 함구할 뿐,
- 《열린시학》(2013 가을호)
*
김이안 시인의 「책을 덮다」를 띄웁니다.
태풍 소식이 있습니다만... 가을 그리고 10월... 책을 읽기 좋은 계절, 좋은 날들이지요.
사람과 사람의 소통을 시인은 책을 읽는 것이라고 합니다. 나이거나 당신이거나 혹은 그이거나 아무튼 나는 당신을 당신은 나를 우리는 그를 그는 우리를 서로가 서로를 오독하면서 오해하면서 오독을 부인하면서 이해한다고 이해했다고 하면서 그렇게 소통과 불통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관계를 맺습니다. 때로는 책을 덮어 오독의 위험으로부터 피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곰곰 생각하면 오독이 정독이란 생각... 세상의 사랑이란 게 지금 우리의 완전무결한 영원한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고, 함께 산다는 일이 결국은 그런 오해를 풀면서 서로의 오독을 인정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예각이 무디어지는 것이 아닌가...그런 생각도 해보는 아침입니다.
영국 속담이었던가요?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면 한 사람 안에는 셀 수도 없는 책이 쌓여있는 것이니... 어찌 그 사람을 온전히 다 안다고 온전히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나 싶습니다. 그저 조금씩 조금씩 다른 책들을 다른 의견들을 인정하면서 가는 것 아니겠나 싶기도 합니다. 그러니 책을 덮으려 하지 마시고 그저 편안하게 오독을 즐기는 게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태풍이 그저 나쁜 것만은 아니어서 바닷속을 깨끗이 하는 정화작용도 있는 것이어서 세상 만사의 이치가 조화에 있다고 합니다. 말은 쉽지만 참 어렵긴 하지요. 조화를 이룬다는 거...^^
2013. 10. 7.
강원도개발공사 사업지원팀장
박제영 올림
첫댓글 함께 산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이죠 ^^ 다들 개성이 좀 넘칩니까? ^^ 책을 끝까지 읽기는 어렵고, 덮기는 그보다는 쉽고... 살다보니 끝까지 읽고있는 책보다는, 덮은 책들이 훨씬 많네요... ! 앞으론 님의 말씀대로 해볼까요? "(무작정) 책을 덮으려 하지 말고, 그냥 편안하게 오독을 즐기자!" 근데 잘 될른지...^^. 아뭏든 차~암, 와 닿는 시와 시평입니다. 감사~^^
그쵸...생각하면 지금까지 중간에 덮었던 책/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오독을 즐기라, 말은 그리해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그래도 해봐야지요...오독을 즐기기에 좋은 계절이니까요^^
책을 사람으로 치환하면 살면서 더러 사람을 책꽂이에 꽂듯 거래나 소통을 멈추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오독의 위험 혹은 오해의 위험이 없을 테니까 가끔은 책꽂이에 꽂아두는 것도 더많은 소통을 위해 필요하진 않을까요.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에는 생각나는 사람들과 전화 한 통화하고 소통하며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앗!!! 동시에 댓글을 달고 있었네요... 가끔은 책꽂이에 꽂아두는 것... 도 좋겠네요.ㅎㅎ 잘 지내시지요?^^*
염치없이 퍼 갑니다 고맙습니다 ^-^
얼마든지 퍼 가셔도 됩니다.^^*
이미 책에서 읽었지만 여기서 읽으니 더욱 새롭습니다.
^^그러셨군요...
저는 빈 도서관입니다 낡기도 한 흑~
에휴...그렇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