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pe diem‘의 역설
로마의 시인 호레이스(Horace)의 ’송시‘(Odes, 頌詩)에는 ‘오늘을 잡아라. 내일은 가능하면 믿지 말아라.’(Carpe diem, quam minmum credula postero, Seize the present: trust tomorrow e’en as little as you may.)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시는 시인이 젊은 여자친구(이 시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고대 그리스 신 루시퍼의 딸 Leuconoe의 이름으로 불렀음) 와 함께 보낸 나폴리 어느 해안에서 쓴 것이다. 그 내용은 여자친구에게, 그녀에게 주어진 운명에 관해 묻지도 말며, 고대 바빌론 점성가들의 예언도 믿지 말기를 권하고 있다. 더욱이 신들이 싫어하는 미래를 예측하지도 말고, 그 대신 그들에게 주어진 날들을 포도주를 마시며, 마음껏 즐기며 살라고 권면한다. 또한, 아주 먼 미래를 바라보지 말라고 한다.
이는 미래는 불확실하므로 미래에 기회를 두기보다는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로 여겨진다.
호레이스의 시는 수천 년 전 인류문명의 발상지인 수메르의 우루크 왕인 ‘길가메시(Gilgamesh)의 서사시’에 나오는, 시두리(Siduri)가 길가메시에 전한 말에서 연유한다. 이 시는 인류 최초의 서사시로 알려졌다. 수메르어로 길가메시는 ‘노인이 청년이 되었다’라는 뜻이고, ‘젊은 여인’을 뜻하는 시두리는 포도와 맥주를 만드는 여신이다. 길가메시가 영생을 찾으려고 떠난 길고 험한 모험의 끝 무렵에, 어느 바닷가 아름다운 정원에서 만난 시두리라는 여신이 그에게 들려준 말은 매우 실제적이고 인간적이다. 즉 이룰 수 없는 헛된 영생의 꿈을 버리라고 충고한다. 그래서, ’길가메시야! 너의 배를 맛있는 음식으로 채우고 밤과 낮, 낮과 밤을 새워 춤추고 기뻐하라. 잔치하며 즐거워하라. 항상 깨끗한 옷을 입고 몸을 정결히 씻으며, 너의 손을 잡는 자식을 귀히 여기며, 아내를 따스하게 품어 안아 행복하게 해줘라. 이것만으로도 인간은 모든 것을 누리느니라‘라는 말을 들었으나, 길가메시는 포기하지 않고 모험을 계속한다. 이윽고 천신만고 끝에 젊음을 되찾는 신기한 식물을 구하여 우루크의 노인들과 함께 나누어 먹기로 다짐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야영을 하던 어느 밤 뱀이 그 식물을 가로채 달아났다. 그 뱀은 그 식물을 먹고 자신의 허물을 벗어 던져 다시 젊음을 찾았다. 그는 빈손으로 돌아 오지만 마침내 자신도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존재임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더 이상의 것을 추구해야 할 일이 없음을 깨닫고 우루크로 돌아가 왕의 의무를 다하며 그의 여생을 보낼 것을 결심한다.
한편 기원전 1세기 중엽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씌어 진 유대교의 지혜서인, ’솔로몬의 지혜서‘(The Book of Wisdom, or the Wisdom of Solomon 2:8)에는 ’장미가 시들기 전에, 그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우리 머리에 씌우자‘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처럼 솔로몬은 모든 것에는 때가 있음을 전도서에도 거듭 강조하였다.
이 같은 호레이스(Horace)의 ’송시‘이후 많은 시인이 ’Carpe Diem‘을 노래했다. 영국의 시인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이 1648년에 쓴 시 ’처녀들에게, 소중한 시간에‘(To the Virgins, to Make Much of Time)가 그러하다. 그 첫 연을 옮겨보면, ’그대 어여쁜 소녀들이여, 할 수 있다면 장미 꽃송이는 지금 맘껏 거두어야 해. 지난 시간은 아직도 달아나고 있어. 오늘 웃음 짓는 꽃은 내일이면 시들어 죽어버릴 거야‘라 옮길 수 있다.
이러한 교훈은 많은 현자의 어록에서도 볼 수 있다. 월든 호수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살았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당신은 현재에 살아야 한다. 매 순간에 영원을 찾아라. 바보들은 기회에 섬에서 다른 육지를 찾는다. 다른 육지는 없다. 이번 생 외에는 다른 생이 없는 것이다.’라고 했고 간디(Mahatma Gandhi)는 ‘내일 죽을 것 같이 살아라. 우리에겐 오늘뿐이다. 자, 시작하자’라고 강조했으며, 월트 휘트먼(Walt Whitman)은 ‘행복은 다른 곳이 아닌 이곳에서, 다른 시간이 아니라 바로 이 시간에 있다.’라고 노래했다.
이 ‘Carpe Diem’이란 잠언과 흔히 함께 쓰이는 경구는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이다. ‘Memento Mori’는, 음울한 표현일 수 있으나,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는 경고로, 목표 지향성 동력을 추진하는 심리적인 힘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기회를 놓치는 것은 항상 시간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살아 있는 동안 하루인들 헛되게 보낼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서구인은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모두 때가 있다’라는 지혜서의 권면을 따르는 듯, 그들의 생각의 틀은 인생에서 취해야 할 모든 것은 때를 따라 맞게 행하고 성취해야 하는 적극적인 ‘Carpe Diem’에 높은 가치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동양인들은 ‘나아감’보다는 ‘물러남’에서 때를 놓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는 소극적인 ‘Carpe Diem’의 행위자로 여겨진다.
이런 예를 채근담(菜根譚, 후편 15, 조지훈 역)의 글에서 엿볼 수 있다. “생각났을 때 곧 번뇌를 쉬면 그 자리에서 깨달을 수 있으나, 만일 따로 쉴 곳을 찾으려 하면 아들딸 모두 결혼시키고 나서도 남은 일이 많으리라. 중과 도사가 좋다 하나 그 생각으로는 마음을 깨달을 수 없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이제 쉬어 버리면 곧 쉴 수 있거니와 깨달을 때를 찾으면 깨닫는 때가 없다‘라고 하였으니 참으로 탁견이로다.”
여기서, 동양인은 세상 살기가 무척 힘들어서인지, 쉬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면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곧 쉬면 휴식할 수 있지만, 쉴 때를 기다려 휴식하려 한다면 그 기회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인은 ’지금 해야 할 당위(當爲)와 의무를’ 강조하는 반면, 동양인은 ’지금 하지 않아야 할 자유를‘ 보다 더 원하는 편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전자는 젊은이에게, 후자는 늙은이에게 어울리는 교훈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곳에 가치를 더 소중히 두는지는 생각의 차이일 뿐이고 이는 곧, ’Carpe Diem‘의 두 얼굴이자 역설이라 할 수 있다.
어차피 ’인생은 한 번뿐이나 제대로 산다면 그 한 번으로 족하다‘는 말처럼,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몫일 것이다.
붙임 1:
송시(Odes, 頌詩)
Odes Book I, 1-11
by Horace
나의 로이콘(Leuconoe,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루시퍼의 딸) 이여,
신들이 나와 너, 우리에게 주신 예정된 시간을 묻지마 (그건 금지된 지식이야)
또한, 바빌론 선각자들의 점성술 계산표도 흘겨보지도 말기를.
주피터 신이 겨울을 몇 번이나 허락할 수 있는지,
아니면 이 겨울이 우리의 마지막 겨울인지도 알 수 없고,
혹 이에 저항하려는 부석(浮石) 위의 나폴리 바다를 무력하게 하여도,
이 고통을 견디는 것이 더없이 좋을 거야
현명해야 해, 포도주를 마시고
기다란 희망은 줄여서 조그만 공간으로 만들어야 해
우리가 얘기하는 사이에도 시기하는 시간은 도망쳤을 거야
오늘을 잡아야 해, 가능한 내일은 그리 믿지 말고
붙임 2
처녀들에게, 시간의 소중함에
(To the Virgins, to Make Much of Time)
by Robert Herrick
그대 어여쁜 소녀들이여
할 수 있는 한 장미 꽃송이는
지금 맘껏 거두어야 해
지난 시간은 아직 달아나고 있어
오늘 웃음 짓는 꽃은
내일이면 시들어 죽어버릴 거야
찬란한 하늘의 램프인 태양은
높이 올라갈수록 가치를 얻을 것이고
빠를수록 그의 경주를 달음질할 거며
가까워질수록 해는 쉬 넘어갈 것이네
젊음과 피가 뜨거울 때인
처음 나이 때가 가장 좋은 거야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더 나빠지게 되고
끝내는 최악이 되어버리지
그때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시간을 잘 보내야 해
할 수만 있다면 결혼을 해
그러면 그대들의 꽃다운 시간을
잃더라도
그대들은 영원에 머무르게 된다네
붙임 3
菜根譚(후 15)
洪自誠
人肯當下休 便當下了
若要尋個歇處 則 婚嫁雖完
事亦不少
僧道雖好 心亦不了
前人云
如今休去 便休去
若覓了時 無了時
見之卓矣
첫댓글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에 대한 동서양의 재미있는 비유네요. 그런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세를 보면 한국인들은 '내일 죽을 것' 처럼 오늘을 살고, 서구인들은 '쉴 자유'에 보다 큰 가치를 두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제 경우, '내일은 없는' 것 처럼 젊은 시절을 살다가, 퇴직을 한 후 병을 통해 비로소 쉼과 자유를 누리게 되었으니 서양과 동양을 넘나들며 살아온 셈인가요? 수준 높고 흥미로운 글..잘 읽고 갑니다. 늘...감사합니다.
권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 당시 서구인들은 ‘Carpe Diem’ 정신으로 서양문명을 구축했지만, 풍요로운 사회에서의 오늘의 그곳 젊은이들은 ‘쉴 자유’를 구가(歐歌)하는 반면, 우리 젊은이들은 ‘내일이 없는 것’처럼 일하는 모습이 되었습니다. 어찌 보면 이런 현상도 ‘Carpe Diem’의 역설로 보입니다.
김형석 명예교수님은 어느 인터뷰에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좋았던 시절을 보면 60-75 세라고 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정신적으로 좀 빈약했고, 그 이후는 창의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아직 학문의 끈을 놓지 않으시고 정진하시니 분명 행복하십니다.
항상 좋은 말씀으로 권면해주시어 감사드립니다.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