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우르스 (Taurus) 산맥을 넘어서
에페소에서 카파토키아 까지 가는길은 타우르스 (Taurus) 산맥을 넘어가야한다.
타우르스산맥은 터어키 남쪽에서 시작되어 시리아까지 연결되는 1000km 길이라고 한다.
타우르스는 '소의 등을 닮았다'는 뜻으로
내륙과 지중해를 가르는 거대한 산맥이 소의 등뼈 처럼 생겨 붙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타우르스 산맥을 관통하는 도로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수령이 수백년은 됐을 법한 침엽수림과 빼어난 기암괴석들이 무참히 잘려지는 현장을 보니 마음이 무겁다.
산정 휴게소에서 바라보니 주변 경치가 그만이다.
터널로 시공하는게 좋았겠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머리에서 맴돌았다
아시아 터키에는 평균높이 1,100m의 청년기 산지들이
북쪽과 남쪽에 우뚝 솟아 중앙 아나톨리아 고원을 둘러싸고 있다.
고원 북쪽의 폰투스 산맥과 남쪽의
토로스(타우르스) 산맥이 대체로 동서방향으로 뻗어있어 고원과 좁은 해안저지대를 구분하고 있다.
타우루스 산맥 동부에 있는 질로다이(4,116m)가 이 지역에서 가장 높다.
중앙 아나톨리아는 여러 개의 분지로 이루어진 반건조기후의 단층지괴(斷層地塊)이며,
동부 아나톨리아는 높은 산맥들과 터키의 최고봉(5,137m)인 아리다이(아라라트 산)처럼
최근에 생성된 화구구들로 이루어져 있다..

11세기 셀주크 터키의 수도 콘야(Konya)
예전에 이고니온이라 불렸던 콘야는
11세기 셀주크 터키의 수도였으며 현재는 520,000명의 주민이 사는 터키 중요도시 중 하나이다.
지중해로부터 250KM 흑해로부터는 500KM, 수도인 앙카라에서는
남쪽으로 250KM가 떨어진 내륙 깊숙이 위치한 도시로 해발고도가 1000M에 달해 콘야는 고원도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콘야의 경제적인 기초는 카펫과 가죽의 생산이다.
그 외에는 광물 산업정도가 있다.
콘야는 11세가 셀주크터키의 수도로 정해진 이후 크게 번성하였다.
이 때 많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이 콘야로 몰려들었는데 지금 남아있는 많은 역사적인 경관들은 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콘야의 고대 거주지는 선사시대로부터 시작되었다.
신석기, 구석기 그리고 초기 청동기 시대의 문화가 이 선사시대에 포함된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들이 콘야에서 36Km 떨어진 차탈효육 발굴 시에 출토되었다.
고대 거주지가 묻혀있는 작은 언덕들은 콘야의 경계선 안에 있고 히타이트족의 거주지는 콘야 외곽의 카라효육에 있다.
출토된 유적은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방식에 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소아시아에서 히타이트 제국을 무너뜨린 프리지야인들은 트라키야로부터 온 부족들이었다.
카라퍼나르, 기지크슬라, 시즈마
그리고 콘야의 중심지에 있는 알라딘 언덕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기원전 7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콘야(옛 지명 Cavania)는 리시아인,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로마의 침략을 받았다.
그 중 로마의 지배가 가장 오래 계속되었으며 AD 25년경에는 이코니움으로 불리어졌다.
사도 바울이 안탈리야에 상륙하여 소아시아 지방을 여행할 때 안티오키아를 거쳐서 콘야 땅을 밟게 된다.
그 시대에 리시드라, 라오디게아 등은 융성한 도시들이었다.

아랍족의 침략은 소아시아 지방에 이슬람을 전파하게 되었다.
1071년 말라즈기르트 전투 후에 콘야를 포함한 소아시아의 큰 부분의 땅이 셀축 투르크 족에게 점령되었다.
이 때부터 동로마 제국의 지배력이 약화되기 시작했다.
슐레이만 샤(셀축 투르크의 술탄)는 콘야를 1076년에 셀축 제국의 수도로 선포했다.
1080년부터 1096년까지 수도는 이즈닉으로 바뀌었다가 다시 1097년에 콘야가 수도가 되어 1277년까지 존속되었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술탄 무라드 2세가 1442년에 콘야를 정복했다.

콘야는 오스만 제국 시 명성을 얻었다.
술탄 셀림이 이집트와 페르샤를 정복하려는 전투시에 잠깐 머물렀고
슐레이만 대제와 무라드 4세가 또한 그들의 바그다드 전투에 참가하는 도중 머물렀던 곳이다.
1923년 터키 공화국이 수립된 이후 이 도시는 급속하게 발전하여 대 도시가 되었다.
괄목할만한 배경과 역사를 가진 콘야는
역사적인 유적지와 수 많은 예술품들로 인해 콘야 도시 자체가 야외 박물관이 되기에 충분하다.

타우르스산맥은 지중해 연안과 평행을 이루며,
서쪽 에그리디르 호에서 동쪽의 유프라테스 강 상류유역까지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뻗어 있다.
타우르스 산맥의 본맥(本脈)에 있는
해발 3,333m의 알라다 산과 누르 산맥의 외딴 지맥에 속한 에르지예스 산이 이 산계의 최고봉을 이루며
그밖의 봉우리들도 대부분 3,000~3,700m로 솟아 있다.
해발 2,500m의 경사면까지는 소나무·삼나무·참나무·향나무 숲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며
흰 석회석 산등성이가 많이 보인다.
산맥 서부의 평균해발고도 1,000m인 지점에는 호수들로 둘러싸인 분지가 많다.
아다나 아래쪽에 있는 실리시아 평원의 토양층이 두꺼운 비옥지대를 제외하면
남쪽의 해안평야지대는 좁은 편이어서 전지역에 걸쳐 인구밀도가 희박하며
산맥으로 인해 내륙지방과 단절되어 있다.
타우르스 산맥을 가로지르는 길 중에서
예로부터 대상로 및 군용도로로 이용되었던 퀼레크보아지(실리시아 관문)가 가장 유명하다.
그밖에 이 산맥의 본맥을 가로질러 카이세리와 아다나를 연결하는 철도가 근처를 지난다.
광물자원으로는 은·구리·갈탄·아연·철·비소 등이 있으며, 그 가운데 일부가 개발되고 있다.




























황소의 등뼈 같다고 해서 붙여진 타우르스산맥 그리스어 이다.
실크로드길을 따라 몇시간을 달렸을까.
끝없는 지평선,좌우를 아무리 살펴도끝이 보이지 않는길...

얼마를 더 달렸을까...
해발3,500m의 산길을 달린다.기암괴석이 즐비하다.
















멀리 타우르스 산맥과 에이르디르 호수...






터키동부 Van 의 Gavas 마을의 평원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이 마을 전체의 1500 마리 양떼들이 아침 이슬을 밟으며 목동들과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목동들이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빵을 준비하는 동안
한 마리의 양이 언덕위에서 돌 틈 사이로 발을 헛디뎌 15m 아래 절벽으로 추락했다.
그러자 뒤따르던 양떼들이 순식간에 전부 언덕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놀라 달려온 목동들이 말릴 틈사이도 없이 무려 400마리나...
언덕 밑에 떨어진 이 양들은 전부 죽었는데 어느 누구도 식용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
양을 잡을 때 반드시 기도를 하고
목을 자르는 풍습에 의하여 기도를 받지 않고 죽은 이 양떼들은 그냥 땅에 묻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마을의 주민들은 그들의 전 재산인 이 양떼들의 죽음에 넋을 잃고 있다










중요 관광지로는 다음과 같은 유적지가 있다.
메블라나 박물관
이 박물관은 콘야에서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장소이다.
이슬람 신비주의 종파를 이끌었고 명상 춤의 창시자로 알려진 메블라나의 유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원래 궁전의 장미정원이었는데 술탄이 메블라나의 아버지 바하틴 벨레디에게 하사한 장소이다.
1274년에 이 자리에 한 개의 무덤이 만들어 졌고 1396년에 푸른색 타일로 만들어진 탑이 세워졌다.
메블라나의 무덤을 포함한 현재의 박물관은 1927년에 문을 열었다.
이 박물관에는 메블라라나의 소지품, 신비스런 악기, 양탄자, 비문, 문서, 예술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첫댓글 메블라나 박물관과 신비주의 명상춤인 수피춤을 보았던 콘야. 벌써 오래 전 기억이네요. 다시 가보고 싶어집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