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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현의 <접합>,발상에서 전개까지-정년기념전에 즈음하여 <김복영.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학과 교수>
1.
하종현 교수가 정년 퇴임을 기념하는 회고전을 갖고 작품 도록을 출간하였다. 1959년 홍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조교를 시작하여 교수로 재임해 온 40여 년은 그의 화력의 성상과 궤를 같이 하고 있어 이번 작품전과 도록 출간은 그가 그 동안 대학 교단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며 제작한 결실의 한 단면이라고 할수 있다.
이기간 그는 우리나레 현대 미술의 큰 획을 그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유감없이 성취 하였다.
이번 정년기념전을 계기로 그의 예술 세계가 어디서 시작해서 어떠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 개괄해 보고자 한다.
2.
하종현의 <접합>의 세계는 1970년대 초, 자세히는 1972년에 캔버스에다 철사 줄을 접합 시킴으로써 비롯되었다.
여기에는 그가 한떄 주도했던 1960년대 아방가르드 운동의 제 원천들, 이를테면 앵포르멜. 기하학적 충동.옵티컬, 미니멀, 오브제와 물질에 대한 관심과 같은 여러 영향원들이 깊숙이 작용해음은 물론이다. 중요한 것은 이것들을 그가 어떠한 발상에서 선택적으로 받아들여 자신의 독자적 영역으로 발전 시킬수 있었으냐 하는 것이다.
확실히는 1975년부터 구체화되기 시작한 <접합>의 구상은 물감을 마대의 뒷면에서 앞면으로 밀어내었을 때, 물감과 마대라는 물질들이 자아내는 표정을 얻으려는 데서 비롯되었다.
"물감을 성긴 마대위에서 밀어냄으로써 하나의 물질이 자연스럽게 다른 물질의 틈 사이로 흘러나갈때, 그리고 흘러나간 물질들의 언저리를 느긋이 눌러 놓았을때 내가 바라는 것은 가능한 한 물질 자체가 물질 그 자체인 상태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전부를 말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되도록 말하지 않는 쪽에 있고 싶다."(특히 1984년 필자와의 대담)
이와 관련해서 작가는 필자와의 후속 인터뷰에서 다음 두가지를 추가한 바 있다.
가. 이때 내가 작품 속에 깊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인식한다.
나. 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를 물감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
이 두 가지 생각은 글자 그대로 작가와 작품의 일체감을 말해주는 데에 의미가 있다. 바로 이 일체감의 본질을 풀어서 이해한다면 <접합>이 이루어지는 시초 내지는 근원을 찾아 볼수 있을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작가들이 자기의 작품과 일체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작품 속에 들어와 있다."고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여기에 하종현이 생각하는 '작품내존재(in-the-work-existence)'의 문제 하나가 제기된다.
작품 속에 들어가 있는 작가 자신을 작품내존재라고 한다면 이러한 존재의 특징은 홀로(자체가 자립해서)있는 것도 아니고 타에 응해서 있는 것도 아닌, 말하자면 이 두가지의 연속과 통일 가운데에서만 가능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하종현에 관한 한, 작품이란 자아가 내재하는 '장소'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거기에는 작품이 작가 자신과 연속을 이루는 특수한 계기가 필요하다. 이 계기가 바로 그가 말하는 "자신이 말할 것을 물감으로 하여금 말하게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작품에 내재해 있는 이상 물성과 '더불어' 말해야 한다는 이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하종현의 작품 세계가 시작되는, 그 일차적인 두 개의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작품내존재로서의 작가 자신과 '물질들로 하여금 말하게 함으로써'라는 새로운 계기를 통해 이루어지는 물질화되는 '국면(phase)'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리고 사실상 이둘은 동일한 상태를 그것의 존재와 계기로 나누어 말했을 때의 차이일 뿐, 본래는 동일한 위상의 것이다. 즉, 작품내존재와 물질화되는 국면은 같은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렇게 말할수 있다. 하종현의<접합>은 글자 그대로 물질과 작가 자신의 접합이며 이러한 뜻에서 작품의 객체와 작가의 인격의 통합이다. 바로 이 접합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를 찾아내려는 그의 작품은 시작되었다.
이 점에서 그의<접합>이 어떻게 펼쳐지는가를 이어서 묘사해 둘 필요가 있다. 이 전개 과정에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존재가 신체(body)이다. 신체가 물질에 접촉함으로써 작가 자신의 작품내존재의 위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경우의 신체는 우리의 생리적 육체라기 보다는 작가의 생각 일체를 실어다 물질화의 국면으로 귀결시키는 운반자이다. 따라서<접합>은 물질과 신체의 접합이자 그 결과이다. 신체는 운반자답게 물질에 접촉해서, 그 물질을 형상으로 바꾸거나 거기에다 자신의 흔적을 남길 것을 원치 않는다. 신체는 다만 "물질들(마대, 물감)로 하여금 그 스스로가 말하게 하라"는 명령에 복종할 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신체와 물질이 <접합>에서 어떻게 만나는지 그 특수한 정황을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이 지점으로부터 작가 자신이 작품내존재가 되고 이어서 물질화되는 국면이 나타나는 과정을 용이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의 중요한 '원리'가 되는 것은 '인식론적 분절'이 아니라 '존재론적 화해' 이다. 작품과 작가,물질과 정신, 신체와 사유가 하나로 되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전자가 아니라 후자인 것이다. 이 중에서 신체의 역할이란 지대한 것이다. 신체는 물질과 사유 사이에서 화해를 도모하고 작가의 자아를 작품내존재로 인도하며, 그리하여 작품의 전모를 수습하고 통일하는 최고의 통어자이다.
신체의 매개를 받은 마대의 표면은 역시 같은 마대 색깔의 '오커'가 마대와 상호 보완되는 국면을 이룩하는 쪽으로 성격을 결정 짓는다. 마대의 올 사이로 물감이 밀려나올 때 신체가 가한 통합의 압력에 의해 가장 자연스럽게 마대의 물질성과 물감이 합류된다. 그 특수한 국면은 결코 자연 세계의 우연과 혼동되지 않는다. 신체는 물감이 마대로 부터 독립해서 독자적인 형상이나 패턴을 만드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통합의 역할을 계속한다. 그 결과 마대 표면은 물감과 통합된 국면을 이룰 준비를 구체화시킨다. 이에 따라 물감은 마대가 지시하는 국면에 따라서 일부는 눌리기도 하고 표면으로 가라앉거나 성긴 틈새에 잠복되며 나머지는 강세를 달리한 채 가즈런히 모습을 도열시킨다.
이 순간의 호흡은 신체의 통어 활동이 가하는 리듬에 의해서 결정된다. 마대의 표면은 형상화돈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지만 단일하게 주어져 있는 물질로서는 마대 표면과 그 표면 위에 박히고 눌리어 있는 물감(물질)의 국면에 의해서만 표정을 짓는다. 이국면 표정만이 우리의 지각에 주어지는 유일한 인상이며 메세지이다. 그것은 결코 구화 언어가 보여줄 수 없는, 물질과 신체의 전존재의 메세지를 전달한다. 그것은 결코 구화 언어가 보여 줄 수 없는, 물질과 신체의 전존재의 메세지를 전달한다. 이 때 우리는 마대의 단일 평면이 보여주는 저 거칠고, 무디고, 무겁고, 그리고 두툼한 표정에서, 뿐만 아니라 그러한 표정이 자아내는 질료들의 후덥한 내음에서 마침내 작가 하종현의 전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삶의 고뇌와 기쁨, 갈망과 성취, 그리고 이상과 현실 사이에 있는 그의 전부를 보는 것이다. 이하에서<접합>의 전개과정을 좀더 자세히 기술해 보고자 한다.
3.
하종현에 있어서<접합>이라는 명제는 실로 생애의 가장 치열했던 시절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다. 1972년 캔버스에다 철사줄을 접합시킨 작품을 제작한 것을 시작으로, 1975년<공간 미술대상 수상 작품전>의 출품작들에서 볼 수있는 것처럼, 올이 성긴 마대의 뒤에서 물감을 앞으로 밀어 새어 나온 물감을 눌러 마대와 물감을 접합하는 첫 실험을 거친 후. 1984년과 1985년의 <현대화랑 초대전>과 <가마쿠라화랑 초대전>(동경)에 이르러 완성된 하나의 정형에 도달하는 '전기'와 가마쿠라화랑(1990)과<요코하마 국제 아트 페어>(1992)<콘코스 갤러리>(1992,영국 바비칸센터), 그리고 1995년 이후의 바젤, 쾰른, 파리 등 국외전에 활발하게 진출하는 15년간의 '후기'를 합쳐 거반 30년동안, <접합>은 줄곧 그의 관심의 중심에 있어 왔다. 따라서 중요한 문제는 그의 전개과정을 전후기로 나누어 고찰하되 어떠한 성질 또는 특성이 '전기'로 부터 '후기'를 갈라놓을수 있는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결론은 뒤에 언급하기로 하고 먼저는 전기와 후기의 양식적 특징이 어떻게 다른지를 기술해 보기로 하자.
전기에 해당하는 1972년에서 1984년에 이르는 시기의 <접합>은 처음 2년에 걸쳐 이루어진 캔버스와 철사라는 이질적인 개성을 갖는 두 개의 물질을 탄성과 긴장을 이용해서 접합하고자 한, 다분히 '오브제'의 실험기간을 제외한다면, 1974년에서 1984년에 이르는 10년간은 마대라는 하나의 질료와 물감이라는 또 다른 하나의 질료를 접합하고자한, 이를테면 '질료 실험기' 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찾아 볼수 있는 <접합>의 특징적인 국면은 화이트. 오커. 암바 계열의 물감을 마대 뒤에서 앞으로 밀어낼 때, 밀어내는 여러 가지 방식에 따라, 예컨대 특정한 마대의 부위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유사한 호흡으로 강하게 뿜어냄으로써 비교적 일관된 형태로 흘러내리는 모습의 성형을 얻든가, 마대의 면적 전체에 걸쳐 뒤에서 앞으로 물감을 밀어 마대의 올 사이로 물감이 일제히 빠져 나오는 자태를 다시 마대의 앞쪽에서 눌러 놓거나, 다독거리거나, 써래질 하거나, 훓어놓거나, 닦음질 함으로써 처음의 질료 상태를 비물질화 하는 제 과정으로 기술된다. 이때 마대를 사이에 두고 흘러나온 물감이 특정한 표정을 갖게 됨으로써 마대의 질료와 물감의 질료가 비로서 접합된 결과를 얻게 된다.
이렇게 접합된 결과는 어떠한 시각적 효과를 보여 주었던가, 그것은 마대의 표면에서 발견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물성'의 드라마라고 할 수 있었다. 1974년에서 1979년에 이르는 비교적 초기 실험에서 보여 준 거칠고 포효하는 듯한 물성의 동태는 1980년에서 1984년에 이르러 현저히 감소되고 그대신 물성의 '관조태'기 뚜렷해졌다. <접합>의 표면은 마치 잔잔한 해면이나 한국의 고담한 옛 건물의 벽을 연상케 하였다. 우리는 거기서 자연의 진정한 모습은 물론 우리 문화의 존재 양식까지도 다시 보는 듯 했다. '전기'의 양식은 분명히 말해 마대를 그것의 가장 정태적인 물성의 상태에 두면서 물감의 물성적 발현을 기하고자 하였다. 물감의 물성이 결코 마대의 물성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추종하면서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았던 것이다.
그런데 1985년에 이르러 <접합>의 표면에는 변모가 일기 시작했다. <가마쿠라 화랑 초대전>에 출품된 연작들은 지금까지 정태적이던 물성의 모습이 아닌 다분히 동태적인 모습의 것이었다. 조용한 수면이나 벽면을 연상케 하기 보다는 어떤 미지의 파문이 휩쓸고 간 칙후의 동요와 거치름과 소용돌이의 상황을 보여 주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변모의 여파가 좀더 커다란 진폭으로 가시화 되었다. 화면을 나이프나 딱딱한 기구 또는 특수한 붓으로 자유뷴방하게 휘젖고 힘차게 긋는 해위가 보다 현저해 졌다. 그레이 암바. 그레이 오커. 울트라마린 등 어두운 색표가 등장해서 흡사 해체된 선들의 집합이 캔버스의 전면을 뒤덮거나 우유빛을 띤 밝은 암바에 의해 수평. 수직읜 연동 작용을 보여주는 분방하고 자유로운 필선체의 구조가 등장 하였다.
마대와 색료의 조용한 접합이 아니라 그것들의 갈등과 투쟁을 통하여 접합에 이르고자 하는 의도가 이들의 변모된 상황 내부에서 읽혀 질 수 있었다. 점차 색료의 질풍과 노도를 연출하는 행위로 옮겨가게 된 <접합>의 추이 과정은 1990년대에 진입하면서 어느덧 절정에 이르고 있지않나 하는 느낌이 든다. <접합 90>에서 <접합 99>, 그리고 2000년대에 이르는 작품들의 성상은 대개 이러하다. 마대의 뒤에서 앞쪽으로 흘러나온 연한 그레이, 바이올렛, 울트라 마린, 그레이 오커를 가늘고 탄력있는 붓으로 마치 해체된 선조의 분절들을 집합시켜 '올 오버 스트럭춰(all over structure)'를 이룬듯한 상황을 보이는 경우, 번트센터를 올리 가는 철붓으로 써래질한 자태의 표정으로 연출해 내는 경우, 연한 퍼플과 암바를 굵은 붓으로 자유분방하게 그어 필선의 자유로운 조합이 이루어지거나 연한 퍼플과 울트라 마린을 가는 나무 기구를 써서 짓눌러 으깨듯 긋되 역시 자유스런 몸짓을 전사하거나 힘주어 그어내려 거칠고 견고한 수직 구조를 만드는 경우로 크게 대별된다.
한가지 명백한 것은 이렇게 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1990년대의 <접합>은 물성의 소용돌이 구조나 수평 수직의 확산 구조를 이루면서 물성의 배후에서 관조적 태도를 견지하던 작각의 '신체'와 '행위'를 물성의 전면으로 부상시킨다는 점이다. 이점을 이해한다면 <접합>의 '후기'가 어떻게 가능한지, 나아가서는 전기로 부터 후기가 어떻게 갈라지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4.
지금까지의 기술에 의하면 1985년을 분기점으로 해서 일어난 변화는 <접합>을 전후기로 구분해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해 준다. 그 변화의 현상이 앞에서 살핀 대로라면 이러한 결과가 초래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는 결코 <접합>의 발상 초기에 가졌던 의도 자체의 변모에서는 찾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후기의 구별은 그의 이념이나 발상의 내부에서 찾기 보다는 물성을 초래하는 '신체성의 계기'에서 첮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물성의 발현을 가능케 하는 것은 마대의 물감의 단순한 질료적 접합이 아니라 작가가 마대 뒤에서 물감을 마대의 전면으로 흘려 보내고 흘러나온 물감을 다시 마대에다 눌러 여러가지 방법으로 접합하는 일체의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일체의 행위를 담지하고 추진하는 주체가 '신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물성에 신체가 관여함으로써 물겅이 발현되는 것이다.
여기서 신체의 무엇이 <접합>을 전후기로 나누어 놓는다고 말할수 있을까. 전기에 있어서 신체가 활동했던 자리는 마대와 물감이 접합되는 '매개'의 지점이었다고 잘라 말할 수 있다. 매개의 지점으로서 신체는 '마대-물감-신체'와 같은 순서 구조의 제일 마지막에 위치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되도록 각가는 말하지 않는 쪽에 있고 싶다."는 시사에 따라 신체의 행위는 마대와 물감이 주연하는 무대의 끝 쪽에서 이것들의 진행 상황을 지켜 보는 수동적 위치를 고수 하였다. 그래서 전기에 얻어진 물성의 발현 상태는 관조적인 것, 다시 말해서 사물의 투명한 상태를 가장 정태적인 공간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러 마대- 물감 -신체가 이루는 '구조'에 변화가 일어났다. 신체가 구조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차례로 물감과 마대가 자리하는, 말하자면 '신체-물감-마대'의 구조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신체가 캔버스의 전면에 등장해서 자신의 행위를 주도하고 잘료(물감)의 상황을 감독하며 마대를 배후에다 두는 일대 변모를 일으킨 것으로 풀이 된다.
이로부터 <접합>은 신체의 행위가 전면에 부상해서 물성을 지배하는, 이를테면 동태적 구조를 드러내게 되었다. 앞 절에서 그 특징들을 일일이 열거하였기에 여기서는 생략하는 바이지만, 화면은 이제 전기의 관조적 물성을 떠나 몰 관조적 특성을 띠기에 이르렀따. 관점에 따라서는 익명과 침묵을 넘어 신체의 움직임의 단편들이 융일하하는 일대 범람의 장소요, 질료의 진동이 힘차게 확산되는 화면으로 바뀌어졌다. 관점에 따라서는 후기의 이러한 제 양상은 전기의 양식을 해체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껏이다. 그러나 '해체'로 읽고자 할지라도 그 시초는 '신체의 질량'이 전면에 등장함으로써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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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종현선생님은 박서보선생님과 함께 홍대에서 현대 추상을 이끌었던 분이시다.. 늘 과묵하시고 수업땐 " 재밋나?.. 응~~ 계속해봐~~라는 말밖에 기억이 안나지만 세월이 지날 수록 그의 지도법은 느낌이 강하게 남는다... 아직도 청년처럼 작업하시는 선생님이 존경스럽다..
여섯번째 작품 시립미술관에서 봤어요,,느낌 참 좋다... 했는데 다른작품을 함께 볼 수 잇어 더 좋으네요..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