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발해를 오랑캐로 폄훼

[dolly]

최근 국사교과서에서까지 발해와 통일신라시대를 남북조 또는 남북국시대로 일컫곤 한다. “고구려도 신라도 다 같이 우리 한민족이었다”는 설명과 “발해는 고구려유민이 세운 나라였다”는 설명을 논리적으로 연결시키면, 학생들은 발해와 신라 사이에 마치 오늘날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민족적 동질성인식’이 존재했으리라고 결론 내리기가 쉽다. 신라와 발해의 관계가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학생들은 ‘남북한과 마찬가지로, 국가적으로는 대립해도 민족적으로는 동질성을 느꼈으리라’고 짐작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과연 신라인들이 본 발해인은 ‘동족’이었던가? 오늘날 남북한시대와 비교될만한, 문화적 동질성에 기반을 둔 남북조시대가 존재했던가? 1차 자료를 보면 대답은 명쾌하다. 신라인들은 발해건국에서 말갈족들이 한 역할과 아울러 발해와 고구려의 계승관계를 잘 인식하고 있었지만, 발해인들에 대해 정치적인 적대감을 넘어 문화적인 이질성까지 느꼈다.

다시 말해 “신라, 고구려, 발해가 다 한민족계통”이라는 생각은 20세기 민족주의사학의 ‘상식’으론 통해도 7∼9세기 고대인들의 머리에 든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발해를 올빼미라 욕한 최치원

897년 당나라와 신라, 발해 등 동아시아국가들이 다 같이 말기적위기로 접어드는 시절에 이 세 나라 사이에 주목을 끌만한 외교적사건이 터졌다.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당나라에 사신으로 온 발해왕자가 신라보다 발해의 국세가 더 강성하다는 이유를 들어 외빈을 접견하는 순서에서 신라보다 발해가 우선돼야 한다는 요구를 과감히 당나라조정에 한 것이다. 그러나 당나라황제 소종(昭宗·889∼904)이 전통적으로 발해보다 신라가 당 제국에 훨씬 더 가까웠다는 사실을 인식해선지 이 요구를 거부하자, 당에서 오래 머물렀던 신라의 최치원이 신라조정의 이름으로 소종에게 장문의 글을 보내 당나라의 ‘신라사랑’에 감사를 표하면서 발해에 대한 신라의 태도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동문선>(東文選·1478)에 실릴 만큼 후대에 명성을 떨쳤던 ‘사불허북국거상표’(謝不許北國居上表·북쪽 나라가 윗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심에 감사를 드리는 글)라는 글에서 발해의 기원은 다음과 같이 묘사된다.

“발해의 원류는 고구려가 망하기 전에 본래 사마귀만한 부락이었고, 말갈의 족속이 번영해지자 그 무리 중에 속말이라는 작은 변방부족이 있어 항상 고구려에 복종해왔는데, 그 수령 걸사우 및 대조영 등이… 문득 황야지역을 점거하여 비로소 진국(振國·발해 초기명칭)이라 명명됐다. 그때 고구려의 남은 무리로서 물길(勿吉·말갈)잡류의 올빼미들은… 처음에 거란과 손을 잡아 악을 행하고 또 이어서 돌궐(突厥)과 통모하여… 여러 번 요수(遼水)를 건너서 항쟁을 했다가 늦게야 중국에 항복했다.”

‘사마귀만한 부락’이나 ‘올빼미’ ‘행악’ 등의 수식어들은 발해에 대한 최치원의 정치적 적대심이 어느 정도였나를 보여주고 있으며, 발해건국집단과 고구려의 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자꾸 ‘말갈의 무리’를 강조해 그 ‘무리’와 거란 또는 돌궐(터키족 계통의 유목민제국)과의 연관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발해를 문화적으로도 이질시 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최치원은 고구려야 삼한(三韓) 중 하나로, 즉 신라와 어느 정도 문화수준이 같은 존재로 간주했지만, 말갈이나 거란, 돌궐 등 북방종족들은 그에게 ‘문화영역 바깥의 오랑캐’에 불과했으며, 발해에 대해서도 애써서 ‘오랑캐’라는 딱지를 붙이려했다. 비유적 표현의 거장이었던 그는, 신라에 대해 ‘무궁화 꽃이 피는 고향’(槿花鄕·근화향)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나타내지만 발해에 대해서는 고작 ‘싸리나무로 만든 화살의 나라’정도로 대접을 한 것이었다.

고대중국인들은 ‘싸리나무로 만든 화살’을 활쏘기에 능했던 북방 숙신(肅愼)족의 특산품으로 인식했는데, 최치원이 바로 이와 같은 인식을 상기시켜 발해가 ‘오랑캐’ 숙신과 다를 게 없다고 주장한 것이었다. 이 주장은 최치원의 개인적 견해만은 아니었다. 신라시대의 일차사료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서도 발해를 신라의 북쪽에 있다고 해서 지리적인 차원에서 ‘북국’으로 부르는가 하면 ‘북적’(北狄), 즉 ‘북쪽의 오랑캐’라고 비칭하기도 했다. 신라지배층이 보기에는 발해라는 존재는 ‘문명적 질서 바깥’에 있었던 것이다.

발해의 침공에 늘 긴장상태

그렇다면 신라지배자들이 발해를 오랑캐로 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한자문화권의 잣대로 재단되는 발해문화의 수준이 낮아서 그렇게 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최치원이 중국의 한 친지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875년에 발해의 오소도(烏炤度)라는 유학생이 신라유학생 이동(李同)보다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따서 수석의 영광을 차지한 것을 ‘신라의 부끄러움’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들의 글짓기실력을 무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최치원 자신을 포함한 신라출신 당나라유학생들에게 통상적인 경쟁상대는 바로 발해유학생들이었으며, 이렇듯 그들에 대해 날카로운 경쟁의식을 가졌던 만큼 최치원이 평소 상대했던 당나라지식인들도 발해를 적어도 ‘문화후진국’이라고 깔볼 리는 없었다.

712년 당나라에 간 발해사신이 절에서 예불을 볼 권리부터 요구하고, 738년에는 <삼국지><진서>(晉書) 등 특정 역사서적의 복사를 요청할 정도로 당나라와의 관계에서 ‘종교’와 ‘문화’를 앞세웠으며, 또한 758년 일본을 방문한 발해의 대사 귀덕장군 양태사는 일본인들에게 무엇보다 한시를 잘 짓는 시인으로 기억되었다.

결국 최치원과 같은 신라의 대표적 지성인들이 발해에 대한 ‘문화적 멸시’를 애써 드러냈던 것은 발해의 후진성보다는 신라 쪽 사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첫째, 신라로서는 발해가 고구려에 대한 계승의식을 나타내는 것이 문제였다. 부여계통의 고구려와 남쪽 한(韓)계통의 신라가 언어와 풍속이 상당히 달라 이질성이 강한데다, 5세기말부터 고구려가 패망한 668년까지 거의 한 세기 반 동안 쉴 새 없이 치열한 전쟁을 치른 바 있어 신라인으로서는 고구려를 좋게 보기가 힘들었다. 이러한 고구려에 대한 이질감과 적대감은 쉽게 발해에 대한 악감정으로 이어졌다.

838∼848년 당나라를 여행했던 일본고승 엔닌(圓仁·794∼864)의 자각국사입당구법순례행기(慈覺國師入唐求法巡禮行記)라는 기행문을 보면 재당(在唐)신라승려들이 매년 8월15일 ‘발해에 대한 신라의 옛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큰 잔치를 벌인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8월15일의 승리’는 발해가 아닌 고구려에 대한 신라-당나라 연합군의 승리(668년)를 가리키는 것으로, 신라인의 의식 속에서 발해가 고구려와 같은 계통의 나라로 인식됐기에 ‘발해에 대한 승리기념’이라고 와전됐으리라 짐작된다.

그리고 망국이후에 당나라에 대한 저항을 계속하던 고구려왕족 안승은 683년 신라의 고급관직인 소판(蘇判)과 김씨 성을 하사받아 신라의 금마저(익산군)에서 살았고, 고구려유민 일부로 신라군의 특설부대인 황금서당이 구성되었는데 나중에 반란을 일으켜 진압을 당하기도 했지만 금마저에서 귀순한 고구려관료들이 신라에서 채용되었다는 기록으로 봐서 신라지배자들은 고구려세력들이 이미 귀부(歸附)해 통일신라의 일부분이 되었다고 인식한 것처럼 보인다. 물론 신라 쪽의 일방적인 시각이었지만, 그들이 자랑했던 ‘삼한일통’(三韓一統)의 과정에서 고구려사직(社稷)이 신라에 통합됐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의 소유자들이 ‘고구려계승’을 내세운 발해를 과연 ‘고구려의 명의를 도용·참칭하는 세력’ 이상으로 볼 수 있었겠는가? 이와 같은 제반사항들로 인해 신라인들은 발해건국과정에서 고구려유민과 함께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것이 말갈집단이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발해를 고구려가 아닌 ‘오랑캐 말갈’과 연결하기를 선호했다. 더구나 5세기중반이후 고구려의 신라침략이 있을 때마다 고구려의 간접지배를 받은 말갈부족이 첨병으로 앞장서왔기에 이들에 대한 신라인들의 평소감정이 좋을 리 없었다. 그러한 차원에서 발해를 ‘오랑캐 말갈’로 부른다는 것은 반(反)발해 선전의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둘째, 현실이든 상징적이든 발해는 일관되게 신라의 철저한 경쟁자였다. 신라는 현실적으로 8세기 초 팽창을 거듭했던 발해에 대해 심각한 위기의식을 갖고 721년 북쪽국경에 장성을 쌓는 등 북쪽의 침공에 대한 준비태세를 갖추었다. 또 732년 발해가 당나라를 공격하자 신라가 당나라의 부름에 적극적으로 응해 733년 당나라와 함께 발해를 협공한 배경에는 신라가 당나라의 도움에 힘입어 한강과 대동강 사이의 북쪽 변경지역을 발해로부터 지키려는 의지가 깔려있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발해도 750년대 초반부터 신라와 일본의 관계악화를 이용해 758년부터 일본과 손잡고 신라를 협공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는데, 결국 불발로 끝나고 말았지만 신라로서는 악몽 같은 발해·일본과의 동시 전쟁은 물론 패강진(浿江鎭), 즉 대동강이남 국경지역에 있는 특수행정구역의 방어가 늘 초미의 관심사였다. 발해와 첨예한 대결을 벌이던 신라로서는 당나라와의 밀착관계가 국경안보의 결정적인 보장이었는데, 당나라와 발해가 서로 접근하는 데 찬물을 끼얹기 위해서도 발해건국집단의 일부인 말갈의 ‘야만성’을 부각시키는 것은 하나의 ‘선전전략’이었다.

그리고 상징적인 면에서 신라와 발해는 각각 자국을 ‘문화영역의 중심’으로, 상대방을 ‘문화영역바깥의 야만인’으로 간주했으며, 두 나라의 자국 중심적 세계관 사이에 타협의 여지는 적었다. ‘구이’(九夷), 즉 주변의 모든 세력 위에 군림하려는 신라지배자들의 야망을 담은 황룡사 구층탑이 신라중심의 세계관을 표현했다면, 황제명칭과 독자적인 연호사용,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천손(天孫)임을 주장한 점 등은 발해의 자국중심세계관의 표현이었다. 한편 양국 사이에 일정한 교역은 행해졌지만 불교 교단들 사이의 교류라든가 기타 문화교류는 거의 기록되어있지 않은데, 이는 국가지배세력들과 긴밀히 밀착되어있는 양국 승려 등도 국가적인 경쟁관계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민족국가의 다양성은 귀중한 가치

노골적으로 ‘신라중심주의적’ 시각을 드러내는 <삼국사기>는 물론 <삼국유사>나 <제왕운기>마저도 발해를 ‘속말(粟末)말갈’로 분류하고 발해 전말의 주요 사실만 간략하게 적는 등 발해사를 고작해야 ‘우리역사의 방계(傍系)’ 쯤으로 보는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 발해와 팽팽한 긴장을 푼 적이 없었던 신라는 공식적으로 발해를 오랑캐 이상으로 보려하지 않아 발해문화에 대한 자료를 거의 남기지 않았으며, 신라의 사료에 의존했던 고려 등의 사학자도 발해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우리가 ‘한민족’이라는 근대적 틀을 고대에 소급해 발해와 통일신라를 동질적 ‘남북조’로 인식하는 일은 쉽지만 이는 당대 사람들은 물론 후대인의 역사관과도 상충된다. 그리고 신라와 발해가 ‘남북조’가 아닌, 서로에게 이질적인 경쟁 국가였다고 해서 부끄럽게 생각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발해의 문화는 비록 신라와 많이 다르고 잘 소통하지 않았다 해도, 발해인들을 ‘친척’으로 대접한 금나라 등 많은 후대국가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등 그 역사적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신화뿐인 ‘고대 한민족의 동질성’보다는, 다민족국가인 발해가 상징했던 다양성이 더 귀중한 가치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