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장,
승미는 이제 지쳐가는 것을 느낀다.
모든 것을 다 의존하려고 하는 딸이 버겁기만 하다.
매달 갚아나가야 하는 은행이자만 해도 승미는 버겁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다시 또 신당을 꾸려나가는 돈이 없다는 혜정의 말에 화가 난다.
이제는 그 정도는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혜정은 아무런 대책도 없다.
“엄마!
도와주는 김에 확실하게 도와주면 엄마한테도 좋은 일이 생길 것인데 왜 번번이 람을 힘들게 해?
그렇다고 안 해주는 것도 아니면서 아무 말하지 않고 해주면 안 돼?“
”참 말이라도 잘 하는구나!
너도 생각을 해 봐라!
엄마 월급에서 융자금하고 이자를 갚고 나면 뭐가 남겠어?
엄마는 매달 그것을 갚아나가느라고 허덕이고 있는데 넌 신당인지 뭔지 그곳에서 가만히 앉아서 이제는 신당을 꾸려가는 돈이 없어?
내가 언제까지 네 뒷바라지를 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엄마가 되어서 그것을 해주면서 사람을 너무 피곤하게 하지 마!
어차피 엄마가 아니면 내가 누구에게 손을 벌리겠어?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나도 어서 말문이라도 트이고 손님을 받게 되면 엄마에게 가져온 모든 것을 다 갚아주면서 큰소리치고 살아가고 싶단 말이야!“
“혜정아!
이제는 그만하자.
그만큼 했으면 너로서도 할 만큼은 다 하지 않았니?
이제 그 길도 네가 가야할 길이 아니라는 것쯤은 깨달았을 것이 아니냐?
우리 이제부터라도 새롭게 다른 일을 시작하자. 응?“
”엄마!
내가 지금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지금 신의 제자 말고 어떤 일을 할 수 있겠어?
그리고 또 다시 신의 노여움을 받고 나면 그때는 엄마도 나도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것을 생각해야지.
”그래!
차라리 이렇게 살아갈 바에는 그 편이 더 낫겠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이 고통 속에서 그렇게라도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승미는 혜정이에게 애원을 하고 또 한다.
그러나 혜정이는 엄마의 힘든 것을 아랑곳 하지 않는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난 더 이상 능력이 없다.
신당을 이끌어 나가든지 문을 닫든지 그것은 내가 알 바 아니다.
더 이상 나를 찾아오지 마!“
”엄마!
아무리 그래도 엄마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아!
지금은 내가 이렇게 엄마에게 매달려서 살고 있지만 조금 기다려주면 그때는 엄마가 나에게 매달려서 호강을 하며 살아갈 것이야!
그때를 생각해서라도 힘이 들겠지만 돈을 좀 해 줘!
지금 신당을 접어버리면 엄마도 나도 큰일 나는 것을 왜 몰라?“
혜정은 이제 아예 당당하게 요구를 한다.마치 자신의 돈을 맡겨놓은 것처럼 당당한 태도를 보인다.
승미는 어쩔 수 없이 승희에게 돈을 융통한다.
자식의 일이니 마음대로 외면을 할 수가 없다.
매달 조금씩 갚아나가기로 하고 융통을 한다.
승희 역시 언니의 사정을 알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빌려준다.
자신으로서는 나서서 참견을 할 일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승희로서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힘겹고 답답할 뿐이다.
승미는 형우에게 전화를 한다.
“네, 승미씨!”
“형우씨!
내일 시간을 낼 수 있을까요?“
”내일요?
왜죠?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니요!
답답하고 힘들어서 상진씨 어머니를 만나고 오면 어떨까 싶어서요.“
”좋지요.
안 그래도 시간을 내어서 함께 가보자고 얘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헌데 승미씨 내일 휴일이 아니잖아요?“
”네, 허지만 그 정도의 여유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일 아침 일찍 아파트 앞에 가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
“미안합니다.
공연한 일로 시간을 빼앗아서..............“
“그렇지 않습니다.
상진이 어머님께는 제가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승미씨하고 동행을 하게 되어서 오히려 기쁘지요.“
형우는 흔쾌하게 수락을 한다.
다음 날 이른 아침에 형우가 도착한다.
승미를 태우고 바로 출발을 한다.
“아침을 먹지 않았지요?”
“네!
가다가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먹으려고 생각해서........“
”요즘도 많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만간 시간을 내어 함께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요.
혜정이가 일부러 엄마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뭘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정말 막막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힘이 들어도 엄마에게 더 이상은 손을 벌리는 그런 성품이 아닌데 이제는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요구를 해요.“
”그러니 이상하다는 것이지요.
야무지고 똑똑한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이것은 아니지 싶습니다.“
그들은 고속도로로 올라가 휴게소에서 간단한 아침을 먹고 다시 출발한다.
형우는 메모를 해 두었던 쪽지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단양의 삼태산 기슭에 있다는 작은 절이라고 한다.
단양군 어상천면 임현리와 영춘면 별방리 사이에 있는 산은 큰 삼태기 세 개를 엎어놓은 듯 보이고 있는 산이기 때문에 삼태기 산으로 불려왔고 산세가 누에가 기어가는 형상이라고 해서 누에 머리산이라고도 불리는 산이다.
삼태산은 아직까지 등산 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산이다.
이 산에는 단양 제 이 팔경인 일광굴이 산허리에 뚫려있으며 산자락 곳곳의 촌락마다 많은 전설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어 찾아오는 산악인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잠재력이 풍부한 명산이다.
형우는 이미 상진어머니가 계신 산에 대해서 미리 여러 각도를 통해서 알아보고 가는 길도 이미 대충은 짐작을 하고 있다.
바쁠 것도 없는 형우는 주변의 경치를 보면서 서서히 운전을 해 나간다.
“어떻습니까?
여기까지 오니까 마음이 조금은 트이는 기분이지요?”
“네!
아주 시원하고 가슴이 탁 트이는 것만 같습니다.
“단양에 오면 단양팔경을 보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아직 단양팔경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말로만 들었을 뿐이고 영상매체를 통해서만 봤을 뿐이지요.“
”아, 정말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자세하게 보셔야겠습니다.“
”네!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야 만들면 얼마든지 있는 것이지요.
우선 단양팔경을 봅시다.
마침 가을철이고 하니 단양팔경을 구경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계절이지요.“
도담삼봉, 석문, 구담봉, 옥순봉, 상선암, 중선암, 하선암 사인암 등 여덟 개의 경관으로 모두 단양군청 소재지를 중심으로 3-20키로 이내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서울에서 두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에 가는 곳마다 흐드러지게 핀 붉은 단풍은 한 폭의 동양화처럼 황홀하다.
승미는 그런 풍경에 푹 빠져든다.
단양은 금수산 도락산 등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곳이 많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금수산이 접해 있는 장회나루는 기암절벽과 가을 단풍 맑은 충주호를 보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남한강과 소백산이 빚어낸 단양팔경의 여행코스는 한 폭의 산수화다.
선인들의 예술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단양팔경은 기암절벽과 어우러진 만추의 단풍비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형우는 곳곳에 차를 세우고 자세한 설명과 함께 승미가 감상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 준다.
형우는 점심을 쏘가리 매운탕으로 생각을 한다.
“어때요?
이곳에서 아주 유명한 쏘가리 매운탕이 어떨까 싶습니다.”
“네, 아주 좋아합니다.”
“충북에는 산나물과 버섯 도토리 등 산에서 나는 재료와 민물고기로 만든 음식이 발달이 되어 있지요. 기름지지 않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고 허기진 기운을 북돋아 주는 데는 쏘가리 매운탕만한 것도 없지요.
단양 쏘가리 매운탕이 여느 지방하고 다른 것은 단양 특산물 육쪽 마늘을 다진 양념이 민물고기의 비린 맛을 감쪽같이 없애고 쏘가리 특유의 살맛과 풍미를 살려준다는 합니다.“
”그렇군요.
형우씨는 이곳을 자주 오셨나 봐요?“
”네!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왔던 곳이지요.
그리고 이곳에 와서는 쏘가리 매운탕을 먹고 가기도 했고요.“
형우는 쏘가리 매운탕을 유명한 식당 앞에 차를 주차 시킨다.
소문대로 식당 안은 관광객들로 인해서 만원을 이루고 있다.
승미는 모처럼 맛있는 음식을 배가 부르게 먹는다.
생각보다 음식이 입에 맞고 아주 맛이 좋기도 하고 분위기도 음식 맛을 나게 하도록 기분을 업 시켜 주고 있었다.
“아, 정말 배가 부르도록 먹었습니다.”
“잘 드시는 것을 보니 제가 다 기분이 좋습니다.
이제 여기서 얼마 가지 않으면 되는 곳이니까 급할 것도 없이 천천히 가도록 하지요.“
”네!
잠시 인사만 드리면 되는 일이니 시간을 지체 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겠지요.
저도 만나 본지 너무 오래 되어서 인사만 하면 별달리 드릴 말씀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식당을 나와 급하지 않게 절을 찾아간다.
입구에 표지판을 보고 차를 몰고 올라가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차가 들어가지 못하는 오솔길이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곳에 차를 주차시키고 나서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유명한 절이 아니라서 그런지 사람의 내왕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이다.
길은 생각보다 가파르지 않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기에 걷기에 불편함이 없이 아주 좋은 길이다.
이십 여분을 걸어서 올라가고 나니 일주문이 보인다.
고요하고 조용한 곳이다.
마치 사람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평화롭고 고요하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니 동자스님이 사람이 오는 것을 보았는지 나와서 반겨준다.
“어서 오십시오.”
합장을 한 두 손이 너무 귀엽다는 생각을 한다.
“스님! 주지스님이 계시는지요?”
“네!
지금 불당에서 예불을 하는 시간이라서 조금 기다리셔야 합니다.“
”예!
기다리겠습니다.
예불이 끝나시거든 말씀을 전해 주십시오.
서울에서 형우가 왔다고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예!
저 쪽으로 가셔서 편안히 쉬시고 계십시오.“
동자스님은 요사 채를 가르치며 쉬도록 해 준다.
“참으로 좋은 곳입니다.
이곳에 상진씨가 두 분의 부모님과 함께 있군요.“
”아마 참으로 복이 많은 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속에 힘든 풍파를 겪지 않고서 이렇게 좋은 곳에서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세상을 바라보고 있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럴 것 같습니다.
한 편으로는 차라리 부럽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기다린다.
한참을 그렇게 기다리고 난 후에야 스님의 모습이 보인다.
두 사람은 일어나 합장을 하며 스님을 기다린다.
“형우라고?
정말 형우가 맞으시는가?“
”네! 어머니!
참으로 오랜만에 찾아와 뵙습니다.“
”어허?
내가 어젯밤 꿈이 아주 좋았던 모양이로군!
자, 나를 따라서 오시게!“
스님은 승미에게도 눈으로 인사를 하고는 당신이 거처를 하는 곳으로 두 사람을 데리고 들어간다.
참으로 정갈한 방이다.
가사장삼 한 벌이 걸려있고 깨끗한 이부자리 한 채만이 방 한쪽을 채우고 있는 정갈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 작은 방이다.
“이곳은 어쩐 일이신가?”
스님은 차를 준비하면서 묻는다.
“어머니!
여기 이 사람 인사를 먼저 받으십시오.“
승미는 일어서서 큰 절로 인사를 드린다.
스님은 눈으로 누구인가를 묻는다.
“어머니!
상진이 사귀었던 사람입니다.“
”우리 상진이가?
아, 인사를 시키겠다고 하던 아가씨였던가?“
”네! 바로 그 사람입니다.“
”어머님!
진즉에 찾아와 뵈어야 했는데 이제야 왔습니다.
불찰을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이제는 오래전의 일이고 세속의 일은 다 잊었습니다.“
스님은 다시 고요하게 차를 준비하면서 세 사람 앞으로 찻잔을 내어준다.
“어머니!
실은 오늘 이렇게 찾아 온 것은 상진이가 남긴 혈육이 있음을 알려드리고자 왔습니다.“
”혈육?
우리 상진이의 아이?
자네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네!
상진이의 아이가 태어나 자라고 있었는데도 제 불찰로 인해서 저 역시 알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그런가?
정녕 우리 상진이가 혈육을 남기고 갔더란 말인가?“
“네! 아들이 아닌 딸입니다만............”
“.............................”
스님은 다시 아무런 말도 없다.
한동안 깊은 정적과도 같은 침묵이 흐른다.
“그 아이 뭘 하는지 알아도 되겠는가?”
오랜 침묵이 흐른 뒤에야 스님이 무거운 입을 연다.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을 했는데............갑자기 신병이 들어 다 죽어가게 되어서 내림굿을 받고 무녀가 되었습니다.”
“업보로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할 업보를 그 아이가 짊어지고 가는구나!“
스님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린다.
형우와 승미는 어안이 벙벙하다는 듯 서로 바라본다.
“내가 그렇게 가기 싫어서 회피한 길인데..........
모든 것을 다 잃고 겨우 내 목숨만 연명을 해 나가는 줄로만 알았더니 기어이 또 새로운 업보를 쌓는구나!“
스님의 긴 한탄이 새어 나온다.
스님인 오현자는 옛일들이 어제의 일처럼 떠오른다.
어려서부터 신기가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자란 오현자다.
무당이 되어야 한다는 그 말이 너무나 싫었던 오현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