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팔만사천법문이 모두 섭상귀체(攝相歸體)라, 상에서 성품으로 간단 말입니다. 곧 체로 간단 말입니다. 염불하는 것이나 화두를 드는 것이나 모두가 다 상을 떠나서 근본 성품으로 가는 공부입니다. 우리 중생이 금생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요새 명상도 별별 명상이 다 있습니다. 명상센터 등에 가서 보면 무분별로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한테 귀환하는 명상같이 차원이 깊고 궁극적인 명상은 없습니다. 자기 존재의 근본이 부처님인데, 부처님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은 명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부처를 빨리 증명할 것인가? 내 마음 가운데 내 마음이 바로 핵심자리고 중심이니까, 내 마음을 바로 그대로 느끼고 구해야 됩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어려운 말로 삼신사지(三身四智)가 다 들어 있습니다. 육조단경(六祖壇經)에 보면 절묘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대들 자성 가운데 청정법신(淸淨法身)이 있고, 원만보신이 있고 다 있단 말입니다. 천백억화신이 있고 말입니다. 그런 말씀을 세 번씩이나 되풀이 해 말씀했어요. 여러분도 나를 따라서 세 번씩 세분이 같이 외우십시오. (큰스님께서 직접 선창하심) 신앙이라는 것은 방금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 자성(自性), 우리 인간성, 우리 마음 가운데에 일체존재의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행복도 진리도 다 들어 있습니다. 그걸 보다 더 간추려서 말씀을 드리면, 상락아정(常樂我淨)입니다. 상락아정이 무엇인가? 영원히 죽지 않고 존재하는 우리 생명은 영원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우리 생명은 절대로 죽고 남이 없습니다. 금생에 인연이 다해서 저쪽으로 옮기는 것이지, 생명은 절대로 죽고 남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사는 그것이 상락아정의 상인 것이고, 일체 행복이 본래적으로 나한테 갖춰져 있단 말입니다.
누구한테 행복을 꾸어올 수 없습니다. 우리 마음 가운데 있단 말입니다. 내 마음이 얼마만큼 위대한 것인가? 우리 불자님들은 자기 마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잘 느끼시지 못하시겠지요. 여러분들이 지금 생각하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자기를 미화를 시키고 자부심을 가지고 또 어떻게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를 칭찬한다 하더라도, 본래 지닌 자기 마음을 다 칭찬할 수가 없어요. 우리 마음이 본래 부처인지라, 부처님 공덕은 부처님같이 그렇게 대대로 성취한 부처님의 지혜로 본다면, 수백억 년을 헤아려도 다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경에 있는 말씀은 절대로 거짓말이 없습니다. 금강경(金剛經)에 있는 바와 같이 부처님 말씀은 꼭 사실대로 하신 법문이란 말입니다. 꼭 법대로 부처님은 말씀을 하신 것이지 우리 중생을 속이려고 하신 말씀은 조금도 없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바로 그대로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부처님 그대로란 말입니다. 석가모니는 훨씬 위대하고 나는(우리는) 저 밑에 있는 아무것도 아니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본래시불이란 말을 여러분도 들으셨지요. 본래 부처란 그 말씀도 역시 조금도 과장이 아닙니다. 꼭 부처님께서 사실대로 말씀했단 말입니다.
부처님한테 있는 부처와 우리한테 있는 부처가 둘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확실히 말씀드리면, 천지 우주가 사실은 부처님뿐인 것입니다. 중생이 어리석게도 중생이 자꾸만 쓸데없는 분별 때문에 그렇게 보지를 못할 뿐입니다. 부처님 당시는 그때는 아라한도(阿羅漢道)를 깨달으면 삼명육통(三明六通)을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나이는 무던히 먹었지마는, 신통을 못합니다. 왜 못하는 것인가? 공부를 게을리해서 못합니다. 정말로 부처님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오로지 했다하면, 꼭 신통해야 됩니다.
우주란 것은 신비에 가득 찬 것입니다.
우리 불자님들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주 자체, 모두가 다 총상법문(總相法門)으로 해서 진여불성뿐이고, 진여불성이 아닌 것은 없습니다. 진여불성이기 때문에 어느 것이나 바로 보면 불성인 것인데, 우리 중생은 겉만 봅니다. 상만 보고 성품은 못 봅니다. 그 허물은 우리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설사 하나의 화두를 놓고 본다 하더라도, 우리 마음의 본체성에다 마음을 두고서 화두를 참구해야 합니다.
그래야지, 덮어 놓고 의심한다고 해서 공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가 부처 아님이 없다. 만덕을 갖춘 부처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서 그 자리를 참구하기 위해서 화두를 들어야 됩니다. 염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하늘에 또는 어디에 계시는 부처님을 갈앙(渴仰)으로 해서 부처님한테 가호(加護)를 입어야 하겠다는 것은, 사실 참다운 불법이 못됩니다. 참다운 불교라는 것은 아까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주 생명과 나와의 간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틈이 없는 것입니다. 천지가 부처뿐인데 무슨 틈이 있겠습니까?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신 지 2천 5백년 이상이 되시지만, 부처님은 생생히 우주에 바로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바로 우주 생명이란 말입니다. 예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것도 절대로 구분이 없단 말입니다. 하나의 진리(眞理), 하나의 생명이란 말입니다. 꼭 하나의 도리를 명심해야 됩니다.
첫댓글 부처님 팔만사천 법문이 모두
상에서 근본성품 체로 가는 섭상귀체이다.
명상도 부처님께로 귀환하는 차원 높은 궁극적 명상이어야.
천지우주는 만덕을 갖춘 부처님뿐 진여불성뿐이다 .. 총상법문
그러니 우주생명과 나와 간격 틈이 없는 것이다.
부처님은 생생히 우주에 살아계시는
우주생명이다, 이 하나의 생명, 하나의 도리, 하나의 진리인 것을 명심해야 된다.
이것이 참다운 불교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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