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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마하가섭(摩訶迦葉) |
2.아난존자(阿難尊者) |
3.상나화수(商那和脩) |
4.우바국다(優波鞠多) |
5.제다가(提多迦) |
6.미차가(彌遮迦) |
7.바수밀(婆須蜜) |
8.불타난제(佛陀難提) |
9.복태밀다(伏馱蜜多) |
10.협존자(脅尊者) |
11.부나야사(富那夜奢) |
12.마명존자(馬鳴尊者) |
13.가비마라(迦毘摩羅) |
14.용수존자(龍樹尊者) |
15.가나제바(迦那提婆) |
16.라후라다(羅睺羅多) |
17.승가난제(僧伽難提) |
18.가야사다(伽耶舍多) |
19.구마라다(鳩摩邏多) |
20.암야다(闇夜多) |
21.바수반두(波須般頭) |
22.마나라(摩拏羅) |
23.학륵나(鶴勒那) |
24.사자존자(師子尊者) |
25.바사사다(婆舍斯多) |
26.불여밀다(不如密多) |
27.반야다라(般若多羅) |
28.보리달마(菩提達摩) |
그 뒤 마하가섭에서 아난존자에게 전해진 후 28대 달마대사까지 이어집니다.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법기를 찾지 못하고 이를 이어주기 위해 동쪽으로 왔습니다. 나뭇잎 타고 강을 건너는 그림 보셨죠?
● 중국 5조사
29.신광혜가(神光慧可) |
30.완공승찬(完工僧璨) |
31.쌍봉도신(雙峰道信) |
32.황매홍인(黃梅弘忍) |
33.육조혜능(六祖慧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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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나라시대인데, 9년 동안 법을 이어줄 사람을 찾다가(면벽9년), 중국의 혜가스님에게 이어집니다.
혜가스님은 공부하려는 자기를 내치는 달마대사에게 신심을 보여주기 위해 손목을 잘랐고, 그 후 제자가 되어 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뒤는 승찬 (태허), 도신, 오조 홍인스님으로 이어집니다. 홍인 아래에는 신수대사가 수자로 있었으나, 장애인이면서 글도 잘 모르던 혜능대사에게 법이 전해집니다. 혜능대사는 ‘응무소주이생기심‘이라는 금강경 구절을 듣고 깨우쳐서 홍인대사를 찾아갔고, 홍인 대사가 ’오랑케나라 남방에서 와서 뭘 알겠냐‘고 하자 ’불성에 무슨 남북이 있습니까’ 라는 말로 대응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홍인대사가 혜능에게 방아를 찧으며 보림을 하게 합니다. 홍인대사가 죽기 전에 법을 전하기 위해 깨달은 바를 적어내라 하자 주위의 권유에 신수대사가 글을 써냅니다. 닦고 닦아서 깨침을 얻자는 점수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를 듣고 혜능이 ‘닦을 것이 뭐 있냐 본래 아무 것도 없는 것을’ 이라는 글을 제출하게 됩니다. 비밀리에 의발과 게송을 혜능에게 전해주며, 너 이후에는 싸움이 날 수 있는 이런 제도를 없애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신수대사를 지지하는 장수가 와서 혜능을 죽이려고 할 때 혜능대사가 “불사선 불사악(不思善 不思惡)”이라고 하셔서 장수를 감화시켰답니다. 그 후 16년간 보림하셨습니다.
깨달음 후에 경계 속에서 단련해야 합니다.
깨달은 후에도 단련이 필요합니다. 정산 종사님도 이미 깨치셨지만 대종사님께서 토굴에서 보림하게 시키셨습니다. 어제 출가단 단회를 하는데, 내년에 퇴임하는 송천교무님께서 보건대학교에서 교무로 근무하실 때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형산법사님과 성산법사님 두 분께서 송천교무님께 교화현장으로 가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대학생들 교화하고 있습니다’ 라고 생각했으나, 그 말씀은 머리로 하는 공부 그만하고 교화현장에 가서 단련하라는 말씀임을 알게 되셨다고 합니다. 깨친 것이 있다면 경계 속에서 단련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정말 분하고 억울할 때, 죽여버리고 싶을 때, 포기하고 싶을 때, 자존심 엄청 상할 때, 도저히 납득이 안될 때 어쩌시겠습니까? 이때 성리공부로서 보림공부로서 삼학을 실지 경계 속에서 단련하셔야 합니다. 제가 교무해보니까, 좋은 점 중의 하나가 천양지차 각양각색의 사람을 만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둘이 좋다고 주위 반대 뿌리치고 결혼한 부부들 중 40%가 이혼을 합니다. 직장이나 학교 주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내 맘에 듭니까? 교무는 정말 다양한 사람을 만납니다. 각자 자기 소리 합니다. 혜가 같은 제자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대종사님 당대에 인물 좋고, 공부심 있고, 많은 이들이 스승으로 따르는 서대원 선진님께서도 대종사님의 머리를 뜨겁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대종사님께서는 ‘너는 내 제자 아니다 나가라.’ 라고 까지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선진님께서는 불교에 익숙하고 방대한 불경 공부에 익숙해, 대종사님의 말씀이 무언가 부족해 보였던 것입니다. 못하는 사람뿐 아니라 잘하는 사람도 머리 뜨겁게 합니다.
제가 원남교당에 있을 때, 성균관 대학교에 성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서 3월에 첫모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약속시간인 6시가 되었지만 한명도 오지 않았습니다. 홀로 법신불 전에 앉아 있는데, 선진님들께서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교화하려 했던 노력들이 생각났습니다. 진짜 빈손으로 어떤 지역에 가서 법복을 입고 시장을 돌아다닌 이야기들이 생각났습니다. 알아보는 사람 한 명만 있으면 그 사람을 잡고 교화했던 그때 선진님들 말입니다. 봉사를 쉼 없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일생을 그렇게 사실 수 있었던 것은 서원의 힘이요 수행의 힘입니다. 아까 말처럼 유와 무를 돌릴 줄 아는 힘, 그래서 유는 유대로 무는 무대로, 유념할 자리 유념하고 무념할 자리 무념하고, 나갈 자리 나가고 물러날 자리 물러나고, 놓을 건 놓고 잡을 건 잡고, 비울 건 비우고 채울 건 채우고.. 이것이 신념입니다.
게송들
● 대종사님의 게송
유(有)는 무(無)로 무는 유로
돌고 돌아 지극(至極)하면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
● 정산종사님 삼동윤리
한울안 한이치에 한집안 한권속이 한일터 한일꾼으로 일원세계 건설하자
● 대산종사님
진리는 하나 세계도 하나 인류는 한가족 세상은 한 일터
● 부설거사 게송
目無所見無分別 (목무소견무분별) 눈으로 보는 바가 없으니 분별이 없고
耳聽無聲絶是非 (이청무성절시비) 귀로 듣는 소리가 없으니 시비가 끊어졌다
分別是非都放下 (분별시비도방하) 분별 시비를 모두 놓아 버리니
但看心彿自歸依 (단간심불자귀의) 다만 심불이 스스로 귀의함을 보더라.
부설거사 게송을 통해 일원상 게송을 설명하겠습니다. 눈으로 보는 바가 없으니 분별이 없다. 일원상 진리의 대소유무에 분별이 없는 자리를 말하는 것이며, 의두요목에 나온 설한 바가 없다고 한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저를 보는 바 있이 보고 있죠? 보는 것 (有)은 무(無)가 보는 것입니다. 범인은 자기가 본다고 생각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것이 보고 압니다. 듣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귀로 듣고 듣기 좋은 소리 싫은 소리 판단하시죠? 듣는바가 없으면 시비가 없습니다. 시비가 끊어졌다는 말은, 시비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시비가 있되, 듣는 주체가 없이 시비를 보기 때문에 시비 자체가 있을 뿐입니다. 분별시비를 모두 놓아 버리니 심불이 스스로 귀의함을 보더라는 말은, 시비를 놓아버리니 모든 것이 다 하나가 되더라, 유와 무를 초월한 자리로 가더라라는 말입니다.
부설거사는 세계 3대 거사 (유마거사 (인도)-석가모니 당대 거사, 부설거사 (한국), 방거사(중국)) 중 한분이십니다. 거사라는 것은 재가라는 말입니다. 부설거사는 출가였다가 봉사인 묘하라는 여자를 만나 재가가 되셨습니다. 함께하던 도반들이 금강산에 가서 수행하고 15년 만에 와보니, 부설거사는 월명과 등운 남매를 낳고 수도에 적공을 하여 큰 도를 이루었음을 보았습니다. 그릇을 깨어 물의 모양을 유지하는 도 대결을 하셨답니다. 묘하부인은 114세까지 살며 큰 도인이 되었고, 남매도 모두 출가를 하여 큰 도인이 됨. 월명암이 딸이던 월명이 수도하던 곳입니다.
● 부설거사 사부시 (四浮時)
妻子眷屬森如竹(처자권속삼여죽) 처자와 권속들이 삼대숲 같이 무성하고
金銀玉帛積如邱(금은옥백 적사구) 금은보화 비단이 언덕만큼 쌓였어도
臨終獨自弧魂逝(임종독자 고혼서) 임종에는 혼자 죽음으로 가나니
思量也是虛浮浮(사량야시 허부부) 생각하면, 이 또한 허하고 무상하구나
朝朝役役紅塵路(조조역역 홍진로) 아침마다 날고뛰듯 세상 속을 헤쳐 와서
爵位纔高已白頭(작위재고 이백두) 이제 겨우 높이 오르니 머리는 백발이네
閻王不怕佩金魚(염왕불파 패금어) 염라대왕은 금어(金魚)도 겁을 내지 않나니 (패금어.. 4급 이상의 공무원 혹은 승려)
思量也是虛浮浮(사량야시 허부부) 생각하면, 이 또한 허하고 무상하구나
錦心繡口風雷舌(금심수구 풍뢰설) 능란한 말솜씨로 풍우 우뢰 부르고
千首詩經萬戶侯(천수시경 만호후) 시 구절 천 편으로 만호 제후 조롱해도
增長多生人我本(증장다생 인아본) 여러 생애 아상을 키우는 근본이라
思量也是虛浮浮(사량야시 허부부) 생각하면, 또한 허하고 무상하구나
假使說法如雲雨(가사설법 여운우) 가령 설법을 잘해 운우 조화 부리며
感得天花石點頭(감득천화 석점두) 하늘에선 꽃비 내리고 돌도 고개를 끄덕여도
乾慧未能免生死(건혜미능 면생사) 알음알이 지식으론 생사를 면치 못하나니 (건혜 (乾慧): 다함이 있는 지혜. 도학의 지혜는 무상의 위가 없는 지혜.)
思量也是虛浮浮(사량야시 허부부) 생각하면, 또한 허하고 무상하구나
사부시는 네 가지 허망한 것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처자권속과 금은옥백입니다. 있던 것도 결국 죽을 때는 무가 되더라는 말입니다. 두 번째로 자기 명예를 좇아 열심히 살지만 그것도 결국 죽을 때는 무가 된다. 세 번째는 내 어떤 장점도 결국 나라는 아상을 키울 뿐이요, 결국엔 허무한 것이다. 네 번째로 지식은 언젠가는 말라질, 함이 있는 지혜이다. 함이 없는 도학의 무상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네 가지는 생사를 면하기 어려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럼 처자권속도 얻지 말아야 하고, 금은백옥도 얻지 말아야 하고, 지식도 쌓지 말아야 합니까? 중생의 세계는 유의 세계라 유만 보고 삽니다. 대산종사님 법문에 성자는 無變으로 應養變이라 하셨습니다.[진공(体)/성품/이치 vs. 묘유(用)/마음/기운]
진공으로 체를 삼고 묘유로 용을 삼는다. 성품의 체를 삼고 마음을 쓴다. 이치에 근간해서 기운을 응용한다. 불변에 바탕해서 변화를 활용한다. 유가 주가 아니라 무가 주이며, 유는 응용하는 것입니다.
일원상 게송의 해설
● 일원상 게송 6단계 공부 좌산종사
1단계: 유(有)는 무(無)로
현실 있는 데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갖추고 장만하나 거기에 집착상을 다 놓아 버리고 없는 데로 돌아가 안주해 버리고
2단계: 무(無)는 유(有)로
아무 것도 없는 그 자리에서 초연히 유유자적하다가 기틀따라 있는 곳에 나타나 종횡무진하는 경륜을 다듬고 펼치고
3단계: 돌고 돌아
그러나 그 어느 한 지점에서도 정지하지 아니하고 계속 돌려서 끝이 없게 하여가면
4단계: 至極하면
그 공부는 점점 깊어져서 드디어는 지극한 자리 무등등한 자리에 도달이 되나니
5단계: 유와 무가 구공(俱空)이나
비록 도달이 되었다 하나 유에서도 유가 없고 무에서도 무가 없어 한 흔적도 남아 있지 않으며
6단계: 구공 역시 구족(具足)이라.
모두 다 비었으되 광명수량과 대기대용의 경륜과 여래지혜덕상은 원만구족한 자리이다.
좌산상사님께서 종법사님 시절에 게송을 쉽게 설명해주셨습니다.
게송은 신앙적 측면으로 혹은 수행적 측면으로 공부하면 좋습니다. 즉 우주만유의 본래 이치 측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고, 내 마음 공부로 받아들이는 것도 필요합니다. 다 적용이 됩니다. 게송에 얽힌 이야기들이 참 많습니다. 원남교당에 계실 때 조정재 박사님께서 교도회장이셨습니다. 명동성당에 가서 기도를 하면 스스로 죄인으로서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는데, 고시 준비하는 와중에 서울대 철학과 박종우 교수님께서 종로교당에서 게송에 대해 강연하시는 중, 구공역시구족이라는 말에 원불교로 개종하셨다고 합니다. 박종우 교수님께서는 정산종사님을 만나 뵌 후 만나본 중 최고의 얼굴이라 하셨고, 창평고씨 할머님이 정산종사님께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는 한 인간에게 예배하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봤다고 하셨습니다. 들어본 말 중 게송이 가장 좋다 하셨습니다. 정산종사님께서 그 말을 듣고, ‘철학자 게송이 가장 좋을 것이요, 윤리학자 사은(상생의 윤리, 우주만유의 윤리를 다룸)이 최고라 할 것이요, 사회학자 사요(인권 지식 교육 평등의 세계 다룸)를 보면 최고라 할 것이다. 그리고 수행자는 삼학(삼학병진의 최고수행법)을 보면 최고라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게송에 얽힌 사연이 많아요. 게송이 간단하지만 정말 기가막히게 좋기 때문입니다. 사리연구에는 대소를 体를 삼고, 유무를 用을 삼는다고 되어 있고, 게송에는 무를 体삼고 유를 用을 삼는다고 되어 있습니다. 헤깔리지 마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중생들은 감정의 시소를 탑니다. 有의 세계라는 것은 흥망성쇠고락 부귀빈천이 나뉘는 세계입니다. 흥하면 교만하고 힘들다고 자포자기할 필요 없습니다. 강약이 변하듯 부귀는 빈천으로 고는 낙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그걸 알면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확 엎어버리는 감정의 세계에 놀아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 그 감정을 넘어선 정신, 더 넘어서 감정이 나온 출발지인 성품의 세계로 가주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관념에 끌려 욕심에 끌려 상에 끌려, 찌꺼기가 남고 흔적이 남습니다. 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보면 상대의 세계에서 빠져들고 흔적이 남게 되어 있습니다. 有의 실체는 無이기 때문에 구공이고 구족입니다. 아침에는 有의 세계에서 살아도 저녁에는 비워야 합니다. 마음공부는 有(감정/마음/사은/제불조사범부중생)가 無(성품/사은의 본원/본성)에서 나온 것을 알아서 마음을 이렇게 쓰자는 것입니다. 有를 有로 알 때 이를 幻 (꿈)이라 합니다. 많은 법문에 ‘거울 속에 비친 나요’ ‘강물에 비친 나다’ 라는 말이 나옵니다. 실지는 無에서 나옵니다.
좌산종사님 말씀 1단계는 자성반조, 아직 못 깨쳤다면 서원반조하라는 말입니다. 서원은 有에 있는 것이 아니라 無에 있는 것이라 생을 초월해 뚫어지는 것입니다. 원기 72년도에 대산종사님께서 100주년 대적공실을 내놓으셨습니다. 지금 이 생에 살고 있지만 내생을 준비해야 합니다. ‘당장 내일도 모르겠는데’ 라는 말을 한다면 그것이 유에 집착한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자식이 이뻐도 결국 다 놓고 가야 합니다.
2단계는 무에서 유유자적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유유자적하십니까? 경계 따라, 조석으로, 동정으로, 쉬는 시간에 유유자적해야 합니다. 즉 채우고 비우고, 긴장하고 이완하고, 양으로하고 음으로 하고, 이것이 둘이 아닙니다(不二). 유유자적하다가도 경계 따라서는 종횡무진 서원을 향해 달려가야 합니다. 감정의 세계로 빠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감정은 조화 있게 잘 응용해야 합니다. 無의 세계에서 유유자적하지 않으면 감정의 노예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똑같이 바쁘더라도 자기 욕심을 위해 바쁠 수도 있고, 서원을 위해 바쁠 수도 있습니다. 일할 때는 한가해서는 안됩니다. 활동할 시기에는 활동해야 합니다. 有에만 빠지만 현실주의에 빠지게 되고, 無에 빠지면 허무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안분을 잘 못 이해하면 허무주의가 됩니다. 긴장을 잘해야 이완을 잘할 수 있고, 이완을 잘 해야 긴장을 잘할 수 있습니다.
3-4단계는 하루 하고 마는 것이 아니고 오래오래 하라는 말씀입니다. 동정, 음양, 긴장과 이완, 변불변, 은현을 계속 돌려서 지극하면 有無가 하나가 된다는 말입니다. 有 속에 無가 있고, 無 속에 有의 기틀이 있습니다. 원래 有無는 하나입니다. 無이면서 有여서 원래는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대종사님께서 헬기의 프로펠라를 보면서 돌긴 도는데 비행기 형체가 다 보이더라. ‘저것이 없으면서 있는 지극한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지극은 구공구족이요, 있으면서 없는 초월했음을 말합니다.
5-6단계에서 구공이며 구족이라 하셨습니다. 흔적이 사실은 본래 없는 것이죠. 본래 구공입니다. 有도 구공 속에 있고 無도 구공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또 구공이니까 구족입니다. 원만구족한 자리는 한군데 치우치지 않는 그런 자리입니다. 지공무사한 자리며 관조로서 깨쳐야만 합니다. 경계 속에 유에 끌리면 무로 한번 돌려주고, 무에서 나올 때는 감정을 조화롭게 운용하는 유로 돌려주는, 끊임없는 수행 속에 삼대력이 쌓이고 인연도 바뀌고 습관도 바뀌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쉽지 않습니다. 유무념을 통해서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는 바뀝니다. 굳기 전에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순간순간 유무념 공부가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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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도원교우님의 말투가 느껴지는데 내용은 설법그대로네요^^ 거기다 두괄식정리^^ 감사합니다
도원교우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