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탯줄 묻힌곳.호남땅에 삼성 (-곡성 장성 보성), 삼평(-함평 창평 남평) 이 있드시
영남 땅에도 삼천이 있습죠. 예천. 김천, 영천- 예전사람들 말하기를 이런 곳,
삼성, 삼평, 삼천, 사람들은 고추가루 서말 먹고도 뻘 속 삼십리을 갈사람들이라고 -
나중 알고 보니 일제 수탈 농토 부족이, 고단한 삶이 사람을 그렇게 될수 밖에 없게 되어서 나온 만들어낸 말이더이다.
회룡포 ㅡ전에는 의성포라 했는데 의성군과 헸갈려 회룡포로 개명.
사진 오른편 끝에 산 너머가 바로 내가 나고 자란 동네
.명봉사- 내가 태풍 사라호가 불던해던가? 고3 때 들어가 여름박학 때 잠시 입시 공부다넌 절 명봉사
이 절터가 결코 명당은 아닌것으로 판명. 명당이면 지금 내가--.
그곳에 태실 있음은 나중 알았죠.
산골이라 예천에는 유명세 타는 명목(세금내는 석송령. 팽니무 등등) 이 많코요.
나무 전문인도 많다구요. 전 서울대 교수로 몇십년 식목일 전후에 꼭 방송 나오시던 고 임경빈 박사
.산림청장하던 누구. 홍릉터 안에 유일한 송덕비 선 초대임업연구원장 조재봉(우리동네 사람}님
그리고 남은 안알아주지만 혼자 만들고 믿는 목신교주 (원이름은 백두산하반도삼천리산천초목두루뭉수리만신교)이시며
木소리꾼이며 동산바치 노거수 초동방주인 인 나.
금당맛질(마을이름) 반서울이란 용문면, 용문사 절집도 어린날 내 단골소풍지
. 윤장대 그 정교함. 그보다.그때는 그걸 돌릴 힘이 있어갸 장가갈 수 있고.
애기머슴에서 상머슴으로 세경을 올려 받을수 있다고 어른들은 말했더이다.
강화 전등사에도 그 모조품이 있더이다.
용문사는 불타고 난후 다시 가봤더니 온천지개락이 시주자 이름 . 그 후로는 용문가도 거기까지는 안 갑니다.
용문 양평 은행나무의 용문사와는 다른 용문사 임.
하긴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하늘에 법문 적힌 종이를 날리니 봉이 돼서 한마리 멀리 안동 봉정사에,
한마리는 지금 예천 용문사로 날아앉았는데 가서 둘다 鳳자든 절이됐다고 친구에게 들은 풍월.
그래서 세 절은 하나로 묶어서 알고 봐야한고 합디다.
개인적으로 예천 가시면 꼭 보고오셔야 하는 곳. 용문사 아래의 초간정 (草澗亭)이란 정자.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이란 <대동운부군옥> 지은 초정 권문해(1534-1591)선생의 작업 공간 정자
내가 예천 농고 다닐 때 여기도 소풍지. 촉안정 정자 기둥 중 한개 ,주초돌 가까운 지점에 도끼 자국 하나 있어요.
그 때 이 마을 사시는 국어선생님께서 그 도끼자국 전설을 說 하시던 생각 남니다.
정자를 완성하고 낙성식을 거창하게 하는 데 집안 문중 사돈 며느리 집안 바깥 양반이 다 모였다.
그중 권씨문중 시집간 외동딸의 훨칠하게 잘생긴 신랑 있어. 그 사위도 참석.
흥겹게 정자위에서 놀다가 취기가 넘처 그만 실족 난간에서 떨어저
저 정자 아래 깊은 용소같은 물에 익사하는 비극이 발생.
하여 이 죽은 자의 장모가 도끼 들고와서람 이놈의 정자 땜시리 내 딸 청상과부 됐다고,
그 정자 부실려고 도끼로 찍어서 생긴 자국이 있는 그 정자 기둥의 사연있는 자국.
예천시장 특히 회룡포가 내려다 보이는 그 면 면소재지 용궁장은 순대국밥으로 이름있고.
낙동강 삼강주막 뒤편 그 나무가 회화나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예천은 안동문화권, 즉 추로지향, 산업은 약했으나 오로지 그 성질로 사는 사람들 고장. 나는 예외.
그림에 나오는 종가 고택이 골골이 있음. 이참에 요즘 내고장 마을에 뜨는 이야기 둘 만 합니다.
그중 하나는 말무덤, 馬무덤이 아니라. 言무덤입니다. 우리면에 있지요.
죽은 말을 묻어놓은 묘가 아니라. 각성받이 아래윗마을 사람들이 만나면 하도 말로 욕질로 싸움만 하길레
촌장이 화합의 차원에서 마을 중간지점에 큰 구덩이를 크게 파놓고 동네사람 모두 다 둥그렇게 서운 뒤
앞으로 싸울 때 할 말을 모두 지금 이 구덩이 속에 토해서 꼭꼭 묻어 뒀다는 언총言塚,
이것은 세상에 다른 어디도 없는 무덤 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 매주 일요일 오전 9시 kbs 1 tv에서 하는 "산 너머 남촌에는 씨즌 2"가
바로 내가 태어난 그 집 그 마을. 한번 보시기바랍니다.
고향 그림 나오니 너무 반가워서 또 오버했네요.
그런데 예천군 1읍11면중에 내가 난 면은 知保面 이랍니다.
예지천보 禮知天保 의 땅, 예를 알고 하늘이 도와주는 고장.
그런데 나 이 이름 때문에 어릴 때부터 엄청 왕따 많이 당하고 놀림 많이 당했습니다.
지금 예천은 물이 좋아 술이 좋고. 덜 개발되어 오히려 청정지역이랍니다.
들은적 있나요. 조선시대 조선 인제 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 인제 반은 안동권에서 나고,
안동권 인제 반은 우리 지보면에서 나고- 사실 생각해보니 인물 많이 났더군요.
국문학자 -조윤제박사. 5.16 올 것이 왔다던 현석호 의원.
5공 6공 신군부 시절 서슬퍼렀던 유학성 의원 등등 한때 우리면에 별이 도합 스물몇개랐데요.
그럼 나 자신은-,? 소백산 정기도 낙동강 덕화도 못입은
일수거사(一水去師 )에다 연금술사(年金酒肆) 가 틀림없것다.
<나가수>가아니라 <나교사>라고 질러봅니다.
주착?! 자랑이 과했나요. 설이 과했나요? 기분 언짷았다면 오월이니 해량 앙망.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