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1년만에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재진입... 유엔 가입 후 3번째 진출
(뉴욕 로이터=연합뉴스)지난해 10월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발사 문제를 논의하고자 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 각국 대표가 참석하고 있다. 회의에서는 대부분의 이사국이 북한의 거듭되는 도발이 결의 위반이라며 단호한 대응을 촉구했다. 이런 회의에 계속 옵서버로 참여해온 한국은 내년부턴 비상임이사국으로 대북 제재 등 논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로이터 연합뉴스)© 제공: 조선일보
한국이 국제 평화·안보 질서를 정하는 최상위 국제기구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일원으로 내년 재진입한다. 한국은 안보리에서 미국·일본 등 자유 진영과 함께 북한의 핵 위협과 주민 인권 탄압,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의 군사적 위협 등에 대한 국제적 대응에 주도적으로 나서 공조할 전망이다.
유엔 총회는 6일 오전(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2024~2025년 임기의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선거를 치렀다.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한 나라를 뽑는 단독 후보로 나섰다. 투표에 참여한 국가 192개국 중 3분의 2 이상인 180국의 찬성을 얻어 선출됐다. 아프리카 몫으로 알제리와 시에라리온, 중남미 가이아나도 무경합으로 각각 선출됐다. 동유럽 몫으론 서방이 지원하는 슬로베니아와 러시아가 지원하는 벨라루스가 경합을 벌였는데, 슬로베니아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한국은 1991년 유엔에 가입한 이래 1996~1997년, 2013~2014년 각각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을 지낸 적이 있으며, 11년 만인 내년에 세 번째로 안보리에 재진입한다.
/그래픽=김성규© 제공: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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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안보리는 국제 평화 및 안전 유지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지며, 회원국에 대해 국제법적 구속력을 갖는 유일한 핵심 기관이다. 국제 분쟁에 관한 조사, 침략 행위 여부 판단, 군비 통제안 수립과 전략 지역에 대한 신탁통치 기능을 수행한다. 1950년 6·25전쟁 발발 당일 즉시 회의를 열어 ‘북한의 남침’으로 규정하고 유엔군 한국 파병을 결정한 것도 안보리이며, 2006년 북한 1차 핵실험 이래 대북 제재 결의안을 매년 갱신하고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제도를 운영하는 것도 안보리다.
지난해 11월 한미일 등 14개국 대사들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가 종료된 이후 북한의 ICBM 발사를 규탄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북 군사도발에 자극받은 일본은 올해부터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에 역대 12번째로 진출해 목소리를 키우고 있고, 한국은 내년부터 비상임이사국에 입성한다. /유엔 웹TV 화면 캡처© 제공: 조선일보
안보리는 ‘P5′라 부르는 핵심 상임이사 5국(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과 비상임이사 10국 등 15국으로 구성된다. 비상임이사국은 평화 유지에 대한 회원국의 공헌과 지역적 배분을 고려하여 총회에서 3분의 2 다수결로 매년 5국씩 선출하고, 임기는 2년이다. 상임과 비상임이사국은 투표권과 발언권, 회의 소집과 주재권 등에서 같은 권한을 갖지만, 안보리의 최종 결정을 좌우할 수 있는 거부권(veto)은 상임이사국만이 가진다.
안보리에선 내년 우크라이나 전쟁이 마무리될 경우 전후 질서 수립과 재건, 전쟁 범죄 조사 등 굵직한 국제 문제들을 논의한다. 또 세계 기후변화 대응, 군축과 사이버 안보, 코로나 대유행 같은 대규모 감염병 예방 등 한국이 안보리 멤버로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며 영역을 키울 분야도 많다. 200억달러(약 26조원) 규모의 유엔 조달 시장에 한국 기업이 참여하는 것도 안보리 진출과 맞물려 더욱 활발해질 것이란 기대를 모은다. 앞서 지난 5일 주유엔 대한민국 대표부는 안보리에서 평화 유지·구축, 여성과 평화 안보, 사이버 안보, 기후와 안보 등 네 분야에 중점을 두고 활동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황준국 주유엔 대표부 대사가 5일 저녁(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선거를 하루 앞두고 뉴욕 유엔대표부 반기문홀에서 리셉션을 열어 각국 외교사절들에게 한국 지지를 당부하고 있다. /유엔대표부 제공© 제공: 조선일보
현재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 등 군사 도발이 고조되고,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가 높아지는 등 한반도 주변 긴장이 높아지는 가운데 핵심 당사자인 한국이 안보리에 입성하는 것도 글로벌 역학 구도에서 큰 의미가 있다. 미국과 영국·프랑스 등 상임이사국의 자유 진영과 함께 일본이 올해부터 비상임이사국으로 활동하며 북핵과 북한 인권 문제의 공조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다만 상임이사국 5국 중 하나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결의안도 채택할 수 없는 안보리 체제를 감안하면, 비상임이사국으로서 한국의 역할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본은 1958년 이래 비상임이사국만 12번째 수임하며 상임이사국으로 가는 발판을 닦고 있다.
일각에서는 ‘안보리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상습적 거부권 발동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규탄과 제재, 북핵·미사일 도발에 대한 안보리 제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식물 안보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재 안보리는 진영별 갈등으로 갈라져 있다.
북한의 군사 정찰 위성 발사를 계기로 지난 2일 소집된 안보리 회의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끝났다. 북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 발사 문제에 관한 공개회의를 열고도 규탄 성명이나 추가 제재 결의안 채택 등 공식 대응에 합의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2월 터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로 중국·러시아의 안보리 무력화가 본격화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9월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러시아가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했고, 최근까지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대한 제재 결의안 역시 중국과 러시아 반대로 수차례 무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