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며칠 전, 봄비로 화사하던 벚꽃은 꽃비 되어 천지로 흩어지니, 늦을세라, 차마 초록빛도 갖추지 못한 숨죽였던 나무마다, 야리야리 연두 이파리가 앞다투어 돋아나니 세상이 희망으로 가득하다. 피었다 지는 꽃인들, 연초록 이파리인들 그 어느 것인들 어여쁘지 않은 것이 있으리오. 우리는 이렇게 감사한 하루에 부처님 법을 찾아 불광 법회로 모여든다.
일요법회 아침 풍경. 사무국에서는 회장단 회의 및 법회 업무. 현관에서는 법회보 배부, 안내, 미소로 인사하시는 엘리베이터 봉사팀에 미소로 화답하시는 혜담 스님. 오늘은 좋은 날, 일요 법회 있는 날.
떡과 생수 보시한 송파 14구, 15구, 16구, 17구에서 이른 아침 임원들은 나눔 봉사까지 이어지니 감사하고 함사하여라..
법회가 있기까지 많이 수고하는 방송실, 법당 안내팀, 새 법우 안내팀, 다도 봉사팀은 법회 준비 완료~~~~
천수경 독경이 끝나고 사회 혜안 부회장님의 인사로 은은한 범종 소리 울려 퍼지고 부처님 전에 마지를 올리고, 헌향, 헌다를 올린다.
석촌 호숫가 봄의 향연을 뒤로하고 정법을 찾아 한 분, 한 분, 일요법회로 모여 보광당을 가득 채운 불광 바라밀 형제들 감사하여라...
금주의 법문 : 출가의 위대함에 대하여
금주의 법어 : 경원사 주지 효림 스님
호수공원에 나가 봤더니 화려하게 피었던 벚꽃이 지고 그 꽃 잔치가 끝났습니다. 봄은 아주 빠르게 지나가고 지금 중동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이라는 나라를 공격해 전쟁을 일으켜 가지고 매우 많은 사람들이 죽고 또 생활의 터전이 파괴되고 그렇습니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모든 전쟁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의 공통점이 뭐냐 전쟁과 평화는 공존할 수 없는 것인데 전쟁은 무엇을 명분으로 내세우느냐 평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전쟁을 한다. 그래서 평화는 전쟁을 안 하는 게 평화인데 평화를 명분으로 전쟁을 지금 이제 어지간히 한 달 이상 전쟁을 하다 보니까 돈도 고갈되고 폭탄도 고갈돼 가지고 전쟁이 이제 마무리 단계에 가는 것 같아요. 같은데 하여튼 전쟁은 안 하는 게 좋다. 빨리 끝나기를 우리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지난번 법회에 왔을 때는 몰랐는데 우리 전 법회장님께서 임기를 마치시고 신임 법회장님이 선임 되셨는데 하여튼 불광법회는 현재 비상 상태고 매우 엄중한 상태입니다.
매달 법회 할 때마다 오는데 법회보 뒤에 보면 조계사 봉은사 동명사 화광사에 가서 보살님들이 1인 시우l를 하시잖아요. 그런 거 평소에 이런 시위 처음 경험해 보시는 분들도 계시고 그럴 걸로 아는데 그런 시위를 하고 이러면서 불광사가 하루 빨리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그러는 엄중한 시점입니다. 그리고 이제 취임하신 신임 법회장님은 처음에 우리 경원사에 내려오셔서 하필 나를 초청해서 오게 했구나. 심기일전해서 더 분발해가지고 빠른 시일 내에 불광법회가 정상화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신임 법회장님도 이제 무거운 책임을 맡으니까 또 한 번 박수 치시죠.
이게 그 불교는 자기를 성찰하는 성찰이라는 게 뭡니까?
살필 성(省) 살필 찰(察) 자기를 살펴본다 이거예요. 내 자신에게 지금 현재 어떤 허물이 있는가. 내가 정말 훌륭하게 불도 수행을 잘하고 있는가. 이런 것을 끊임없이 점검한다는 거예요.
이게 어떤 산업 현장 같은데 불이 나면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안전 불감증에 걸렸다. 처음에는 그 안전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쓰다가 늘 하다 보니까 습관이 돼가지고 익숙해져서 안전에 신경을 안 쓰거든 그래서 큰 사고가 나요. 이 불도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할 때는 긴장해가지고 잘해야지 그러니까 하루 하고 이틀 하고 할 때 야 수행의 맛이 이런 거구나 참 그 마음이 잡혀요. 그런데 한 달하고 두 달하고 1년하고 2년 익숙해져 가지고 자기를 성찰하는 내가 이럴 때 더욱 분발해서 내가 나를 잘 성찰하고 내가 수행을 잘하고 있나 아! 옛날에는 내가 마하반야바라밀 염송을 참 열심히 했는데 요즘은 아마 건성으로 대충 습관적으로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살펴야 되는데 그래서 끊임없이 자기를 성찰해야 한다. 오늘은 이제 부처님 출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 건데 여러분들은 출가하신 분들이 아니잖아요.
스님들은 출가했단 말 이예요. 그러나 출가하지 아니하신 불자 여러분들에게도 부처님의 출가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그리고 그 부처님의 출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우리가 성찰해 볼 필요가 있는 거다. 그래서 오늘은 그걸 한번 성찰해 보는 거예요.
첫째 이제 출가 부처님이 뭐라고 하셨냐 하면은 모든 사람 또는 중생이라고 칭하면 거기에는 사람만 한정해서 얘기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생명체를 다 통틀어서 얘기하는 그런 의미가 있어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무엇 때문에 태어나는가? 아니 내 의사하고는 관계없이 부모님이 나를 세상에 내보내줬는가 저 거룩하고 전지전능한 창조주 여호아 그분이 우리를 그냥 세상에 쑥 내버려 두는가 아! 기왕에 내보내줄 때는 아주 머리도 천재로 만들어 갖고 내보내주고 돈도 좀 많이 가지는 부자로 내보내주지 않고 왜 어리석고 못난 사람으로 내 보내주고 그래가지고 이 고생을 하게 하는가 우리가 이런 의문을 가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부처님이 뭐라 하셨죠? 일대사 인연으로 온다 이랬어요. 그 ‘일대사’라는 말은 뭐냐 하면 하나의 큰 일 이런 뜻이에요. 그게 더 친숙한 언어로 바꿔서 얘기하면 뭐냐 제일 큰 목적 하나 가지고 이 세상에 온다는 거예요. 제일 큰 목적은 여러분들은 다 이 세상에 온 것이 그냥 온 것이 아니에요. 일대사 제일 큰 목적 하나를 이루기 위해서 오십니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온 목적에 정말 충실하게 인생을 사는가? 건성건성 아니 좀 자기 정신을 가진 사람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저 사람이 왜 이 도박이나 하고 말이지 어디 가면 술이나 다 먹고살고 인생을 저렇게 낭비하고 허송하고 살아 저 사람은 사는 목적이 대체 뭐냐 어떤 사람은 도둑질하려고 온 사람이 있어 보면 맨날 습관적으로 남의 돈을 갈취하고 사기나 치려고 하고 그렇게 인생을 살다 가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뭐 해요? 어찌 사람이 이 세상에 올 때 나쁜 짓 많이 하려고 온 사람이 어디 있나 인생의 목적이 나쁜 짓 하는 것이 목적인 사람이 어디에 있겠냐 말이야.
그런데 우리는 살펴보면 세상에 보면 좋게 사는 사람 저 사람 인생 성공했다 이렇게 하는 사람조차도 그게 뭐냐 하면 돈 많이 벌어서 부귀영화 누리면 인생 성공했다. 또는 더 좀 차원이 높게 보면 야! 저 사람 학자로 큰 학문을 이루면 인생을 성공했다. 또 다른 차원에서 보면 저 사람 참 부모에게 효도하고 인간으로서 자식 잘 키우고 저 정도 보니까 인생에 성공했다. 이게 내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이 스님도 어머니 아버지가 계실 거 아니에요 돌아가신 지가 한참 됐어요. 그래 보니까 자식 잘 키우는 것 같아. 내가 보니 아들도 잘 키우고 그래서 그 정도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인생을 아주 손해 보지는 않았다.
그런대로 잘 사시는 분이다. 저는 우리 7남매 가운데 제일 가운데입니다. 저는 또 어릴 때 양자를 가가지고 집에서 크지도 않고 양가집에 가서 컸는데 거리가 얼마 안 돼서 맨 날 왔다 갔다 하고 한 집에서 크는 거랑 진배없이 성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얘기를 하느냐 그 아들 하나 스님 됐잖아요. 아니 기왕 스님 됐으면 큰 시대를 대표하고 아주 거룩한 큰스님이 됐으면 좋겠지만 그러나 역량이 부족해서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으로는 스님 노릇 열심히 한다. 그런 아들 하나 뒀으니까 성공한 거지.
그리고 인생에 이제 그거보다 조금 더 차원이 높은 사람은 어떤 거냐? 오묘한 인격을 갖춘 사람 내가 유교 책 많이 봤습니다. 내가 양자 간 집이 이제 종손인데 그 갈천 이라고 하시는 분이 종손입니다. 500년 이상을 한 집에서만 뿌리를 내리고 산 집이에요. 그래서 우리 시골집 가면 문화재입니다. 시골 내가 성장한 종갓집이 500년 된 집이니까 조선 초기에 또 양반가로서 남아있는 집이 몇 개 없대요. 그런 집에서 내가 성장을 했는데 유학자의 집이죠. 그래서 내가 스님이 되기는 했으나 유학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내가 봤어요. 그런데 이걸 공자를 낯추어서 얘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자라는 분이 오묘한 인격을 갖춘 분이야. 오묘한 인격 아주 훌륭한 그래서 이분의 사상의 중심이 뭐냐 ‘인’이라고 하는 사상을 가졌어요. 그래서 유교의 철학은 인에서 나왔습니다.
공자의 철학은 인에서 인 어질仁자 부처님도 우리가 지칭할 때 대자대비하신 분 이러잖아요.
대자대비 부처님의 사상과 철학이 대자대비로 압축돼 있다. 그래서 내가 중국 여행을 가서 역부로 공자묘를 한번 가서 봐야 되겠다. 공자가 좋아했다는 그 공자의 고향 곡부 거기서 얼마 안 되는 그 뒷산 태산이라고 하는 동쪽에 있다고 동악이라고도 하고 그런 산이 있어요. 그 산꼭대기도 올라가 보고 그랬습니다. 공자묘 공자의 사당 위폐를 모시는 사당 어마무시하게 크게 지어 놓았더라고 중국에서 성자라고 인격이 고매하다고 하는 그 하나로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존경을 받고 추앙을 하는 구나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러나 불교 입장에서 보면 정말 인생의 가장 꼭대기 최고 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걸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일대사로 삼는 사람도 있고, 학문을 이루는 것을 일대사로 삼는 사람도 있고, 또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 잘 키우는 것을 일대사로 삼는 사람도 있지만 부처님이 얘기하신 일대사는 뭐냐 진리를 깨닫는 겁니다.
진리, 그런데 불교의 입장에서 도 닦는 스님의 입장에서 보면은 도를 깨닫는 게 뭐냐 도 진리를 깨닫는 것이 뭐냐 도(道)라는 말이 진리고 진리라는 말이 도(道)입니다. 그 도(道)가 뭐냐. 내가 나를 깨달은 거야. 내가 누구냐 그래 공자 도를 깨달으신 분은 아닌 것 같아요. 실제가 그렇습니다. 진리를 깨달으신 분 아니야 그래서 부처님이 오늘날 부처님의 출가를 우리가 역사적 의미로 높이 새기고 그걸 살펴봐야 하는 것이 인류 역사에서 석가모니가 유일하게 출가를 감행하고 도를 깨달았어요. 진리를 깨달으셨어.
이게 참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날 와서 뭐라고 합니까? 민주주의라고 그러잖아요. 민주주의 이 민주주의라는 말이 뭡니까? 민이 세상의 주인이다. 이거 아니에요 국가의 주인이다. 民이 누구예요? 우리가 민이잖아요. 백성이,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다.
이 사상의 근원은 불교입니다. 나라의 주인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자기의 불성을 깨닫고 불광의 빛이 팍 빛나는 그 순간 우주의 주인이다. 우주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의 주인 이게 아니에요 우주의 주인이야.
우주의 여호와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게 아니라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창조했다고 그래서 그건 우리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진리를 깨달은 사람 같지도 않은데 전에 내가 이 자리에서 한번 얘기를 했죠. 저 심리학자 이름이 갑자기 생각 안 나 그 사람(도킨스) 종교 신은 만들어진 인간이 만드는 존재다. 실제하지 아니하는 존재야. 그런데 가상으로 인간이 만들었다 그렇게 얘기를 하잖아요. 우리는 종이다 이러잖아 종 그게 아니에요. 우리가 주인공이야. 내가 주인공이야. 그런데 우리가 왜 주인으로서 주인 노릇을 못 하느냐. 주인공 노릇을 못 하느냐 자기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래요.
여러분들이 다 내가 나를 모른다 하는 거. 그게 말이 이상하지 않느냐 이 서양 철학이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된 서양 철학이 매우 정교한 논리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반합(正反合)이라고 하는 변형법적 논리를 그 사람들은 아주 정교하게 발전을 시켰어요. 그런데 그러한 정교한 논법도 불교의 교리 논법에 비하면 별거 아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우리가 조금 전에도 반야심경 했잖아요.
반야심경 했는데 거기에 ‘나’라고 하는 존재가 반야심경에서 뭐라고 하냐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나는 온(蘊)이야 온, 다섯 가지 온(蘊)이라고 하는 게 쌓일(蘊)입니다. 우리가 5(色.受.想.行.識)가지가 모였다. 이어 5가지 색.수.상.행.식 여기서 마지막에 그 식 우리가 이 인식을 하는 게 뭐예요? 눈으로 빛깔이라고 하는 거는 뭐예요? 빛깔 눈으로 인식하잖아 소리 귀로 인식하잖아요. 이런 걸 통해서 六근을 통해서 우리가 받아들인 형체를 받아들여서 인식하고 있는 그게 식(識)이야. 식(識)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자기인 줄 아는 거야. 식(識) 이런 너무 정교한 불교 교리를 가지고 얘기하면 지루해서 그만 들을 때는 근사한데 법문 듣고 일어날 때 그만 한쪽 귀로 쭉 흘러 버립니다. 오온이 결합한 것을 나라고 인식하는데 그 오온을 싹 공한 줄 알고 무너뜨리고 보면 거기에 영롱하게 빛나는 빛이 있어. 그게 불광이에요. 불광 우리 불광사 잖아 그게 우리의 불성의 빛이 반야 지혜야 이것을 인식해야 된다 이 말이에요. 이걸 깨달아야 된다.
그래서 스님들이 출가하는 것은 뭐 때문에 뭐 하려고 출가하는 바로 그거 깨달으려고 출가하는 거예요. 스님 돼가지고 어디 무슨 좋은 아니 스님 돼 교단이 크니까 좋은 보직이 많잖아요. 별것도 아닌 총무원장 한 번 되면 또 아니 내가 혜담 큰스님 옆에 계셔 말씀드리지 못하는데 우리는 공부하는 거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래 선방에 들기도 하고 참 열심히 공부하셨거든. 강원도 나오시고 일본 가서 유학까지 하고 오시고 그런데 저 스님은 여러분들 학교 올라가 대학 교수나 하려고 그런거냐? 전혀 그런 데 관심 없고 일생을 이제 80을 바라보는 나이인데 쓰신 책에 보면은 ‘고따마 붓다의 정관명상’이라고 하는 다 하나씩 가지고 계시죠? 그걸 한번 잘 읽어봐요. 스님의 사상과 철학이 그 안에 다 들어 있어요. 불광법회 불자들은 그걸 다 한 번씩 읽어보셔야 되는데 이제 옆에 계시는데 내가 자꾸 말하면 쑥스러워지니까 그래 우리가 스님 된 목적이 뭐냐 이거예요. 그런 보직 같은 거 하고 그런 명예는 얻고 그것 가지고 또 부족해 가지고 부처님이 하지 마라 하는 건 다 해. 저 돈 많은 것처럼, 자랑하고 이러면 안 됩니다.
천일 학도자는 선수 학빈 (千日學道者先須學貧) 이라. (월광화 보살님 녹취)
옛날 큰 스님들이 입버릇처럼 하신 말씀이 도를 닦는 사람은 먼저 가난을 배워라, 가난! 형식적으로 가난한 척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화장실의 휴지처럼 여길 줄 알아야 한다.정말! 스님이 되어 가지고, 고급 식당 다니면서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으려고 하고, 스님이 되어 가지고 화려한 옷을 입고 다니고, 온갖 사치를 다하는 스님들이 있어요. 그렇게 하면 도는 언제 닦아요, 도는! 코미디 프로에 보니까, 그런 게 있대요. “돈 많이 벌면 뭐할꺼고?” “소고기 사먹지!” 출가가 그렇게 흘러가서는 안된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출가의 목적은 무엇이냐? 오직 하나! 진리를 깨닫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진작에 저렇게 할 걸 하는 생각을 지금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저기 글자가 보이지요? 내가 내 자랑을 하는 것 같아서 쑥스러운데, 잘 쓰면서 그러면 자랑해도 되지만, 시를 시답게 쓰지도 못하면서 그래도 시 쓴다고 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한글시대 잖아요? 한글로 시를 써야 되지만, 그래도 스님들은 한시(漢詩)를 좀 써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민족사를 통틀어서 스님들이 한시를 가장 많이 쓴 시점이 고려말, 나옹, 백운 경안, 태고 보우, 이런 스님들이 계실 때, 스님들이 한시를 많이 썼어요. 그런 중에 가장 탁월한 한시를 많이 쓰신 스님이, 한시라기 보다는 선시(禪詩)를 많이 쓰신 스님이 누구냐? 나옹스님이었습니다. 조선 중기에 와서는 서산 스님이 선시를 잘 쓰셨어요. 그 당시 서산스님 밑에 서산스님의 영향을 받은 제자 스님들은 모두 선시를 잘 쓰셨어요. 그 중에서 소요라는 스님이 탁월한 역량 발휘를 하셨습니다. 그 이후 구한말에 경허선사가 출현하였는데 시가 좋아요. 그 스님 이후에는 만해 한용운 선사가 우리는 님의 침묵 같은 한글 시만 썼는 줄 알지만, 시조도 쓰셨는데 보면 기가 막힙니다. 아주 잘 쓰셨다는 말입니다. 그 이후로는 선시를 쓰는 스님들이 별로 없어요.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데, 근자에 와서는 한문으로 된 선시를 쓰는 분이 더욱 없습니다. 한글로 된 선시를 쓰라고 하니까 더 안 쓰고 해서, ‘선시(禪詩) 쓰는 운동을 하자’는 뜻으로 선시 이렇게 쓰면 된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본(本)을 보여 주기 위하여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선시를 쓰는 것을 알고, 서울 어느 화랑에서 6월달에 한문 선시 초대전을 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가셔서 구경 많이 하십시오.
오늘 가져 온 선시는 이것입니다.
來訪人世成何事(내방인세성하사)
下之下事得富貴(하지하사득부귀)
其得中間高人格(기득중간고인격)
證得最上悟眞理(증득최상오진리)
來訪人世成何事(내방인세성하사)라, 이것이 무슨 뜻이냐 하면, 인간 세상에 찾아 와서 무슨 일을 이룰 것인가? 이 소리입니다.
下之下事得富貴(하지하사득부귀)라,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부귀영화라는 것은 인세에 와서, 인간 세상에 와서 이루어야 할 것 가운데, 가장 수준이 낮은 것이다. 하(下)중의 하(下)다. 부처님이 그렇게 본다는 뜻이 아니고, 임효림 내가 그렇게 본다는 뜻입니다. 하지하사(下之下事). 낮은 가운데 가장 낮은 것은 부귀를 얻는 것이다.
其得中間高人格(기득중간고인격), 그 중간 가운데가 높은 인격을 얻는 것이고,
證得最上悟眞理(증득최상오진리)라, 그 중의 최상은, 저 산에서 가장 높은 나무는 하나 밖에 없듯이, 진리를 깨달아서 증득하는 것이 최상이다. 이것을 위해서 최상의 진리를 깨달아서 증득하기 위해서 출가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출가이다. 이 말입니다.
자, 이제 법회보로 돌아 가 보겠습니다. “나는 인도에 가서 보았다/ 아누피아 고을 아노마 강이 흐르고 있는 것을// 스물아홉의 태자 싯닷타는 아노마 강을 건너자 말했다/찬나여!/너는 이 길로 태자를 장식하는 장식품을 들고/ 부왕에게로 달려가 알려다오/ 태자 싯닷타는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고/ 진리를 찾아 출가하여 사문이 되었다고/ 세속의 욕망을 멋어나고자/ 깨달음의 세계 해탈을 찾아갔노라고// 찬나여!/ 나를 길러 주신 어머니 마하빠자빠티와/ 사랑하는 태자비 야소다라/ 그리고 아직 어린 내 아들 라훌라에게도 전해다오/ 나는 생로병사의 고해를 벗어나는/ 지혜와 자비의 길을 찾아 갔노라고// 찬나여! 나의 가장 충직한 벗이여/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것/ 너무 슬퍼하지 말고/ 어서 애마를 몰고/ 왕성으로 돌아가라// 눈물을 흘리며 찬나가 떠난 뒤/ 왕자 싯닷타는/ 사냥꾼이 짐승들을 눈속임하기 위해 입고 있는 사문의 옷을/ 화려한 태자의 옷과 바꿔 입고/ 강언덕을 넘어 숲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그 아름답고 거룩한 모습을/ 수천 년이 지난 오늘 새벽에/ 아누피아 고을 아노미 강이 흐르는 언덕에 서서/ 나는 보았다”(효림지음, 『맨발로 오신 부처님』 중에서).
이것은 부처님의 출가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요. 새벽에 왕성을 넘어서 출가를 하셨어요. 여기 나오는 찬나라는 사람은 부처님의 말고삐를 잡고 가는 사람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운전기사지요. 이 찬나를 부처님이 아주 아끼고 사랑했어요. 나는 고귀한 신분의 왕자이고, 너는 말이나 몰고, 말똥이나 치우고 하는 그런 사람이다, 운전 기사다 하고 괄시하고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충직한 벗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경전에서도 실제 그렇게 나옵니다. 일화를 하난 소개하자면,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옆에서 누가 물어요, 저 고집 세고 말 안듣는 저 찬나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하고. 그 말은 무엇이냐 하면 부처님께서 출가를 해서 진리를 깨닫고 오셨을 때 찬나도 출가를 해서 스님이 되었다는 것을 시사해 줍니다. 찬나가 스님이 되었는데, 부처님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잖아요. 찬나가. 그런데 그 찬나가 고집이 세고 남의 말을 안듣는 겁니다. 그래서 묵빈대처(默擯對處)라는 말이 바로 거기서 나옵니다. 묵빈대처는 ‘침묵으로 배척하여 대처한다’는 뜻으로,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대응하지 않고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하여 스스로 깨닫고 뉘우치게 하거나 떠나게 만드는 대처 방식을 의미합니다. 찬나도 결국은 나중에 부처님이 열반하신 다음에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 가장 명성이 높은 사람 중의 하나인 아난 조차도 부처님 살아 계실 때는 수행을 열심히 안했던 모양입니다. 부처님 돌아 가신 다음에 도를 깨달아 대 아라한이 되었습니다. 여기 첫 구절에 ‘나는 인도에 가서 보았다’, 여기서 나는 누구냐,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시는 효림스님입니다(일동 웃음, 박수).
인도에 가면 4대 성지를 흔히 가는데, 4대 성지에 들지는 않지만, 가비라성 왕궁이 있던 자리도 가요. 거기에 호텔에서 자고 새벽에 가는데, 인도가 많이 추워요. 내가 눈물이 나더라구요. 부처님이 이렇게 추운 나라에 사셨구나 해서. 인도에 처음 가면서 옷을 어떻게 입고 가야 되느냐해서 가 본 사람한테 물어 보니까, 겨울이라도 우리나라 늦가을 같으니까 거기에 기준해서 입고 가면 된다고 그래요. 그래서 대충 입고 갔어요. 우리 일행이 스님들 대 여섯분 포함해서 20여명 갔는데 모두 다 옷을 가볍게 입고 갔어요. 나는 그래도 지혜가 조금 있어 가지고, 내의를 두벌을 챙겨 가지고 갔어요. 다른 옷들은 부피가 큰데, 내의는 부피가 적으니까 추우면 하나 더 껴입는다는 생각으로 두 벌을 가지고 갔어요. 두 벌을 다 껴입었으면 추위에 안떠는데, 옆에 같이 간 스님이 내 보다 더 추워해서 그 스님에게 나누어 주느라고 한 벌 밖에 못 껴입어서 내내 추워서 떨었어요. 그런데, 추위에 벌벌 떨면서 새벽에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찾아 간 곳이 가이드가 안내하기를 부처님이 출가하실 때 건넌 강이라고 허더라구요. 그래서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서늘해 지면서 굉장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차를 좀 멈추시오’해 가지고, 강가에서 멈추었어요. 차가 멈춘 그 자리가 부처님이 강을 건넌 그 자리는 아니겠지만, 여기 강을 건너서 출가를 하셨구나 하는 진한 감동을 느꼈어요. 그때 부처님 나이 스물아홉! 열한 살에 출가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학자들 사이에는 대체로 스물아홉에 출가했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습니다.
지난 3월 26일, 음력으로 2월 8일이 부처님 출가 일이었습니다. 지난 법회 때 이날을 기념하여 꽃다발도 받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더욱 출가 정신을 되새기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한 대목이 사냥꾼이 짐승들을 눈속임하기 위해 입고 있던 사문의 옷을 입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이전에도 사문(沙門, 출가수행자)들이 있었습니다. 팔상도(八相圖) 중에서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이라고 있지요. 네 개의 문을 통한 외출에서 늙음, 병듦, 죽음의 고통을 직면하는 장면을 극적으로 표현한 것이지요. 최종적인 외출에서 누구를 보았느냐하면 수행을 하는, 나무 그늘에 앉아서 명상을 하는 사문을 보았어요. 사문은 불교가 창시되고 만들어진 용어가 아니라, 부처님 이전에도 이미 있었습니다. 사문이. 그래서 부처님도 대사문으로 부르잖아요? 그래서 지금 스님들도 사문이라고 지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냥꾼이 왜 사문의 옷을 입고 사냥을 했을까? 사문은 자비롭기 때문에 동물들이 보고도 도망을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걸 보면 사냥꾼이 가짜 스님 노릇을 한 것이다. 이 소리입니다. 짐승을 속이기 위해서. 요즘도 가짜 스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가짜 스님 많아요. 요즘도 명품 옷, 비싼 옷 입고 다니는 사람들 많잖아요. 핸드백 하나도 몇백 만원씩 한다고 그러지요. 부처님은 비싼 고급의 왕자 복장을 사냥꾼에게 벗어 주고, 가짜 사문의 옷을 바꿔 입고 사문의 길을 나섰습니다. 그러면서 부처님이 스스로 자기 머리를 깎았습니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가짜 스님들 만나면 절대 무시하지 마세요. 내가 체험한 얘기입니다. 우체국에 볼 일이 있어서 가 있는데, 내가 있는 줄 알면 그 가짜 스님이 안들어 왔겠지요. 어떤 스님이 아주 초라한 차림을 하고 들어 왔어요. 나도 검소하게 입고 다니는 사람이지만, 그 스님이 초라한 행색을 하고 들어 와서 목탁을 치려고 하다가 내가 있으니까 급하게 돌아서서 나가려고 해요. 그래서 내가 가서 “아닙니다. 들어오십시오. 스님, 끝까지 목탁을 치시”라고 하고, 옆에서 머리 숙여 합장을 하고 딱 있었습니다. 내가 그랬더니 우체국에 있는 직원들도 모두 일어나서 머리를 숙이고 합장을 하더라구요. 그리고, 내가 적은 돈이지만 보시를 했더니, 우체국 직원들도 모두 따라서 보시를 했어요. 그랬더니 그 스님이 내 손을 잡으면서 “스님! 감사합니다.”하고 떠나갔습니다.
내가 왜 이 얘기를 하냐 하면, 종단에 진짜 승려증이 있는 사람이 중노릇 제대로 안하면 그 스님이 바로 진짜 가짜 스님입니다. 승려증이 없이 탁발한다고 왜 그 사람을 가짜라고 무시합니까? 우리가 한 푼 보시를 하는데에는 그런 사람에게 보시를 하는 것은 공덕이 되잖아요. 물론, 부처님 경전에는 도가 높은 대 아라한에게 보시를 하면, 무한한 공덕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를 깨달은 대 아라한에게 보시하듯이, 그런 가짜 스님에게라도 보시를 정성껏 하면 대 아라한에게 보시를 하는 것과 진배없다는 겁니다. 오늘 법문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청명 거사님 녹취)
♬ 찬탄곡 : 산사의 봄( 반영규 작사. 김수미 작곡 , 김회경 지휘) 마하보디 합창단 ♬
발원문 낭독 : 송파 2구 명등 자은여 보살님 (불광사. 불광법회 정상화 기도 발원)
현안 보고 : 보관 법회장님
오늘 새 법우 환영식에 거사님 한 분이 불광 법회에 첫걸음을 하였다. 신임 법회장님과 사진도 찍었다. 이 인연 오래 이어가시길_()_
각 구, 법등 모임을 하며 즐겁게 먹거리를 나누며 담소하는 정겨운 불광 형제들.
법회가 끝나 귀가하는 법우 형제를 배웅하는 법당 안내팀 인사.
법회 후 마무리 작업인, 쓰레기, 재활용 처리 삼매 중
법회 후, 대웅전에서 끊이지 않는 금강경 염송이 여법하게 이루지고 .......
법회가 끝난 후 오후 1시 30분에 보광당에서 2026년 1차 선학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2차는 4월 26일에 진행됩니다.
참가자 기록하고 교재를 받아든 선학 보살님들의 모습. 강의 전, 차 한 잔의 여유도 즐긴다.
동봉 부회장님의 사회로 워크숍이 시작을 알리고, 신임 보관 법회장님의 인사말씀으로 강의가 시작되었다.
1교시 : 청명 팀장님 [불광법회 탄생 배경과 지향점.]
2교시 : 이원호 발명교실 교사 [AI와 함께 더 편해지는 똑똑한 하루]
오늘 제 1차 선학 간담회에는 141명의 선학보살님들이 참석했다
선학 위크숍 후, 떡 나눔과 법당 마무리 정리 모습.
토요일 오후, 일요 법회를 위해 보광당 청소, 의자 배치 중인 청정 봉사팀.
지난주에도 조계사, 봉은사에서 정진 기도 중안 1인 시위 정진단
토요일 불광사에서의 호법정진 시위단이 시위 정진 중이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첫댓글 어려움 속에서도 여법하게 진행되는 불광법회 모습을 다양하게 사진 찍으신 원각화님, 효림스님의 진솔한 법문을 풀어쓰신 월광화님, 청명님, 빛나는 불광법회 일지를 작성하신 마음님 모두 불광과 함께 빛나는 보현행자님들이십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