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가 광기에 대하여 嘲笑한 것은 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한 것과는 달리 고전주의 시대가 狂氣에 대한 조소를 죽음으로 대체한 것은, 질서라는 가시적인 성곽이 의식이라는 성으로 변형된 것으로 광기는 더 이상 우주(cosmos)의 모습이 아니라 연대기적 시간(aevum)의 특징일 뿐이다.
광기의 토대는 熱情에 의한 특정의 정신질환이라는 징후적인 행태임에도, 이것이 예상되지 않을 경우에도 광기의 최초이자 최후의 구호인 言語로 이루어진 談論은 광기의 전 영역을 망라하였고, 시대의 담론인 도덕적, 종교적 의무감이 權力이라는 법률에 가담하여 강제된 감금은 비이성을 은폐시킴으로서 비이성으로부터 자연스러운 수치심만 박탈했을 뿐이다.
본질적으로 광기의 치료는 自然의 내부에서 발견되어야 함에도 광기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非理性이라는 배경에서 이루어져, 광기의 구체적이고 확실한 표시인 광인의 신체를 대상으로 오히려 지식권력의 광기와 정신착란이 주도하여 격리가 이루어짐으로서, 결국 극단에 이른 광기가 동물성이라는 괴물의 자유로운 발작을 드러내 공포라는 강박 관념을 만들어냄으로서 교화나 의료로 연결될 수 없었다.
이러한 감금에 대한 반작용인 공포와 불안은 중세시대의 공포로 회귀하여 제2의 공포를 탄생시켰으며, 감금의 요새에서 고전주의 이성은 想像에 의한 욕망의 담론 속에서 자기 자신의 인식과 동시에 부정하였으며, 기질이 아닌 특질에 의해 제시되는 인과론적 토대의 역할은 기질 생리학이 아닌 관념의 생리학, 공포의 생리학으로 이전되어 19세기에서야 과학적 정신분석이 가능해졌다.
이후 19세기가 범죄와 무고한 이성을 분리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였으나, 광기에 대한 인식은 오로지 정치적인 입장에서 특수화되어 범죄와 기묘한 相似관계로 인식하였으며, 이것은 검열과 감시의 세계에서 판단의 세계로 옮겨온 것뿐이었다.
따라서 수용소에서 강제적 억압이 사라진 것은 비이성의 해방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이루어진 광기에 대한 이성의 支配임에도, 정신분석학이 광기의 본질적인 것을 드러내거나, 해독하거나, 확실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것은 광기가 소위 해방이라고 부르는 거대한 道德的 감금에 자연스럽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광기를 측정하고 심리학을 통해서 광기를 정당화 시켰다고 믿어온 세계는 이제 광기 앞에서 스스로를 정당화 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광기의 투쟁과 고통 속에서 니체, 반 고흐, 아르또와 같은 작품들에 입각해서 스스로를 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 속의 어떤 것도, 특히 세계가 광기에 대해서 알고 있는 어떤 것도 광기에 관한 이러한 작품들이 세계를 정당화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을 결코 보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