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선생
염 상 섭
1
E선생이 X학교에서 교편을 들게 된 것은, 그가 일본에서 귀국한 지 반년쯤 지난 뒤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가 그 학교에서 선생 노릇을 한 것도, 겨우 반년밖에 아니 되었었다.
E선생의 그 광대뼈가 퍼진 검으무트레한 상(相)이며, 바짝 깍은 거센 머리털이, 어푸수수하게 자란, 그야말로 천연 밤송이 같은 대가리며, 말하자면 좀 부대한 듯한 짝딸막한 체구가 어디로 보든지, 오만한 듯도 하여 보이고 심술궂어도 보였으나, 그 곱살스러운 눈자위에는, 어쩐지 온유한 맛이 있어 보였다. 더구나 조용히 나직나직하게 이야기하는 음성은, 명쾌하기도 하고 사람의 온정을 끌 만한 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강당 같은 데에서
“그따위로 하여가지고 어떻게 할 작정이야!” 하며, 소리를 버럭 지르거나, 그의 늘 하는 입버릇으로,
“아무려나 그것은 제군의 자유다. 그러나 제군이 진정한 ‘인간의 자(子)’가 되어야 하겠다는 것만은, 어느 때든지 잊어서는 아니 되겠다”고, 여성 대갈(脣聲大喝)할 때의, 그 원시인의 피가 그대로 쏟아져 나오는 듯한 만성(蠻聲)에는, 사람을 압두(壓頭)하려는 듯한 위력이 있었다.
생도들은, E선생이 부임하여 온 지 며칠이 아니 되어서, 벌써 ‘고슴도치’ 라는 별명을 바치었다. 그것은 E선생의 대가리가 고슴도치 같기도 하려니와 그의 성질이 격월(激越)한 것을 놀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생도들에게 대한 E선생은, 결코 고슴도치만은 아니었다. E선생의 태도도 그러하지만, 생도들도 입으로는,
“이크! ‘고슴도치’가 대낮부터 웬 야단이야?” 하기도 하고, 간혹 교실에서 생도들의 과실을 설유나 하고 나오면, 다른 반 생도들이,
“왜, 또 ‘고슴도치’가 목 따는 소리를 하였니?” 하며, 저희끼리는 수군거리면서도, 심중으로까지 ‘고슴도치’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도리어 될 수 있는 대로는 그 ‘고슴도치’에게 가까이하고 싶어 하였다.
E선생도 이 고슴도치라는 소리를 운동장 같은 데에서 귓결에 들은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아마 요사이 동물학에서, 고슴도치를 배워가지고 저희끼리 그러는 게지 하며, 그런 소리는 별로 귀담아 듣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나 언젠지 점심시간에 E선생이 제일 못마땅해하는 체조 선생이, 일깨워줘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난로 앞에 채를 잡고 앉아서, 서양 요릿집에서 특별 주문을 하여 왔다는 버터 바른 연보 조각을, 짜닥짜닥 뜯어먹으며 앉았는 체조 선생은, 콧잔등 위에 늘어진 대모테 안경 위로, 뱅글뱅글 웃으며, E선생을 건너다보고 앉았다가,
“E선생! 실례올시다만 그 머리를 좀 기르시구려” 하며, E선생 옆에 앉은 지리 선생을 건너다보고 눈짓을 하였다. E선생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벤또 그릇에다가 고개를 파묻고 차디찬 언 밥덩이를 급히 펴 넣다가, 볼이 메인 꺼먼 얼굴을 번쩍 쳐들고, 뭐라고 말대답을 하려 하였으나, 입술을 뗄 수가 없어서, 눈만 끔벅끔벅하며, 우물우물 한참 씹어서 꿀떡 삼킨 뒤에 겨우 입을 벌렸다.
“왜요? 선생님 머리처럼 맨들란 말씀이야요?”
E선생은, 대단히 속이 거북하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주 건너다보았다.
“아니오, 꼭 이렇게 깎으시라는 건 아니지만…….” 하며, 체조 선생은 하얀 가냘픈 손가락을 머리에다가 집어넣어서 두세 번 뒤로 쓰다듬으면서 ,
“요새 생도들이, 선생님을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체조 선생은 여전히 유쾌한 듯이 말을 계속하였다.
“예? 난 몰라요.”
E선생은, 생전에 빗 그림자가 가본 일이 있었는지 모를 만치 먼지가 뿌옇게 앉은 덥수룩한 머리를, 또 한 번 번쩍 들고, 귀찮다는 듯이 간단히 말대꾸를 하였다.
“아! 이때껏 고슴도치라는 소리도 못 들으셨어요?”
체조 선생은 그 빽빽한 목소리를 한층 더 높여서, 방 안이 다 듣게 한마디 하고 깔깔깔 웃었다. 일동은 따라서 핫하하 하며 의미없이 웃었다. 그래도 교감만은, 점잖게 가만히 앉아서 쩌덕쩌덕하고 있었다.
E선생은, 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빙그레 웃으며 ,
“예에 그런가요. 내 머리가, 아닌 게 아니라 거세긴 거세요. 하하하 상관있나요. 그런 게 다 학생 시대의 재미지요” 하며 도리어 유쾌한 듯이 웃고, 벤또 갑을 싸서 서랍에 들이뜨린 후에 찻종을 들고 난로 곁으로 왔다.
E선생이 잠깐 손을 쬐고 자기 자리로 가서 연구서를 펴놓고 앉았으려니까 스토브 앞에 옹기웅기 모여 앉은 교원들은, 체조 선생과 지리 선생을 중심으로 하고, 어느 때까지 고슴도치 이야기가 떠나지를 않았다.
“나도 머리를 빨갛게 깎아버리면 고슴도치같이 될까?”
체조 선생은 뒤로 훌떡 넘기어서 반드르하게 빗은 자기의 머리를, 이것 보라는 듯이 뒤로 쓰다듬으면서, 또다시 말을 꺼내었다. 체조 선생은 마치 자기도 고슴도치가 될까 보아서, 머리를 깎을 수 없다는 구문(口吻)¹이었다.
사실 말하면, E선생이 이 학교에 온 후, 처음부터 깊은 인상을 준 것도 이 체조 교사였고, 제일 불쾌하게 생각한 것도 이 체조교사였다. E선생이 처음 오던 날, 생도들을 모아놓고 인사를 하게 되었을 때에, 경례의 호령을 하는 사람이, 말쑥한 신식 제치는 양복에다가 대모테 안경을 쓰고, 머리를 유난히 반드르하게 빚은 것을 보고, 아마 체조 교사가 결근을 하여서 대신하나 보다 하며 그 선생을 대개는 미국 출신인 영어 교사라고 짐작하였다. 그것은 E선생만 잘못 본 것이 아니다. 누구나 이 학교에 처음 오는 사람은, 학생복에 뼈다귀 단추를 달아 입은 E선생을, 체조 교사로 보는 사람은 있어도, 이 대모테 안경의 주인인 최신식 신사를 체조 교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날 오후 시간에 예의 대모테 선생이, 중절모를 쓰고, 상의를 입은 채 운동장 한구석에서 앞으로옷! 하며 섰는 것을 보고, E선생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에 그는 속으로 ‘목도리까지 아니한 것만은 다행이로군’ 하고 한참 구경하였다. 지금도 E선생은 한 달 전의 첫인상을 무심히 머릿속에 그려보며, 책을 펴놓은 채 우연히 그쪽으로 귀를 기울이고 앉았었다.
“선생님, 고슴도치는 발톱이 길다지요?”
이번에는 지리 선생이, 달라붙은 모가지를 쳐들면서, 곁에 비스듬히 선 박물 선생에게 물었다. 도(度)가 깊은 구식 금테 안경을 쓴 박물 선생은 마시려던 차를 또 한 번 꿀떡 마시고 나서,
“네에, 아마 그렇지요. 그러나 길긴 길어도 매우 약하지요.”
박물 선생이란 사람은, 나이는 그리 들어 보이지 않지만, 전교중에 제일 온공(溫恭)한 학자 티가 있는 사람이었다. 게다가 열심이었기 때문에 직접 관계가 없는 3, 4학년 생도들에게까지라도, 평판이 좋았었다. E선생과는 원래 방면이 다르기 때문에 교섭이 별로 없건마는, E선생도 이 박물 선생을 제일 존경하였다.
“그것 참 적절한 말씀입니다그려. 발틉이 길긴 길어도 약해요! 응, 길긴 길어도 약해!”
체조 선생은 무슨 의미나 있는 듯이, 길긴 길어도 약하단 말을, 웃으면서 뇌고 있다. 그러나 그 곁에들 앉은 사람들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자기네들이 웃지 않으면, 좌흥(座興)이 깨질 터이니까 웃지 않을 수 없는 의무나 있다는 듯이 모두 빙글빙글 웃었다.
1 - 2
“그 외엔 또 무슨 특장이 없나요?”
체조 교사늠는 어서 표본실로 들어가서 다음 시간 준비를 하려고 머뭇머뭇하고 섰는 박물 선생에 게 짓궂이 물었다.
“글쎄요, 그 외의 특징이라곤 대개 고슴도치는 낮엔 별로 나다니지 않지요.”
“하하하, 그럼 박쥐로군.” 이것은 수학 선생의 목청이 굵은 탁한 소리다.
“그럼 E선생은 사감이 제일 적당하구먼…….”
“생도감(生徒監)이면 더 좋지. 요새 흔한 고무 구두나 신고 살금살금 다니면…….”
지리 선생과 체조 선생이 이런 소리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쌕쌕거리는 동안에, 사람 좋은 박물 선생은 무심코 묻는 대로 대답을 한 것이라서, 좀 경솔하였다는 듯이, 얼굴이 벌게지며 돌아서서 E선생의 책상을 힐끗 건너다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E선생은 무엇을 하는지 책상 위에 놓인 책 궤에 가려서 여기서는 그 문젯거리가 된 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스토브 앞에서는 여전
히 떠드는 모양, E선생은 좀 불쾌하였으나 그 외에는 들은 체 만 체하고 자기 책에 정신을 쓰고 앉았다.
지리 선생과 체조 선생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E선생을 못 먹어 하는 데에는 제각각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 원래 E선생의 전문은 사학과 사회학이었다. 그의 학생 시대의 이상으로 말하면 결코 중학교 교사라는 되다 찌부러진 교육가가 되려고는 아니하였었다. 그러나 동경에서 졸업한 후에 급기야 조선 사회에 발을 들여놓고 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 귀국한 지 얼마 아니 되는 그는 우선 어떤 친구의 소개로 사회에 다소 이름 있다는 몇몇 사람을 만나보았다. 그리하여 그때 그들이 계획 중인 주식회사라는 현판 아래 발행한다는 어떤 월간 잡지를 위하여 두어 달 동안이나 분주히 돌아다녀보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잡지가 세상에 나와보기는 고사하고 5백 원 가량의 부채를 걸머지고 나서는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분개하였다. 매도하였다. 그러나 사회가 그에게 주는 위로는 책상물림이라는 조소밖에 없었다. 그 후부터 그는 거의 두문불출을 하고 혼자 들어앉아서 끙끙 앓고 있었다.
“5백 원이라는 돈이 아깝다는 것이 아니라, 5백 원이라는 잗단 돈 몇 푼을 갉아먹고 싶어서 문화운동이니 주의선전(主義宣傳)이니 하는 이 사회가 가엾다는 것이야! 저주받은 사회! 거세된 영혼! 이런 사회에는 참 살고 싶지 않다!” ―이런 이야기가 날 때마다, 그는 어떤 친구에 게든지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들어앉은 그는, 암만 해도 그대로 들어엎드려서 썩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소위 사회의 유지(有志)로 자처하고 그들 사이에 섞여서 내로라는 얼굴로 돌아다니고 싶지는 않았다. 될 수 있으면 순실한, 사람다운 사람이 모인 단체, 책상머리에 있을 때의 양심이 흐려지지 않은 청년의 ‘그룹,’ 세간적으로 아주 영리하여지지 않은 어린 동무…… 이러한 속에서 놀고 싶은 생각이 비교적 간절하여졌다. 사실 E선생이 X학교에 오라는 것을 쾌락(快諾)하고 교육계로 나선 것도 이러한 요구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국 와서 본즉, 자기는, T라고 하는 지리 선생의 시앗 쯤 된 모양이었다. 이 T선생은 동경 고등사범 (東京高等師範)의 지리역사과 출신으로, 자기보다는 삼사 년이나 먼저 졸업한 선배였다. 하므로 T선생은 이러한 학벌 문제도 늘 앞이 굽는 것같이 불쾌하게 생각하지만, 그보다도 더 큰 원인은 E선생을 불러다가 자기가 맡았던 삼사 학년의 동서양 역사 전부를 담임케 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갈딱지 없는 T선생은, 이렇게 아니하였더면 자기가, 어떤 창피한 꼴을 당하였을지, 그런 것은 꿈에도 깨닫지 못하였다.
하여간 이러한 관계로 지리 선생은 E선생을 눈엣가시로 볼 뿐 아니라, 손톱만 한 일에라도 말썽을 부리고 이 사람 저 사람하고 입을 모아서, 마치 시누이가 오라범댁을 볶거나, 본마누라가 시앗을 들어내려는 것같이 있는 소리 없는 소리를, 함부로 하고 돌아다녔다.
그러나, 여기에 어느 때든지 선봉대장으로 덩달아서 뇌동(雷同)하는 것은 예의 체조 선생과 수학 선생이었다. 물론 체조 선생에게도 다소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결국은 E선생이 생도들에게 평판이 좋다는 것을 시기하여 그러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날 맨 끝 시간에, E선생은 6학년에 일어 문법을 가르치러 들어갔었다. E선생은 동서양사 외에 특히 일문법하고 조선어 작문을 맡았었다.
예를 마치고 출석부를 펴려니까, 심술궂은 장난꾼이, 무슨 긴급한 질문이나 있는 듯이 벌떡 일어나며 별안간에, “선생님” 하고 불렀다. 신기(神氣)가 좋으신 때는 실없는 소리도 곧잘 하는 E선생은,
“왜, 또 공부가 하기 싫어서 오줌이 마려운 게군!” 하며 웃었다.
“아녜요, 질문이 좀 있어요. 저어 고슴도치가요, 외〔瓜〕밭에서 대굴대굴대굴대굴!” ―여기까지 겨우 입을 어울려 한마디 하고 나서는, 웃음이 복받쳐서 킥킥킥 하며 외면을 하였다.
“그래, 어쨌어?”
E선생은 벌써 눈치를 채고도, 천연덕스럽게 그다음을 물었다.
질문하는 생도는 얼굴이 벌게지면서, 곁에서 웃는 생도를 나무라놓고,
“.……뾰족한 털끝에 외가…… 킥킥…… 보기 좋게 끼, 끼, 끼어서…….”
생도들은 웃음판이 되었다. E선생도 커다란 입을 딱 벌리고 보기 좋게 웃었다. 고슴도치라는 말을 듣고 형세가 어떻게 되나 하고 나오는 웃음을 참으면서 E션생의 비식(鼻息)²만 노려보고 앉았던 생도들도, E선생이 웃는 바람에 안심하였다는 듯이 깔깔깔 웃었다. E선생은 손을 내어두르며, 생도들의 웃음을 막아놓고,
“예끼 빙충맞은 것들! 선생을 놀리려거든 좀 그럴듯하게 해야지…….” 하며 생도들과 또다시 깔깔깔 웃었다.
이러한 실없는 소리를 할 때의 E선생은 정말 어린아이 같았다. 거기에는 조금도 꾸미는 것이 없었다. 이것이 E선생의 가장 아름다운 특장이요, 동시에 천진난만한 생도들의 환영을 받게 된 원인이었다. 사실 그 후부터 나날이 높아가는 E선생의 호평은 직원끼리도 시기할 만하였다.
다시는 ‘고슴도치’라고 하는 생도도 없거니와, ‘고슴도치’의 말이라면, 일종의 미신적 신뢰와 경앙(景仰)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그 후에, E선생 귀에 굴러 들어온 말이지만, 그날 사무실 속에서 고슴도치 타령이 있던 날 3년급 생도 몇몇이 짜고서, E선생을 놀리려 한 것도 기실은 체조 선생이 노는 시간에, 생도들더러 오늘에야, “고슴도치 선생이 정신을 차렸다”느니, “내가 설명을 하여주었다”느니 하며, 은근히 사무실 속에서도, E선생이 놀림감이 된다는 것을, 생도들에게 일러주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소리를 생도의 입에서 들을 제 E선생은 혼자 깔깔 웃고 앉았었다. E선생같이 격하기 쉬운 성 질로, 그런 소리를 듣고도 웃고 지나치는 것은, 생도가 앞에 앉았기 때문에 체면을 차리느라고 그리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E선생은 사실 노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가 혹시 자기의 생도들이나, 처자나 혹은 동생들을, 얼굴을 붉히며 꾸짖는 때가 있지만, 그것은 진심으로 노하여서 그러거나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사랑하기 때문에, 그는 그의 생도를 책(責)하고, 그의 처자를 꾸짖는 것이었다.
1 ㅡ3
그러나 아무 은원(恩怨)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심사가 뒤틀리는 일이 있어도 마음으로라도 결코 미워하거나 꾸짖는 일은 없었다.
“사람이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처럼 비열한 것은 없다. 더구나 노한다는 것은 일생에 그리 많은 일은 아니다. 장부의 일빈일소(一顰一笑)가 그렇게 헐한 것은 아니다. 될 수 있으면 일생에 노하여보지 않고 죽는 것에 더 좋은 일은 없지만 노한다면 한 번 꼭 한 번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희로애락을 불형어색 (不形於色)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산 시체가 되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선 감정을 해방하여야 한다”는 E선생의 주장의 결론이었다. 하여간 이와 같이 E선생은 체조교사나 생도감의 대모테를 못마땅하게는 생각하여도 이때껏 그들에게 노염을 품거나 미워하여본 일은 없었다. 그러나 체조 선생과 T선생들의 E선생에게 대한 태도는 더욱더욱 악화하여가는 것
이 분명 하였다.
2
고슴도치 사건이 있은 지 2주일쯤 지나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였다.
그날 하학을 시킨 후, E선생이 책보를 끼고 나오려니까, 테니스코트가 있는 운동장 저 끝에, 학생들이, 거멓게 한 떼가 모여서서 제가끔 떠드는 모양이었다. E선생은 대문으로 향하고 나가려니까, 그래도 미심하여, 그리로 가보았다.
“그래 두 달 석 달, 이 늙은 놈이 애를 써서 부쳐논 것을, 짓밟아야 옳단 말이오?”
“그럼, 볼이 들어가도 집으러 가질 못한단 말이오.”
“글쎄, 누가 공을 집어가지 말라고 했소? 이때껏 말한 것같이, 어떤 학생인지 위에서 내려다보며, 공 집는 조그만 학생을 시켜서 밟아라, 밟아라, 짓밟기로 상관 있니? 하니, 그래 학생을 그따위로 가르쳐야 옳단 말이오? 겨울에 김 치쪽이나 얻어먹으려고, 이 늙은이…….”
“여보! 그따위라니? 그따위로 어떻게 가르쳐 걱정이란 말이오?”
손에 라켓을 든 체조 선생은, 눈을 똑바로 뜨고 덤벼들었다. 학생 뒤에서 듣고 있던 E선생은, 참을 수가 없어서, 두 겹 세 겹 에워싼 학생들을 헤치고 들어가며,
“여보시오 영감!” 하고, 상투 꼬부랑이 영감과 체조 선생 사이에 가로막아 섰다. E선생은, 다만 용서하라고 빌 뿐이었다. 학교의 설비가 부족하여, 공이 굴러 들어가는 것도 미안한 일이요, 많은 생도를 감독하려니까, 자연 부주의한 점도 있으니, 이번만 용서하면, 상당한 조처를 하겠다고, E선생은 잔생이³ 빌었다. 그 늙은 영감도 E선생의 말에는 만족하였던지, 금시로 노기가 풀어지며, 어세를 낮추어서,
“글쎄, 그런 줄 모르겠습니까. 그렇지만 보시다시피 손바닥만한 조기다가, 김장에 배추통이나 얻어먹을까 하고, 늙은 내외가 갖은 애를 다 써서, 겨우 사오십 통쯤 된 것을, 짓밟아도 상관없다니, 그래 화가 안 나겠소?…… 실상 말이지 그동안에 밟히기도 많이 밟혔소이다만, 자식 없는 사람이라, 어린애들이 날뛰는 것만 귀여워서, 이때껏, 내, 말 한마디 한 일이 없소이다. 그래도 이 양반은 누구신지, 날더러만 덮어놓고 잘못하였다니·…‥.”
“그러게 어서 학교에다 집을 팔고 떠나지!”
테니스 선수 중에도 대장팀의 한 사람이라는 4년급의 끝으로 셋째에 앉은 학생의 목소리다. E선생은 그 학생에게 눈짓을 하고, 다시 그 노인에게로 향하여,
“어서 내려가시지요. 참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을 하여주시니…… 대단 죄송하외다” 하며 모자를 벗어 인사를 하고, 언덕으로 엉금엉금 기어 내려가는 늙은이의 뒤를 바라보고서 섰다……. 아닌 게 아니라, 운동장에서 한 길이나 되는 낭떠러지 아래에, 쓰러져가는 일각대문(一角大門)이 보이고, 그 곁으로 안방 뒤인 듯 한 곳에, 참 정말 손바닥만 한 터전에, 비틀어진 백채(白菜)가 사오십 통쯤 내려다보였다. E선생은 눈물이 핑 돌 만큼, 그 늙은이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고 가엾어 보였다. “자식이 없는 놈이라 어린아이들이 날뛰는 것만 귀여워서…….” 라는 말이, E선생의 귀에는 어느 때까지 남아 있었다.
E선생이 무심코 섰다가, 돌아서서 가려니까, 체조 선생은 사람을 넘보는 듯한 예의 샐쭉한 눈을 뜨고, 안경 위로 넘겨다보면서,
“E선생, 참 수고하셨습니다그려! 싸움이 나려는 것을 말려주셔서…….” 하며 빙그레 웃는 것이, E선생에게는 좀 괘씸하여 보이지 않은 게 아니었지만,
“천만의 말씀 다 하시는구려” 하며 미소를 띠는 듯한 안색을 보이고, 교문을 나갔다.
배추를 짓밟으라고 하였다는 학생은 E선생의 뒤를, 잠깐 거들떠보고 나서,
“뭣도 모르고 공연히…… 밥그릇 옆뎅이로나 있지!” 하며, 체조 선생에게로 향하고 마주 보며 웃었다.
체조 선생이 이 학교에서 하는 일은, 학생의 비밀을 사무실에 보(報)하는 것보다, 사무실 비밀을 생도에게 탄로시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입이 가벼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생도들의 환심을 사려면, 그 이상의 수단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중에도 전교 내에 제일 말썽꾸러기요, 세력의 중심인 각 팀의 운동선수들과 결탁한다는 것은, 자기의 지반을 공고히 하고, 세력 범위를 확장함에 유일한 수단인 것을, 그는 충분히 타산할 만치 영리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선생님 선생님 하며 과자 부스러기며 장국밥 그릇이나 얻어걸리는 것도, 빈궁한 교원 생활에는 그래도 일조가 되지 않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생도들도 아무 보수 없이 무조건으로 이 체조 선생을 공궤(供饋)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제1에는 사무실의 비밀을 아는 것, 성적의 보장을 얻는 것이요. 제2에는 흡연을 하든지 기타 비밀한 행동에 대하여 관대한 특전을 얻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편인 고로 아까 그 생도가, E선생더러, “멋도 모르고 공연히 날뛴다”고 한 것도, 그 생도가 E선생보다 사무실 내용을 더 잘 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무실 내용이라는 것은 별것이 아니었다. 원래 이 학교의 예산은, 학교 부근의 민가를 매입하여가지고, 운동장도 확장하고, 기숙사도 세우려고 하였었다. 그러나 동민(洞民)들은 결속을 하여가지고, 절대로 불응하였다. 그것은 현재 교장인 서양 선교사가, ‘나의 사업은 원래 의연⁴적(義捐的)이니, 너희들도 집값의 3분의 1씩은, 의연하는 의미로 감가(減價)를 하라’는 요구가 무리한 것과, 또 근래와 같이 주택난이 심한 이때에, 수간두옥(數間斗屋)⁵을 헐가로 팔아가지고는, 도저히 옮겨 앉는 재주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문제가 일어난 것은 지난 하기방학 중이었으나, 그럭저럭 시일이 천연(遷延)되어 가을이 훌쩍 넘자, 이제는 김장을 해 넣을 때니까, 내년 봄에나 다시 의논하자 하고 담판은 일시 중지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세세한 내용이, 체조 선생의 입을 거쳐서, 운동부 일반에 알려진 뒤로는, 근방 10여 호만 학교에 팔아넘기면, 운동장이 넓어진다는 바람에, 학생들의 등쌀은 나날이 심하여갔다. 그러지 않아도 베이스볼 공이 넘어와서 장독이 깨졌느니, 판장(板墻)이 상하였느니 하여, 하루에도 몇 차례씩 야단이 일어났는데, 더구나 이 가을철에 들어서부터는, 별별 해괴망측한 짓이 다 많아졌다. 공 한 번만 넘어 들어와도 두세 놈씩 울타리 구멍으로 개 싸지르듯 싸지르지를 않나, 담 너머로 뻗친 대추나무 가지 위에 테니스공이나 풋볼이 얹혔다고, 기다란 바지랑대로 함부로 두들겨서, 익기도 전부터 떨어뜨려 먹지를 아니하나…… 이루 섬길 수가 없지만 그중에도 제일 괴로워하는 사람은 딸자식 가진 사람이다. 개천에 빠진 공을 씻는다고 벋
장다리 같은 놈⁶이, 대낮에 남의 집 에를, 불쑥 들어와서, 처녀애가 김치 거리를 씻거나 빨래를 하고 앉은 뜰에 박힌 우물물을, 제 마음대로 퍼 쓰기도 하고, 계집애나 젊은 아낙네가, 마루 끝에만 얼씬하여도, 운동장 끝에서 마주 내려다보며.
“떴구나! 분홍 치마가 떴구나! 남(籃)치맛자락이 걸린다! 날린다!” 하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리를 하는 것이 예상사이다. 이러한 일은 여편네끼리만 있을 때 같으면, 학생들이 무슨 짓을 하든지, 하는 수 없이 가만히 내버려둘 수밖에 없지만, 사나이가 있을 때에는 그대로 무사히 넘길 수는 없었다. 그러노라니 학교에 대한 동민들의 반감은 나날이 심하여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생도감이라는 직접 책임자인 체조 선생은, 이러한 생도의 불품행(不品行)을 단속하기는 고사하고, 보고도 모른 척하거나, 말 간섭을 하게 되면 어느 때든지 생도 편을 들어서 시비를 하다가 결국은,
“그러게 어서 학교에다가 팔아넘기고 떠나가구려”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사실 생도들이 그처럼 무람없게 된 것도, 언젠지 이 체조 선생이, 생도들 듣는 데서,
“좀 머릿살 아픈 꼴도 당해봐야 어서 떠나지…….” 하며, 은근히 생도들의 이러한 불품행을 묵허한다는 기미를 보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분란이 한 번 두 번 잦아갈수록, 동민들의 반감은 다만 격앙하여갈 뿐 아니라 동리 노인들은 소위 학교 교육이라는 것을 이를 갈며 저주하였다.
2 -2
그는 하여간 이러한 사건이 있은 후 그 이튿날 사무실 속에는, 불의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 이유는 이러한 것이었다.
배추밭 주인과 언쟁이 있던, 그 이튿날의 아침 기도 시간이, 마침 E선생 차례였다. E선생은 원래 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취임한 후 몇 주일 동안은, 매일 기도회에 참석도 아니하였고, 자기가 사회를 하여 기도를 인도한 일이 없었다. 그것은 자기가 취임할 당초부터 그 소개자에게 계약을 하다시피 한 것이었다. 그러나 직원 중에 시비를 하는 사람도 없지 않고, 그중에도 지리, 체조 양선생의 질문과 반대가 심하여서, 당로(當路)의 책임자인 교감도, 하는 수 없이 재삼재사 권고를 하기 때문에, E선생도 금시로 사직을 하고 나가지 않으려면, 남의 학교의 풍기를 문란케 하는 것이라고 마음을 돌이켜서 기도회를 보게는 되었으나, 그래도 다른 사람이 하는 날에는 참례치 않고, 이주일쯤 하여 한 번씩 돌아오는 자기 차례에만 인도를 하기로 작정하였었다. 그리하여 이번이 세 번 째였다.
그날 E선생은, 다른 때보다는 좀 일찍이 출근하였다. 다른 교원들도 시퍼렇게 얼어서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그러나 제일 먼저 와서 있을 체조 교사가 눈에 띄지 않았다. E선생은 거기에는 별로 정신 차려 생각하여보지도 않고, 종소리가 나자 곧 기도회에 들어갔다.
E선생의 기도회는 다른 때와는 특별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모든 절차를 자기가 지휘하고, 기도를 자기의 입으로 인도를 하지만, E선생은 성경도 모르고 기도를 하여본 일이 없기 때문에, 찬미는 풍금 치는 학생에게 일임하고, 성경 구절의 선택은 자기가 하려는 말의 주지(主旨)에 적당한 구절을 교감에게 읽어달라고 하고, 기도는 생도들에게 인도하게 한 후에, 자기는 다만 훈화를 할 뿐이었다. E선생의 주견(主見)은 신에 대한 기도나 성경 구절을 해독하는 등 형식은 아무래도 관계가 없는 것이요, 다만 이러한 기회에 실천궁행(實踐躬行)할 실제 문제를 택하여 수양의 자(資)가 되고 당직(當職)에 유조(有助)한 훈화를 하여주는 것이 의미 있는 것이며, 또한 기도회라는 것은 원래 그러하여야 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전과 변함이 없는 절차를 취한 후에, 성경 낭독을 교감에게 부탁하지 않고 자기가 독행(獨行)을 하였다. E선생은 기도가 끝난 뒤에 잠깐 머뭇머뭇하다가 찬송가 뒤에 있는, 십계명을 폅시다 하더니, “제6절을 봅시다” 하고, 천천히 힘을 들여 읽기 시작하였다.
“제6은 살인하지 말라 하시니라.”
E선생은, 자기가 읽은 구절이 너무 짧아서 좀 섭섭하다는 듯이, 또 한 번 구절마다 명료히 힘을 주어서 반복하였다.
“제6은 살인하지 말라 하시니라.”
이같이 두 번이나 소리를 높여 낭독하고 나서, E선생은 책을 접어 놓더니,
“세상 사람이 우둔한 자를 희롱하려 할 때에, 눈치가 빠르면 절에 가서 젓국을 얻어먹는다고, 하는 말이 있지 않소. 또한 여러분은 『맹자(孟子)』에서 곡속장(殼棘章⁷을 배웠을 것이오. 다음에 여러분은, 자고로 국가는 살인자를 사(死)로써 형벌함을 잘 알 것이오. 최종으로, 기독의 성도인 여러분은, 지금 내가 읽은 십계명을 어기지 않을 만한 신앙이 있는 동시에 살인하지 말라는 지고지존(地高至尊)한 예수의 수훈(垂訓)을 지킬 줄을, 나는 확신하는 바이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친 바 살인이라는 것은, 결코 그 범위가 편협한 인간계에 한한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산 자를 죽이지 말라는 것을 불가(佛家)가 살생을 경계함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오…….”
E선생은 이렇게 기두(起頭)를 하여놓고, 살생에 대한 도덕적 사치와 우주 만상의 조화의 이(理)와 후세에 이르러 이러한 관념이 기계화하여, 허다한 폐해가 백출한 원인을 도도히 설명한 뒤에, 목청을 돋우면서,
“여러분! 여기 어떠한 사람이 있어서 사람에게 이는 될지언정 해는 없는, 한 포기의 풀을, 아무 필요와 의미 없이 발로 으깨고 손으로 쥐어뜯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겠소. 필야(必也)에 여러분은 예상사로 생각할 것이요. 산 자를 죽임은 죄악이라고 배운 여러분은, 때리면 울 줄 알고, 찌르면 피 흘리는 견마(犬馬)에 대하여는 오히려 곡속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지만, 한 포기의 풀을 밟고 뜯을지라도 명음(鳴泣)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선혈이 임리(淋漓)⁸한 광경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예상사로 생각하는 것이오. 그러나 식물이라도 감각이 없는 것이 아니오. 존재의 이유와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오. 어느 때든지, 무엇이든지 그 존재의 이유와 권리를 주장하고 저항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는 그것을 유린할 권리는 없는 것이오. 한 포기의 풀, 한 송이의 꽃을 대할 때에 우리는, 그 자연의 묘리(妙理)를 경탄하며, 그 생명과 미에 대하여 겸허한 마음으로 애모(愛慕)와 감사의 뜻을 표(表)치 않으면 아니 될 의무는 있어도, 그 존재를 무시하고 생명을 유린할 권리는 조금도 없소.
그러면 여러분 가운데에는, 나에게 이렇게 반문할 분도 있을 것이오. 그러나 우리는 식물을 먹지 않느냐고. 과연 동물은 식물을 먹고, 고등동물은 하등동물을 먹는 것이오. 그러나 그것은 생명의 유린이 아닐 뿐 아니라, 거기에 우주의 조화가 있는 것이오. 한 송이의 꽃이, 아름답게 피어 자기의 미를 자랑함으로써 수분작용을 하는 동시에, 우주의 미 인생의 쾌를 돕고, 결실함에 이르러 인축(人畜)의 구복(口腹)을 위로하는 동시에, 종자의 전파를 도(圖)함은, 화초 자체의 자기를 부정하는 절대적 희생 같지만, 그 화초는 자기를 완성하고 자기의 종족의 번영을 도함이오. 인축은 그 조력 (助力)한 보수를 받음에 불외한 것이오. 사람이 가축을 사양(飼養)하고 채소를 재배하여 자기 자신의 영양을 도움으로써 활동력을 지지하며 생명을 연장하여 우주와 인류의 대사업을, 완성함에 노력하는 모든 행위가, 결국은 이 규구(規矩)에서 벗어남이 없다 하겠소. 결국 우주의 만물은 각자의 사명을 다하면서 피차가 희생을 공헌하는 동시에 또한 그러함으로써 자기를 완성하고 실현하여가는 것이오…… 나는 실로 밥상에 밥풀이 한 알 떨어지는 것을 보아도 곡속(穀粟)의 생명과 사명을 무시하는 것 같고, 생명의 자연한 생명력과 인간의 막대한 노력이 낭비됨을 애처롭게 생각하오. 여러분은 이것을 가리켜서, 내가 물적으로 인색한 자라 할지 모르나, 나는 다만 이 우주에 충일한 생명의 아름다움과 기쁨에 도취한 자일 뿐이오. 예수는 부자가 천당에 들어가기 어려움을 비유하여, 소가 바늘 구멍에 들어감 같다 하였거니와 진실로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리 미미한 일초일목(一草―木)이라도 그의 생명을 무시하고 유린하는 자로서, 인류의 행복을 도모하고 하느님께 가납(嘉納)되려 함은, 태산을 끼고 북해를 넘고자 하는 자보다도, 오히려 어리석음을 가르치고자 하는 바이오…….”
E선생의 핏빛 같은 두꺼운 입술에서는 불덩이가 굴러 나오는 것 같았다. 그는 이로부터 본론에 들어가서, 어제 하학한 후에 배추밭을 짓밟으라는 방자하고 무도한 실언으로 말미암아, 이웃 노인의 노염을 산 사실을 준절(峻切)히 훈계하고 나서,
“만일 금후에 여러분으로서 이만한 도덕적 양심의 자각이 없다 하면, 여러분은 기도를 아무리 잘하더라도 결국 바리새 교인밖에 아니 될 것이오” 라고 단언하였다.
E선생의 훈화가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물론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E선생의 훈화로 말미암아 교무실 내의 공기는 예상 외로 혐악하여졌다.
2 -3
E선생이 훈화를 바치고 다소 흥분한 낯빛으로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으니까 우선 지리 선생은 난로 앞에 서서,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대웅변가야! 대웅변가야!” 하며 여간 못마땅하지 않다는 듯이 입술이 샐쭉하여 섰다. 체조 선생은 여전히 눈에 띄지 않았다. E선생은 마침 첫 시간에는 노는 고로 자기 자리에서 책보를 풀기도 하고 책상 앞을 정돈도 하여 좀 무료한 듯이 가만히 앉았었다. 다른 선생들은 출석부와 백묵을 들고 나간 사람도 있고 차를 마시고 섰는 사람도 있었으나 지리 선생이 쫑알쫑알한 뒤에는, 아무
도 입을 벌리는 사람도 없고, 예의 뚱뚱한 수학 선생은 태연히 교의에 앉아서 교실에 들어갈 꿈도 아니 꾸는 모양이었다. 교감은 참다못하여,
“왜 어서들 들어가지 않으셔요” 하고 주의를 시키었다.
“인제 들어가 뭘 해요. 45분 교수 시간에 20분이나 50분이나 지나서 들어가면, 문제 하나나 풀 수 있나요.”
수학 선생의 굵은 목소리가 되퉁스럽게 터져 나왔다. 나이 50이 넘어도 수염 하나 없는 빈들빈들한 뚱뚱한 상에 두 입술이 밉살맞게 뿌루퉁 내민 것은 치기 만만한 어린아이의 보채는 것 같아서 우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험상스러웠다.
“10분밖에 더 지나지 않았을걸요. 10분이든지 20분이든지 하여간 들어가보셔야지요” 하며, 교감은 맞은 벽에 달린 괘종을 쳐다보고 나서 자기 시계를 꺼내보더니,
“저 시간 5분쯤 더 가는군…… 그만하면, 수학 두 문제는 풀겠소이다” 하고 가볍게 웃어버렸다.
“에엥, 발이 천생 녹아야지!” 하며, 수학 선생은 방어(魴魚) 가운데 토막 같은 똥그란 몸을 겨우 일으켰다.
“발커녕, 난 몸이 얼어붙지나 아니하였나 했습니다.” 지리 선생도 뒤로 따라서며 말대꾸를 하였다. 저희끼리 발이 얼었느니, 몸이 고드름이 될 뻔하였느니 하는 것은, 모두 E선생더러 들으라는 것이었으나, 사실 E선생의 훈화가 그리 지리한 것은 아니었었다. 기도회를 처음 시작할 때에, 자기들이 난로 앞에서 뭉기적뭉기적하고 모이지들을 않기 때문에, 잠깐 기다리느라고 5분쯤 지나쳤을 뿐이었고, 나온 뒤에도 역시 불을 쪼이면서 느럭느럭하기 때문에, 더 늦어진 것 이었다.
교원들이 다 나간 뒤에, 교감은,
“E선생, 잠깐 이리…….” 하며, 잠가두었던 교장실을 열고 들어갔다. E선생은 ‘웬일인구?’ 하는 의심이 없지 않았으나, 하여간 뒤따라섰다.
이 교감이란 사람은 나이는 아직 삼십칠팔 세밖에 아니 되었지만, 구레나릇에 덮인 주름 많은 상이라든지 몸 가지는 것이 아무리 보아도 40줄을 훨씬 넘은 것 같았다. 그는 물론 미국 출신인 교인이지만, 오륙 년이나 나막신 짝을 끌고 된장국 맛을 보았기 때문에, 순 미국 계통도 아니려니와 그다지 심한 배구주의자(拜歐主義者)도 아니었다. 그 온유하고 상냥한 태도로 보든지 명민한 두뇌와 사리에 적당한 재단력(裁斷力)으로 보든지, 이러한 중학교의 교감으로서는 적임자라 할 수도 있고, 일반 선교사 측에나 서양인인 교장 이하 교원들에게도 상당한 신임을 받는 모양이었다. 하므로 E선생은 박물 선생 다음으로는, 이 교감을 신뢰하고 존경하였고, 교감도 E선생과는 구면일 뿐 아니라, E선생의 유일한 보호자였다.
“E선생 어제 무슨 일이 있었어요?”
교감은 E선생에게 자리를 권하고 자기도 마주 앉으면서 이렇게 물었다. E선생은 작일 (昨日)의 경과를 간단히 진술하고 나서,
“오늘 내가 한 말이 너무 격월(激越)하였을까요?” 하고 물어보았다.
“아니오. 관계치 않아요. 나는 도리어 그런 훈화가 매우 유조(有助)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러나 이걸 좀 보슈…….” 하고 교감은 양복저고리 속 포켓에서 봉투를 꺼내어, 속에 든 인찰지를 떼서, E선생에게 주었다. 그것은 체조 선생의 사직 청원서였다.
문면(文面)에는,
‘본인과 여(如)히 무능하고 무인격한 자로는 그 임(任)을 감당키 불능할 뿐 아니라, 사무 집행상 허다한 간섭과 장애로 체면을 유지키 난(難)하와…….’ 운운하였다. E선생은 ‘사무 집행상…… 체면을 유지키 난하와’라 한 곳을 또다시 한 번 보고 테이블 위에 종이를 놓으며, 교감을 쳐다보았다.
“저기도 씌었지만, 아까 T선생 (지리 교사)이 가지고 와서 하는 말을 들으면, 아마 어제 일로, E선생과 감정이 나서 그러는 모양인데…….” 교감은 여기까지 와서 말을 끊고, 한참 E선생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하여간 이따가라도 교사 회의를 열겠지만, E선생은 모른 체하고 계시는 게 좋겠지요. 그리고 아무쪼록은 온화한 태도를 취하시구려.”
E선생이 조급하면 격하기 쉬운 성질인 것을, 사랑하는 일편으로는, 늘 염려도 하는 교감은, 이같이 친절하게 주의를 하였다. E선생은 무어라고 대답을 하여야 좋을지 몰라, 다만 벙벙히 앉았었다.
“무슨 그리 큰 문제는 물론 아네요. 교장이 귀국하였으니까, 내 임의로 독단하기도 좀 어렵지만, 지금 이 청원서를 접수한대도, 별로 학교에 타격을 받을 것은, 조금도 없지 않아요?”
“그러나 이 문제가,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이니까, 사직을 한다면, 내가 먼저 하지요.”
E선생은 교감의 말을 중도에 끊고 이렇게 급히 한마디 하였다.
“그게 무슨 당치 않은 말씀이슈! E선생은 실례입니다만, 그게 병통이에요. 그야 상당 이유만 있다면, 물론 인책 사직은 고사하고, 사직 권고라도 못할 것은 아니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E선생이 하신 말씀이야 의당한 일이 아닌가요?…… 공연히, 이따가 회의석상에서라도 그런 말씀은 행여 마슈. 누구 청원은 받구, 누구 청원은 안 받는다는 수도 없으니까…… 그러나 머릿살 아픈 일도 하두 많으니까…….”
교감의 말하는 눈치는 거의 체조 선생을 축출하겠다는 것이 분명하였다. E선생도 심중으로는 자기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기만 하였으면, 도리어 찬성이라도 하고 싶었었다. 그러나 교감이 체조 선생 면직 문제를 호락호락히 처단치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에 이 체조 선생은 X학교와 끊으려야 끊어지지 않을 밀접한 관계가 있는 교회에, 권사라는 교직이 있을 뿐 아니라 영어 마디 하는 관계로 선교사들과도 가깝고, 그중에도 교장과는 일긴(―緊)이라고 할 수 없으나, 이 학교에 오기 전에, 그의 집에서 서기 노릇을 한 일이 있었던 관계로 그러한지 하여간 일종의 주종관계 같았다. 더구나 당초에 체조 교사는 예전 무관학교 시대의 퇴물인 까닭에 교감 이하가 그리 찬성은 아니었건만 그래도 교장이 자기 개인으로는 쓰기 싫어서 부덕부덕 우기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채용한 것이었다. 하기 때문에 지금 교장에게도 아니 알리고 교감이 자의로 내쫓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좋은 기회를 놓쳤다가는, 여간하여서는 내보낼 수도 없게 되고 또 되지 않는 객기만 길러주게 되는 것인 고로 학교의 전도(前途)를 위하여는 다소의 풍파를 각오하고라도 아주 결말을 내어버리는 수밖에 없다고도 교감은 생각하였으나 전후 사정이 도저히 허락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역시 생각은 이러쿵저러쿵하여 결국 결심까지는 못하였다. 교감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잠자코 앉았다가 시계를 꺼내보더니,
“그러니까 그쯤만 알아두시고, 이따가 혹 체조 선생이 오셔서 무슨 소리를 하든지 가만 내버려두슈.” ―이렇게 E선생을 주의시키고, 예의 청원서를 접어 넣은 후에 사무실로 다시 나왔다.
E선생은 교감에게 그만큼 신뢰를 받는 것이 기뻤다.
3
오늘은 3,4년급 세 반의 체조 시간이 빠진데다가, 지리 선생도 오전에 첫 시간만 한 후에는 어정버정하다가, 집의 어린애가 몹시 앓는다 하고 획 달아나버렸기 때문에, 오후 시간은 다섯 반이나 한 시간씩 놀리게 되었다. 교감은 온종일 눈살만 잔뜩 찌푸리고 앉았다가, 점심시간에 서기를 시켜서 시간표를 임시로 변통하여가지고, 다섯 시간에 끝을 내게 하여놓은 후에, 체조 교사에게 교직(校直) 이를 보내서 곧 오라고 기별을 하였다.
“뭐라고 하시던?” 교감은 점심도 아니 먹고, 외투에 모자까지 쓰고 사무실 속에서 어정버정 하다가, 교직 이가 들어오니까 시급히 물었다.
“네에, 인제 틈나시면 봐서 오신대요…… 아, 참, 그 댁(宅)에 T선생님께서두 계시던데요.”
교직이도 좀 수상하였던지, 이렇게 한마디 보탬을 하고 나갔다. 교감은 내 벌써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잠자코 나가버렸다. 남아 앉은 교원들도 누구나 말은 아니하나, 무슨 일이 생기리라는 일종의 호기심과 불안을 가지고 물끄름말끄름 볼 뿐이었다. 그리고 누구나 뱃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형세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면전에 E선생이 있으니
까 서로 먼저 발설하기들을 싫어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E선생은 아까 교직이의 말을 듣고 내심으로 깜짝 놀랐다.
5 - 2
지리 선생이 먼저 가는 것은,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직원회의에 참석을 하여 체조 선생을 변호하였다가, 만일 형세가 불리하면, 자기까지도 휩쓸려 들어갈지도 모르겠고, 변호를 아니 하자니 부탁도 있거니와, 수학 선생의 입에서라도 나와서, 결국은 당자의 귀에 굴러 들어갈 터이니까, 도시(都是)가 잇속 없이 성이 가시어서 어린애가 앓는다는 핑계를 하고, 가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E선생은 하여보았고, 저도 수십 년래의 교인이라면서 설마 요만 일에 자식을 팔아가며 무슨 음모를 할꼬 하는 생각이 나서, 혼자 부인도 하여보았다. 그러나 지금 교직이의 그런 보고를 듣고 보니 E선생은 예의 분개심 이 아니 날 수가 없었다.
E선생이 그럭저럭 한 시간 교수(敎授)를 하고 나오니까, 여러 선생이 모여 앉은 틈에 체조 선생과 T선생의 얼굴도 보였다. E선생은 순탄한 낯빛으로 인사를 하니까, 체조 선생도 다른 때보다는 좀 공손한 듯이 반쯤 일어나며 답례를 하였다. 그러나 얌체 빠진 지리 선생이 조금도 부끄러운 안색도 없이 난로를 끼고 앉아서 제 판같이 떠드는、데에는, E선생은 또 한 번 놀랐다.
“여러분, 추우신데 한 시간씩 쉬시게 되어서 좋습니다그려…… 이게 다 이 체조 선생님의 덕택이로군. 햇햇햇…….”
지리 선생이 이따위 얌체 빠진 소리를 하니까,
“에! 참 고맙쇠다. 어디 밤송이나 하나 있으면, 등이나 긁어드릴까” 하며 수학 선생이 예의 그 피부가 느즈러진 퉁퉁한 얼굴을 쳐들고 맛대가리 없는 소리를 하였다. 그 옆에 앉았는 체조 선생은,
‘그것 보아, 내가 하루만 아니 와도 이 꼴이 아닌가’라는 듯이 뱅글뱅글 웃기만 하고 가만히 앉았었다. 회의는 교감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20분이나 지체되었다. 교감이 급히 출입한 데 대하여는, 물론 여러 교원들도 혹 눈치를 챘겠지만, 체조 교사 편들은, 으레 B에게 갔으리라고 제각기 눈치도 채었고, 또 자기의 문제가 그만큼 중대시되는 것이 내심으로 승리나 한 것같이 유쾌하였다. 사실 교감은 선교사의 원로요 학교의 명예 교장 격인 B라는 사람에게 갔었다.
B에게서 총총히 돌아온 교감은 난로 앞 정면에 교의를 갖다가 놓고 앉아서 예의 기도를 인도한 후, 오늘 회동한 사유를 발표하고 나서, 이렇게 부언하였다.
“……즉 말하자면, A선생께서, 사무 집행상에 간섭과 장애가 있기 때문에 체면을 유지하실 수 없다고 하신 것은 어떠한 의미인지? 혹 나에게 대하여 그러한 불평이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그러한 것은 나에게 직접 말씀하시면, 어떻게든지 원만히 조처가 될 것이요, 또 여러분끼리 그러한 오해가 있었다면, 이 자리에서, 피차에 격의 없이 말씀만 하시면, 곧 그런 오해는 풀릴 것이외다. 하기 때문에 특히 A선생을 오시라 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머리를 숙이고, 아무도 개구(開口)를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A선생이라 지목한 체조 교사도, 묵묵히 앉았을 뿐이었다. 잠깐 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우리끼리 앉아서 무슨 말이라도 못할 것 없으니, A선생! 의견을 말씀하시지요. 피차에 누구든지 잘못한 게 있으면, 그건 잘못되었다, 용서해주마…… 이와 같이 허심탄회한 태도로 일을 처리해나가야, 무슨 일이든지 되어갈 수 있지 않습니까. 그뿐 아니라 하느님 말씀으로 온갖 일을 행하려는 우리로서는, 더욱이 그렇지 않습니까.”
교감의 태도는 매우 온건하였다. 될 수 있는 대로는 회유하고 무마하려는 것 같았다. 이것을 본 A선생이나 T선생은, B와 회견한 결과가 자기네들에게 유리하였다고 생각하고, 우선 안심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B도 그 내용을 자세히 모르니까, 직원회의에라도 참석하여, 친히 사실을 듣고 싶으나, 시간이 마침 없으니, 그 결과를 자기에게 보고한 후에, 다시 의논하기로 하고 헤어져 왔을 뿐이었다. 교감은 도시 자기에게 이 사건을 일임하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그런 말을 하였다가는, 매사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B의 일이라, 감정을 상할 듯도 하고, 또 체조선생을 내쫓게 되는 경우이면, B가 간섭을 하는 편이, 후일 교장에게 대하여서라도 자기의 책임이 경(輕)하여질 것 같고, A교사 자신이나 교회에 대해서도, 면목이 좀 나을 것 같아서, 그 이상 별로 반대도 아니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그러나 십수 명이나 되는 여러 교사들은 자기들의 태도를, 어찌 정하여야 좋을지 생각하느라고, 역시 아무도 개구를 하지 않았다. 문제의 장본인인 A선생은 물론이려니와, 무슨 일에든지 앞장을 서는 T선생도, 눈을 깜짝깜짝하며, 교감과 A선생의 얼굴만, 이리저리 쳐다볼 뿐이다. E선생은 무릎 위에다가 두 주먹을 딱 버텨 세우고 앉았으나 꾸부린 얼굴에는 입술이 뿌루퉁 내밀어졌다.
“T선생 글쎄 사리가 그렇지 않소? 내 말이 그리 잘못은 아니겠지요.”
교감은 참다못하여, 이번에는 비스듬히 A선생과 나란히 앉은 지리 선생을 바라보며 동의를 얻으려는 듯이, 이렇게 은근히 물었다. 그러나 실상은 A선생의 입이 떨어지게 하려면, 우선 T선생을 충동여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그리한 것이었다. 그러나 소갈딱지 없는 T선생은, 매우 긴한 듯이, 여전히 눈을 깜짝깜짝하며,
“암, 그렇다마다요. 선생님 말씀이 옳으시지요…… A군도 무슨 선생께 불평은 없겠지요.” 지리 선생은 이렇게 대답을 하여놓고, 체조 선생을 향하여, 할 말 있건 어서 하라고 눈짓을 하며 권하였다. A선생은 그래도 잠깐 가만히 앉았다가, 겨우 입을 벌렸다.
“원래 고만두고 싶은 생각은 벌써부터 있었던 것이야요. 무슨 감정이 있어 그러는 것도 아니오, 더구나 지금 T선생도 말씀하셨지만, 선생께 무슨 불평이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만…….”
“그래 그러면 사무 이행상, 간섭을 하거나, 장애할 사람이 또 어디 있단 말씀요?” 하며 교감은 어기(語氣)를 돋우며 좀 불쾌한 듯이 눈을 똑바로 뜨고, 좌중을 둘러다보았다. 그것은 마치 A선생을 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교원들더러, 왜 너희들이 생도감의 직책에 대하여 월권적 행위를 하였느냐고 결정적으로 책망하는 태도같이 보였다. A선생은 내심으로 승리의 기쁨을 감(感)하였다. T선생도 반가운 듯이 득의만면하여,
“왜, 말을 하시구려. 못할 게 뭐요” 하며, A선생을 충동였다. A선생은 마치 참모나 비서관의 지휘만 받는다는 듯이, 또 한참 입을 쫑긋쫑긋하다가,
“예서 그리 떠들고 말씀할 게 아니라. 다만 생도감이란 제 직책도 다 못하는데, 어느 분이 너무 간섭을 하시니까 생도들 보기도 부끄럽고, 벌써 나이 40이나 된 놈이 체조를 가르치느니, 생도를 감독하느니 하는 것은 너무 염치가 없는 것이기에, 그런 적당한 분께 대신하여주십사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며, E선생을 힐끗 돌려다보고 빙긋 웃었다.
“그래 누구란 말씀이에요? 어느 선생인지, 그러실 리가 있을까요. 만일 그러하시다면, 그건 A선생의 오해시겠지요.”
“교감 선생은 모르셔도, 그런 분이 한 분…… 계십니다.” 이번에는, 아무리 보아도 심사가 고르지 못한 예의 뚱뚱이 선생이 한눈을 팔며, 느럭느럭 한마디 새치기를 하였다. 교감도 여기에는 하도 깃구멍이 막혔는지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수학 선생만 쳐다보고 앉았다. 이런 광경을 보고 앉은 다른 선생들은 무어라고 조정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벙벙히 앉았기도 하고 수군거리기도 하였다.
E선생은 참다못하여 시뻘건 얼굴을 쳐들며 벌떡 일어나더니
“여러분은 날더러 A선생의 직무에 대하여 간섭하고 또는 장애가 되게 하였다 하시는 모양이나, 나는 거기 대해서 일언반사(一言半辭)라도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나는 가는 사람이니까, 여러분과 및 학교의 건강을 축복할 따름입니다” 하고, 자기 책상으로 가서 책보를 싸기 시작하였다.
3 一 3
E선생의 태도는 실내의 공기를 각일각으로 험악하게 하였다. 여러 사람의 머리는 일시에 극도로 긴장하였다. 누구나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하여야 좋을까 하는 생각은 미처 머리에 떠오르지를 아니하였다. 다만 벙벙히 E선생의 거동을 돌려다보고 앉았을 뿐이었다. 체조 선생과 지리 선생은 승리를 자랑하는 듯이 본체만체하고 빙그레 웃고 앉았는 한편에, 수학 선생은 멋없이 비웃는 웃음을 띠고 건너다보며 있었다. 교감은 한참 고개를 숙이고 묵도(默禱)나 하는 듯이 눈을 감고 앉았다가 E선생의 발자국 소리를 듣더니, 고개를 번쩍 들면서,
“E선생!” 하고 불렀다.
E선생은 훌쩍 한번 돌아다보고 다시 은근히 인사를 한 뒤에 태연히 문밖으로 나가버렸다. 식어가는 난로를 옹위하고 둘러앉은 여러 사람의 검은 눈은 난로 속의 스러져가는 불 모양으로 끔벅끔벅할 뿐이요 아무도 입을 벌리는 사람은 없었다. 쓸쓸한 방 안은 어쩐지 더한층 침중(沈重)하였다. 누구나 어서 이 방에서 면(免)하여 나갔으면 하는 눈치가 역 력히 보이었다. 이때에 저 뒤에 멀찌가니 떨어져 웅승그리고 앉았던 근 60이나 되어 보이는 중늙은이 한 분이 희끗희끗한 머리를 쓰윽 내밀면서 끼었던 팔짱을빼고 일어나더니,
“교감장!” 하고 점잖이 불렀다. 고개를 숙이고 앉았던 여러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란 듯이 힐끗 이리로 돌아다보았다. 한문 선생님이다. 지리 선생은 벌써 입을 삐쭉하였다. 좀 어색한 듯이 머뭇머뭇하며 섰던 노선생은 두어 번 큰기침을 하고 나서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 일인즉슨 그러하외다. 지금 교감장이 이 자리에서 피차에 사의꼇 오해를 풀라고 이같이 회의를 모으신 것도 일인즉슨 물론 의당한 일이요, 또 E선생이 내가 나가기만 하면 모든 일이 무사타첩(無事妥帖)되리라고 하신 것도 괴이치 않은 일인 듯하외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원래가 직원회의에서 결정할 게 아니라, 교장과 교감께서 두 분이 상의하여서 처리하실 것인즉 지금 교장사무를 겸 행 (兼行) 하시는 교감장이 처단하시는 게 어떨까요…….”
한문 선생이 여기까지 떠듬떠듬하며 말을 계속하려니까,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한문 선생의 입만 쳐다보고 앉았던 지리 선생은 발딱 일어나더니,
“그러나 선생님!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E선생이 나가고 안 나가는 것은 그리 대수로운 문제는 아니올시다만, 매사에 E선생의 태도는 너무도 남을 무시하고, 참 방자하다고 하겠습니다” 하며 독기가 새파랗다.
“옳소…… 그렇지만 예수씨의 재림으로 자처하는 거룩한 양반을 너무 공격을 해서는 아니 될걸, 헤헤헤.” ˙
이것은 여전히 빈들거리는 수학 선생의 올곧지 않은 수작이다. 이 소리를 들은 T선생은 한층 더 기가 나서 또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참 옳은 말씀입니다. 아까 E선생의 훈화하는 태도를 보시면 여러분도 짐작은 하시겠지만, 예수씨의 말씀을 걸어가지고, 예수씨는 이러저러하지만 나는 진실로 제군에게 이르노니…… 운운한 것은, 확실히 하나님께 대하여 무엄무탄(無嚴無憚)한 말씨요, 우리들을 멸시한 수작이 아닌가 합니다. 여기 대해서는 여러분도 깊이 생각을 하여 상당한 조처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본인은 믿습니다.”
끄트머리에 와서 T선생의 말은 마치 연설이나 하는 듯이 이상스러운 조자(調子)를 띠게 되었다. 우스운 소리를 잘하는 도화(圖畵) 선생은 한구석에 멀찌가니 떨어져 앉아서, 빙글빙글 웃다가 T선생이 활동사진의 변사 모양으로 날아갈 듯이 고개를 꼬고 인사를 하며 앉은 것을 보더니, 무슨 생각이 났던지 박수를 하였다. 별안간 손바닥 소리가 철석철석 나는 바람에 여러 사람은, 교감까지 무심코 도화 선생 편을 돌려다보았다. 도화 선생은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여전히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르고 앉았다가, 빙그레하며 박물 선생에게 눈짓을 하였다. T선생도 돌아다는 보았으나, 별로 노한 모양은 아니었다. 이런 광경을 본 젊은 선생들은 웃음이 복받쳐 올라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엄숙히 할 의무나 있다는 듯이 제사 참례하는 아이들 모양으로 서로 외면들을 하고 앉았었다. 그 순간이 지나가니까, 아까 E선생이 나갈 때와 같은 긴장은 시신도 없이 풀리고 인제는 지리해서 어서 아무렇게나 끝장이 나기만 바라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중에, 일을 일답게 처리하여가려는 사람은 그래도 교감과 한문 선생이었다. 한문 선생은 참다못하여 또다시 일어나서 한 번 더 자세히 전언(前言)을 반복 설명한 뒤에 절대로 교감에게 일임하자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는 의견이 세 파로 나뉘었다. 즉 찬성파, 반대파, 중립파이다. 그중에 반대파에는 또다시 3대 분당(分黨)이 있었다. 만일 명칭을 붙이자면 즉, A선생 옹호회, A선생 방축기성 동맹회(方史逐期成 同盟會), 혁신구락부(革新俱樂部) 등이 이것이었다. 소위 소속 의원을 타점(打點)하여보면 한문 선생을 중심으로 한 찬성파는 원만주의(圓滿主義), 박물 선생을 필두로 이화학(理化學) 선생, 창가(唱歌) 선생, 일명 ‘뱀장어’라는 조선식 존함을 가진 미국 애송이의 영어 선생 등 온건주의 보수당이요, 중립파에는 일인일당(一人―黨) 예관주의자(睨觀主義者) 도화 선생 한 분. 반대파의 A선생 옹호회에는 없지 못할 A씨의 부하 2명. A선생 방축기성동맹회는 내심으로 내공(乃公)이 아니요, 총재 (總裁)가 안재(安在)요 하는 교감을 선봉으로, 산술, 대수의 임선생, 조선어 선생들 혁신구락부에는 양(洋)국물 먹은 하이칼라의 영어 선생, 화제(和製)의 왜(倭)말 선생들이다.
3 –4
한문 선생의 제의는 여러 선생의 의견을 내심으로라도 결정할 ‘힌트’를 주었다. 우선 혁신적 의사를 가진 영어 선생은 사담처럼,
“글쎄 그것도 좋겠지만 A선생의 청원은 이삼 일 보류하였다가 충분히 연구한 뒤에 다시 협의를 해서 정하는 게 어때요” 하며 옆에 앉은 교감을 돌아다보았다. 그것은 확실히 ‘데모크라티즘’을 재용하여 교원의 권리를 확장하라는 뜻이 분명하였다. 이 말을 듣고 앉았던 대수 산술 선생이 벌떡 일어나더니,
“그럴 게 뭐예요, E선생은 공식으로 사직한 것도 아니려니와, 일은 A선생의 청원을 접수하겠느냐 아니하겠느냐는 것밖에 없은 즉, 이 자리에서 종다수채결(從多數採決)로 하든 교감이 자벽(自辟)을 하시든 아무렇게나 결정해버리면 그만 아니에요?” 하며 은근히 A선생 즉석 축출론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을 본 지리 교사 T씨의 얼굴이 가관(可觀)이었다. 똥글한 눈을 흡뜨고 곧 잡아먹을 듯이 덤벼들며,
“어째 그래요. 지금 E선 생 이 방약무인(傍若無人)하게 뛰어나가는 것은 고사하고라도 오늘 아침의 훈화는 우리 교인으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소생 (小生)은 생각합니다…….”
“소생이란 말은 잘못한 말이오. 소인(小人)이라고 그러우” 하며 중립파의 도화 선생이 불쑥 한마디 하였다. 박물 선생과 영어 선생은 무심코 핫핫 웃었다. T선생은 하는 수 없이 말을 잠깐 멈췄다가 도화 선생을 힐끗 돌아보고 나서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하므로 지금 우선 문제는 E선생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인데, 역시 교감께서 처단하시는 게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옳소! 파문이나 하시구려.” 또 도화 선생이, 입을 벌렸다. 도화선생도 역시 교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T선생의 주장은 확실히 약은 수작이었다. 즉 교감에게 일임만 하여놓으면, B선교사의 의견대로 될 것이니까 결국은 교장 낯을 보아서라도 체조 선생을 내몰지는 못할 것이요, 또 E선생으로 말하면 교감과 친하니까 교원들의 낯을 보아서라도 자기 손으로 붙들어둘 리도 만무하고 비록 붙든대야 체조 선생의 지위가 튼튼한 동안에는 다시 끼어들지도 않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T선생의 말을 탄하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때까지 난로만 바라보고 앉았던 교감은 인제야 얼굴을 쳐들고 일어나더니 매우 긴장한 낯빛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보며 말을 꺼냈다.
“그럼 여러분, 어떻게 하시렵니까…… 여러분의 말씀은 일일이 옳은 줄도 알고 또 될 수 있는 대로는 다같이 협의하여서 결정하는 게 좋겠습니다만, 이번 일만은 나에게 그대로 위임하여주시면 어떨까요.”
교감의 말에 대하여는 별로 반대하는 빛도 없고 그렇다고 찬성하는 사람도 없었다. 교감은 한참 벙벙히 섰다가,
“이의 없으면 오늘은 이만 하고 헤어지지요” 하고 돌아서려니까, 영어 선생이 황황히 일어나며,
“하여간 내일 점심시간까지 여유를 두는 게 어떨까요. 교감장께 일임한다는 것이 절대로 불가하다는 것은 아니나·…….” 하고
말 뒤를 흐리마리하여버렸다. 여기에 대하여는 일동이 “그게 좋군, 좋군” 하며 일어났다. 교감도 별로 우기려고는 아니하고,
“그럼 그렇게 하지요” 하고 자기 자리로 갔다.
회가 마친 후 A·T 두 선생은 앞장을 서서 나왔다.
“교감, 오늘 똥 쌌네!” 조그만 양복쟁이가 나란히 서서 걷는 자를 쳐다보며 이렇게 입을 벌리니까,
“그럼 저는 하는 수 있나!” 하며 대모테 안경에 까만 수염을 좌우로 쭉 뻗친 자가 대꾸를 하였다.
그 이튿날 점심시간에는(물론 체조 선생은 없었다) 간단히 교감이 역시 자기에게 일임하여달라고 사의껏 한마디 한 데에 대하여 일동은 아무 이의 없이 승낙하였다. 이에 대하여 A선생의 응호파는 물론 만족하였다. 그러나 A선생의 반대파는 그 이상으로 만족하였다. 거기에는 그러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어저께 영어 선생이 오늘 점심시간까지 연기하자는 데에는 까닭
이 있는 것이었다. 즉, 영어 선생 일파는 A선생을 내보내겠다는 조건만 붙이면 교감에게 일임함을 승낙하겠다는 다짐을 받으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A·T 양 선생이 앞서 나간 후 몇몇 교사가 숙의(熟議)한 결과, 전 책임을 지고라도 A선생은 내보내기로 교감은 승낙하였다. 그러나 이 내용은 지리 선생과 뚱뚱이의 수학 선생만 빼놓고 교원끼리는 그 이튿날 아침에 다 뒷구멍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쉽사리 승낙을 한 것이었다. 직원회의가 있은 지 나흘이 지나 월요일 점심시간에, 교감은 A선생의 사면을 허가하였다는 것과 E선생은 내일부터 다시 출근하기로 되었다는 경과를 보고한 뒤에,
“별로 이의는 없겠지요” 하며 물으니까, 자기 책상 앞에, 교의에 기대앉아서 끄덕거리며 빙글빙글 웃고 앉았던 도화 선생은 별안간에,
“‘소생’은 대반대올시다. T선생! E선생 문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며 어린아이같이 유쾌한 듯이 깔깔 웃었다. 여기저기서 흐흐흣 하며 웃는 소리가 들리었다. 난로 앞에 앉은 T선생은 하여튼 얼굴이 금시로 빨개지며,
“선생님도 놀리십니까, 다 실없는 말이지요” 하며 해해해 웃었다. 일동은 마음 놓고 다시 깔깔 웃었다.
4
E선생은 그주 화요일부터 출근하였다. 별로 변한 것은 없었으나 마음이 편하여진 것 같았다.
‘이게 몹쓸 심사다. A선생의 얄상궂은 얼굴이 안 보이게 되었기로 그리 유쾌할 것이야 무엇 있누’ 하며 자기가 자기 마음을 꾸짖어도 보았지만, 그래도 역시 어쩐지 마음이 편한 것 같았다. 더구나 여러 선생이 이전보다 자기를 친절하게 구는 것 같은 것이 반가웠다. T선생도 속으로는 소리 없는 총(銃)이 있으면 할지 모르겠지만, 이전과는 딴판이 되었다. 그러나 점심 같은 때에 고양이같이 실눈을 뜨고,
“차가 매우 좋습니다. 갖다드릴까요?” 하며 공연히 친절한 체를 하는 것이 민망도 하고 똥구멍까지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서 그래도 마음이 편치는 못하였다. 하지만 이번에 온 체조 선생은 까닭 없이 친하고 싶었다. 보병대에서 재작년에 나와가지고 자기 고향에서 역시 몇 개월 동안은 콩밥을 먹었다는 정교(正校)선생님이다. 말하자면 ‘고슴도치’가 또 하나 는 모양이다.
하여간 그럭저럭하여 사무실 내는 소낙비가 그친 뒤의 하늘같이 어지간히 안온하여졌다. 11월도 훌쩍 넘어서 제2학기 시험도 날이 얄팍얄팍하여졌다. 사무실 속에서는 “이번에는! 이번에는!” 하며 매일같이 야단이다. 다른 게 아니라 이번은 제2학기인 고로 좀 심하게 시험을 보여서, 낙제시킬 놈은 아주 이번에 추려버리겠다는, 운동꾼에게는 초혼(招魂) 소리보다도 찔끔할 소리다. 그러나 이런 소리가 날 때마다 도화 선생은,
“여보 여보, 남 못할 소리 마슈. 그러고도 천당엘 가겠다니, 천당도 만원이 될걸. 이번에는 A선생도 아니 계신데 생도들 혼쭐이 날걸. 하하” 하며 웃었다.
이제는 나간 사람의 이야기니까 또다시 들추어내는 것은 너무도 참혹하지만 언제인지 E선생에게 들려준 도화 선생의 말을 들으니까, 시험 때마다 어느 구멍으로 어떻게 스며나가는지 으레 한 과정에 두세 문제씩은 운동부 속에서 답안까지 만들게 되어 A선생이 감독하는 반에는 생도들이 용춤을 출 뿐 아니라, 얌전한 생도들도 시험 때만은 A선생을 환영하였다 한다. 그때 도화 선생은 이야기를 다 하고 나서
“그게 다 종교가의 자선심 이란 것이었다. 그렇지만 A의 솜씨로도 내 것만은 어쩌는 수 없었지!” 하며 웃었다.
지금도 E선생은 그때의 도화 선생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앉았다가, ‘시험이란 대체 무엇인구’ 하는 생각을 하여보며 얼빠진 사람처럼 도화 선생의 선머슴 같은 이글이글한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4 -2
생도 측에서도 시험 시험 하고 야단이다. 교실엘 들어가기만 하면, 시간마다,
“선생님, 선생님, 이번에는 어디까지 접어주세요” 하며 쌈쌈을 하거나, 한 줄이라도 더 배울까 보아,
“인젠 그만 하지요. 요기까지만 하지요, 요기 요기까지만…… 엥……” 하며 반 안을 뒤집어놓았다. 하릴없는 장터였다. 물건값 같으면 깎다가 안 들으면 아니 살 뿐이지만, 시험이란 놈은 장사 거래처럼 흥정이 아니 된다고 그만두는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더욱 말썽이다. 그러나 E선생은 생도들이 접어달라는 소리만 하면,
“응, 다라도 접어주지. 그렇지만 시험 문제에 답안만 쓰면 일백은 떼논 당상, 하여간 마음대로 해버리구려” 하며 웃어버리면서도 속으로는 기가 막혀서 생도들을 두들겨주고 싶었다. 자기도 일본 가서 공부도 하여보았지만, 이때껏 선생더러 접어달라는 소리는 못하여보았다. 그렇다고 남에 뛰어나게 공부를 해본 적도 없으나, 일본 학생의 기풍이 원래 그러하였다. E선생은 이러한 때에도 벌써 예의 그 비관론이 나왔다.
‘자식들이 이래가지고야 어떻게 한담! 좀 그래도 생기가 있고 피가 돌 지경 같으면 시험이라고 이렇게 벌벌 떨 것이야 무엇 있나!’ 하며, 혼자 짜증을 내었다. 그러나 E선생의 비관은 결코 절망은 아니었다. 조선 민족성에 대한 신뢰가 없거나 조선 민족의 전도(前途)에 대하여 낙담을 하여서 그러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기의 비관을 비관대로 두기에는 너무 열렬하였다. 피가 너무 많고 너무 급속도로 돌았다.
그는 하여간 학생 간의 E선생의 평판은 분분하였다. 그중에는 한 줄도 아니 접어주었다는 원망도 없지 않았지만, 공부하는 축의 제일 걱정거리는 시험 문제를 어떻게 내는가 하는 것이었다. 생도들의 말을 들어보면 시험 문제는 선생에 따라서 다르다 한다. 그러므로 문제 내는 방법을 한 번만 보면 그다음부터는 묘리를 알게 되어 복습하기가 매우 쉽다 한다. 그러나 그러는 중에는 제일 과격한 것은 운동부였다.
“시험문제만 호되게 내어보아라. 저는 별수 있나” 하며 어르는 모양. E선생은 사무실 속에서 그런 이야기가 났을 제, 들은체만체 하였다.
선생이나 생도나 긴장한 기분으로 분주히 이삼 일을 지낸 뒤에 이제는 참 정말 시험이 시작되었다. 생도들은 소학부(小學部)까지 합하여가지고 오전 오후로 나눠서 어느 반에든지 중학생과 소학생을 하나씩 격하여 앉히고 사무실 속에서는 서기 회계까지 총동원이었다. 50명 수용하는 반에 반분씩 25명을 앉히고 전후로 2명씩 교사를 세워 물샐 틈 없이 감독하였다. E선생도 물론 한몫 보았다. 그러나 E선생은 될 수 있는 대로 멀찌가니 떨어져서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았었다. 그것은 생도들 뒤로 가까이 가면, 밤을 새워 그러한지 하얀 상에 깔깔한 눈을 대룩대룩하며 E선생을 돌아보는 게 싫어서 그리하였다. 자기 ㅡ자기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선생이 가까이 가면 무슨 치의(致疑)나 받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로 애원하듯이 쳐다보는 것이, E선생에게는 미안하기
도 하고 불쾌하였다.
첫날은 그럭저럭 무사히 지나갔다. 둘째 날은 6년급에 문법 시험이 E선생 의 시간이었다. 생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하였던 것보다는 너무 쉬웠다 한다. 하여간 무사히 지나가서 다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제3일에 가서는 일장 풍파(一場風波) 없이 지낼 수는 없었다. 그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역시 ‘고슴도치’ 동티였다.
첫째 시간이 4년급의 서양사 시험이었다. 생도는 벌벌 떨면서도 어저께 5년급의 문법 시험을 보면 다소 안심이 아니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시험장에 딱 들어가 앉아보니 예상과는 딴판이었다. 다른 선생은 양지(洋紙) 반 장에 가득 차게 써가지고 들어와서 붙여주건만, ‘고슴도치’ 선생은 백묵 한 개를 가지고 들어오더니, ‘18세기 후반의 구주(歐州) 에 관하여 아는 대로 쓰라’ 하여
놓고, 둘째 문제로는 몇 사람의 이름만 써놓았다. 둘째 문제는 그대로 누구나 쓰겠지만 18세기의 후반의 구라파(歐羅巴)는 무엇을 써야 좋을지 몰랐다. 연대와 성명과 사건을 따로따로 암기한 생도들이 개괄적으로 통일을 하여 스쯔지 못할 것은 정한 일, 이 구석 저 구석에서 쭝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나중에는 불쑥 일어나서 이 시험은 못 치르겠다는 생도도 있었으나 그럭저럭 30분은 지났다. 그러나 “이게 문제람, 이게 문제람” 하는 소리는 끊일 새가 없었다. 어떤 생도는 처음부터 생각도 아니하여보고 붓대를 던지고 나가는 빛에,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하는 빛에 야단이었다. 나중에는 공지도 내놓지 않고 쿵쾅대며 나가서 모두들 나와버리라고 동맹파업 인지 동맹파시(同盟罷試) 인지를 권유하는 자도 있었다. 노동운동 같으면 치안 경찰법 제27조라는 귀중한 조문이나 있겠지만 경찰서가 아닌 교실에는 생도만큼, 속으로 한숨만 하고 앉았는 E선생뿐이었다.
E선생도 웬만큼 화가 복받치었다. 그때에 마침 E선생 눈에는 이상한 것이 보였다. 동편으로 둘째 줄에 앉았던 생도가 벌떡 일어나더니 답안을 바치려고 칠판 앞으로 가다가 휴지 한 덩이를 떨어뜨리기가 무섭게 그 옆에 앉은 생도가 휙 집어서 사타구니에 끼었다. 그 동작의 민활한 품은 E선생도 잘못 보지 않았나? 하며 혼자 의아할 만하였다. 그러나 E선생은 다짜고짜 뛰어오더니, 벼
락같이 일어나라고 소리를 질렀다. 생도는 조금도 어색한 기색도 없이
“왜 그러세요?” 하며 E선생을 말뚱말뚱 쳐다보았다. E선생도 거기에는 잠깐 기운이 줄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잘못 보았나’ 이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그래도 기위 일어나라고 한 것이니까, 하여간 또 한 번 일어나라고 소리를 쳤다.
생도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사타구니에 끼었던 종잇조각은 뒤로 넘어서 걸상 밑에 떨어졌다. E선생은 암말 아니하고 집어 펴보더니
“이게 뉘 게야?” 하고 물었다. 생도는 여전히 태연하게 “나는 몰라요” 하고 시치미를 떼었다. E선생은 금시로 상기가 되었다.
“이놈아 네 이름이 쓰인 걸 네가 몰라?” 하고 시험지를 생도의 코밑에 치받쳤다. 전 반(全班)은 쥐 죽은 듯이 숨을 삼켜가며 이쪽을 바라보며 앉았었다. E선생은 선지피같이 얼굴이 발개지며 말을 못하고 생도의 얼굴을 노려보다가, 제잡담하고 생도들의 시혐지를 일일이 빼앗아 척척 접어가지고 교단엘 올라서더니,
“시험의 노예, 돈의 노예, 명예의 노예, 허영심의 노예……그런 더러운 말종들을 길러내려고 이 학교를 세운 것은 아니다. 오늘 아침에 너희들은 무어라고 기도를 하였는지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시험에 협잡(挾雜)을 하라고는 아니 가르치셨을 것이다. 시험 에 방망이질하는 놈은 족히 나라도 팔아먹을 놈이다…… 그런 썩은 생각 썩은 혼을 가진 놈은 가르칠 필요도 없다. A, B, C가 교육이 아니요 시험에 만점을 하는 것이 장한 것이 아니다…….”
‘고슴도치’ 선생은 참 과격파였다. 발을 땅땅 구르며 열탕(熱湯)을 퍼붓듯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는 데에는 생도들의 등에서 식은땀이 아니 흐를 수 없었다. E선생은 말을 마치고 여전히 시험지만은 가지고 나갔다. 교실 안은 폭풍우나 지난 듯이 생도들은 얼이 ˙빠져서 잠깐 동안은 물끄림말끄럼 앉았을 뿐이요, 먼저 나갔던 생도들은 “그러게 어서 먼저 나와버리지. 어디 몇 개들이나 더 맞나 보자” 하며 고소하다는 듯이 비웃었다. ‘스트라이크’를 하느니, 만점 하는 놈은 목을 잘라놓느니 하던 축도 이제는 오히려 다행으로 아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한편에는 다시 시험을 보자는 축도 있었다. 하지만 운동부 일파가 잠자코 있을 리는 물론 없었다. 의견이 백출(百出)하는 동안에 상학종을 쳐서 모두 들어앉았다. 그때에 반장은 이 시간이 끝난 뒤에 ‘클래스회’를 한다고 공포하였다.
그리하여 급회를 연 결과, E선생은, 데모크라시의 성행하는 이 시대에 일반 생도의 인격을 무시한 것 이니 상당한 처치를 하여달라고 교감에게 청원을 하자고도 하고 전 과목의 시험을 다시 보자고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이번 2학기 시험은 전연히 중지하고 연종(年終) 시험만 보자고도 하며, 제멋대로들 떠들었으나, 누구나 시험 중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된 것이 다행한 기화로 생각하는 것이 역력하였다. 그러나 결국 천 원 놀음이니 2천 원 놀음이니 하는 이 살판에 한 점이라도 고르게 얻는 것이 상책이니, 방망이질한 두 사람까지 용서하고 상당한 방법으로 채점하여달라고 탄원하자고 결의하였을 뿐이었다. 천 원 놀음 천 원 놀음 하는 것은 4년간의 학비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반장은 즉시 E선생을 사무실로 찾아가보고 애원을 하였다. 그러나 생각해보마는 회답밖에 못 들었다.
4 -5
그날 저녁에 E선생은 역사 답안을 꼲다가 붓대를 던지고 수첩에다가 모조리 60점씩 달아놓고 드러누워서 가만히 생각하여보았다.
E선생의 눈에는 아까 본 시험장의 광경이 눈에 선히 떠올랐다. 그중에도 소학부 1년생이 성경 시험 보는 반을 들여다보던 광경이 E선생에게는 잊을 수 없었다. 콧물을 졸졸 흘리며 꼬부리고 앉아서 제가끔 시혐지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리고 손을 훅훅 불어가며 앉아서 괴발개발 그리는 것이 귀엽기도 하고 가엾어 보이기도 하였다. 그때 E선생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들여다보기도 하고 글자도 가르쳐주고 말 안 된 것을 주의도 하여주었다. 이것을 본 주임 선생은 좀 심사가 났던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이야기 말고 가리고 쓰라고 한바탕 엄령을 내렸다. E선생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고 그 주임 선생을 쳐다보다가, 자기더러나 한 말처럼 어색한 얼굴로 웃으며,
“시험 보시는데 아니되었소이다” 하고 나왔으나, E선생도 불쾌하였다. E선생은 지금 그 광경을 그려보다가,
‘연골부터 배타심을 길러? 하라기도 전에 하지 말라는 것부터 가르치는 게 교육일까?’ 이렇게, 혼자 생각을 하여보았다.
그 이튿날 E선생은 좀 일찌감치 출근을 하였다. 사무실에 쑥 들어서더니 온몸이 녹기도 전에 4년급 반장을 불러들여가지고 오륙 명이나 되는 생도를 불러오라고 하였다. 또 무슨 폭풍우가 쏟아질지 생도들은 두근두근하는 가슴을 안고 그래도 태연히 들어와서 쭉 늘어섰다. 그중에는 어저께 발각된 문제의 장본인도 끼어있었다.
생도들이 들어오니까, E선생은 눈도 떠보지 않고 입었던 외투를 벗어 걸고 옷고름을 다시 한 번 고쳐 맨 뒤에, 일렬로 늘어선 생도 앞에 딱 버티고 정숙하게 섰다. 그것은 마치 호령을 부르려는 체조 선생 같았다. 그 모양이, 하도 우스워서 유리창으로 들여다보던 바깥 생도들의 킥킥 하는 소리가 들렸다. E선생 앞에 선 생도들은 무슨 벼락이 내릴까 하며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섰다.
1분 2분 5분 4분 시간은 달아나나 E선생은 입을 벌릴 꿈도 아니 꾸었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거의 10분 동안이나 이렇게 섰다가, E선생은 이제야
“지금 여기 와서 섰는 까닭을 알겠지?” 하며 겨우 입을 벌렸다. E선생의 말소리는 의외에 나직나직하고 은근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생도들은 다소 안심은 되었으나 아무도 대답은 아니하였다. 또 삼사 분이나 지난 뒤에 E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였던지 첫째로 선 사람 앞으로 가더니, “알았지?” 하고 은근히 물었다. 생도는 숙인 채 서서 고개만 끄덕거렸다. E선생은 몇 번이나 “알았지?”를 되뇌었다. 여섯 놈의 생도는 한 번씩 다 고개를 끄덕이었다. 그다음에는 또다시 일일이 붙들고, “또다시 안 그러지!”를 여섯 번이˙나 되뇌었다. 생도들은 역시 한 번씩 고개를 끄덕거리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리하여 이 엄숙한 예식이 겨우 끝이 나고, 생도들은 풀리게 되었다.
생도들이 나간 뒤에 도화 선생이 뭘 그렇게 은근히 귓속을 하였느냐 물으니까, E선생은 웃으면서
“방망이꾼의 처벌을 집행한 것이랍니다” 하고 웃어버렸다.
이와 같이 하여 교감도 E선생의 처단에 대하여는 이의 없이, 역사 문제는 낙착되었으나 다른 교사 간에는 E선생이 인심을 얻으려고 너무 관대하였다고 불평이 있는 모양이었다.
5
시험이 끝난 뒤에 E선생은 진위(振威)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떠날 때에 교감더러 약간 사의를 표하였으나, 학교 꼴이 될 때까지만 어떻든 꽉 참고 지내가자고 간곡히 청하는 바람에 그것도 그럭저럭하고 하여간 책자나 볼 작정으로 집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그러나 역 시 집 안에서도 E선생을 가만히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만나는 족족마다 장가를 어서 들라고 조르는 것은 예증(例症)이라 하더라도 세간살이를 맡으라는 데에는 기가 막힐 뿐 아니라 제일 두통거리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또 머릿살 아픈 문제가 일어나서 엎친 데 덮친 데, 매일 부친에게 졸려 지내기에 책은 고사하고 안절부절못했다.
그것은 다른 게 아니었다. 어떤 법률 학교에를 다닙네 하고 서울 와서 있는 E선생의 아우가 방학 전에 어떤 여학생을 데리고 내려와서 고모 집에다가 숨겨두었다가 같이 올라간 것이 발각이 되어 풍파가 일어난 것이었다.
“데리고 다니든지 업고를 다니든지 왔다 가더라도 곱게 소문이나 내지 않고 갔으면 그만일걸, 공연히 여기저기 끌고 다니고 광고를 하다시피 하며 돌아다니다가, 아버지께까지 들키고…… 그나 그뿐인가. 간다 온다 말도 없이 떠나면서 편지를 써놓고 죽느니 사느니…… 참 어처구니가 없어서…….”
이것은 한바탕 부친께 야단을 맞은 뒤에 모친이 뒷구멍으로 하는 말, E선생은 화로를 끼고 앉아 듣다가
“그래 위인은 얌전해요?” 하고 물었다.
“너도 정신없는 소리도 한다. 얌전한 년이 그러고 돌아다니겠니…… 내 도무지 그 법석통에 얼이 다 빠졌다” 하며 어머님은 주름 많은 여인 얼굴을 잠깐 찡그리다가 빙긋 웃더니,
“그래, 널더런 무어라고 하던?” 하며 물었다. E선생은 화젓가락을 가지고 재를 살살 펴놓고, 무어라고 영자(英字)를 썼다 지웠다하며 무슨 생각을 하다가,
“네?” 하며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아, 여기 다녀가서 아무 말도 아니하던?”
“난 집에 왔다 간 것도 모르는데요. 그놈 맹랑한 놈이로군. 올해 그 애가 몇 살인가요?”
E선생은 자기 동생의 나이도 몰랐었다. 어머님 은 웃으면서
“네 나이는 아니? 계묘생이니까 올해 꼭 스무 살이지” 하며 일러주었다.
“흥, 인제야 스무살쯤 된 놈이, 연˙˙애는 다…….”
“아버지 말씀이 옳지, 너부터 제 맘대로 정하여가지고 하느니 무슨 연애니 어쩌느니 하니까, 덩달아서 그리지 않겠니?…… 그러게 어서 네가 자리를 잡고 떡 앉어야 가도(家度)가 서지…… 글쎄 이러고 돌아만 다니면 어떻게 할 작정 이란 말이냐.”
이야기는 결국 결혼 문제에까지 끌어왔다. 속으로는 어떻게 미국이든 독일까지는 갔다 와야겠다는 음모를 가지고 있는 E선생으로는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사실 귀가 아프거니와, 어찌해야 이 가정의 계루(係累)에서 벗어날지 코가 맥맥하였다. E선생은 눈살을 찌푸리고 앉았다가,
“글쎄, 그러게 창희를 어서 먼저 장가를 들여서 살림을 맡겨버리면 그만 아니에요” 하고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쓸데없는 소리 마라. 철부지의 창희에게 맡겨서 무에 될 줄 아니.”
“몰라요, 글쎄 나는 집 안사람으로 치지 마세요.”
어머님은 잠자코 앉았다. 단형제 중에도 제일 믿음성 있는 맏아들을 참 정말 태산같이 믿는 늙어가는 부모에 대하여 E선생은 의문의 인(人)이었다. 10여 년 전부터 혼인 혼인 한 것을 이때껏 줄기차게 우겨온 E선생의 억척도 억척이지만 부모로 말하면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넉 넉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알뜰살뜰히 이만큼 하여놓은 살림을 튼튼한 자식에게다가 맡기고 가려는 것은 누구나 부모 된 이의 상정(常情), 미거하지 않고, 난봉 아닌 것만은 다행이라 하여도 30이 가까워도 밤낮 공부 공부 하는 데에는 애가 타서 못 견딜 지경이다. 지금도 모친은 답답한 듯이 눈만 깜박깜박하고 앉았다가,
“글쎄, 네 소원대로 여학생을 데려오든 기생을 데려오든 그건 상관없으니 어 떻 게든지 하여가지고 인제는 좀 들어앉으려무나. 누가 널더러 교사질을 하라던·…… 벌써 몇 해냐? 집안을 떠난 지가. 10여 년을 돌아다녔으면 인제는 좀……그리고 술은 무슨 술을 그렇게 먹니?”
“누가 무어라고 그래요?”
“창희가 그러는데, 여름부터는 날마다 장취(長醉)라고 하더구나.”
“장췬 누가 장취예요. 쓸데없는…… 미친놈이로군…… 에잇 머릿살 아픈! 어서 그만 들어가셔요.”
E선생은 어머님을 안으로 쫓아 들어가게 하고 혼자 드러누워버렸다.
5 - 2
E선생은 이튿날 서울로 뛰어 올라와버렸다. 올라올 때에 부이, 학교는 그만두고 곧 내려올 터이냐고 물으니까
“글쎄요. 가봐서 아무쪼록 곧 내려오지요” 하며 천연덕스럽게 대답은 하였지만, 자기 생각에도 아무 결심은 없었다. 다만 머릿살 아픈 가정에서 한시바삐 빠져나오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가정이라고 하여도 늙은 부모 외에는 내일모레면 시집보낼 딸자식을 데린 과부댁 누이가 와서 있을 뿐이니까 누가 떠들어서 공부가 아니 되는 것도 아니요, 무슨 고된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지만 어
쩐지 기가 푹푹 썩는 것 같아서 한시도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을 수 없었다. E선생에게는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새로운 사람과 오늘날의 가정과는 영원히 융화될 수 없는 소질이 있는 것같이 생각될 뿐이었다. 더구나 창희의 일 건 (件) 이 이번에는 집에서 자기를 내쫓는 것 같았다. 자기의 속생각을 부모에게 말을 한대야 알아줄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연애란 이런 것, 결혼이란 이런 것이라고 창희를 가르쳐준대야 또 어떻게 오해를 하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를 것이다. 언젠지 오늘날의 결혼이란 것은 강간과 다를 것이 없다고 일러준 결과가 오늘날 그따위 짓을 하며 돌아다니게 된 것을 보면, 어떻게 해야 좋을지 틈바구니에 끼어서 공연한 탓만 듣게 된 자기가 결국은 미친놈이 될 뿐이었다.
부친은 일주일이나 두고 입에서 신물이 나도록 창희 이야기로 졸라대었으니까, 인제는 한풀이 죽었던지 올라올 때도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어머님은 이번 올라가거든 창희를 잘 일러서 떨어지게 하라고 신신부탁을 하였다. 그러나 생각하여보니 벌써 빗나간 것을 말로만 일러야 쓸데도 없을 것이요, 20이 넘은 것이 자기도 생각이 있을 것인즉 제대로 내버려두면 결국은 그럭저럭 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 E선생은 서울로 올라와, 창희를 만나보고도 그런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를 않았다.
궁금증이 나서 도리어 형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던 창희는 이편이 며칠이 가도 암말도 안 하는 게 수상쩍었던지 어느 날 밤중에 E선생을 찾아와서
“이번에 아버님께서 무어라고 하시지 않으셔요” 하며 불쑥 물을 때도 E선생은 시침을 뚝 떼었다.
‘설마 그럴 리가 없는데…….’ 라고 생각한 창희는 더욱더욱 초민증이 나는 동시에 형에게는 감히 의논도 못하여보고 혼자 끌탕⁹을 하며 눈치만 보고 돌아다니는 모양이었다. E선생은 그럴수록 더욱더욱 그러한 기회를 피하며 속으로 웃었다.
그는 하여간 그럭저럭 2주일 방학이 지나고, 개학을 한 뒤에는 E선생의 걱정이 또 하나 늘었다. 걱정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일종의 유혹이었다.
그것은 다른 게 아니라, 지금 교감이 B선교사의 승낙을 얻어가지고 E선생더러 학감 노릇을 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미국에 있는 교장과는 서신으로 대강은 승낙을 받은 모양이었으나, 당초부터 사직을 하려는 E선생을 붙들고, 학감이 되라는 것은 무리한 주문이었다.
E선생의 생각으로 말하면 기위 학교의 일을 볼 지경이면 아주 학감이든 무엇이든 직명을 띠고 탐탁하게 일을 보아주는 것이 피차에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교감은 학감이라는 명의로 자기를 붙들려는 정책 같기도 하고 또 이것을 곧 승낙한다는 것이 학감이나 생도감이 되려고 한 수단같이 남들이라도 생각할 것 같아서 망설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지금 사직을 한다는 것은 단지 머릿살 아픈 것을 내놓고 다시 들어앉아서 조용히 책자나 볼까 하는 것인 고로, 그만둔대야 금시로 양행(洋行)을 하게 될 것도 아닌즉 승낙을 하여버리고도 싶었다. 이같이 설왕설래한 지 근 10여일이나 된 뒤에 또다시 교감이 발론을 할 제, E선생은 아직은 보류하였다가 교장이나 돌아온 후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니까, “교장도 승낙은 한 것이에요. 더군다나, 언제 올지도 모르는 교장을 기다리고 있으면 그동안 생도 감독은 어떻게 해요” 하는 교감의 말을 들으면 새로 온 체조 교사는 아직 생도들과 친숙하지도 못하고, 또 교육에는 경험도 없은즉 생도감을 시킬 수 없으니 생도감까지 겸무를 하려니까 시급하다는 의향이었다. 그런 내용을 듣고 보니, E선생도 수굿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E선생은 결국 학감이 되었다. 생도들은 물론 환영이려니와, 교원들도 지리, 수학 선생을 제하고는 별로 불평이 없는 모양, 교감도 인제는 한시름 잊었다는 듯이 벙 글벙 글하였다.
신임 학감의 정견이라는 것도 우습지만 E선생이 학감이 된 뒤에 제1차로 착수한 것은 체조 시간과 어학 시간을 늘린 것이었다. 체조 선생과 손이 맞는 그는, 한 반에 1주일에 네 시간씩이나 되는 것을 틈 있는 대로는 쫓아나가서 같이 뛰며 조수를 하였다. 처음에는 생도들은 불평도 있는 모양이요, 체조 선생처럼 서투른 호령을 부를 제는 웃기들도 하였으나, 나중에는 도리어 E선생이 없으면 섭섭해하게 되었다.
E선생의 의견을 들으면 체조는 육체를 단련하는 것보다 정신의 건실을 돕는 데에 수신(修身) 이상으로 실효가 있는 것이라 한다. 하기 때문에 E선생은 체조 시간에 반시간씩은 이야기를 하여 들려주었다. 또 언젠지 이런 소리도 생도들에게 이야기하여 들려주었다.
“나는 군국주의라는 것을 극력 배척한다. 그것은 침략주의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이 세다 하기로 행랑살이 하는 놈이 남의 집 안방에 들어가서 자빠지지 못할 것은 분명한 일이 아니냐. 그렇지만 사람이, 인간업을 파공(罷工)하기 전에는 사람다운 의기, 지기(志氣)가 없으란 것은 아니다. 자각 있는 봉공심 (奉公心)이라는 것은 군국주의의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지만, 사람다운 사람이 사는 세계에는 없지 못할 최대한 근본 요소다. 이것은 비록 사회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주의가―여러분은 몰라들을 사람도 있겠지만―실현된다 하더라도 가장 필요한 것이다.”
생도는 사실 무슨 소리인지 몰라들은 사람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E선생의 속생각에는 어떠한 확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다음에 E선생이 착수한 것은 시험 문제였다. E선생은 오늘날 시험이라는 것은 그 동기는 좋으나 그 결과는 옥석을 가리고 수재를 기른다는 것보다 위선 (僞善)을 가르치는 폐(弊)에 빠진다. 위선을 사갈(蛇蝎)과 같이 꺼려하는 것은 아마 인류의 역사가 비롯하던 때부터의 일일 것이다. 그러나 위선에서 구하지 않으면 인류는 결국 멸망하리만치 사람은 타락하였다. 하므로 오늘날 우리의 교육이라는 것은 이 위선으로부터 구한다는 데에 제일 의(義)가 있는 것이다. 몇 천 년 동안 우리의 관념은 이 위선과 허식허례에 고정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생활’ 이라는 것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고정한 낡은 관념은 유동하는 새 관념으로 바꾸어 넣는 것 외에 아무 치료법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이라는 제도가 그릇되었다고 함보다도, 이 시험에 대한 관념이 그릇된 이상, 이 제도를 고치는 것보다도 급한 것은 이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과 태도를 변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E선생은 결국 자기가 부임한 3, 4년급의 작문시간에 ‘시험’이라는 문제를 내었다.
5 - 3
오늘날의 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기계나, 그렇지 않으면 기계에게 사역 (使役)할 노예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학문이라는 것은 일종의 징역같이 되었다. 자율 자발이라는 정신은 완전히 무시되었을 뿐 아니라 다만 어떠한 목적을 위하여 이용할 기구를 만들려고 일정한 규범으로써 단촉한 시간에 과량의 주사를 급격히 주입하기 때문에 학문의 존귀와 권위도 없어지고 인간성은 심한 학대에 기형으로 발달되었다. 오늘날의 교육은 시험을 위하여 존재하였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왜 그런고 하니 시험의 점수라는 것은 곧 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하고 그 사람의 수입 (收入)의 다과를 의미하고 그 여자의 혼처를 선택할 권리를 주게 하기 때문이다. 하므로 오늘날 학생의 공부는 학문을 위함이 아니라 시험 점수를 위함이다. 이와 같이 점수를 얻는다는 것이 최후의 목적이니까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을 실행하느라고 별별 비루한 짓을 한다. 이것은 금일의 교육제도가 잘못된 까닭이라고도 하겠지만 만일 사회제도나 교육제도가 개선되어 시험이라는 것이 없어진다 하면 그때에는 오늘날보다 공부를 더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오늘날만큼이라도 할까. 그러면 시험을 보는 데에도 일폐(一弊)가 있고 안 본다는 데에도 일폐가 있은즉 결국은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각각 생각하는 대로 솔직게 깊이 생각하여 써가지고 오라고 E선생은 한 시간이나 설명을 하여 들려주었다. E선생의 생각은 이같이 하여 차차 시험에 대한 생도들의 그릇된 생각을 고쳐주는 동시에 학문에 대한 흥미를 일으키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결과 삼사 년급 두 반을 합하여 83장이나 되는 작문 답안 중에 시험 폐지론자가 74명이요, 시험 필요론을 주장한 자는 겨우 9명, 각 1할 남짓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의견을 채택하려는 것도 아니요 시험을 폐지해야 할 것이라는 의건을 선전한 것도 아닐 뿐 아니라, 작문이니까 그 주의 주장보다는 글의 우열을 따라서 평시와 같이 채점을 하였다. 이 채점을 하였다는 것이 생도들에게 이상쩍었던 모양이었으나, E선생은 자기의 한 일에 대하여 별로 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일주일쯤 지난 뒤에 하루는 E선생이 사무실에 앉았으려니까 생도 두 명이 들어오더니 봉투지 하나를 내밀고 뒤도 아니 돌아보고 나가버렸다.
E선생은 무심코 뜯어보았다. 청원서라 쓰고 본문에는 ‘본인 등은 학감 선생의 존의를 존봉(尊奉)하여 졸업시험을 전폐하겠사오니 무번호로 졸업 증서를 수여하시옵기를 복망⁴(伏望)’이라고 간단히 적었을 뿐이었다.
E선생은 깜짝 놀랐으나, 예의 ‘시험’ 문제를 가지고 저희끼리 그러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머리에 번개같이 떠올랐다. 하여간 E선생은 깃구멍이 막혀서 소위 청원서라는 것을 들고 벙벙히 앉았다가 출석부를 갖다놓고 날인한 생도들과 대조하여보니까, 어제 결석 한 생도 3명을 제외하고는 전부가 서명을 하였다. 그러나 반장이 가지고 들어오지 않고, 예의 운동부 속의 놈들인 것을 보면, 대개는 추측할 수 있으나 하여간 그대로 우물쭈물할 수가 없어서 교감이 오기를 기다려 의논을 하였다.
“그런 것은 당초에 대꾸를 마시지요. 미친놈들이로군!…… 간하면 상당한 처치를 하시지요.”
하며 교감은 그리 문제로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책임자인 E선생으로서는 생도들에게 훈유(訓諭)라 해도 일주일밖에 아니 남은 시험을 잘 치르게 하여야 할 뿐 아니라 만일 이것이 버릇이 되어서는 교육계의 큰일일 뿐 아니라 가만히 생각하면 실상 중대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E선생은 하학한 후에 4년급 생도들을 모아놓고, ‘시험’ 이라는 작문 문제를 낸 것은, 제군의 시험에 대한 오해를 고치게 하려는 것이요, 한편으로는 자기를 속이고 허예(虛譽)를 취하려는 그릇된 생각을 고치려는 것이며 시험 폐지론에도 채점을 한 것은 다만 글의 가치로 한 것이요, 그 이상에 대한 평가는 아니라는 것을 도도히 설명한 후 반장을 불러서 청원서를 가져가라고 하였다.
반장은 E선생의 지휘대로 일어나 나와서 청원서를 받아가지고 가서 앉으니까 아까 청원서를 가지고 들어왔던 생도의 하나가 벌떡 일어나더니,
“저놈의 자식! 뒈지질 못해서…… 그건 무엇 하러 가져오니?”
하며 반장을 몸시 쳐다보고 나서 다시 E선생을 향하여,
“선생님 그것은 아니 됩니다. 작문에 채점을 하셨든 아니하셨든 하여간 시험이라는 것이 결코 그 사람의 실력을 정확하게 표시하는 것은 아니란 것도 선생이 말씀하신 게 아닙니까. 그러면 언행이 일치하여야 할 것은 선생의 늘 하시던 말씀이니까 이번에 꼭 실행하여주셔야 하겠습니다” 하고 앉자, 또 한 생도가 대신 일어나서 ,
“청원서는 돌려보내신다면 받아둘 터이지만 우리들의 의사가 관철되기까지는 공부를 할 수가 없으니까 일주일 안으로 결정을 내주시지 않으면 아니 되겠습니다” 하고 앉으려니까, E선생이 무엇이라고 입을 벌리기도 전에, 10여 명이나 되는 생도들은 ‘으아!’ 하면서 우당퉁탕하고 나가는 바람에 나가 있던 생도도 와짝 일어섰다. 이 광경을 당한 E선생은 눈이 뒤집혔다. 얼굴이 점점 발개지며 화끈화끈 다는 것을, 가만히 참고 섰다가 생도들이 와짝 일어나는 데에는 설마 이렇게 난장판이 될 줄을 몰랐다는 듯이 발을 구르며,
“이것이 너희들이 4년 동안 배운 것이란 말이냐?” 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으나 벌써 반분이나 나가버리고 남은 생도들은 앉아야 좋을지 나가야 좋을지 몰라서 형세만 관망하는 모양이었다.
이때에 자기 자리에 섰던 반장은 돌아다니며 앉으라고 모두 붙들었다. 그동안에 E선생은 씨끈씨끈하며 수첩을 꺼내더니 조명(調名)을 다시 한 번 하여가며 나간 생도는 표를 하여놓고, 반장 더러 나간 사람들을 불러들이라고 하였다.
운동장 한구석에 몰쳐서서 수군수군하던 생도들은 반장을 보더니 찧고까불며 곧 나오지를 않으면 다리 뼈다귀가 성하지를 못하리라고 위협을 하였다.
E선생도 이제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이것은 결단코 들어줄 것 못되니까 생각을 깊이 하여 마음대로 하라고 하고 훌쩍 나가버렸다. 하여간 이같이 하여 40여명 생도 중에도 두 파로 나뉘었으나 온건파는 위협 이 무서워 감히 반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일편 사무실에서 협 의 중이던 교원회에서는, E선생을 기다리고 앉았었다.
E선생은 여전히 씨근벌떡하며 들어오더니, “출학(黑出學),”¹⁰ “출학” 하며 떠들더니,
“그래 어떻게 되었어요” 하며 교감이 묻는 데에 따라서, 입에 침이 마르게 한바탕 주워 삼킨 뒤에, 일의 자초지종을 다시 한 번 설명하고 나서,
“결국은 그럭저럭하여 복습 일자나 넉넉히 잡으려는 것이나 시험을 연기하면 하였지 그건 결단코 아니 될 것이 아니에요” 하며 자기 의견을 붙였다.
다른 때 같으면 E선생이 옳거니 그르니 하며 한참 떠들썩할 것이나, 학감이란 직함에 늘려 그랬는지 지리 선생 수학 선생도 잠자코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시험은 진급 시험과 같이 보이게 연기를 하고 그동안에는 역시 상학을 시키며, 수두자(首頭者) 5명은 2개월 정학에 처하여 추후 시험을 보게 하고 그다음의 불온 분자는 일주일, 온건파는 3일간 정학에 처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리하여 그 이튿날부터는 4년급 반은 텅 비게 되었다.
5 - 4
이 분요(紛擾)가 일어나기 전에 벌써 예측하고 있던 사람은, 사무실 속에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것은 물어볼 것도 없이 지리 선생이었다.
원래 이 사건이 상궤(常軌)를 벗어난 무리한 일인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배후에는 선동하는 어떠한 흑막이 있었으니 그것은 예의 퇴직당한 A선생을 중심으로 한 일파였다. A선생은 표면으로는 면직이 되어 하는 수 없이 교회에서 몇 푼 나는 것으로 근근이 호구(糊口)를 하여가며 월여(月餘)나 지내왔으나 가슴에 뭉클한 E선생과의 관계는 어느 때든지 잊을 수가 없었다.
“두고 봐라. 너희들이 언제까지 뱃대를 내밀고 앉았는가 흥!” 하며 벼르며 B선교사의 집을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하였다. A선생 ―지금은 선생도 아니지만―은 ‘교장만 돌아오면……●.’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우선 B선교사의 불알을 붙들고 늘어지는 수밖에 없었다.
사직 허가장이 서류 우편으로 전달되던 날 A선생은 온종일 문을 꼭 닫고 드러누웠었다. 처자의 얼굴을 보기도 부끄러운 것은 고사하고 내일부터 밥줄이 끊어질 생각을 하면 사실 앞이 캄캄하였다. 지금 다시 체조 교사를 운동하여본다는 것도 말이 아니 되는 수작, 그러면 한 가지 길은 또다시 양코백이의 밑이나 씻겨주며 번역생(飜譯生) 노릇밖에는 호구지책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도 4,5년 전 세월과는 달라, 용이한 일도 아니려니와 원래 교장이 해고를 하고 학교로 붙여준 것도 어학력 (語學力)이 불충분하여서 그리한 것은 대개는 짐작하는 일인데 B선교사에게 부탁한대야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이리저리 생각해보니 자기 자신도 이제는 참 가련할 뿐 아니라, 내일부터라도 쪽박을 차고 나설 생각을 하니 꼼짝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할수록 교감이란 놈을 곧 잡아라도 먹고 싶고 E란 놈은 어느 때든지 골탕을 먹이고야 말겠다고 혼자 이불 속에서 이를 갈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어떠한 술책을 써야 좋을지는 금시로 생각이 나지를 않았다. 하여간 오늘 밤에라도 B선교사나 찾아가리라고 생각하는 판에 지리 선생이 타달타달 들어왔다.
“엥, 괘씸한 놈들이야!” 지리 선생은 들어와 앉으며 입을 벌렸다.
“그러나 이러고 들어만 누웠으면 어쩔 테야” 하며 즉시 B선교사를 찾아가서 사건의 내용을 잘 설명하고 의논하라고 충동이었다.
“글쎄…… 가서 무어라고 해야 좋담!”
A선생은 눈만 깜짝깜짝하고 여전히 드러누웠다.
“할 말이 좀 많아! 무주군(軍)¹¹이란 말만 들어도 찔금을 할 걸…… 게다가 요새는 소학부의 N이 E란 놈의 사관(私館)을 미쳐 다닌다네…… 벌써 요정이 났는지도 모를 것이지…….” 하며 새새 웃었다. 이 말을 들은 A는, 무슨 광명이나 얻은 듯이 “응? N이 그래? 흥……” 하며 혼자 무엇인지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E선생 에게 N이 찾아다닌다는 것은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E선생이란 인물이 아무리 친하다고 남의 집 계집애에게 손을 댈 만큼 비열하지도 않으려니와 E선생은 도리어 N이 자주 오게 된 것을 멀미를 대었다. N이 E선생과 교제를 하게 된 동기는 E선생이 학감이 된 후 자연 소학부에까지 관계를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이 스물여덟이나 된 N에게 대하여 E선생 같은 이성을 만나게 된 것은 유쾌하지 않은 것도 아니요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닐 것 이다. 그러나 『가정보감(家庭寶鑑)』 인지 위생(衛生) 무엇인지를 가지고 와서 가르쳐달라는 데는 깃구멍이 막혔다.
어느 날은 책 한 권을 가지고 오더니 말을 꺼내기도 전에 커다란 입을 벌리고 낄낄 웃더니
“이것 좀 가르쳐주셔요.” 하고 내밀었다.
E선생은 주는 대로 받아서 펴보니까 신체니 의복이니 하는 몇 가지 제목이 있은 후에 화류병 요법이니 생식기 위생이니 하는 등 기사가 있고 일일이 남녀의 생식기를 모사한 삽화가 있었다. E선생은 여기저기 뒤적거리다가 다시 N에게로 주며,
“일어를 연습하시려거든 다른 책을 정하시지요. 그러나 나는 좀처럼 시간이 없으니까” 하며 예사롭케 한마디 하였다. 그러나 N은 책을 받아가지고 또 뒤적거리다가 무엇을 보았는지 혼자 웃으면서 책을 덮어 옆에 놓고 ‘히스테릭’한 읏음을 혼자 한참 웃더니, 이상한 윤광('閏光)이 도는 눈을 선생에게 향하였다. 그 거동은 우치(愚痴)¹² 그 물건 같은 동시에 확실히 병적인 것을 E선생은 간취(看取)하였다. 그 후부터 E선생은 막 내대이는 수작을 하였다.
이와 같은 사정인 것은 모르고 벌써 운동부 속에까지 소문이 들리고 지리 선생은 무슨 ‘거리’나 생긴 듯이 혼자 좋아 날뛰었다. 지리 선생은 둘째요, A선생에게 대해서는 이 사실이 유일의 활로 같고 내일부터라도 밥주머니를 주는 희보(喜報)였다.
“흥, 그러고도 ‘사람은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는 없다’구…….”
A선생은 여전 무슨 생각을 하고 누웠다가 이같이 혼잣소리를 하였다. 이 말은 E선생이 언젠지 4년급 생도들에게 성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사람은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거나 결정할 권리는 없으니까 아느 때든지 처녀의 정조를 절대로 존중하여야 한다”고 한 말을 찹아가지고 하는 말이다.
“하여간 오늘 저녁에라도 B를 찾아가보고 들이대슈. 어떻든지 한번 해보고 말 것이지…….”
지리 선생은 이같이 어디까지든지 선동을 하고 돌아갔다. 그리하여 그날 밤에 A선생은 B선교사와 만났으나, A선생의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왔던지 그 이튿날 B선교사는 벼락같이 교감을 불러다놓고,
“E가 술을 먹는다니 그게 무슨 수리요. 더구나 소학부 여학생하고…….”
B는 말을 끊고 머뭇머뭇하다가
“하여간 그런 사람을 두고, A를 내보낸다는 것은 좀 잘못되지 않았소.”
하며 매우 준책(峻責)을 하고 싶으나 억지로 참는 모양이었다. 교감은 잠자코 앉았다가
“누가 그런 소리를 해요.”
하며 똑바로 쳐다보았다. B는 한참 서슴다가,
“어제 A가 와서 그러던데요. 증거가 뻔하다는데…….” 하며 교감의 눈치를 보려는 모양이었다.
“그럴 테지요. 쫓겨났으니까 분김 에 무슨 소리는 못할까요.”
교감은 간단히 이렇게 대답을 하였다.
“글쎄 그것도 그렇겠지만 착실한 교인도―아니라니, 그래서 되겠소.”
B선교사는 미국인의 특색을 발휘하느라고 금시로 교감 말에 수그러지면서도 즉시 교감을 신용치 못하는 모양이다.
교감은 슬며시 화가 나서 잠자코 앉았다가, 벌떡 일어나며,
“교수 시간이 있으니까 곧 가봐야 하겠소이다. 하여간 염려 마셔요. E군이 신자가 아니란 것도 공연한 소리요…….” 말을 잠깐 끊으니까, B는 뒤를 대어,
“글쎄, 그럴 리는 없겠지만요. 아무쪼록 잘되도록만 하시구려.”
하고 피차에 헤어졌다.
이와 같이 하여 B도 교감을 신용하고 그 후 E선생을 학감으로 하는 데에도 별로 이견은 없었으나, B가 냉정하여갈수록 A는 애가 타서 운동부와 B선교사 사이에서 별별 소문을 다 만들어내고 갖은 고책(苦策)을 다 썼다.
그러는 중에 마침 예의 ‘시험 문제’가 발생을 하였다.:
시험이라는 작문 시간에 대하여 폐지론을 쓴 것에도 채점을 하였다는 말을 지리 선생에게 듣고 A는 내심으로 손뼉을 쳤다. B에게 구박을 맞은 A는 이 호기(好機)를 놓치지 말고 어떻든지 운동부를 충동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6
사실 운동부를 선동한 결과는 B선교사의 말 이상으로 유효하였다.
학교 측에서 정학을 선고한 지 4일 만에 소위 온건파는 3분의 2쯤 등교를 하였으나, 그 여(餘)는 일주일을 지나도 그림자도 보이지를 않다가, 하학할 때쯤 되면 문밖에서 지키다가, 상학한 생도들을 두드리네 때리네 야단법석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틀 사흘 날이 갈수록 이러한 광경이 심하여가는 것을 보고 사무실에서는 학부형회를 모으고 선후책(先後策)을 강구하였으나 학부형회에서도 생도들의 잘못은 물론이지만 E선생도 잘하였다고는 할 수 없다는 눈치를 은근히 보이고 결국은 부득요령으로 헤어졌다. 일편 사무실에서는 불량 생도를 감시하고 권유한대야 더욱더욱 강경하여질 뿐이요 일은 점점 분규(紛糾)할 따름이라, 매일 B선교사에게 몰려대는 교감은 하는 수 없이 교장에게 졸업식에는 으레 참석을 할 것이니 일자(日字)를 다가서 얼른 오라는 전보를 놓고 4년급은 여전히 교수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위협에 견딜 수가 없는 생도들은 하나 둘씩 줄어서 나중에는 씨알머리도 볼 수 없게 되고 두서넛밖에는 출석자가 없었다.
그러느라니 학교는 그야말로 수라장이 되었으나 하여간 단 한 생도라도 붙들고 여전히 공부는 시켰다.
하여간 이와 같이 야단법석을 하며 일주일쯤 지나려니까 미국에서 벌써 출발한 지가 일주일이나 된다는 회전이 오자 그 이튿 날 잇대어서 횡빈(橫濱)에 도착하였다는 전보가 왔다.
3일 만에 교장은 들어왔다. 일은 급전직하(急轉直下)로 발전하여 교감 학감은 사직하지 않을 수 없었다. E선생은 교장을 만나보지도 아니하고 도리어 “고맙소이다” 하며 교감에게 청원서를 전하고 옳다 그르단 말없이 자기 집으로 갔다.
집에서 가만히 드러누워 E선생은 생각하여보았다.
‘창희의 일이라든지, 학교의 이 분요(紛擾)라든지 결국 그 죄가 누구에게 있을까’ 라고.
-끝-
2016년 5월 20일 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