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
‘딱’ - 상업을 담당하고 계신 김 선생님의 바둑돌 놓는 소리가 경쾌하였다.
아 뭐해 이제 그 대마는 더 갈곳이 없어!
“꽝”
그런데 갑자기 3학년 교무실 문이 열리며 한 학생이 콧구멍에 담배 한가치가
꿰어진 채 체구가 큰 체육선생님의 손에 내동댕이쳐져 들어왔다.
그 학생은 3학년 8반의 백○○. 평소 말없고 조용한 그러나 늘 무엇인가가
두려운 듯한 어두운 인상을 갖고 있는 착한 친구였다. 이 날 따라 더 무서움에
사로잡힌 듯 눈꺼풀 덮인 눈을 불안하게 내리 깔고 있었다.
학생과의 불신 소지품검사에 담배와 학교장 직인이 그 학생의 가방에서 발견되어
이곳에 끌려온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담임교사의 배려뿐! 그러나 담임은 더욱 냉정했고
그는 그 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무려 30대의 무지막지한 야구방망이 체벌을 받았다.
모두가 무지다.
담배가 뭔지 잘 모르고 그것을 피우는 학생
공공학교의 학교장 직인을 파주는 길거리의 도장업자
인권이 뭔지 생각해보지 않고서 학생에게 불신검문을 하는 학생과
근무시간에 바둑두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는 교사
여러 가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아이들에겐 매가 효력을 발휘한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담임교사
우리는 이 총체적인 무지에 갇혀있는 것이다.
두울 ;
때는 10시가 가까워 가는 밤 시간
소위 보충학습 자율학습에 10시 반까지 학교에서 시간을 보내야하는
어느 고등학교 2학년 교실
이날도 2학년 주임교사는 12개 학급 순시를 돌고 있었다.
한 교실이 유난히도 시끄러워 담임선생님이 누군가 알아보고는
다음날 이야기 거리를 메모도하고 아이들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머릿수를 헤아려 보기도 한다. 각반에 남은 학생들의 머릿수가
다음날 아침 교장선생님의 질책을 면하게되는 지 아닌지를 가름하기 때문이다.
담임선생님이 성실하여 학생들이 고분고분하게 말 잘 듣는다는 한 교실을 지나는 데,
정말 그런가 직접 그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아이들의 상황을 살펴본다.
갑자기 이상한 전율이 등을 타고 흐른다. 아이들의 표정이 무섭다.
뭔가 그 표정이 감방에 갇힌 죄수 같다는 느낌이다.
날 놓아줘!, 날 괴롭히지마!, 날 가두지마! 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 그러면 난 간수구나! 주임교사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 교실 문을 나선다.
올해부터 주임교사로서는 드물게 전교조 사무실에 드나들게 된 그 - 이제 조금씩
교사가, 그리고 학생이 이제 서로 놓아주어야 할 때가 왔음을 알아간다.
셋 ;
주임교사 자리를 사퇴하고 평범한 담임 교사자리로 내려앉은 그
어쩌다 반장 어머니로부터 일종의 돈 봉투를 받고 고민을 한다.
학급을 위해 쓰면 되지 하고 위안을 하였지만, 엊그제 많이 쓴 술 값으로 모자라게된
한 달 용돈으로 약간을 충당하고 미안한 마음에 집에 약간의 선물도 사 갖고 들어간다.
아! 부끄럽구나 마음은 아닌데 ---
그는 이제 쓰디쓴 돈독이 무엇인지, 어찌해야 벗어날 수 있을 지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넷 ;
학생들에게서 받는 무반응, 이리해도 저리해도 심지어 교과 진도가 아닌 이야기를 하려고
해도 돌아오는 무관심과 공허함, 이제 약간의 자조감도 겹치고 열정도 없어질 무렵
그가 택한 길은 잘 나가는 지위 높은 교사도 아닌 그렇다고 전교조 투쟁가도 아닌
대안교육이었다. 물론 전교조의 연구소에 적을 두고 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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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것들은 제가 그간의 10여 년에 걸친 교사로서의 경력 상황입니다.
1990년도에 학원에서 학생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잘 나가던 92년도 겨울에 아내와 상의 끝에
“적게 벌더라도 스승의 길을 걷자”고 결론을 내려 시작한 교직이었습니다. 그 때로부터 10여 년 세월이 흘러 스승의 길이 이리도 어렵고 고단한 일인 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다행히 대안교육의 흐름을 타고 훌륭한 선생님들과 지도급 되시는 교수님들을 잘 만나 새로운 인생 길로서의 대안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즈음엔 루돌프 슈타이너 연구의 길이 트여 작년 한 해 동안 뉴질랜드의 타루나 슈타이너 대학에서 1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너무도 감사한 일이었기에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전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공부한 교육학도였습니다. 부전공을 영어영문학을 하여 영어 교사 자격을 취득하였지요. 직장으로서 학교의 업무와 수업, 그리고 전교조활동, 거기다가 대안교육 활동까지--- 결국 몸과 정신이 많이 지쳐 휴직의 길을 찾아보다 “해외유학 유급 휴직”이 교육법 조항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후 단계적으로 절차를 밟았습니다. 예를 들어 유학이면 어떤 대학이 대상이 되고, 또 어학연수는 해당이 안 되는 지 또 반드시 석사 학위라야 하는 지 등 여러 가지를 알아본 끝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인성교육과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슈타이너 대학이란 것을 알았고 마침내 학교와 교육청의 담당자들을 설득하고 교육청에 유급 휴직을 신청하여 1년만에 허가를 얻어냈습니다.
저의 입장에서 슈타이너는 외국대안교육의 한 사례였습니다. 그의 인지학 공부를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돌아온 지금의 입장에서도 제가 터한 이 땅에 맞는 대안교육의 형식과 내용이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제가 방과후나 계절을 이용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해온 것이 올해로 4년째인데 처음부터 그 기본 틀은 서당이었고 앞으로 내용이 많이 개발되어 달라질 것이긴 하지만 평범한 마을의 서당이 가지고 있는 두레적인 공동체 안에서의 “실천적인 몸가짐과 마음씀”을 강조한 “사람됨”의 가르침이란 서당 교육 기본 뼈대는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 어쨌든 제가 대안교육을 하지 않았다면 슈타이너 대학을 다닐 생각도 하지 않았겠지요. 그렇게 삶이란 씨줄과 날줄로 짜이고 엮여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는 가봅니다. 아내와 전 기쁜 마음에 출국절차를 함께 밟고 작년(2001년) 1월에 정식으로 휴직계 내고 2월초에 출국 날짜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경제적인 이유로 가족들과 헤어져 혼자 갈 수밖에 ----.
<낯선 땅에서의 허둥지둥>
작년 2월 3일에 김포공항을 빠져 나와 뉴질랜드 오클랜드 공항에 그 다음날 오후에 도착하여 마중 나와 주신 로빈Robin 교수님의 도움으로 백패커bag-packer 에 임시숙소를 정하였습니다. 동네 이름은 “한 번 구경해봐”Have a look 가 철자를 바꾸어 만들어진 것 같은 해브록Havelock (North)이란 이름의 바닷가근처의 작고 아담한 타운town 이었습니다. 긴 여정 끝이라 그런지 방에 들자 곧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약간의 짐 정리를 끝내고 간단한 식사를 한 다음 다른 투숙객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들과 조금 얘기를 나누다가 내 방으로 다시 와서 곧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누군가가 깨워 일어나 보니 숙소 관리인 미셸Mishelle 이었습니다. 같은 학급동료인 일본인 치코Chico 가 저를 데리러 왔던 것입니다. 로빈 교수가 부탁을 했다고 하면서 인사를 청하였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만 빼고 이미 다 학급 동료들은 벌써 서로를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두뇌회전이 빠르고 예의바른 전형적인 일본인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제가 이 곳에 와서 만난 최초의 동양인이 되는 셈이었습니다.
내가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고 하자 먼저 가도 되냐, 자기 아들을 학교에 등교시키는 시간이 다되어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하여 난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대답해주고는 서둘러 세면을 하고 옷을 챙겨 입고하는 데 관리인 미셸이 타루나 대학까지 태워주겠다고 제의를 하였습니다. 고마운 마음에 비용을 줄 생각으로 그렇게 하기로 하고서 차를 타고 막 학교에 도착하니 막상 그녀는 돈을 거절하였습니다. 일단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늦은 것 같아 교실에 급히 들어가니 모두들 죽 둘러앉아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모닝서클morning circle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아무 말 없이 학급에 눈인사로 대신하고는 살펴보니 얼핏 동양인이 많아 보였습니다. 드디어 서로를 소개하는 시간이 되어 저는 약간 어눌한 어투로 주섬주섬 내 소개를 하게되었습니다.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으며 현재 직업은 무엇이고 나이는, 경력은, 가족은 하는 순서로 소개를 해나갔습니다. 내 목소리가 크지 않아서 그런지 귀를 세우고 듣는 눈치였으며 때론 발음이 잘 안되어 알아듣지 못하는 것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거꾸로 다른 사람들이 자기소개를 할 때에도 내가 상대방의 발음에 익숙하지 않아 잘 못 알아듣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아무튼 외국대학에서 맞는 유학첫날은 그렇게 흘러갔고 낯선 분위기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덤벙덤벙 하루 이틀, 그리고 한 주 두 주가 지났습니다. 처음에 그래도 피부색 비슷한 아시아계 학생들과 얘기를 주로 하게 되었는데 서로 발음이 온전치 못한 것이 비슷비슷하여 오히려 의사 소통하는 데는 수월하였습니다. 홍콩에서 무역회사에 다니다가 왔다는 포니아Fornia 라는 여학생은 회화에 꽤 능숙하여 자신을 표현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어 부러움을 샀습니다. 일본인 남자 동료학생 마사노리Masanori 씨는 발음이 전형적인 일본인 발음이어서 말할 적마다 다소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는 썩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편이었으나 아직 귀가 열리질 않아 알아듣는 말보다 못 알아듣는 말이 더 많았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하루 일과가 끝나고 새로 얻은 숙소에 가면 TV도 보고 함께 머무는 글리니스Glynis라는 이름의 정원사 아주머니와 대화도 하고 지냈습니다. 나중에 이 정원사 아주머니와 얘기를 많이 하다보니 서로 정이 들어 헤어질 때 서로 가슴이 찡하고 아파 눈물도 흘렸답니다. 참 재미있는 인연이었지요. 대단히 심성이 맑고 착해 서양인이라고 하기 보다 한국인의 정서를 마음에 담고 있는 듯 하였습니다. 지금도 글리니스와는 편지를 주고받고 합니다. 어쨌든 전 그런 면에서도 행운이었지요. 제가 유학 공부하면서 공부 이외에 별로 삿된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공부만은 손을 놓지 않아 하늘이 보내주신 선물이라는 생각도 든답니다. 돌이켜 보니 어느 때는 피곤한 적도 있었지만, 하루 하루를 리듬감 있는 호흡으로 시작하고 즐거운 마음가짐으로 될수록 남을 배려하며 생활하려고 애를 썼던 것 같습니다.
<자전거를 사다>
학교근처 숙소에 살다보니 불편한 것은 크게 없었지만 가끔씩 타운에 있는 도서관을 간다거나 큰 퍼 마켓에 오갈 때 교통수단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어느 주말에 글리니스의 도움을 받아 신문에 난 중고 매룰광고를 보고 자전거를 하나 구했지요. 그런데 이곳은 자전거를 타면 반드시 안전모를 착용해야 하는 법규가 있어 모자Helmet도 하난 구해서 쓰고 타게 되었습니다. 혹시 가족들이 나중에 올 것을 감안해서 자전거도 여자용, 헬멧도 작은 것을 착용하고 다녔는데 그 모습이 뭔가 우스꽝스러워 보였는지 동료 학생들이 나만 보면 웃었습니다. 그래도 그 자전거가 튼튼하고 잘 달려 멀리 유기농 농산물 가게까지 타고 가 식료품을 사오기도 했습니다. 어느 일요일에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서 뒷길로 가는 티맛 산길을 타고 산중턱에까지 올라가 보기도 하였습니다. 자전거를 베개삼아 아무도 없는 풀밭에 누워 잠도 자고 이국의 낯선 계속 풍경을 보며 꼭 꿈속에서 한 번 와 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파티>
학기초에 한 번 인데라Indera 와 포니아Fornia 가 방과후에 아시아계 학생들만 한 번 따로 만나자고 해서 타운에 있는 그녀들이 살고있는 플랫Flat(다세대 주택)에서 늦게 까지 차 마시고 영어와 한문을 섞어 떠들다 왔었는데 이번엔 같이 지내는 글리니스가 주말 파티를 한다며 초대를 하였습니다 뭐 함께 있는 집이니 초대라고 까지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게 참가하겠느냐고 물으니 초대라고 생각하고 음식을 다로 준비하기 어려우니 맥주를 좀 사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날 참 사진이 화근이었습니다. 파티에 참석하여 보여주면서 말해야겠다고 가져간 가족사진을 꺼내 보는 순간 괜히 코 끝이 찡했습니다 사진을 보고 가족이 너무나 보고 싶어진 것이지요. 큰 의자에 뎅그마니 앉아 찍은 아이들 사진-큰 아이가 작은아이를 안고 머리를 서로 밀착시켜 다정하게 찍은 그 사진이 나를 한없이 울게 만들었습니다. 곁들여 함께 있는 사진에서는 강화도 고인돌, 백련사 고목, 봉천산 그네터, 광성보 성곽 등 고향이나 다름없는 강화도 풍경과 함께 들어있는 아내의 얼굴, 형수, 형님, 마리서당 아이들의 얼굴 등이 차례로 나를 울렸습니다. 파티에 참석하려고 들뜨게 있다가 마음이 착 가라앉으며 이역만리 낯선 타국 땅이란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오며 다시 서글퍼져 한참을 방안에서 넋 놓고 있는 데 글리니스가 내 방을 두드렸습니다. 화들짝 정신이 들어 파티가 열리는 정원으로 나와 바비큐 굽는 일을 돕는 척 했습니다. 이날 괜히 내가 준비해간 애꿎은 맥주만 많이 비웠습니다. 참 이날 글리니스의 젊은 남자친구 마이크Mike를 만났습니다. 그는 순진하고 투박하며, 책을 많이 읽어 슈타이너에 밝은 농부 겸 정원사였습니다.
<발도르프 학교에 가다>
학기초에 이곳 대학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헤이스팅스 발도르프 학교(일명 타이쿠라 스쿨)에서 유리드미 공연이 있어 궁금한 마음을 앉고 구경을 하러 갔습니다. 왜냐하면 발도르프 교육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유리드미가 과연 어떤 예술공연 형태로 내게 다가올까 하는 것이 아주 기대되었기 때문이었지요. 이 곳 뉴질랜드만 해도 유리드미스트가 상당히 많습니다. 대개 유리드미스트들은 발도르프 학교나 치료교육을 하는 호헤파 학교에 관여를 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에는 독자적으로 공연예술만 하는 분들 도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유리드미의 기본원리는 언어와 몸 동작의 연결입니다. 특히 모음과 자음을 하나하나 분리해서 소리나는 대로 각각 해당되는 몸 동작이 따로 있어 초보자나 발도르프 학교의 학생들이 그리 어렵지 않게 배워나갑니다. 그리고 이 춤은 발도르프 학교에서 저학년에서부터 열심히 배우는 노래와 시낭송 및 구연동화가 그 바탕이 되는 춤입니다. 이날은 이야기와 시 그리고 음악, 3가지 배경에 맞추어 유리드미 춤 공연이 있었는 데 적어도 저의 경우엔 꿈을 꾸는 듯한 아름답고 신비로운 동작에 나도 모르게 절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현란하고 동적인 현대무용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또 다른 새로운 춤 장르가 열리는 것 같은 공연이었습니다. 나중에 이곳 대학의 유리드미 강사와 나눈 얘기지만 동양적이고 신비스러운 면이 강한 춤이라는 느낌을 받았으며 유럽에서는 우리 나라 시조에 맞춰 유리드미공연을 하기도 한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제가 발도르프 학교를 제일 처음 가서 경험한 것이 유리드미 공연이라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고 발도르프 학교는 그 이후에 제 집 드나들 듯이 자주가 차츰 그 전모를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노래 지도>
이곳 슈타이너 대학의 아침시간은 노래와 더불어 시작이 됩니다. 하루 일과는 아침 8시 30분에 시작 오후 4시에 끝납니다. 저의 경우는 먼저 8시 20분쯤에 학교에 도착 큰 나무와 의자가 있는 작은 동산을 한가하게 거닐다가 교실에 들어가 그 날의 시간표와 할 일들을 점검합니다. 그리고는 매일 만나는 클래스메이트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8시 반에 모닝써클(아침 둘러앉기)시간을 시작합니다. 한 주간 당번을 맡은 학생이 촛불을 밝히고 계절에 맞는 시를 낭송하면서 하루 공부가 잘 이루어지도록 기원합니다. 그런 다음 그 날의 노래배우는 시간을 짧게 갖습니다. 이 시간에 아무나 자기가 아는 노래를 학급에 소개하여 함께 부를 수 있습니다. 대개 처음엔 슈타이너 5음계 동요들이 주로 소개가 되었는데 차츰 친숙해 지며 학생들이 서로 자신과 자신의 나라에서 부르는 노래들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전에 교육사랑방 겨울기행 할 때 어떤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었던 노래를 영어로 만들어 소개하였습니다.
그 가사를 써 보겠습니다.
저녁에 해 가지니/ 바람도 잠이 들고/ 바람이 잠이 드니 새들도 노래를 그쳐/ 새들이 노래 그치니/ 다람쥐 집으로 가고/ 다람쥐 집으로 가니/ 놀던 아이도 집으로 가네
가사 바꿈 ; (간략히) In the evening the sun has set/ Blowing wind become silent/
Many birds stop singing around/ Playing children return to their home
아마 이 노래 지은이가 슈타이너 오음계(펜타토닉)를 알고 있었던가 봅니다. 악기로 음을 따서 연주해 보면 반음이 없이 “레미 솔라시 레미” 의 펜타토닉 음계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더군요. 슈타이너의 5음계는 7음계와는 달리 순환구조를 갖고 있는 음계입니다. “라”가 태양을 상징하며 중심 음입니다. 그 음의 흐름이 다음과 같습니다.
(라)-시-레-미-레-시-(라)-솔-미-레-미-솔-(라) ; 한 번 피아노의 검은 막대로 연주를 해보십시오.(검은 막대 세 개 짜리 중간막대를 “라”로 생각하고 오른쪽 바로 옆의 것이 “시” 그 다음 오른편 의 두 개 짜리 막대기가 "레“와 ”미“, 그런 다음 거꾸로 내려서 ”레"를 치고 다시 세 개 짜리 막대로 내려와 “시”“라”“솔”을 차례대로 치고 그 세 개 짜리 막대 왼편의 두 개 짜리 검은 막대를 치면 “미”와 “레”가 되며 다시 올라가는 방향-오른 쪽으로 "미“ ”솔“ ”라“로 끝을 냅니다)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슈타이너의 오음 계는 주로 발도르프 유치원과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배우는 데 그 음이 우리 민요 음과 일치합니다. 제가 이곳에서 처음 손 하프(라이어라고 함)를 연주해 볼 기회가 있어 금방 여러 가지 노래를 시도해보니 아리랑을 비롯 상주모심기 노래, 한 오백년 등 많은 우리의 고유 민요가 술술 흘러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아무튼 이 날 내가 동양인으로는 처음 ”아침 둘러앉기“시간에 노래지도를 하게되어 한 편으로 뿌듯하였고 새삼 공부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이사>
그 동안 임시로 묵었던 집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집주인이 장기여행에서 돌아오게 되었기 때문이었지요. 전 홍콩 남학생 모리스Maurice가 머무는 하바록 플랫의 방 하나를 함께 쓰게 되어 짐을 옮기고 이사를 하였습니다. 처음엔 서로가 약간은 어색하고 불편하였으나 1주정도 지나니 지낼 만 하였습니다. 모리스는 체구가 작고 남을 잘 배려하는 채식주의자였으며 나 또한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기를 좋아하여 서로 밤늦게 까지 책도 읽고 이런 저런 경험이야기를 나누는 등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는 영국에서 유학을 하여 도서관 사서 자격을 갖고 홍콩에서 교사로도 근무를 하다 슈타이너 사상에 매료가 되어 이곳에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로 옆방에는 또 다른 홍콩 여학생 인데라와 포니아가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인데라 가 이 모리스를 좋아하였습니다. 그 좋아하는 정도가 커서 인데라의 입장에서는 장래를 기대하는 눈치였고 반대로 모리스 쪽에서는 친구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인데라는 부모 곁을 떠나 스스로 요리하고 빨래하며 지내는 생활에 익숙하지가 않아 아직은 성숙하지 못한 판단을 하는 듯 하였습니다. 한 달쯤 있다가 결국 둘 사이가 멀어지고 불편하게 되어 모리스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에 저도 덩달아 그 근처 슬립아웃(밤에 잠만 자는 정도의 싼 자취방)을 얻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대단히 한적하여 공부하기에 적합하였습니다. 전에 있던 플랫은 여러 사람이 기거하는 관계로 이것저것 불편한 것이 있었지만 이 자취방은 나 혼자 머물게 되어 아무런 걸림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주인도 한 주 삭만 내면 일체 관계하는 일이 없어 한 달치 씩 계산하고 완전히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근처에 인가가 드물어 밤이면 밖에 나가 산책도 하며 별 보기를 할 수 있어 더욱 좋았습니다. 이 때 저는 남쪽하늘의 많은 별자리들을 관찰할 수 있었지요. 그 캄캄한 하늘에 붉게 빛나는 회오리 꼬리의 전갈자리를 알아 봤을 때의 그 짜릿함이란----
그 이후 슈타이너 공부에 기본 바탕이 되는 황도 12별자리를 차례대로 관찰하면서 남쪽 밤하늘과
사랑에 빠져 5월까지 보내니 어느새 추위가 닥쳐왔습니다. 이사할 때가 된 것이지요. 그곳엔 난방이 안되었으니까요. 다행히 학교 기숙사 방이 하나가 나게 되어 그곳이 저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었답니다. 이것으로 저의 이사이야기가 끝이 나는군요.(참 7월에 저의 가족이 오면서 또 한 차례 이사를 합니다. 그것으로 정말 이사는 끝입니다)
<홍콩에서 온 여학생의 탈락>
포니아는 정말 활달한 아가씨였습니다. 경영학을 전공하고 무역회사에서 3년을 영어를 사용하며 근무를 하다가 교사가 되고자 이곳으로 왔지요. 그런데 그녀가 2달 째 되는 날부터 공부에 대단히 염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유는 슈타이너 공부가 너무 특수하다는 것이었고 이곳에서 만나는 슈타이너 공동체 사람들이 너무 사고방식이 닫혀 지나치게 과거 지향적이라고 열을 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우주과학시대와 정보통신시대를 사는 현대와는 조화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소극적인 공동체라는 비판이었지요. 슈타이너 사상도 독선적이고 때로 종교적인 모습으로 다가와 견디기 어렵다고 하면서 자기는 이 공부를 더 이상 해나갈 수 없다고 울먹이며 말을 했습니다. 난 그녀에게 당신의 그런 생각이 조금은 성급하니 한 절반쯤 지내본 다음에 그 때가서도 마찬가지 생각이면 그만두는 것이 어떻겠냐고 얘기를 했습니다. 이 때 그녀는 잠시 마음이 안정되는 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한 과정이 끝나고(1년에 4 학기 과정이 있음) 그녀는 훌쩍 홍콩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 고맙다는 편지 한 통 남겨 놓은 채---
그녀는 정말 이 공부가 자신에게는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을 했던 것입니다. 슈타이너공부는 한편으로 생활의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 사실이지요. 그 실천은 이제껏 자기가 살아왔던 방식과 사뭇 다른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매일 매일 작은 일이라도 뭔가 의지를 갖고 해보는 수행생활과 그것에 따른 명상수련, 그리고 일상적 생활 예술을 통한 영적인 사람됨의 표현 등, 19세기 이후로 한 방향으로 치달아온 과학기술과 그 발달에 의한 문명의 혜택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에게 좀 실천하기 어려운 단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활달하고 과학기술 문명적인 사고 방식을 구가하는 이 20대의 전형적인 홍콩아가씨에게 슈타이너 공부는 일종의 닫힌 과거 내지는 과거 회귀로 비추어 졌던 것이라고 할 밖에--- 사실 조금 더 기다렸어도 결론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슈타이너 사상의 근저에 반 물질주의적(Anti-materialism)요소가 드리워져있습니다. 사람이 그 어머니인 우주와 영적인 교통을 하지 못하게 된 데는 이 물질을 영혼보다 우위에 놓고 살아가기 시작한 데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지적이지요. 말하자면 인류의 미래는 물질에 있지 않고, 정신과 영혼을 얼마나 순화하고 밝게 하느냐에 달려 있단 말입니다.
<장애우 공동체 호헤파 방문>
첫 학기 끝 무렵에 이곳 슈타이너 공동체의 최대의 집단농장 호헤파를 방문하였습니다. 물론 타루나 대학 교육과정의 한 프로그램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상적인 모습과 특수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인 호헤파 발도르프 학교를 돌아보기 위함이었지요. 이곳에서 우리에게 음악을 강의하시는 로버트Robert 선생님을 만났는 데 그는 이곳 호헤파 학교에서 한 학급을 맡아 가르치는 치료 교육 교사이기도 하셨습니다. 일반적으로 교사라면 일반학교 교사와 특수학교 교사로 나뉘어져 대학시절부터 전공과정을 각각 다르게 밟아 교사 자격증도 일반학교 교사와 특수학교 교사가 다른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이곳에서는 일반 슈타이너 학교 교사를 오랫동안 한 사람 중 특수 교육에 관심이 있고 자발적인 의욕이 있는 사람들이 이곳 학교 교사로 일을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예술적인 자질과 숙련이 되어있는 분들이 발도르프 특수 학교에 근무를 많이 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유리드미를 가르치는 안내교사를 따라 학급과 농장 그리고 기숙사 및 주방, 치료실 등을 돌아본 뒤에 종합적인 토론을 한 뒤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였습니다. 뇌성마비인 듯 한 학생이 계속 우리에게 인사를 하고 또 하고 하면서, 또 어떤 학생은 다운 증후군으로 약간 다리를 절며 침도 흘리며 우리에게 계속 뭔가 말을 붙이고 하는 그런 가운데 교사들은 참을성 있게 학생들을 다독거리며 계속 대화를 해줍니다. 참 따듯하고 정감이 느껴지는 공동체였습니다. 이 곳의 졸업생들은 나가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곳 농장이나 목공 작업장, 그리고 옷감 및 나염 작업장 등에서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하게되고 그 곳에서 나온 농산물이나 생산품을 이곳 자체 매점이나 다른 시장에 내놓아 판매를 하는 데 주로 슈타이너 공동체 사람들이 사서 활용하게 된답니다. 말하자면 순환적인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구조를 갖고 있어 부러웠고 그 순한 체계의 중심에 학교가 놓여있는 것도 샘이 나는 일이었습니다. 호헤파 공동체 만세!
<한국사람들과의 만남>
이곳 대학의 한국인은 저 하나였습니다. 전에도 있었던 적이 없었습니다. 참 재미있는 일이지요
이 지구촌 시대에 영어사용국가에 최초의 한국인 학생이라니--- 저도 의아해 했으니까요. 이 대학이 설립된 지는 만으로 20년, 그 동안 해마다 15명 안팎의 교사교육과정 학생들이 거쳐갔고 최근에 들어 유치원교사 과정이 분리되고 유기농업(bio-dynamic agriculture)과정, 그리고 슈타이너 의학 간호사 과정이 개설되어 총 4개의 정규 전문 과정과 상시, 수시 예술교육과정(목공, 석공, 언어, 인형 만들기, 정원 가꾸기 등의 단기 과정)이 있어 활발한 교수-학습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대학의 터를 닦은 분은 현재 역사학교수로 계신 이네카Ineka 선생님 부부로 남편께서 뉴질랜드 인지학회 회장님을 맡아 유기농 분야의 지도적인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30년 전에 홀랜드에서 이곳으로 이민을 와서는 발도르프 초등학교 과정을 여셨고 차츰 완성된 학교가 되어 교사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던 중 독지가의 도움으로 이 터에 대학을 열었답니다. 이 대학은 현재 뉴질랜드 매시Massy 종합대학의 분교 형태로 학점인정은 그 대학에 최종보고를 한 이후에 받는 방식으로 되어있다고 들었습니다. 한편 이 대학을 다닌 지 얼마 안되었을 때 우연치 않게 이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을 만나보았습니다. 그 분은 데어리 숖Dairy shop을 운영하고 계시는 손성목 씨로 각각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둘과 아내와 함께 4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을 해서 이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만남의 순간 저는 너무 반가워 잠시 할 말을 잊었습니다. 한국말 쓸 기회가 없다가 갑자기 쓰자니 오히려 어색함을 느꼈는데, 아무튼 이 분들도 반가워했고 저는 그 주말에 식사초대를 받아 그 동안 못 먹던 한국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 이후 제가 그 숖에 가끔 놀러가고 나중에 대학에서 연극을 할 때 손성목씨가 학교에도 오고 서로 왕래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좀 멀리 떨어진 내이피어Napier에도 교포 몇 가구가 살고 있다고 나중에 한 번 만나 보자고 하여 그곳에도 갔습니다. 그러다 아예 일요일에 서로 시간을 내어 운동을 같이 하기로 했지요, 그래서 생긴 것이 일요 축구 모임 이였는데 자녀들 합해서 열 명 정도 모여 함께 운동하고 얘기도 나누는 것에 불과 했지만 그래도 이런 것이 바로 동포애라는 것이려니 하고 서로 일요일을 많이 기다렸습니다.
<카톨릭과 슈타이너>
슈타이너가 신지학에서 손을 떼고 인지학회를 설립하여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을 때 그리고 크리스트와 불타의 영혼세계의 연계를 말하며 많은 종교의 본질적인 특징에 대한 폭넓고 심원한 종교관에 대한 강연을 할 때 그의 사상을 카톨릭 계에서 이단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따라서 당시 카톨릭 계에서 그의 강연과 저술을 금서로 정하였습니다. 또한 1922년에 슈타이너가 직접 설계한 괴테 기념관이 불타 없어지는 사건이 벌어지는 데 카톨릭 교도들이 그 방화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 다시 지어지기는 했지만 거의 80년 전에 벌어졌던 이 해묵은 싸움에 대해 지금 양편의 입장은 많이 누그러진 편이나 아직도 그 잔재가 남아있어 발도르프 학교들을 이곳 카톨릭교도들은 “현대 자본주의 경제와 물질주의 과학 Materialism Science를 거부하고 예술교육을 주로 시키는 학교” 쯤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에 발도르프 학교가 소개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도르프 학교가 도대체 뭐냐 할 때 흔히 “아동의 창의성과 사람으로서의 자기존재에 대한 표현 능력을 키우기 위한 교육예술을 주요 방법으로 실천하고 있는 학교”라고 하겠는데 이때 교육예술이란 용어는 너무나 생소하여 읽는 이가 저절로 아! 이 학교는 예술교육을 많이 시키는 학교구나 하고 슬쩍 자기식대로 해석하여 이해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만큼 서양에서 카톨릭 교도들이 아직 슈타이너에 대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접근하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곳에서 다니게 된 성당에서 카톨릭교도이면서도 슈타이너에 밝은 한 할머니 가정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달이 발도르프 유치원 교사로 근무하고 있고 2년 전쯤에 필리핀에서 온 수녀님 한 분이 제가 다니는 슈타이너 교사교육과정에 등록하여 1년 동안 공부하면서 그 집에서 살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 카톨릭교도인 내가 슈타이너를 접하면서 어떤 종교적, 교의적 혼란이 있지는 않았냐 하는 것인데 제 경험상 그런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부처를 비롯 각 민족의 여러 중심 되는 신령과 그들의 밝은 기운이 크리스트가 십자가에서 이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하고 죽어 하늘(영계)의 큰 영이 되는 것을 도와 지금도 그 크신 사랑의 빛을 한없이 내보내 준다는 슈타이너의 종교관은 “예수 대속”에 대한 큰 믿음이 없었던 제게 “빛으로 부활한 한없이 크고도 넓은 도량”이신 하늘의 위대한 영혼들과 또 그 영혼들의 머리로서의 예수 님에 대한 저의 믿음과 사랑을 더욱 살지게 하였습니다.
한 편으로 슈타이너가 서양의 카톨릭교도들에게 거부감이 들었던 것은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어 약 천 년에 한 번씩 성(남녀)을 바꾸어 환생한다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는 데 우리는 동양 권의 토착 민속종교의 환생사상과 불교의 윤회사상이 깊이 침투해 들어와 있어 슈타이너의 천년 환생설이 낯설지 않아 어느 정도 받아들여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하여 일종의 단선적이고 직선적인 물질과학문명에 휩싸여 있던 서양인들에게 어쩌면 순순히 받아들이기엔 뭔가 꺼림칙했던 걸림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제 서양에서도 동양의 다원적이고 순환적인 사고방식을 많이 받아들여 불교적 수행과 선 수련, 기 수련 등을 많이 하고 있는 추세인 만큼 세월이 더 흐르면서 동양사상에 많이 근접해 있는 슈타이너 인지학이 카톨릭을 비롯한 기독교 문화권에서도 별로 걸림 없이 서로 융화될 수 있으리라 전망을 해봅니다.
<슈타이너 학교 실습1>
거의 10주 씩 짜여있는 교육과정의 두 번 째 블록Block 때 한 주간의 슈타이너 학교 실습을 나갔습니다. 그 실습은 다름 아닌 이곳 뉴질랜드에 있는 8개 발도르프학교(장애우 학교 포함)중에 보조교사로 파견을 나가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후반기 때의 가르침 실습과는 달리 전반기에는 수업참관실습이나 간단한 예능과목공부를 함께 해보는 정도였습니다. 전 미술시간에 붓글씨를 가르치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가르친다하기 보다 조개껍데기에 검은 잉크를 조금씩 나누어 담아주고는 붓을 다루는 바른 자세부터 해서 함께 일정한 선을 그리며 붓이 종이에 닿을 때의 감촉과 그 마음의 움직임을 느껴보도록 유도하였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산과 물 그리고 나무 모양을 그리게 할 때 흥미를 많이 갖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한 주간의 참관실습으로 대학에서 평소 배우는 슈타이너의 교육에 관한 일련의 생각과 교육과정 등을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한 학생을 정하여 그 학생의 기질 및 교우관계를 파악해보고 발도르프 학교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교과학습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여부와 참여정도를 관찰하여 보고서를 제출하는 과제가 있어서 교실에서 아이들의 움직임을 소홀히 하지 않고 관찰을 하였습니다. 제가 맡은 학년은 5학년이었는데 유리드미 시간과 인형 만들기 시간에 아이들은 지나칠 정도로 산만하여 관찰은커녕 교사가 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아이들을 통제시키느라 무척 애를 먹었습니다.
<슈타이너 공부와 우리의 전통동양학>
제목이 거창하니 어렵겠다 생각지 말아주세요. 저는 그냥 제가 슈타이너 공부하면서 우리 것에 관한 그간의 궁금했던 것에 대하여 약간의 열쇠를 얻는 것 같아 나름대로 생각해보고 이야기 할 만한 것들을 추려서 한 세 가지 정도 소개할 까 합니다.(이 부분은 그냥 넘어 가셔도 됩니다. 좀 딱딱하니까요)
첫째 슈타이너와 천부경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둘째 슈타이너가 말하는 우주와 사람의 기질원리와 오행의 원리의 비교입니다.
셋째 슈타이너의 몸 공부법(명상수련)과 우리의 선 수행과의 관계입니다.
<슈타이너와 천부경>
슈타이너의 우주론을 배우며 그의 우주생성에 관한 조망이 우리의 천부경과 아주 흡사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슈타이너의 우주생성은 처음 옛 토성(old Saturn)에서부터입니다. 그 다음이 옛 태양(old Sun)이며 차례로 옛 달(old Moon)순입니다. 이 세 단계는 지금의 토성이나 태양, 그리고 달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일종의 과거의 천상(Heaven)계입니다. 그런 다음 현세의 지구계(Earth)를 화성단계와 수성단계의 조합으로 봅니다. 그 후 미래의 미륵계(Man)를 목성단계와 금성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불칸(Vulcan)으로 온전히 됨을 선언합니다. 불칸계는 우주생성의 끝인 동시에 처음인 그런 통합의 완전함을 그 자체로 지니고 있는 세상입니다.
천부경이 언제부터 있었는 지는 확인이 안 되었습니다. 불과 81자 밖에 안되는 이 경은 원래 가림토 문자라는 우리고유의 글로 되어 있던 것을 신라시대의 석학 최치원이 한역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천부경은 단순히 지상세계에 대한 밑그림이 아니라 온 세계(천지인세계)의 매우 압축된 그림입니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
"세상은 하나에서 시작되어 다시 하나로 끝을 맺게 되지만 결코 시작도 끝도 없다."
이게 천부경 81자 의 첫 5글자와 끝 5글자이지요. 일주일을 월화수목금토일로 셈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나서 죽을 때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 셈법이잖아요?(죽고 나서도 마찬가지) 이것은 결국 하늘의 셈법입니다.
세상이 달(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인간의 기준이지요.
하늘(천) 의 기준은 토(토성)입니다. 또 땅(지)의 기준은 일(태양)입니다.
그래서 천지인은 토일월입니다. 숫자로는 3, 6, 9이고요. 제일 처음 하늘이 석삼극(3겹, 영어로 Three-fold)으로 유동합니다. 그러나 본은 하나(천부경에서말하는 무진본)입니다. 이 삼겹구조는 이후에 삼신, 삼위, 부-모-자, 군-신-민등 여러모로 쓰입니다. 이것이 천부경으로는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 일적십거 무궤화삼/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입니다.
4수는 일시 혼란입니다. 이 때 하늘의 전령이 직접 혼란을 정돈하고 대삼합(3+3) 육(6수-태양-나중에 부처/그리스도)이 되어 다시 앞으로 나아가 생 7,8,9 합니다. 6(태양)이 생겨나지 않았으면 생명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생명의 최초는 뭡니까? 식물이지요, 곰팡이 같은 균류에서 비롯되어 고등한 나무까지 온통 빛 호흡을 하지 않습니까? 이 모두가 6수 태양 덕분입니다. 그 다음 9수인 달에서 생명체들은 공기호흡단계로 나아 갑(사실은 타락-실낙원)니다. 이 단계에서 거의 모든 신화와 전설은 인간의 하늘에 대한 배신을 얘기합니다. 성경에서 아담이 에덴서 쫓겨가는 것도 이때고요- 성경 천지창조 편을 보면 쫓겨나기 전 아담(사람)은 아직 공기호흡을 하지 않았습니다. 쫓겨가고 나서부터 일을 하게되고 죽음을 맞게되지요. 이시기의 사람 탄생시기에 심지어 아직 물도 없었습니다. 결국 이 때의 사람은 지금의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장차 될 "어떤 존재"라는 것이지요, 슈타이너는 동식물도 마찬가지로 지금의 동식물이 아닌 "어떤 존재"였다고 합니다. 그는 좀 어려운 말로 영존Spiritual being 이라고 부릅니다.
아담도 결국 처음엔 영존였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니 같은 레벨의 안 좋은 영존인 사탄과 얘기를 나누기도 하지요. 마치 돈 많이 생긴다는 말에 질 안 좋은 이웃과 어떤 음모에 연루되듯이 말입니다. 이 후에 인간(사실은 아직 사람이 아님-후에 사람으로 되게 되는 어떤 존재) 존재는 수많은 세월의 고통과 번민을 겪고 본격적인 사람(신인)으로 일어섭니다. 모든 신화들은 이 단계에 동물적인 모습들을 간직하고 있는데 그리스의 반인반수 이집트의 스핑크스 우리나라의 곰도 이 단계의 신화입니다. 단군 이야기의 호랑이와 곰은 실제 동물이 아니라 어떤 형상image 입니다. 구름이 유동하면서 우리 눈앞에서 어떤 형태를 갖듯이--- 그렇지만 이 형상은 실제와 관련이 없지는 않습니다. 나중에 형상image 이 물질matter 이 되는 과정에서 그 원형의 모습을 재현해냅니다. 달 단계에서 싹튼 인간형상은 본격적인 지구단계로 접어들면서 피부(physical shape)를 얻습니다. 피부를 얻는 것은 다른 한 편으론 피부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죠. 다름 아닌 죽음입니다. 이제 인간은 정말로 후천 세계(지상)로 내려온 것입니다. 이제 천부경에 등장하는 5수와 7수를 살펴봅시다. 5수는 하늘의 수입니다. 7수는 지상의 수이고요. 조금 구체적으로 말하면 5는 선천의 법칙이고 7은 후천의 구성원리이자 만물의 질서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근본은 하나이며 하나인 근본을 통하여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그 근본은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일묘연 만왕만래 용변부동본)
이제 천부경에서 가장 핵심부분인 “인중천지인”으로 들어갑니다.
단군 이야기에 등장하는 곰은 실재 육신을 갖고있는 존재 는 아닙니다. 이집트나 그리스 신화에도 사람이 되기 직전의 동물들이 등장하는 데 이들도 역시 실제의 육신을 갖춘 동물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람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신체적 조건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이 "가슴벌어짐"과 "일어섬"이라고 합니다. 먼저 가슴벌어짐에 도달하는 동물은 조류입니다. 날개는 가슴벌어짐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펼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각 신화 속에 큰 새 - 봉황 혹은 불사조, 때론 독수리 등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나 그들의 한계는 머리에 있습니다. 머리가 작아야 날아다니기에 편치요 그러니 그들은 새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상으로 내려옵니다. 머리만 생각하자면 가장 발달한 머리를 갖는 동물은 바다포유류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한계는 체온에 있습니다. 불의 기운이 쉽게 사라지는 물 속에선 인간의 온기가 머무를만한 환경이 되지 못하지요. 성경 천지창조장엔 고래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제 결국 사람이 되어야하는 조건은 육상 포유류중 가슴을 펴고 두발로 일어설 수 있는 조건을 갖고있는 어떤 폼form에 달려있습니다. 그 폼은 호랑이 폼은 아니지요, 분명 보다 더 인간의 직립 폼에 가까운 것이 곰 폼입니다. 다른 민족의 신화에선 처음에 사자나, 황소 등이 나타나다가 반인반수로 발전합니다. 제가 보기엔 이것이 그들의 곰 폼입니다. 그렇다고 유인원을 무시할 순 없겠지요. 유인원 폼은 되다만 인간입니다. 그들은 직립단계에서 너무 서둘러 일어섰습니다. 그 보다 전에 사람이(실제론 사람이 아니라 사람으로 되어 가는 중간 존재) 물에서 육상으로 나와 다리를 얻게 될 적에도(어류-->양서, 파충류)한 번 서두르다가 다리를 몽땅 잃어버린 사실이 있습니다.(바로 사탄 서펀트Serpent-뱀이지요) 그것을 극복해내는 데 엄청난 세월이 걸렸답니다.
이제 인간이 곰 폼을 지나 완벽한 직립의 하느님의 형상을 갖추어 2세를 얻고 지상으로 내려오니 그이가 다름 아닌 단군(신인)입니다. 천부경에 그것을 "일묘연 만왕만래 용변부동본 본심본태양 앙명"(한님이신 환인과 한님의 아들이신 환웅의 세상에 대한 은혜 베품의 과정을 묘사) 라하고 이어서 "인중천지인"이라 하여 한님의 단군을 통한 사람됨을 만방에 선포합니다. 그리고 동학에선 이를 인내천, 혹은 인즉천 이라 말합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가 향아설위 - 제사상에 조상이나 혼령에게 음식을 올리는 것을 '설위'라 하는 데 인내천을 체득하면 나(사람-한님의 살과 육신)를 있게 한 음식(우리정서로는 밥)이 곧 "하늘" 이니 나뿐만 아니라 온 천하의 만물이 다 한 형제요 한 배 동아리라 고 선포하게 되지요. 사실 끝의 내용은 다소 위험요소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가 곧 하늘이요 할 때 대단히 건방져질 수 있으니까요. 교육은 그래서 진리를 향한 훈육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얘기할 것은 “본심 본태양 앙명”인데 이것은 우주의 진리가 빛으로 화하여 사람의 마음(심장)에 내려 와 앉기 직전을 말함입니다. 그런 다음 바로 사람이 그 안에 하늘과 땅, 그리고 생명까지 갖춘 빛 사람으로 우뚝 서게됨을 이름합니다. 그리하여 다시 처음의 “일시무시일”처럼 “일종무종일”의 마지막 천부경의 결어는 “(무종)일”이 되어 시작어 “일”과 짝을 이루며 끝이납니다. 이 경전을 잘 음미하며 읽으면 무엇인가 힘이 느껴집니다. 그 만큼 천부경 경전에 진리와 결부된 무엇이 있음을 헤아려 봅니다.
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天一一地一二人一三一積十鉅無궤化三天二三
地二三人二三大三合六生七八九 運三四成環五七一妙衍萬往萬來用變不
動本本心本太陽昻明人中天地一一終無終一 / 천부경 전문
<슈타이너의 몸, 기질 이론과 오행>
오행은 무엇인가?
슈타이너 사상의 4겹(중)몸 이론은 흔히 나이단계에 따른 육신몸Physical body 단계0-6세/성장 몸Etheric body(식물몸, 나무몸) 단계 7-13세/감정 몸Astral body 단계14-20세/자아 몸Ego body(나몸) 단계 21세 이후/의 4단계로 나누어지는 데 이 때 우주의 기운들이 사람의 삶의 터인 우주 안 의 지구별에 그대로 전이되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넷으로 나누어 대단히 명랑하고 사교적이며 가벼운 성격의 사람을 생귄Sanguine 기질, 무겁고 사려깊으며 자기애가 강한 멜랑콜릭Melancholic 기질, 성질이 불같고 지도력이 강한 콜레릭choleric 기질, 차분하고 계획적이며 현실적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뭔가에 신명을 내지 못하는 프라그마틱Pragmatic 기질 등 4가지를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구분 지울 수 없는 통합적인 영성과 기질을 제 5번 째 것, 즉 소우주로 말하여지는 사람의 개별자아Indivisual Ego 와 소우주의 원천으로서 우주영혼Cosmic spirit 의 결합으로 상정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동양학에선 위아래로 교통하며 자라나는 그래서 아래로 내려오려고 하는 기운-물 기운/ 위로 오르려고 하는 불기운/ 위 아래로 교통하며 자라나는 기운-나무기운/ 한 점으로 모이려고 하는 굳은 기운-쇠 기운/ 넓게 펴지고 풀어지려는 흙 기운 등 오행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우리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하는 일종의 날씨의 기운과 대비시켜 볼 수 있을 것이며 이 오행은 그것이 하나로 지칭되는 우주기운의 여러 다른 양상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전 우리의 뇌리엔 우주하늘은 "하나"이며 하나의 안과 밖, 즉 안과 둘레가 어떤 인식과정을 통해 분화하여 "둘"이 생기고 그것들이 다시 하나로서는 "셋"이 있었을 뿐입니다. 이 때까지는 천부경의 울줄 한울 원리가 이 세상원리였으니 사람들이 평화롭고 민주적(화백)으로 살았던 전통과 살림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단군의 정치와 종교일치 나라 다스림은 그런 바탕이 있었기에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행이전에는 “삼” 이 있었던 것이며, 삼은 천지인이라 하기도하고 나, 너와나, 남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남" 은 다른 사람을 뜻하는 남과는 다릅니다. 일종의 어울림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지요. 오늘날에 와선 남은 개별적인 남입니다. 원래는 공동체적인 남이요 통합으로서의 제 3통일체였던 것이 너와 나가 이미 분리되면서 그 흐름을 타고 근본을 잃어버린 결과입니다.. 그 통합으로서의 3분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역시 통합으로서의 오행을 잘 못 이해해버릴 수가 있지요.
오늘날의 지식원리는 분해의 원리요 어는 한 쪽이 한 쪽을 말아먹는(극하는) 죽임의 원리입니다. 흔히 춘추 전국시대의 중국식 오행이 말하기 시작한 극의 원리(경쟁과 싸움)가 이에 해당됩니다. 이것은 초극되어야 할 무엇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이 다시 전체가 씨줄과 날줄로 통하는 상생의 원리로 돌아가 "살림"을 목표로 해야겠지요.
오행의 오는 이제 이 세상 - 생로병사의 죽음의 관문 어디론가 넣어지는 넷을 거쳐 하나 둘 셋 넷, 나 너 남 우리 할 것 없이 닫고 서서 다섯이 됩니다. 이제 천상의 세계가 이 현실 안에 들어오는 원리가 된 것입니다. 슈타이너의 제 5요소인 개별자아와 우주영혼의 만남입니다.
<슈타이너의 몸 공부법과 우리의 선 수행>
제가 지금 너무 거창한 제목을 잡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그러나 그저 제가 파악한 수준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니 이 계통에 밝은 분들게 먼저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슈타이너의 몸 공부는 그의 명상수행의 일환으로 일상인들에게 제시하는 일종의 연습 행위 정도에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나름대로 규칙을 갖고 인내심을 요구하므로 시작하기 전에 자기의 주변도 돌아보고 확신이 설 때 비로소 실천으로 옮길 것을 말합니다. 그의 몸 공부법은 내적 충동과 느낌이 머리(정수리)로부터 심장을 타고 내려와 팔다리와 이마 그리고 눈 등을 거쳐 피부에 다스한 느낌을 주는 흐름을 타는 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머리를 맑게 비우는 것과 생각을 하되 분명한 사고를 하는 연습을 해야한다고 합니다. 내가 본 사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놓여있는 지 지각기관을 통해 들어온 상을 뚜렷이 밝혀보는 연습을 하도록 권합니다. 두 번 째로 자기가 이 세상에 나오게된 흐름을 그 맑아진 사고를 통해 되짚어 보는 것입니다. 이 연습은 자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자신이 우주의 거대한 흐름을 타는 타율의 의지입니다. 하느님 혹은 절대자의 의지를 느껴보기 위한 전 단계입니다. 그런 다음, 세 번 째로 만물 일체의 평등감각을 갖는 일입니다. 이 평등감각 속에서 수행자는 고요하고 침착해집니다. 그 다음 네 번 째 단계에서 의식을 회복하고 이제껏 겪어온 것들 중 부정적인 요소들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어 보는 것입니다. 아까 몸 진행 공부법에서 정수리-몸-팔다리 삼 단계까지 이르러 평등감각(우주와 나의 사지를 포함한 생명의 일체감)을 갖도록 한 후 다시 위로 올라 제 3의 눈이 열리는 이마로 갔듯이 네 번 째 단계의 훈련은 새로운 눈이 열리는 긍정사고의 경지입니다. 이 세상엔 아무도 나의 긍정적 사고를 막을 사람은 없습니다. 부정적 사고는 걸림이 많습니다. 내 마음의 내면의 목소리에도 걸리고 이웃의 생각이 다른 아무나하고도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긍정사고를 연습하게 되면 누구도 나의 사고를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밝은 빛이 나와 그렇게 하도록 돕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섯 번 째 단계로 마음이 열리는 즉 개안단계를 거쳐 개심 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제 다섯 번 째 단계 개심은 정수리를 타고 흘러온 그 내적 충동과 느낌이 현실에서 완성되고 그 문턱을 넘어 규칙성을 갖고 현실에 실현이 되는 부드러운(리드미컬한) 상태에 이릅니다. 이렿게 해서 마음의 균형과 내적 충동 승화의 종합이 일어나 항상 무엇인가에 대해 눈에 가득한 미소로 대하고 따스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온기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슈타이너가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는 방법으로서 제시하고 또 더 나아가 교사로서 아이들과 일체감을 갖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제대로 수행할 것을 요구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비록 그리 깊지 않은 수행 경지에 이르더라도 매일 조금씩 이러한 단계를 밟아 교사가 한 편으로는 진리의 수행자이기도 한 길을 걸어가기를 바랬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한 편 우리의 전통적인 몸과 마음의 공부로 제가 아는 바에 의해서라면 몸 공부를 중시한 좌방선 수행과 마음을 먼저 닦기를 바라는 우방선 수행이 있습니다. 흔히 우방선 하면 유학과 관련해 마음 공부를 했던 사대부나 양반 계층의 공부요, 이에 비해 좌방선 은 정치나 관과는 거리가 먼 은둔자나 땡초(당추, 당취)승 그리고 이름 없는 천민 층들의 공부였다고 합니다. 최근에 이 둘의 경향이 하나로 합해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 우리의 선 수행법 에서도 우리의 몸과 마음이 우주에서 단순히 혼자 뚝 떨어져 존재하는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태아에게 탯줄이 걸치는 부위를 중심으로 구궁과 단전이 있어 그곳에서 기를 유동시켜 사람의 우주적 존재로서의 활동을 강조하는 것이 우리의 선 수행 법입니다. 물론 호흡과 좌선 수련을 할 때 정수리로부터 들어오는 우주기운을 활용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제가 이쪽 방면에 입문정도 밖에 못한 초보자라 이 대목은 후로 미루어 놓겠습니다. (여기 동양학 부분은 독자 분들께서 딱딱하게 여겨지면 죄송스럽습니다 이후 내용은 다시 제가 경험한 일상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휘라나키 숲 속을 가다>
5월에 10주간의 두 번째 학기(the second term)가 시작되어 전반 4주를 마치고 한 주간동안 오클랜드 슈타이너 학교에 관찰실습을 하고 돌아와 학급동료인 토니와 마사노리와 함께 주말에 이곳 숲속에 캠핑을 하러 갔습니다. 말이 캠핑이지 뉴질랜드의 5월은 초겨울로 접어드는 길목이라 단단히 추위에 대한 대비를 하고 낯선 이곳의 초겨울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전날 이런저런 옷가지며 취사도구며 또 물에 젖을까 방수 비닐로 웬만한 것들을 꽁꽁 싸매고 하여 적지 않은 무게의 배낭을 챙겨들고 드디어 길을 나섰습니다. 처음에 차로 트램핑tramping 코스 베이스 주차장에 갔을 때까지는 별 무리가 없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숲 속의 캠핑코스를 가면서 생겼습니다. 체중이 110kg이 넘는 토니가 짐이 무거워 가다가 지쳐 취사도구와 슬립핑백의 보조 덮개 등을 도저히 들지 못하여 일본인 마사노리와 내가 떠 맡게 되었습니다. 전 무거운 쇠로 된 취사도구 몇 개를 더 들고 가다 높은 언덕을 올라갔다가 내려가면서 무릎이 삐끗하였지요, 그래서 근처에서 한 참을 주무르고 쉬었습니다. 그러다가 해가 질 기미가 보여 결국 마사노리가 짐을 모두 지게 되었습니다. 참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하기도 하지만 일본인 친구 마사노리가 많이 생각이 납니다. 너무 고마워서요.
계곡을 갈 때는 이끼가 많이 낀 아름드리 나무와 이곳 특유의 양치식물군락을 많이 보았고 꼭 원시시대의 숲 속 같아 으스스 하였습니다. 도중에 강물을 건넜는데 차가운 기운이 발을 더욱 춥게 만들었습니다. 때론 깊은 숲이라 그런지 그늘진 곳에는 하얗게 쌓인 서리가 녹지를 않아 마치 눈산에 온 것 같은 길도 있었습니다. 날씨는 점점 춥고 날은 더욱 어두워져 갈 무렵 두 갈래 길을 만나서 이길 저길 선택도 못하고 불안하게 지도를 검토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부스럭하는 소리와 함께 인기척 소리가 나더니 개 한 마리와 함께 총을 든 두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잠시 놀란 가슴들을 진정시키고 얘기를 해보니 그들은 다행히 근처 산막에 사는 사냥꾼들이었습니다. 한 사람은 커다란 노루를 한 마리 어깨에 지고 있어서 그들은 서둘러 먼저 가고 저희는 그 뒤를 따라 가게 되었습니다.
산막에 겨우 도착하여 피곤한 몸을 달래며 서둘러 식사를 준비하고 겨우 요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냥꾼들은 또 무슨 일이 있는 지 추운 밤을 개의치 않고 바깥으로 나가더군요. 식사 후 무거운 짐에 지친 마사노리에게 미안하여 밖으로 나가 개울물에 그릇을 씻었습니다. 같이 나온 토니는 별로 말이 없어 이날이 무척 힘들었나 봅니다. 낮에 짐 문제로 나와 약간 다투기도 했었습니다. 맑은 개울물 근처 차가운 밤 공기가 오히려 시원했습니다. 개울물이 어찌나 깨끗한 지 손이 찬 줄도 모르고 물을 떠 마시고 얼굴을 씻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숲 속 검은 그림자 형태의 산막위로 둥근 달이 떠올랐습니다. 조금 있으려니 그 달이 교교히 비추며 산막의 굴뚝에 연기가 피어올랐습니다. 어느 새인지 집 주인인 사냥꾼들이 돌아와 불을 피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때에 받았던 동화 같은 인상을 서툴게나마 시로 옮겨 놓은 것이 있어 써봅니다.
In the Whiranaki bush lit by the moon(달 빛 비치는 휘라나키 숲에서)
I become a spirit of night.(난 밤의 요정이 된다)
The chimney of small hut(조그만 오두막집 굴뚝은)
looks like the bridge toward heaven.(하늘로 오르는 다리처럼 보이네)
The smoke arising from it(솟아오르는 연기는)
Turns the messenger of Mother Earth.(땅 어머니소식을 전하는 전령이 되고)
When the full moon shines onto the woods(둥근 달이 숲 위로 빛을 발할 때면)
All of my honours seem to be(나의 모든 것들이)
dedicated to my gods.(신께 바쳐진 듯 하지요)
우리는 그곳에서 하루를 더 묵었는데 그 마지막 날 밤은 사냥꾼들과 우리가 가져간 술을 나누어 마시며 서로 노래들을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다음 날 사냥꾼들은 값비싼 사슴고기를 구워 우리에게 주어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시 학교에 돌아와 아픈 다리 때문에 하루를 결석을 하고 쉬었습니다. 도맡아 고생했던 학급동료 마사노리는 그 일을 일생에 잊을 수 없는 추억이라며 두고두고 그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슈타이너 학교 실습2>
이곳 사범과정에서 학교 실습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교육중의 하나입니다.
보통 우리나라의 사범대학에서 교육실습은 4학년 때 1, 2개월 정도 실습을 거치는 정도이지만
슈타이너 교사 교육과정에서의 교육실습은 이론을 배우는 과정 동안에도 발도르프 학교와 프로그램을 공유하며 자주 실습을 통해 교류를 합니다. 물론 Practical year(실습년도)라고 해서 마지막 한해를 온통 학생교사(Student teacher)로 일하고 배우며, 그러고 나서 발도르프 학교 교사 자격을 얻게 됩니다. 영국이나 유럽, 그리고 북미 권은 2년 반 내지 3년에 걸쳐 과정을 밟는 것으로 알고있고, 이곳 뉴질랜드는 2년 과정으로 개설이 되어있습니다. 단 유치원 교사과정은 3년입니다. 저는 1년 과정의 준비코스를 마쳤는데 언제가 되었든 실습과정을 신청하여 학회에서 인정하는 전 세계 어느 곳의 발도르프 학교에 1년 동안 실습을 하면 슈타이너 학교 교사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학비는 내야합니다. 학생교사는 어디까지나 학생이니까요. 최근 슈타이너 학교 교사는 세계적으로 점점 채용이 늘고 있습니다. 학교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이니까요. 아무튼 전 뉴질랜드의 제 1의 도시, 오클랜드로 가서 그곳에 있는 슈타이너 학교 두 곳 중 서쪽 바닷가 근처 숲 속에 있는 티티랑기 슈타이너 학교에서 가르치는 실습을 하였습니다. 저는 제 큰 아이와 비슷한 5학년 12살 짜리 아이들과 함께 2주일간 생활을 하였습니다. 담임 스튜엇 선생님은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실에서 아이들과 노래를 많이 부르며 학교의 행사에 5학년 학생들이 주로 합창이나 기악합주로 축가를 불러 주었습니다. 전에 했던 1주일간의 관찰실습의 중요과제는 그동안 배운 슈타이너 교육이론에 따른 아이들의 성격분류, 그리고 또래집단 파악 그리고 한 학생을 정하여 상담을 전제로 한 리포트 작성 등이었는데 이번 실습은 직접 아이들을 가르쳐보는 실습이었습니다. 음악이나 수학 그리고 이야기 들려주고 나서 글 쓰기를 하게 하고 지도하는 것이었는데 아직 아이들 언어세계를 따라가지 못하는 처지라 많이 애를 먹었습니다. 네 번 째되는 날 아이들과 농장실습도 지도선생님과 함께 해보았습니다. 아이들이 익숙해서 그런지 땅 파고 화초나 작물 심는 것을 아주 적극적으로 하였습니다. 유리드미 시간에 보조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동작을 지도하며 익혔는데 몇몇 아이들이 너무 산만하여 수업이 진행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와 따로 이야기하며 그림 그리기를 하다가 다시 동작연습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실습이었습니다. 아무튼 금요일에 두 주간의 실습이 끝나고 저는 다시 학교 기숙사로 돌아와 학급동료들을 만나서 정보를 서로 교환해가며 실습과제 리포트를 작성하였습니다.
<아름다운 시 낭송 시간-스피치 클라스>
스피치 강좌를 맡고 있는 로빈 교수는 미국인 여교수입니다.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며 슈타이너 사범과정 교수로서 신념도 강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애쓰는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지극한, 지금도 그 말투와 모습이 선하게 그려지는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녀가 이 대학의 교수가 되기 전에 미국에서 했던 일은 보험 세일즈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녀의 말에는 어떤 힘이 실려있습니다. 특히 영국에서 3년 간의 스피치 전문강좌를 들으면서 슈타이너 사상을 많이 접하고 셰익스피어나 워즈워어드, 셸리, 키이츠등의 영문학의 낭만주의 작가들의 작품에 무척 매료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첫 시간에 워즈워드의 “무지개”Rainbow를 천천히 낭송해 보였고 우리에게 낭송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시 낭송 할때 가져야할 마음의 자세와 태도, 그리고 발성원리 등을 그야말로 돌다리 두드리듯 한 걸음 한 걸음씩 조심스럽게 지도를 해주었습니다. 그녀가 우리를 가르칠 때 보여주는 열정과 사랑은 정말 너무 커 이렇게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스피치 과정이 끝날 무렵엔 우리 모두가 시 낭송에 나름대로 식견도 생기고 자신감이 붙었던 것이 너무도 신기하여 모두 그녀의 위력을 실감하였습니다. 그녀의 견해에 따르면 시 낭송은 시인의 내면에 울리는 천상의 목소리가 우리의 목소리를 통해 다시 재현되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항상 나의 목소리로 시를 낭송한다는 생각을 하지말고 하늘이 주신 목소리로 진리를 전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야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 다음 그 목소리가 가슴으로, 또 가슴에서 팔 다리로 전이되어 내가 행하는 동작 하나 하나가 그 시의 흐름을 기억하여 무아의 경지에서 낭송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때 배웠던 시들이 그녀의 동작과 표정 그리고 손짓 몸짓에 실려 그대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스피치 강좌 한 과정이 끝났을 때 굉장히 서운했었는데 다행히도 마지막 2달간에 걸쳐 드라마(연극) 클라스에 그녀가 강좌를 또 하기로 했다고 하여 굉장히 기뻐하였습니다.
여기 로빈 교수가 항상 시 낭송의 모델로 여기던 ‘무지개’를 가르침을 받던 순서대로 번역과 함께 싣습니다.
“My heart leaps up - 내 가슴은 뛰노라”
“When I behold - 내가 바라볼 때”
"A rainbow in the sky - 저 하늘의 무지개를“
“So was it - 예전에도 그랬노라”
“When my life began - 내 인생이 시작되었던”
“So is it - 지금도 그렇노라”
“Now I am a man - 내가 어른인”
“So be it - 앞으로도 그럴 것이노라”
“When I shall grow old - 내가 더 살아 노년이 되어도”
“Oh! let me die - 오! 나를 죽게 내버려두길”
“For the child is father to the man - 왜냐면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이니”
“And I could wish - 그리고 난 원할 수 있겠노라”
“My days to be bound - 나의 인생의 날들이 어디엔 가 묶여있음을”
“Each to each - 하나 하나”
“With natural piety - 자연의 그 경건함에”
< 발도르프 학교의 교육과정1 - 저학년Lower school >
전에 이야기한 이곳 사범대학이 위치한 곳의 슈타이너 학교는 상당히 체계가 잘 잡혀있는 학교입니다. 30년 쯤 되는 역사가 그런 체계의 기초를 마련한 근거가 되겠지만 대학을 비롯한 발도르프 유치원 그리고 유기농 농장까지 운영하고있는 슈타이너 공동체 사람들의 노력 덕분입니다. 학교에서 연극공연이나 행사가 있기만 하면 공동체의 많은 학부모들이 삼삼오오 몰려와 관람하고 다과회를 열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근황을 물어가며 학생들을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는 풍조가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발도르프 학교의 교육과정의 하이라이트는 졸업평가에 있습니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졸업작품전이 되겠지요. 졸업반 학생들은 거의 다 졸업논문을 씁니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논문을 쓴다면 어색하겠지만 슈타이너 학교의 학생들은 논문을 어렵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발도르프 학교의 특징인 “자기교과서 만들기”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슈타이너 학교엔 교과서가 따로 없습니다. 굳이 교과서라고 한다면 교사의 강의 노트일 것입니다. 학생들에겐 빈 공책이 주어지지요. 예를 들면 식물에 대해 주기집중수업을 한다고 칩시다. 이 때 교사는 슈타이너 인지학에 입각한 관점에서 식물에 관한 근원적인 이야기를 해줍니다. 때로 식물에 관한 신화나 동화를 들려주고 그 이야기를 재구성하게 합니다. 그리고 교실에 있는 도서꽂이에는 이전의 주기집중수업 때 필요했던 책들 대신 식물에 관한 책들로 가득 찹니다. 그리고 그 주기에 도입되는 메인 레슨 과목에 대해 빈 노트가 주어지고 끝날 무렵에 학생들이 각자의 빈 노트를 각자 노력한 만큼 채워 한 권의 노트 교과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요. 이것이 고학년으로 올라가서는 일종의 논문이 되는 자연스런 과정이랍니다. 졸업작품 발표는 학생이 1년 간 주제로 잡고 연구한 결과물을 동료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모를 포함한 공동체 사람들(물론 당연히 제가 다니던 대학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 포함)이 참석한 가운데 발표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슈타이너 교육과정의 하이라이트로 가기 전에 단계적으로 밟는 평상시의 교육과정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것을 소개하겠습니다.
우선 1, 2학년 초등 저학년 단계에서는 역사와 문학, 그리고 언어가 한 과정 안에 들어 있습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많이 응용되는 동화와 신화 그리고 이야기를 통한 말의 리듬 익히기 등 심지어 기능과목인 그리기, 만들기(공작), 뜨개질하기, 유리드미, 노래부르기 등을 할 때도 같은 어구와 어절이 반복되는 옛이야기나 동시 같은 문학작품들의 응용이 주류를 이룹니다. 이에 따라 아이들도 신비로운 이야기 세계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역사와 언어 노래 춤 손 기능 등을 배우고 익히게 됩니다. 특히 알파벳 쓰기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한자를 배울 때와 같이 상형문자처럼 배웁니다. 예를 들어 알파벳 에프f를 배울 때 f 로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 fish 와 연관을 지어 글자를 익히게 하는 식입니다. 또 전에도 얘기했듯이 이 시기에 발도르프 아이들이 배우는 노래는 거의 펜타토닉 5음계 노래입니다. 반음이 들어가는 노래와 음악은 3학년 이후에나 배웁니다. 유리드미 춤은 모음에 따른 사람의 몸 동작 정도만 반복하여 배웁니다. 산수는 사람의 신체와 관련된 셈과 구구셈 그리고 하루의 시간계획 짜기나 용돈 쓰기 등의 실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를 갖고 있는 “생활산술” 위주로 배웁니다.
3학년이 되면서부터 성경이야기를 다룹니다. 역사와 문학으로서 말입니다. 그리고 모국어는 말본, 즉 기초 문법을 세워가기 시작하며 저학년에서 노래로만 접했던 외국어도 이 시기에서부터 배우기 시작합니다. 주로 관찰과 호기심정도로만 경험했던 과학분야도 교육과정으로 들어옵니다. 천천히 세상을 보는 시각이 자아에서 이웃으로 바뀌어 가고 이에 따라 주로 단선이나 대칭위주로 그리던 형태 그리기도 안과 밖을 잘 엮어 동적인 구조를 갖는 기하학으로 옮아오며 자기가 사는 동네의 지도를 그리는 것으로부터 시작한 지리과목은 나라의 주요도시 및 지역의 문화까지 공간적 영역이 점차 넓어지는 원리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또 짙은 삼원색 위주의 색을 쓰며 형태 없이 그리던 그림이 명암도 도입하고 색의 농도도 조절하며 형태를 갖춘 밑그림에 색을 주는 식으로 변화됩니다. 유리드미 춤은 자음에 따른 몸 동작 연습과 리듬 타며 걷고, 손뼉치며 뛰기 등도 숙련과정으로 배웁니다. 노래는 점차 7음계 동요를 배우나 여전히 펜타토닉을 선호합니다. 뜨개질은 십자수나 코바늘 뜨기, 공작은 점토나 나무로 간단한 형태를 갖는 사물이나 동물을 만들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산수는 기초 사연산(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을 배우되 전체개념을 중시하며 구구셈을 응용하는 문제도 도입됩니다.
5-6학년에서는 역사를 확연히 구분해서 배웁니다. 그리고 위대한 인물의 자서전을 통해 자신이 장차 살게될 인생을 그려봅니다. 모국어의 어휘가 늘면서 태(수동, 능동)와 법(명령, 가정, 직설)의 문법적 지식, 그리고 사전의 적극적 활용을 권유받습니다. 외국어 구문구조를 자국어와 비교하며 배우고 작문과 번역연습을 합니다. 과학적 호기심이 탐구심을 유발하는 시기인 만큼 과학은 자료를 많이 제공해줍니다. 동물학과 물리학의 기초를 이 시기에 배웁니다. 그림은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하고 바느질을 배워 인형 만들기나 간단한 옷 짓기도 해 봅니다. 노래는 반음이 도입된 7음계를 부르며 3부 합창을 많이 하게되며 리코더나 간단한 타악기도 함께 배웁니다. 유리드미 춤은 시Poems에 맞추어 추기 시작하며 수학은 비율을 배웁니다. 7학년 때는 본격 사춘기에 접어들어(빠른 사람은 5, 6학년에 이미 사춘기) 다소 서툴고 감정적인 행동양식을 보입니다. 사춘기의 행동은 거칠고 우아한 맛은 없으나 뭔가 자기인생을 찾고자 하는 자기주장과 도전의식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특히 여학생의 논리적 주장이 강해지기 시작하여 철학과 수학을 추상적인 개념과 함께 가르칠 수 있습니다. 슈타이너에 의하면 사춘기는 감정 몸Astral body에 실린 자기ego 체계의 시작입니다.
여기 까지가 슈타이너 학교 저 학년 과정의 교육내용의 대강입니다. 제가 공부할 때 받은 프린트 물을 참조했으나 좀 빠진 것도 있어 영문 프린트 자료를 번역하여 부록으로 싣습니다.(예정)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발도르프 학교의 교육과정2 - 고학년Upper school>
발도르프 학교의 고학년 교육과정은 우리로 말하면 중등학교 교육과정인데 8학년부터 12학년까지 5년의 기간을 갖습니다. (경우에 따라 9학년부터 12학년까지 4년의 고학년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도 있습니다.) 제가 자주 가서 보았던 뉴질랜드 호크스베이 타이쿠라 슈타이너 학교의 고학년 교육과정을 메인 레슨Main lesson내용을 위주로 해서 얘기하렵니다.
우선 크게 구분되는 영역은 예술과 역사 언어 그리고 과학분야의 물리, 화학, 지리, 식물, 생물학분야이며 이론 수학과 컴퓨터도 교육과정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8학년과 9학년에서는 르네상스의 예술과 역사를 다룹니다. 중세기의 영어 고전들인 시나 소설을 연극과 더불어 배우고 생물학과 식물학은 사람을 포함한 동식물의 해부학적 신체구조 및 생식기관 그리고 순환 등을 다루고 물리화학분야에서는 기계구조 및 액체의 힘을 이용한 운송, 그리고 음식과 관계된 유기화학분야와 체 지방 단백질 섭취 등을 배웁니다. 비교적 자신의 생활과 관련된 과학지식을 많이 다루고 있었습니다. 슈타이너 교육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의 하나가 ‘지리’입니다. 초등 과정에서 동네 지도 그리기로부터 시작된 인문지리는 무역과 문물이동, 전쟁 등 국가 간의 지리적 조건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배웁니다. 그리고 조금 더 고학년이 되면 지구의 탄생에 관련된 지질학적 지식도 공부하게 됩니다. 수학은 추상적 개념인 대수와 기하를 다룹니다. 제가 기능과목이라고 칭했던 그리기, 노래부르기, 유리드미 춤, 만들기(공작), 농장 실습도 물론 계속해서 배워나갑니다.
이곳 슈타이너 학교 고등과정에서 많이 배우는 것 중 눈에 띄는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나 그리스고전 그리고 중세 영시 및 소설 그리고 극작(괴테와 세익스피어 작품)등 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자주 연극무대를 마련하며 춤과 시 낭송 그리고 콘서트를 열어 공동체 사람들을 초청하였습니다. 10학년과 11학년의 과학 교육은 사람의 생명 현상과 신진대사 및 태아학 등이 메인레슨 교육과정에 있고 12학년 마지막에 가서는 원자물리학, 빛과 색, 무기화학, 물질의 패턴(원소주기율 포함), 천문학, 생태학과 지구순환(일종의 기상학)을 포함한 남반구 북반구의 통합적 지리학을 배웁니다. 예술분야에서는 건축과 특히 뉴질랜드의 원주 족Maori의 문화적 유산 등을 다룹니다.
이 부분도 번역을 하여 부록으로 제시할 예정입니다.
< 가족과의 재회 >
전반기 슈타이너 교사 교육과정이 끝이 났습니다. 저는 전반기 마무리에 우리나라의 단군에 관해서 대본 없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더듬지 않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10개국이나 되는 많은 나라에서 온 학급동료들에게 한국과 한국의 역사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전하고 그 느낌들을 공유하게 되어 내심 기뻤습니다. 물론 저도 다른 나라 학생들의 발표를 통해 그들의 특색 있는 문화를 많이 접하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저는 굉장히 배우는 것이 많았고 정말 우연치 않게 이곳에 와서 내가 해야할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며 지냈습니다.
이제 7월이 되어 우리는 3주간의 방학을 맞이했고 어떤 학생들은 자기나라로 잠깐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가족이 온다고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아내가 일하는 단체에서 아내에게 2달 가량의 휴가를 허락했던 것입니다. 원래 아내는 내가 공부 마칠 무렵에 한 달 휴가를 내어 이곳에 와 여행하며 보내다 함께 귀국을 하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학교를 안가도 되는 여름방학을 틈타 중간에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난 기쁜 마음에 가족이 오는 전날 혼다시빅 중고차를 몰고 500km나 되는 오클랜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길을 잘 못 들었습니다. 고지대인 타우포Taupo를 거쳐 중간기착지인 해밀튼Hamilton을 갔어야 하는 데 이상하게도 바다가 보이는 해변길이 끊이지 않고 자꾸만 나왔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차를 세우고 지도를 살피니 갈래 길에서 다른 길을 접어들어 한 참을 지나왔던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여행자 정보센터에 들러서 길을 물으니 평탄한 길로 가려면 여태까지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포장 산길이 있는 데 경치는 멋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려 권하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저는 기왕 온 길이니 길 안내 책자를 달라고 하여 산길을 접어들었습니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 참을 달리는 데도 마주 오는 차 하나 없이 한적한 도로였습니다. 아스팔트 포장길은 끝난 지 오래고 한참을 시멘트 포장길을 달려 커다란 목장이 있는 곳에 이르니 드디어 비포장길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차가 오래되어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섰으나 하루 일찍 서둘러 나선 길이니 천천히 차를 달래어 가며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며 갔습니다. 우리나라 속리산 말티 고개나 설악산 미시령 고개 길을 상상하면 될 것입니다만 자갈이 깔린 비포장도로라 한없이 길고 또 멀었습니다. 오르고 내리기를 수십차례 이제 끝나려니 싶으면 또 내려가고 다시 오르길 또 수십 차례, 이제는 다 왔겠지 하는데 비교적 평평한 길이 나왔습니다. 이 길은 다름 아닌 산꼭대기의 능선 길로, 조금 더 가니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가 나타났습니다. 그 호수 이름은 와이카레모아나Waikaremoana 라고 하는데 그 풍치가 빼어나 차에서 내려 한참을 넋을 놓고 구경하였습니다. 우리나라 제주도의 정방폭포의 두세 배쯤 되는 폭포도 구경하였습니다. 저는 뉴질랜드의 산중에 홀로 외로운 은자가 되어 생시가 아닌 듯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반이었지만 초겨울에다 산중이라 날이 저물기 시작하는 것 같아 몹시 불안하였습니다. 서둘러 승차하여 다시 길을 재촉하는 데 맞은 편에서 차 두 대가 지나갔습니다. 좁은 길에서 얼핏 손을 들어 인사를 하니 그 쪽에서도 오케이 사인을 하며 얼마 안 남았다는 몸짓을 하였습니다. 그 뒤로 계속 내리막길을 달려 테와이티Tewaiti 라는 한적한 산골마을 시냇물 가에 열 받은 자동차를 위해서 휴식을 한 번 취한 것말고는 쉬지 않고 달려서 드디어 중간 기착지인 로토루아Rotorua에 도달하였습니다.
로토루아는 뉴질랜드에서도 온천으로 유명한 관광도시인데 그렇지 않아도 가족이 오면 한 번 들려볼까 하던 차에 이곳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마음을 먹고 답사 겸 온천욕도 하기로 하고 백패커(일종의 값싼 유스호스텔)에 들었습니다. 짐을 풀고 밖에 나오니 7시가 약간 넘은 시각이었습니다 배가 고파 식당을 찾으니 마침 한글로 종가집이라고 되어있는 한식당이 눈에 띄어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식사를 하였습니다. 관광지라 그런지 많은 아시아계 사람들이 거리 곳곳에 있었고 그 한식당에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 오랜만에 한식을 맛있게 먹고 다시 숙소에 돌아오니 같은 방에 한국인 학생이 한 명 있었습니다. 그 학생의 이름은 정태경이라고 했습니다. 호서대학을 다니는 데 어학 공부하러 1년 정도 남섬에 머물다가 귀국을 하기 전에 관광지를 돌아보는 중이었습니다. 그 학생과 한참을 얘기하다보니 온천욕을 하려던 계획이 어긋나 그냥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들기 전에는 내일이면 가족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껏 살면서 가족과 이리 오래 헤어져 있던 적이 없었으니까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베이커리에서 파이와 빵을 사서 차안에서 먹고 곧 길을 떠났습니다. 이직도 공항까지는 230km 정도가 남아있었습니다. 도중에 해밀튼에서 오클랜드에 머물고 있는 민들레 독자회원이신 이옥금 선생님께 연락을 취하였습니다. 이 선생님께선 반가운 마음에 당신도 공항까지 나오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선생님은 제가 다니는 대학에 등록하여 슈타이너 공부를 하실 예정이었습니다. 오클랜드에서 점심을 먹고 공항으로 가니 1시쯤 되었습니다. 한 30분쯤 있으니 이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다 공항 출구 쪽에 가서 가족이 나오길 기다리니 드디어 안보는 새에 키도 크고 살이 오동통하게 오른 아이들 얼굴이 시야에 확 들어오고 언제나 그렇듯 편안한 듯 보이는 아이엄마가 나타났습니다. 아이들과 저는 몸이 부서져라 꽉 껴안고 한참을 있었습니다. 곧 이어 아내와도 포옹을 하니 너무 기뻐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이 선생님과도 가족들이 인사를 한 다음 공항 주차장으로 나와 대기해놓았던 차에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을 태우고 대학이 있는 곳으로 출발을 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 타이쿠라 슈타이너 학교 소개 >
전에도 말했다시피 대학이 위치해 있는 이곳의 발도르프 학교인 타이쿠라Taikura 스쿨은 수시로 저희 예비 학생들과 접촉을 하였습니다. 심지어 유리드미 수업과 보스머 짐-체육수업은 이 학교의 큰 체육관에서 주로 진행되었습니다. 가끔은 유리드미 전공을 하신 교장선생님께서 저희를 직접 지도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참 우아하고 기품이 있는 선생님이셨습니다.
이 학교는 뉴질랜드의 교육부 인정을 받는 학교입니다. 3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 발도르프 유치원과 초등Lower, 중등Upper 과정이 있고 교사회와 학부모회 그리고 슈타이너 공동체 후원회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이 학교 소개 책자에 나와있는 내용을 번역하여 제공합니다 ;
1. 유치원 - 유치원 교사는 아이들에게 자발적인 활동의 자유를 누리도록 아늑함과 따듯함으로 보살피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하는 것을 모방하며 경험과 놀이 속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낍니다. 놀이는 진지한 사업입니다. 놀이는 스스로 성장하며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것은 그림 그리기와 만들기, 요리하기, 집짓기, 바느질하기 등을 포함하며 매우 실용적이고 흥미롭습니다. 또 여기에다 이야기 듣기와 리듬 익히기, 율동 곁들여 노래하기, 연극과 축제놀이 등이 함께 어우러집니다. 유치원을 다니는 동안에 아이들은 선한 생각을 갖는 어른들에 대한 모방을 통해 삶에 대한 존경심을 배웁니다. 그러니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선함을 갖춘 선생님과 그 분위기입니다. 나중에 이것은 우리의 문화적 삶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더불어 사는 자유와 고결함의 기초를 제공해줍니다.
2. 초등Lower 과정 - 만 6세에 이른 아이들은 보다 공식적인 학습을 준비합니다. 즉, 쓰기와 읽기 그리고 수학과 같은 중요 기능을 익히는 것이지요. 그 접근법은 살아있고 상상력이 풍부한 것이라야 합니다. 글자 쓰기가 무엇보다 중시되며 그것은 아이들의 의지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움직임으로서 뛰기, 걷기, 손놀림 등과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움직임들은 또한 소리에 따라 글자의 모양이 됩니다. 쓰기는 또 알파벳의 추상적 글자 속에 담긴 구체적인 그림 및 상상으로 시작됩니다. 읽기는 신화나 동화의 구연동화Story telling을 통해 듣기와 병행하게 됩니다. 산술은 생각하는 기능의 내적인 세계와 움직이는 기능의 외적세계를 결합하는 이야기로부터 출발합니다. 상상력의 내적 활동은 동작과 움직임의 외적 활동에 참여합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의 경험세계는 전체성을 유지합니다. 이야기 속에 드러나는 즐거움과 슬픔, 계절의 변화와 자연에 대한 감각, 기예와 음악과 신체동작의 조화는 아이들의 감각적인 느낌들을 발달시켜줍니다.
7년 학급담임과 집중 수업Main lesson 은 발도르프 학교의 두 가지 뚜렷한 특징입니다. 지속성을 통하여 학급 담임은 아이들의 신뢰와 애정과 존경심을 상호 교환합니다. 이것이 아이들에게 내적인 권위에 대한 의식과 미적 감각 그리고 갈등상황에서의 올바른 것에 대한 평형감각을 키워줍니다. 자신에 대한 확신과 안심되는 마음이 잘 기초가 닦여져 후에 민주사회의 기초로서 인간의 존엄과 권위에 대한 평등함을 얻게되는 초석이 됩니다. 집중수업은 아침에 2시간 가량 이루어집니다. 학급담임과 아이들은 하루의 첫 두시간을 함께 합니다. 그 시간은 집중적으로 3-4주 계획을 요하는 여러 가지 활동으로 할애됩니다. 이것이 일년 내내 각 주제들에 대해 달굼과 풀림의 리듬을 타고 아이들의 발달과정을 돕습니다. 초등과정의 아이들에게 있어서 교과서는 필요치 않습니다. 대신에 교사는 여러 자료들을 준비해서 생생하고 현실감 있게 조직합니다. 과목들은 아이들의 나이에 따라 다릅니다. 역사를 가르치기 전에 저학년들은 각 문화권의 초창기의 지혜가 담긴 신화와 전설, 그리고 동화를 배우고 지리와 동물학은 저학년에서 고학년으로 올라가는 시기에 도입이 됩니다. 역사와 식물 수업은 고학년인 5학년부터 배우게 되고 물리와 지질에 관한 과목은 6학년 이후에 배웁니다 하루의 나머지 시간은 매주 짜여지는 시간표에 의거하여 운영이 되는 데 주로 언어(외국어 포함), 음악, 손 기능, 만들기, 유리드미 춤, 보스머(봉) 체육, 농장실습, 원주민 마오리 문화 등을 배웁니다.
3. 중등Upper 과정 - 약 만 13세 이후의 아이들은 새로운 사고방식이 싹이 틉니다. 청소년기의 초기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보다 개성적인 성격으로 발전합니다. 예를 들면 이상에 입각한 비판적이며 독립적인 생각을 하게되며 이성과의 사랑에 대해 관심을 보입니다. 이런 저변에 기초해 한 편으로 자기가 삶과 세계에 주변적인 위치에(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시기입니다. 이럴 때 아이들은 교사와 어른의 도움이 진정 필요한 때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배우고 있는 과목에 대한 철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춘 분에게로부터 배울 시기입니다. 그리하여 중등과정의 선생님은 전문교사(과목 전담교사)를 둡니다. 그 전문교사는 아이들에게 호기심을 촉발시키며 진리를 향한 생각을 키워 그들의 민감한 상상의 세계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게 합니다. 이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분석과 추리를 가르치며 전체적인 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잃지 않도록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가치관을 열어가게 돕습니다. 학생들은 일상적 행동을 도와주던 학급담임에서 전문 교사중의 한사람이 학급후견자가 되어 맡게 됩니다. 이 청소년 시기에 그들은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알고 몰두할 수 있는 어른과 함께 접촉함으로서 진리를 향한 용기를 얻고 따듯한 사람이 되는 법을 터득합니다. 이 만남은 청소년들에게 세계와 인생에 대해 그리고 직업관과 자신의 인생관의 조화로운 관심과 다른 이들에 대한 동정심의 기초를 쌓게 됩니다.
학생들이 기초가 제대로 되어있는 폭넓은 교육을 통하여 큰 혜택을 입는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언어와 수학, 과학, 지학, 역사, 미학, 시와 음악, 건축과 연극, 기예와 공작, 목공, 응급구조, 유리드미 춤, 보스머(봉) 체육, 원주민 마오리 문화와 예술 등의 과목을 통해 집중 수업 기간과 주별 학과시간에 학생들마다 제공받는 교육과정은 그러한 혜택을 제공합니다.
끝으로 졸업반인 12학년에서는 학생들은 “졸업 프로젝트”로 알려진 개인 논문을 1년 과업으로 수행을 하게되는 데 이것은 해당 분야의 선생님으로부터 지식적인 인증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삶의 관심과 열정까지 주위의 어른들로부터 인정받는 하나의 성인 축제로서의 교육과정입니다.
4. 타이쿠라 슈타이너 학교에 대한 몇 가지 흔한 질문과 답변
질문 : 다른 학교에 비해 아이들에게 읽기를 늦게 가르친다고 하는데 왜 그렇습니까?
답변 : 어린 아이에게 읽기를 가르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 아이에게 좋은 것일까요? 학습이 마음에 대한 관계는 음식이 몸에 대한 관계와 같습니다. 마음의 양 식인 교육은 몸의 양식인 음식처럼 주의 깊게 선택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제공 되는 활동과 놀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공장에서 일하도록 더 이상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그들에게 좋은 것이 아님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린 아이들이 이른 시기에 읽기를 배울 수 있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좋은 양식이 된다는 보장은 없음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첫 7년 기의 아이들은 건강한 신체를 단련하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운동을 하며 자신감과 협동 그리고 몸 동작 기술을 익힙니다. 이러한 활동으로부터 특히, 일을 모방한 놀이로부 터 지적인 능력이 점차 자라납니다. 신체단련의 주요과업이 첫 이빨갈이로 완성이 되면 서 서히 아이들에게 읽기 학습을 시킵니다. 기다려서 잃게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요. 아이 들은 읽기를 시작한 후에도 잘 선별된 놀이와 활동을 통하여 신체의 균형을 유도하며 불 균형 문제에 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준비가 되면 그들의 읽기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달됩니다.
질문 : 슈타이너 교육 강연을 부모들은 공부해야 합니까?
답변 : 아닙니다. 그러나 이 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위해서라면 학교의 독특한 성격과 연계성을 가 질 필요가 있습니다. 학부모들은 학교 공개의 날과 수련회 날 같은 때에 슈타이너에 대한 강좌에 참여하거나 슈타이너의 교육에 관한 책자를 보게 될는지 모를 일입니다. 슈타이너 의 교육과 여타 다른 분야에 대한 연구를 흔히 인지학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아이란 무엇 인가? 아이들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모색으로 교사가 활용하여 쓰고 있는 지식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아이는 녹음을 필요로 하는 공 테잎도 아니고, 조작돼야 하는 기계도, 길들여야하는 동물도 아닙니다. 발도르프 학교에서 교사들이 인식하고 있 고 교육의 근거로 삼고있는 그러한 견해가 슈타이너의 저작에서 비롯됩니다만 이러한 것 을 부모님이나 학생들에게 배우라고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질문 : 개별적인 아이의 특별한 요구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습니까?
답변 : 중요한 것은 균형입니다. 대단히 현명한 아이는 자신의 현명함이 인식되길 바랍니다. 그리 고 그것이 보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독점적으로 학구적인 교 육을 추구해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와 반대로 그는 그의 정서 생활이 잘 배양 되길 바라는 강한 욕구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꾸준한 방식으로 과업을 수행하는 법 을 배우고 그것을 잘 마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각 수업은 정신적 자극을 줄뿐만 아니라 전념하는 활동에 대해 감정적인 호소력을 갖기도 합니다. 그러나 체육과 같은 수업들은 신체적 활동이 지배적이며 수학과 같은 다른 수업들 은 생각하는 활동, 예술과 같은 수업들은 감정이나 정서반응에 집중됩니다.
말을 더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어 연습이 필요한 그러한 특정활동에 대한 특별한 요 구에 대해서는 전체 학급이 그 연습을 실시함으로서 해결이 가능할 것입니다. 학급 또한 그 것으로부터 혜택을 입을 것입니다. 개별요구에 대한 보충적인 도움은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방식 속에서 다루어져야할 몇 가지 공통적인 성격유형과 기질분류를 통해 이루어질 것 입 니다.
<홍콩의 선배학생 모리스>
모리스는 홍콩에서 온 실습학년(2년차)학생이었습니다. 키는 작고 야채 식을 하는 선한 성품의 소유자로서 여러 가지 슈타이너에 관한 해박한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첫 방학 때 오클랜드에 함께 가서 여기저기 다니기도 하였습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 학기가 되면서(우리나라와 계절이 반대임을 주의) 가지고 있는 돈이 부족하여 모리스는 버섯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는데 길이 멀어 내가 타던 자동차를 싸게 넘겼습니다. 저도 가족이 다녀가고 이제는 학교와 도서관만 다니는 데 자전거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모리스는 내게 자동차 운전하는 것까지 연습시켜 달라고 요구를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한 일주일 정도 연습을 시켜주는 데 굉장히 조심스러운 성격대로 꼼꼼히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의 장점은 나름대로 연습을 많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로 40이 되어서도 저렇게 뭔가 열심히 배우고 익히려는 습관이 붙어있는 것이 굉장히 본 받을 만 하였습니다. 슈타이너 공부를 마치고 교사자격을 얻게되면 한국에 한 번 온다고 벼를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지요. 얼마 전 소식을 들었는데 영국의 수도원monastery 학교에서 주방 일도 하고 아이들도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가 말레이시아 계로 그곳에 사신다고 한 번 가 뵌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는 그는 좁은 홍콩의 울타리를 벗어나 전 지구를 여기저기 다니며 사는, 결혼을 한 적이 없는 그 나름의 자유인이었습니다.
<만들기>
2학기 교육과정 중에 핸드 크래프트, 즉 손 기능 익히기 시간이 있어 저희는 뜨개질과 십자수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얼마나 서툰지 작은 것 한가지 뜨는 데 며칠이 걸렸습니다. 저는 겨우 코끼리 인형하나 만들어 놓고 십자수를 하겠다고 방향을 바꾸었지요, 그런데 웬걸 십자수는 뜨개질 보다 더 어려웠습니다. 정말 뜨개질이나 십자수는 어려서부터 인내를 갖고 해야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사유하는 능력과 문제 해결하는 능력이 길러진다고 합니다. 40나이가 되도록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뜨개질은 정말 내겐 큰 도전이었습니다. 어쨌든 제가 해야하는 손 기능 익히기 최초의 과제는 십자수를 활용한 “필통 만들기”였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거북선 모양을 기억해 그것을 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휴일이 하루 끼어 있어서 기한 내에 십자수 필통을 만들어 낼 수 있었지요. 시장에 가서 지퍼도 사서 달고 바늘과 색실을 사서 모양도 내고 하여 이곳 슈타이너 학교의 아이들이 그렇게 하듯 제 필통은 제가 만들어 썼습니다. 발도르프 학교에선 전 세계적으로 자기의 소품들은 스스로 만들어 씁니다. 학교 교육과정에 들어있기도 하거니와 각기 자기 스타일대로 만든 예술적인 자신의 물건에 대해 갖는 자부심 때문이기도 합니다. 고학년들은 옷도 스스로 지어 입습니다. 남녀 학생 불문하고 목공, 석공뿐 만 아니라 쇠 가공까지 배우는 학교도 많습니다. 학년 말 무렵에 저는 목공을 통해 조그마한 손 하프-lyre도 만들고 위빙weaving- 실잣기와 심지어 목도리 뜨기도 하고 그리고 진흙을 빚어 만드는 부는 악기인 옥까리나를 만들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지내고 나니 참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보낸 시간>
가족이 와서 좋은 반면에 공부하는 시간이 좀 줄었습니다. 가족이 왔다는 말을 학급 동료들에게 했더니 토요일에 기숙사에 초대를 하여 주었습니다. 기숙사 학생들과 저희 가족은 아주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일요일에는 스피치 강의를 하시는 로빈 선생님께서 초대를 해서 김치를 싸 가지고 가서 그곳에 있는 장애인들과 함께 맛있게 식사를 한 후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다 왔습니다. 로빈 선생님은 우리 아이들이 노래를 너무 잘 부른다고 연신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주말에 이곳 대학의 사자자리 생일인 사람들이 모여 Leo Carnival을 열었는데 사자좌 태생인(8월 전후) 저도 인데라와 함께 주관자로 참석했습니다. 아내와 난 미역 된장국을 끓여갔는데 파티에 오신 분들이 맛있다고 잘먹어 아내가 무척 좋아하는 눈치였습니다. 아이들은 오자마자 여기저기서 파티에 초대받아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도 싫지는 않은지 비록 말은 안통해도 파티 분위기에 잘 적응하며 그곳에 온 다른 아이들과 정원으로 방으로 뛰어다니며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일요일에는 이곳 성당을 갔다가 점심을 싸들고 근처 바닷가나 학교 뒷산 티마타산에 올라가기도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외국영화에서나 보는 윈드서핑과 행글라이딩하는 모습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자기들도 크면 해보겠답니다. 대학 정원사 아줌마 글리니스Glynis가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여 요리도 해주고 타일모자이크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하였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녀가 아이들에게 스플래쉬 플래닛Splash planet(아이들 놀이 시설)을 가보라고 부추기는 바람에 그곳에 가서 돈 좀 쓰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국내보다 피자 값이 무척 싸서 가끔 피자 집에 가서 저녁식사로 피자를 먹기도 하였고 1주에 한 번은 데어리 숖을 하는 손성목 씨네 집에 왕래하면서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어느 날은 차로 30분 쯤 가는 관광도시 내이피어Napier에도 나가 영화도보고 어린이 골프장과 수족관 구경도 하였습니다. 옷 장사를 하며 그곳에 사는 엄대용 씨가 한 번 초대하여 밤늦게 까지 포도주를 한잔하며 고국 얘기, 사는 얘기를 하며 동포애를 느껴보기도 했습니다. 교포 분들과 어울리게 되면 아내는 맘대로 말을 할 수 있어 그렇게 편하고 즐거울 수가 없다고 하며 왜 영어 때문에 우리가 이 고생을 해야 하는 지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을 지금도 합니다. 그런데 가족들이 온지 한 달쯤 되는 때 오클랜드에 있는 슈타이너 학교로 실습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가족이 모두 가서 그곳의 학부모가 소개한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하필 이 때쯤이 우리나라 장마철에 해당되는 우기라서 관광은 별로 하지 못하였습니다. 오클랜드로 가는 도중에 와이망구라는 화산 지대에 들러서 공룡시대 때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뜨거운 연기가 피어나는 호수와 산들을 보았습니다. 또 오클랜드 시내에 있는 몇 군데 공원을 돌아보았는데 비교적 높은 지역의 한 공원은 150여 년 전 이곳의 원주민인 마오리 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이 승전 기념으로 나무를 한 그루 심었다고 해서 공원 이름이 원트리One tree 힐이었습니다. 실습하던 학교가 일찍 끝난 어떤 날 가족과 함께 그 공원에 올라보니 나무는 없고 기념탑만 있었습니다. 작년에 마오리 청년들이 밤에 그 나무를 베어버렸다고 합니다. 아직도 마오리 사람들은 이주민인 영국과 유럽사람들 그리고 최근에 많이 이민 온 아시아계 사람들에게 텃세를 부리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 마오리 족도 오륙백 년 전, 그들 보다 더 오래된 원주 족을 몰아내고 이곳에 들어온 이주 족이라고 합니다. 역사란 참 재미있지요?
<비싼 자장면>
뉴질랜드 최대 도시인 오클랜드에서 슈타이너 대학이 있는 곳까지는 차로 6시간 걸립니다. 두 곳 다 북 섬에 있지만 우리나라 서울과 부산거리보다 약간 더 긴 거리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고속도로가 없습니다. 오클랜드시내의 순환도로나 외곽으로 빠지는 도로가 고속도로에 준하는 큰 도로 일뿐 정작 지역을 오가는 도로들은 그냥 한가한 국도이지요. 교통량이 많지 않으니 그냥 그리 넓지 않은 도로를 오랫동안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도로의 폭은 넓은 데 장차 도로를 확장할 계획으로 중앙 부분의 여지를 넓게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 키 작은 나무도 심고 잔디밭도 가꾸어 놓고 하여 굉장히 미관이 아름답습니다. 물론 도로 양쪽도 대부분 녹지와 삼림 그리고 광활한 목장들로 끝없이 이어져 있어 아무리 여러 시간을 운전해도 피로감이 덜한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한 가지 이곳의 도로가 위험한 것은 우리나라처럼 도로를 거의 평탄작업을 해놓은 것이 아니라 지형이 생긴 그대로 도로를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일직선으로 쭉 뻗은 상하 굴곡 길을 가다보면 안 보이던 차가 갑자기 쑥 올라와(상대방 차 입장에서도 서로 마찬가지) 나도 모르게 가끔씩 깜작깜작 놀라게 됩니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익숙해 져서 그런지 별 탈 없이 잘 다닙니다. 한적한 길에서 추월을 습관적으로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한 번은 오클랜드에서 학교 실습을 마치고 다시 대학교로 가게 되었는데 시내를 빠져나가다가 한국인 식당 가에 가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오클랜드 대학 근처였는데 자장면 메뉴가 보여 도로변에 주차를 하고는 잠깐동안 맛있게 자장면을 시켜 먹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차에 돌아와 보니 주차 위반 벌금딱지가 붙어있네요, 이곳은 불법주차나 시간위반 주차는 여지없이 딱지가 붙습니다. 경찰에서 위탁한 업체의 주차관리요원이 항상 도로에서 근무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 그 자장면의 값이 얼마였겠습니까? 한 그릇 4천 원 그리고 벌금 3만원 해서 삼만 사천 원 되겠슴다!! (으 속 쓰려---)
<고마운 사람들>
드디어 가족들이 두 달 가량 머물다 오클랜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떠났습니다. 막판에 아이들이 감기 몸살에 걸려 약국이다 슈타이너 생약(웰레다Weleda 허브 메디신)이다 하고 정신 없이 뛰어 다녔는 데 결국 슈타이너 학교 의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울리히 두에링' 이라는 이름의 독일 출신 젊은 의사는 제가 어렵게 유학한다면서 약값도 거의 받지 않고 진료를 해 주었습니다. 돌아와 고맙다는 감사의 편지를 즉시 올렸지요. 지구상의 어디에 가나 어려울 때 도와주는 마음 따듯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아무튼 공항에서 가족이 탄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 지키고 있다가 멀리 보일 듯 말 듯, 비행기를 향해 영화에서처럼 손을 흔들어 작별을 하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그런데 이 날 돌아오던 길에 라디에이터가 열을 많이 받아 차가 멈추었습니다. 차 고치는 곳에 가서 물어보니 수리비가 차를 산값보다 더 들 정도입니다. 난감하여 그냥 차를 세워놓고 한 참 열을 식히고 물도 다시 붓고 하여 천천히 운전을 하며 갔습니다. 그러다가 또 한 차례 차가 멈췄습니다. 멈춘 김에 한가한 도로변이라 한 숨 자고 갈 요량으로 운전석 의자를 뒤로 제치려는 순간 조그만 화물차가 한 대 멈춰 섰습니다. 기계공인 듯한 두 사람이 내려 다가오더니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묻습니다. 나는 순간 경계심이 생겨 별일 아니라고, 차가 좀 열을 받아 쉬고 가려고 한다니까 아까부터 차를 조심스럽게 모는 것을 보니 이상이 있는 듯하여 따라 왔다고 하면서 자기가 봐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계속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수리할 돈이 별로 없다고 괜찮다고 하였더니 돈 걱정은 하지말고 본넷을 열어보라고 합니다. 할 수 없이 마지못해 하는 척 열어 주었더니 팬은 돌아가느냐? 한 번 시동을 켜 봐라! 고 요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동을 켜보니 냉각 팬이 돌아가지 않는 것 아닙니까? 시동을 끄고 그 사람들이 자기 차에서 몇 가지 도구를 가져오더니 선을 연결하였습니다. 그리고 시동을 다시 켜니 이젠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하다 못해 전기선 값이라도 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저 더러 "만일 누가 당신처럼 곤경에 빠지면 그 사람을 도우면 된다. 그게 우리에게 보답하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라고 말하고 서둘러 차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떠나며 내 이름을 물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 온 "구모"koo mo 라고 약식으로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은 반색을 하며 그거 한국산 타이어 이름과 똑같은 이름이다 하고 껄껄껄 웃었습니다. 돌아오며 차에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금호 타이어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저는 그 사람들의 이름도 물어보지 못하였습니다. 오클랜드 북쪽지역 어디에 산다는 얘기만 얼핏 들었을 뿐입니다. 아무튼 외국에서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도움을 많이 받은 것을 생각하면 저도 남에게 빚을 갚으며 살아야할 것 같은 생각이 많이 듭니다.
<다시 도진 향수병>
다시 8, 9월 3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젠 본격적으로 공부에 매달릴 시기가 온 것입니다. 특히 내게 맡겨진 프로젝트 수업이 9월에 있었습니다. 지리Geography에 관한 수업인데 슈타이너의 교육원리와 철학에 맞게 계획을 짜서 실제 학생들과 수업하듯이 하여야 하는 과업이어서 부담이 많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저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두 달 가량 함께 지내던 아내와 아이들이 가고 난 뒤 그 빈자리가 그렇게 클 수가 없더군요. 특히 우리 아이들이 뛰어 놀던 하바록 도메인(공원)에 있는 저전거 트랙과 대학 주차장 마당을 지날 때마다 아이들이 까르르 하고 울고 놀던 모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시무룩하여 공부를 그만 접고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그런 날은 밤에 무사히 도착한 아내와 아이들과 긴 통화를 하고 서로 아쉬워하며 지냈습니다. 통신이용료가 많이 나왔긴 하지만--- 한국인들은 어디가나 향수병에 시달린다더니 그 말이 맞는 가봅니다.
<인지학>
하루는 대학의 역사학교수인 이네케Ineke 선생님께서 한국의 슈타이너 학회에서 보내왔다며 책을 한 권 보여주었습니다. 제목이 행동하는 정신(spirit in action)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과천에 사무실을 둔 그 학회 실무자 전은진씨가 보낸 편지도 보여주셨습니다. 교수님은 다 보고 돌려달라고 하시면서 그 책을 저에게 주셨습니다. 저는 고국소식이 반가워 그 날로 그 책을 다 읽었지요. 그 중 일본 인지학회 사무국장 “유지 아게마츄”라는 이의 ‘자유의 신비와 미카엘 시대’라는 글에서 제가 뭔가 느낀 바가 있어 기록을 남깁니다. 그(유지 아게마츄)는 독일 인지학회에서도 인정받는 학자중의 한 사람인데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시대구분법(인도문명을 시발로 한 서양의 역사와 문화적인 흐름의 구분; 대략 2000년 단위로 분류됨 -제 1 에포크 인디언 에포크 B.C 7300 - 5150/ 제 2 에포크 페르시안 B.C 5150 - 3000/ 제 3 에포크 이집트·칼데니언 B.C 3000 - 800/ 제 4 에포크 그리스·로만 B.C 800 - A.D 1500/ 제 5 에포크 앵글로·저먼 A.D 1500 이후 - /이후 어메리칸, 러시안 에포크 순으로 제 7에포크 까지)에 따라 제 5 에포크 시대의 시작 시점인 서기 1500년에서 - 1700년대의 동양의 인식혼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중국의 왕양명을 들어 그의 천상세계의 원리와 지상세계의 삶을 조화시키려는 노력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왕양명)는 학문을 통해 고위관리가 되긴 했지만 37세 때 모함으로 인한 귀양살이 도중 “심즉리(心卽理)” “지행합일(知行合一)” “만물일체(萬物一體)”로 알려진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면서 높은 학문적, 정신적인 일가를 이루게 된다고 합니다. 말년에 묘족반란이 일어나 혼란한 가운데 병을 얻었는데 양명은 죽음을 앞두고 “무선무악시심지체(無善無惡是心之體)” “지선지악시량지(知善知惡是良知)” “위선거악시격물(爲善去惡是格物)” 이라는 혼신을 다한 언설을 제자들 앞에서 하였고 치량지(致良知-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선천의 판단이나 의지), 격물치지(格物致知-물리 트임을 통한 인간의 자연적이고 본래적인 마음 작용인 양지를 발현시킴) 에 대한 큰 사상을 완성하여 이후에 양명학이란 이름으로 동양의 유학과 실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저의 개인적인 동양학적 관심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에서 제 5 에포크 시기 1500년경에 유학의 큰 석학이자 “깨달은 이”인 조선조의 “퇴계 이황”선생이 인식혼 시대의 또 다른 동방의 빛 역할을 했던 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양명학도 그렇지만 퇴계 사상의 흐름도 우리고유의 선사상과 대립·상보하면서 조선 중기 이후의 실사구시의 학풍인 실학으로 이어지다 조선말의 혼란한 시기를 거쳐 그 학맥이 끊기는 조짐을 보이나 최근에 다시 새로운 세계의 보편적 철학과 사상으로 되살아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것이 지금 와서 저희가 슈타이너의 인지학을 새로운 학문이나 사상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뿐이 아닌가 하는 근본적인 성찰을 해봅니다. 달리 말해 우리는 이미 인지학을 실학을 전후한 시기에 거의 완성시켜 조선말에 동학을 중심으로 세상에 펼치려다 소심한 정권유지 세력에 의하여 민생이 피폐되고 국력이 약해지면서 시기를 놓치기도 하고 서양학문의 홍수 속에 묻혀서 소홀히 하고 말았던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 이후 한 세기가 지나 멀리 남쪽에 있는 나라에 와서 역사교수님이 건네준 책을 통해 오히려 그런 새로운 자각을 하였으며 이에 우리의 전통사상에 자부심을 더욱 갖게되었던 것 같습니다. 동양인지학이여! 새롭게 태어나라! (이 대목에서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편협한 것은 아닐까 늘 경계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슈타이너가 말하는 사람의 12가지 감각들Senses>
저의 글이 다시 학구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사람의 감각이 오감이다 육감이다 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12개 감각 설을 주장하는 슈타이너의 이 독특한 감각이론은 괴테의 색 이론Colour theory 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개념이라 재미가 없을 지라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인지학적인 관점에서 사람에겐 12가지 감각이 있다고 합니다. 접촉감Touch sense 을 필두로 마지막의 자아감Ego sense 까지 사람이 흔히 갖는 ‘의지’와 ‘감정’ 그리고 ‘사고’의 커다란 카테고리로 엮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의지힘will force'을 발휘하고, 그 의지력은 개체로서의 나와 별도로 구별이 되는 다른 것에 닿으려고 하는 접촉touch감 과 움직이고자하는 동movement감, 몸의 균형을 잡으려는 평형balance감등으로 발현이 되어 이것들을 종합하여 생명감각Life Sense 이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감정힘Feel force‘에 해당되는 냄새smell, 맛taste, 보기sight 감각이 있고 다소 생소하겠지만 덥고 춥고 한 것을 느끼는 온도감각temperature sense 가 있습니다. 이 온도 감각은 외부온도가 사람의 체온과 정확히 같을 땐 작동하지 않으며 그 보다 높으면 더움을, 그보다 낮으면 추움을 느끼는 감각입니다. 이 감정힘Feel force 영역 속에 우리들의 오감기관의 비밀이 숨어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감각기관인 ’시각‘에 관해 살펴보면 흔히 ’빛이 우리 눈 안으로 들어와 역상을 맺고 그 역상이 다시 뇌에 전달되는 과정에서 정상이 되면서 우리가 물체를 인지하게 된다’ 라고 알고 있는 데 빛을 보는 감각인 시각은 사실 무감각한 대상물을 유감각한 우리의 기관이 작용하고 발동하여 보는 수동-능동의 관계가 아니라 대상물 또한 안 보이는 어떤 기체와 같은 물질을 내어보내 그 중간지점에서 빛깔(색)을 창출하는 능동-능동의 관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것을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빛이 있어 시각이 있고 소리가 있어 청각이 있으며 물체가 있어 촉각이 있는 관계로 설명할 수 있지요. 눈이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빛이 ‘눈’이라는 감각기관을 만들어 낸 것이며 소리가 ‘귀’라는 감각기관을 만들어 내고 물체와 물질이 우리의 몸이라는 감각기관을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들 감정힘의 감각들을 넘어서면 생각힘Think force 영역의 감각들로 듣는Hearing 감각, 언어Language 감각, 그리고 사고thought 감각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영혼세계와 연계되어 영감Inspiration 과 직관Intuition 으로 대표되는 상상력Imagination power 주체인 자아Ego-I감각으로 통합되어 12개 감각존재Twelve sense being 가 되는 것입니다. 슈타이너는 듣기 감각을 사람이 스스로의 몸으로부터 발달시킨 최고의 감각이라고 합니다. 왜냐 하면 이후의 언어감각과 사고감각 그리고 그것들에 연계된 영감, 직관 등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아니한 그 어떤 것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인데 그 어떤 것이란 다름 아닌 영적인 세계의 존재인 개인수호천사나Angeloi 민족수호신Arch angeloi들을 말합니다. 슈타이너의 이 12가지 감각들을 한 눈에 볼 수 있게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가) 의지힘 영역 - 접촉감각/ 생명감각/ 동작감각/ 평형감각
나) 감정힘 영역 - 냄새감각/ 맛감각/ 보기감각/ 온도감각
다) 생각힘 영역 - 듣기감각/ 언어감각/ 사고감각/ 자아감각
(그 외에 사고감각으로부터 비롯되는 상상력을 통한 영감과 직 관이 있는 데 외부대상물과 관계없이 훈련에 의해 체득됨)
<사람의 호흡과 우주의 호흡>
사람이 1분당 호흡하는 횟수는 평균 18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루에 호흡하는 횟수는 어림잡아 "25920"번 이라고 합니다. 슈타이너는 이것이 우주의 한 호흡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린 우주의 나이를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25920년이 우주의 1년입니다. 이 우주의 1년 즉 사람 세상의 25920년에 한 번 큰 변화가 옵니다. 지구상에 처음 등장했던 사람인 호미니대Hominidae를 7백만 년 전으로 보는 데 이것은 일단 접어두고 직립인간 호모에렉투스Homo erectus 시기인 150만 년부터 사고인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ce 가 등장하는 40만 년까지 사람의 변화는 신체구조상의 변화입니다. 척추 뼈와 골반 뼈 그리고 사지와 손, 발등이 점차 현생인류에 가까워지는데 그 변화가 25920년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직립인간 등장기인 150만 년 전을 우주의 햇수로 바꾸면 지금으로부터 60해 정도에 불과합니다. 한편, 사람의 두개골 구조의 변화, 특히 용적의 변화가 진행되면서 보다 더 현생인류에 가까워지는데 이 시기를 대체적으로 네안다르탈인이 등장하는 10만 년 전으로 잡습니다. 이 10만년 이후의 사람을 아틀란티언Atlantean 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처음에 지금은 없는 대서양에 있었던 아틀란티스 대륙에 살았고 우주의 1년 즉 25920년 단위로 큰 변화를 겪습니다. 아틀란티언 첫 세대인 르므할인 들과 두 번째 세대인 트라밧인 들은 식물 생장인 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생장력Life power은 지금의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현대인중에도 가끔 염력으로 식물을 잘 자라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화에 보면 오래된 나무를 되살리거나 지팡이를 땅에 꼽고 생나무가 되게 하는 도사를 보게 되는 데 이들의 힘을 식물 생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신체 일부를 도룡뇽과 같이 다시 회복 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세 번째 세대 투란인들은 신비한 물리적 힘의 원리를 알고 있어 아무리 크고 무거운 물체라도 쉽게 다룰 수 있었습니다. 현재 세계의 불가사의로 알려진 거대한 건조물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한편 각 세대별로 25920년 씩 변화와 번성을 하는 가운데 불(화산)과 물(홍수), 얼음(빙하)등에 의해서 멸망하고 소수의 사람들만 살아 명맥을 이어갑니다. 지금의 인류는 다섯 번째 세대인 '세밋'인들로서 빙하에 몰살당한 후 살아남은 투란인 들의 후손인데 전반 만년은 지구상 곳곳에서 거대한 도시를 이루며 살았고 문자와 문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의 문명과 생활은 각 민족마다 갖고있는 신화와 전설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그러다가 이들의 운명은 홍수와 함께 끝이 나는데 그 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소위 각 민족들의 수호자이자 지혜의 원천으로 숭앙 받고 있는 신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후 우주의 한 해 25920년은 우주의 한달 2160년 단위로 오늘날의 인류문명에 주기적으로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물론 세밋인들은 2만년 후에 여섯 번 째 아카드인 일곱 번 째 몽골인등으로 변화와 번성을 하며 인간의 완성을 가져오고 우주의 햇수는 점점 늘어갈 것입니다. 우주란 삼라만상뿐만 아니라 영혼과 정신의 세계 모두를 말함이며 시작도 끝도 없다는 것을 각 종교 경전들은 공통으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슈타이너 우주론에서 황도 12별자리Zodiac 가 지구의 세차운동으로 인해서 천천히 변화하는데 그 별자리의 이동 속도는 바로 우주의 한 달에 해당되는 2160년이며 12개 별자리를 다 거치면 다시 우주의 한해인 25920년이 됩니다. 이런 식으로 환산하면 이제 홍수 후대 사람문명의 나이는 겨우 우주나이 5살입니다. 첫해는 B.C 7300 - 5150 년으로서 인도 문명에 해당하며 계절적으로는 우주의 여름이고 해뜨기전 황도 별자리는 게자리입니다. 그 다음 해는 B.C 5150 - B.C 3000 년의 페르시아 문명, 황도 별자리는 쌍둥이 자리이며 셋째 해는 B.C 3000 - B.C 800 년으로서 아수르, 이집트, 유대문명이며 우주의 계절로는 가을입니다. 게다가 이시기에 위대한 성인들의 준비 시기로서 신성한 동물 황소가 황도 별자리의 주인이 되는 시기입니다. 넷째 해는 B.C 800 - A.D 1400 년으로서 그리스, 로마, 라틴문명이며 불타와 노자, 공자, 소크라테스, 예수 등 성인들의 집중 활동시기이기도 하며 황도 별자리 대는 거룩한 희생제물의 상징인 양자리입니다. 다섯 째 해는 현재인류를 포함하는 A.D 1400 - 현재이후의 시기로 영국, 독일 문명에 해당되며 황도 별자리는 물고기자리입니다. 홍수 후대 인류문명의 단위 2160년을 슈타이너 인지학에서는 이포크Epock 라고 합니다. 이 '이포크'는 인간의 환생 주기이기도 합니다. 1000년씩 끊어서 암, 수 한번 씩 한 번은 여자, 또 한 번은 남자로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어 저승에서 살다가 다시옵니다. 즉 사람의 저승나이는 2000(1000년+1000년) 이승나이는 160(80년+80년)으로 어림잡을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사람은 이제 우주의 나이로는 한 여름 홍수 이후 5개월 지난 늦가을이지요. 이 인류문명의 이포크 중에 전 우주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사건이 바로 네 번째 해에 부처와 예수의 희생으로 인한 "천상과 지상의 만남"입니다. 이제 사람들은 천상과 지상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알게되는 시대를 살게 될 것입니다. 사람으로 말미암아 이런 깨달음을 얻고 모두가 하나인 것을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우리나라 동학의 해월은 천지인 삼재, 인즉천 혹은 인내천으로 풀어 슈타이너보다 약간 앞서 개벽세상을 얘기했습니다. 슈타이너의 홍수후대 인류의 역사관은 물론 서양의 관점에서 본 사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는 홍수후대 최초의 이주세력이 아시아의 고비사막근처에 정주했다고 하며 그 이후 인도 이포크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즉 인도문명에 개화기 이전에 북방 아시아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역사적 기록과 사적들은 우리가 찾아야 하겠지요
<목공시간에 만든 악기>
목공시간은 참 재미있습니다. 처음에 목공 실에 가서 각종 목공 손 기구들을 보니 위험해 보이기도 했는데 나이 많으신 클리포드Clifford 강사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안전하게 기구를 다루는 법을 알고 나니 괜찮았습니다. 저는 나무토막으로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고민을 하였지만 목공 책을 참조하여 수저나 국자 등의 간단한 생활 기구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차츰 나뭇결을 다스리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난감 자동차나 문양이 새겨진 컵 받침대를 만들어 보기도 하였지요. 그러다 좀 더 욕심을 내어 펜타토닉 라이어(다섯줄로 된 간단한 손 하프)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라이어의 몸체는 대단히 정교하여 모양내기가 퍽 어려웠고 안팎으로 곡선과 굴곡이 많아 애를 먹었습니다. 물론 클리포드 선생님께서 많이 도와주셨습니다. 집중해서 만들 때는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다른 일은 젖혀 두고 작업에 몰두하였습니다. 정원사 글리니스가 옆에 와서 구경하는 것도 몰랐습니다. 그녀는 땀 뻘뻘 흘리는 내게 주스 한 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잠시 그녀와 얘기를 나누던 중에 힌트를 얻어 나중에 쇠줄 설치와 에나멜 광택은 학교 악기수리공에게 맡겨 완성을 시켰습니다. 악기의 소리가 참 좋았습니다. 줄을 퉁기면 절로 아리랑 소리가 나는 듯 하였습니다. 저는 너무 뿌듯했지요. 라이어 완제품의 가격은 15만원 정도입니다. 저는 단 2만원 정도 들었을 것입니다. 돈이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제 손으로 직접 악기를 만들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 가 없더군요. 대안교육현장에 꼭 이런 성취의 기쁨이 있어야겠다는 확신을 다시 한 번 갖게 되었습니다.
<위빙Weaving 클라스>
위빙 클라스는 "짜기"수업시간입니다. 실도 잣고 잣은 실로 천도 만들고 목도리도 만드는 시간이지요. 직녀가 베틀 앞에서 한없이 긴 실을 뽑아 밭에서 소 몰며 일하는 견우에게 줄 옷을 짓는 것을 흉내 내보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그 세월의 벽을 허물어 사람이 어떻게 실과 옷감을 그리고 옷을 만들게 됐는지 배운 수업시간이었습니다. 우리도 분명 "베틀가"가 있으니 예전부터 베를 짜서 옷 지어 입고 살았으리라 짐작해봅니다. 제가 사는 강화도 동네엔 왕골로 만드는 화문석도 유명하지만 잠 잘 때 까는 요의 겉 청이나 아기들 기저귀로 쓰는 면을 만들어 내는 소규모 직조 공장이 여러 개 있습니다. 흔히 속창 공장이라고 하는데 말이 공장이지 직조 기 여러 대 배치해놓고 피대를 걸어 떡 방앗간에서 나는 소리가 나는 굴뚝하나 없는 무공해 공장입니다. 짜기 수업시간에 바로 이 직조 기를 하나 씩 주고 목도리 뜨는 법을 배웁니다. 물론 목도리 뜨기 전, 물레Spinning tool 로 실을 잣는 것부터 해보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 이야기나 동화에 물레 돌리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흔히 맷돌과 더불어 물레는 우주의 운행원리를 담은 상징으로 잘 등장합니다. 저는 이 수업시간에 평생 해본 적이 없던 실 잣는 일과 목도리 짜는 일을 해보았습니다. 직조기로 목도리 짜는 것은 어찌 어찌 해냈지만 물레를 돌려 실 잣는 일은 손과 발이 따로 놀아 거의 선생님의 도움에 의존하여 억지로 해냈습니다. 고국에 제가 돌아왔을 때 계절이 한 겨울이라 유용하게 쓸 수 있었습니다. 특히 큰아들 녀석은 10리 길 농로를 걸어 학교에 다니는 데 5리 길 정도는 사방이 확 트인 벌판이라 바람찬 날에 살을 에이는 듯한 추위가 옵니다. 그 때 제가 뜬 뉴질랜드 양모로 된 목도리가 그 녀석의 목에 감겨 따듯하게 다닐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목공 시간에 만들어 가지고 온 악기만큼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중구 절에--->
9월 8일이나 9일경, 밤에 잠 못 이루고 뒤척이다가 함께 거주하는 Kevin케빈 방에 있는 TV를 보게 되었습니다. 근처 공립고등학교 학생인 그는 가끔씩 밤샘당구를 치며 집에 들어오지 않기도 하였습니다. 심야라 그런지 화면에 비추이는 여러 장면들이 좀 야했습니다. 카운트 다운Count down이란 제목의 영화를 하는데 폭파전문가인 주인공 범죄자가 일본 소녀와 함께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영화의 의도 자체가 긴장, 서스펜스, 폭력, 살인 등의 비인간적인 내용이라 그런지 보면서도 상당히 기분이 찜찜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저런 영화가 인기가 있는 세상이라면 실제로는 이 세상이 얼마나 더 심각할까? 저런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나 그것을 재미있다고 보는 관람자나 양쪽 다 뭔가 잘못이지 않을까? 하면서 말입니다. 특히 이미지, 영상세대인 청소년들과 심지어 10대 전후의 아이들에게도 정말 암울한 세계의 일면을 그들의 내면에 심어주는 “잘못된 일”이 거침없이 대중매체를 통해 일어나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습니다. 영화 도중 가끔 내 보내는 중간 광고엔 성 산업영역에 해당되는 낯뜨거운 장면들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그냥 초코렛이나 사탕선전 하듯) 흘러나와 참 이곳도 “어린 사람들이 겪어내어야 할 수많은 세상 고통과 난관이 만만치 않겠구나”라는 안타까움이 겹쳤지요. 그리하여 조금씩이라도 그 반대의 흐름을 가고 있는 그리고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공부’가 더더욱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100년 전에 “물질에서 정신으로”의 큰 전환을 위한 씨앗을 뿌려온 서양의 슈타이너가 백 번 옳다는 생각이 다시 들더군요, 아울러 지금 고국 강화도에서 열심히 선 수련을 하고 있는 대안교육모임 사람들의 “공력”또한 절절히 우리에게 있어야 함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다양한 방면의 많은 분들이 노력을 하고 계시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큰마음으로 함께 이루어 가야합니다. 저는 더 이상 TV를 보지 못하고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뒤척이다 새벽녘에 겨우 잠들 수 있었답니다. (다음날 첫 수업 빠졌지요)
<세상이 놀란 사건>
9월에 접어들어 공부에 전념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11일쯤으로 기억하는 데 새벽에 라디오를 듣고 있었습니다.(영어 리스닝 능력의 향상을 위해 라디오를 하나 마련했음) 그런데 속보Quick report라고 하더니 미국의 세계무역센터가 붕괴되었다고 하는 내용이 흘러나왔습니다. 주절주절 여러 마디를 빠르게 보도하는 데 아무튼 이게 무슨 얘긴가 내 귀를 의심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학교에 가서 학급동료들과 이야기 해보고서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학생과 교수 중에 미국에서 온 사람들이 대단히 놀란 듯 허둥지둥 오전에 가거나 아예 못 온 사람도 있었습니다. 아침회합Morning circle 이야기 시간에 이 사건이 슈타이너가 진작 예견했던 "물질주의로 인한 정신이 무너지는 현상"이라는 말도 나왔습니다. 방과후 아시아 출신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던 조나단Jonathan 선생님(바이오그라피Biography 담당)과 이 사건에 대해 토론이 벌어 졌는데 그 분도 이미 예견되던 일이라는 의견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경종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었고 참석한 아시아 학생들도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이 사건으로 국제 항공운항이 결항되고 마비되는 것이 불안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만일 국제 항공여객항로가 없어지면 배로 가야하나 아니면 이곳에서 그냥 가족과 헤어진 채 살아가야 하나하고 고민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기우였지만 그 당시는 그 사건이 주는 여파가 사뭇 심각하였습니다. 실제로 그 사건으로 수잔Susanne 이라는 미국학생의 사촌이 행방불명이 되어 주변에서 굉장히 걱정들을 했었습니다.
<기타를 만지기 시작하다>
저는 본디 한량기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초등학생 때는 바둑을 배우고 중학생 때 기타를 배워 누구에게든 내어 보이려고 노력을 하였지요. 대학 신입생 시절에는 당구를 치고 당시에 유행하는 노래를 부르며 하루종일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지금 와선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데 밑천이 되기도 한답니다. 술은 좋아하지는 않지만 술자리에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해 기타를 치며 반주를 해주었습니다. 학교에 근무하면서는 교사 노래모임을 만들어 학교 축제 때 민중가요를 아이들 앞에서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곳에 와서도 새로운 외국친구들을 사귀며 그런 저의 기질을 발휘할 기회를 엿보았는데 전반기에는 말도 더디고 또 공부에 쫓겨 짬을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후반에 들어서 어느 정도 적응이 되고 대인관계도 익숙해지면서 약간씩 저의 본 모습을 내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잘 놀고 잘 나서고 하는--- 심지어 졸업 연극무대에선 제가 아리아 노래를 하기도 했습니다. 먼저도 얘기했듯 가족을 떠나 보낸 뒤 밀려온 그리움과 미국에 발생한 충격적 사건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 즈음에 캐렌Karen이라는 이름의 영국에서 이민을 온 학생이 부모의 생일 잔치에 저희들을 초대하였습니다. 항상 미소짓는 얼굴의 세 아이의 엄마였던 그녀는 정말 부드럽고 환한 미소로 우리들을 맞았습니다. 대가족의 행복한 기운이 그 집에 넘쳤지요, 그런데 그 집 응접실에 기타가 놓여있었고 약간의 포도주 취기가 있던 저는 그 기타를 연주해 보겠다고 하고는 인천 전교조 노래패에서 익힌 솜씨로 아리랑을 비롯하여, 그들에겐 생소한 우리 노래 몇 곡을 불렀었지요. 그 날 제 노래에 대한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며칠 후에 전 그 기타를 아예 빌리고 팝송 가사 집을 구해 영어노래를 연습하여 학급동료들과 부르며 지냈습니다. 나중에 교수님들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이 저를 한국에서 온 “음악가Musician" 라고 추켜 세워주곤 했습니다.
<영화 감상>
학급동료 인데라와 함께 영화를 구경했습니다. “아틀란티스”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인데 잃어버린 아틀란티스 제국을 찾아가는 흥미로운 줄거리였습니다. 무엇보다 만 년 전에 실재했다는 전설이 있는 대서양근처의 대륙을 테마로 그 시대에 있었을 법한 여러 가지 문화들을 간접적으로 접해보고 그들이 에너지원으로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힘을 이곳에서 배운 슈타이너의 식물 생장력과 연결하여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또 선배 학생 모리스와도 내이피어Napier 박물관 극장에 가서 “히말라야”라는 영화를 보고 진한 감동에 자리를 지키고 일어날 줄 몰라하기도 했지요. 네팔을 배경으로 유목민들의 삶과 종교, 사랑과 애환을 다룬 내용인데 배경장면이 정말 장관이었고 성산 히말라야가 주는 신비로움이 그대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한 번은 대학 정원사 글리니스와 그녀의 남자친구 마이크와 나 셋이 "Song Catcher송 캐쳐"란 영화를 보러 갔는데 영국 산간지방에 전해져오는 구전 노래들을 수집하는 한 음악교수의 집요한 노력을 그린 영화였습니다. 우리나라 민요처럼 영국도 지역마다 저런 아름다운 노래들이 일반 민중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으며 흔히 우리들이 들어온 컨트리 팝송들이 그런 산간지방의 노래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특히 바이올린과 기타에 맞추어 부른 많은 노래들을 저도 집에 와서 악보를 뒤져 불러보니 그 영화에서 부르던 노래들과 음색과 창법이 비슷하여 그 영화를 본 이후로 컨트리 계열의 팝송을 많이 부르게 되었습니다.
<자연시인 토니>
토니Tony 는 발도르프 학교 출신 학생입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일반학교에서 친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아 많이 다투었다고 합니다. 몸집이 씨름선수처럼 컸는데 마음은 순수하고 여려 시를 잘 지었습니다. 한 번은 그의 고등학교 때 친구가 놀러 왔습니다. 우리는 저녁식사도 함께 하고 기숙사 응접실에서 나도 끼어 셋이서 정치와 역사를 비롯 세상이야기를 주고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토니와 그의 친구는 불과 스물 넷밖에 안된 젊은 친구들이었으나 세상을 바라보고 역사를 인식하는 시각이 사뭇 놀라웠습니다. 같은 나이 또래의 우리나라 대학생이라면 과연 저런 사고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토니는 전쟁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는데 그의 인류의 전쟁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심도 깊었습니다. 제가 그에게서 들은 것을 일기에 적은 것이 있어 이곳에 옮깁니다. “전쟁은 권력을 얻기 위한 방편인데 이긴 편도 진 편도 결국 인간성이 파괴되는 무의미한 것이다. 권력이란 일방통행의 통제적인 행위일 뿐이며 진정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양방향 소통이 되는 방식으로 가야한다. 그 정점에 신이 부여한 “사랑”이 있다. 일시적인 것이 아닌 영원함의 속성을 갖고 서로의 관계를 상호소통 시킬 때 우리의 인생은 업Karma에서 헤어날 수 있으며 세계는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자기는 이런 세계관을 갖고 더 깊은, 그리고 더 많은 지식을 쌓아 교사가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이 슈타이너 교사 과정에 등록한 것이다. 슈타이너는 자신의 이러한 희망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사상가 겸 스승으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이 드니까---“ 그런데 이 젊은 친구가 발표 수업Project teaching 때 쓰려고 준비한 논문을 보니 거의 본인의 시로 내용을 채워놓고 있었습니다. 그는 전에도 가끔 아침회합morning circle 시간이나 수업시간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기의 시를 낭송하기도하고 발표를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요청에 서슴없이 들려주는 그의 시는 참 아름답습니다. 언제나 산과 나무, 새나 구름, 물과 흙, 하느님 등이 등장합니다. 직접 그의 시를 하나 소개합니다. 아울러 그가 좋아하여 나도 곁에서 웅얼거리며 알게된 타고르의 시 “마음에 두려움 없고Where the mind is without fear”을 함께 싣습니다. 시공을 넘나들며 우리 앞에 다가온 뉴질랜드와 인도의 자연이 빚어낸 시들을 한 번 감상해 보십시오---
1. Title ; The mountain
Written by Tony Frith(타루나 슈타이너 대학 학급동료)
The mountain tall and strong(크고 강한 산)
Looks out across a lake(호수건너 보이네)
Where the memories of countless peoples are held(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이)
Within the flow of the water(호수의 물 흐름 속에 들어있어)
Atop her head, a cap of white snow has formed(산머리에 하얀 눈이고)
And down her side runs a river of ice(산기슭 아래로 얼음 강물 되어 흘러가네)
A river of countless years(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흘러온 강)
Beside her stand her sons(그 곁에 자손들 같은 산봉우리들)
Tall, strong, craggy and scattered with scree(크고, 억센 그리고 울뚝불뚝 바위 많은 산)
Upon them cling the tahr and chomois(타아와 초모아 짐승들 품어 안고 사는 산봉우리)
Over them fly the bea(비아라는 이름의 새가 그들 위로 날아가네)
At her feet stand the sons of men(산 발치에 사람의 자손들 서있고)
Mouths agape as they stare at her Majesty(딱 벌린 입으로 그녀의 장엄함을 바라다보네)
2. Title ; Where the mind is without fear
written by R. Tagore(동양인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안겨준 시집 gitanjali 중에서)
Where the mind is without fear and the head is held high(마음에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 들린 곳)
Where knowledge is free(지식은 자유롭고)
Where the world has not been broken up into fragments by narrow domestic walls
(좁다란 담 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은 곳)
Where words come from the depth of truth곳(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Where the tireless striving stretches its arms toward perfection(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Where the clear stream of reason has not lost its way into the dreary dessert sand of dead habit.(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 벌판에 길 잃지 않은 곳)
Where the mind is led forward by thee into ever-widening thought and action into that heaven of freedom.(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My father, Let my country awake(그러한 자유로운 곳으로 나의 조국이여 깨어나소서).
<나무에 대한 단상>
일요일을 맞아 참으로 오랜만에 가져보는 고즈넉한 시간입니다. 돌이켜 보니 지금 ‘나’라는 사람의 위치가 인생의 딱 중년기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데 이렇게 물 설고 낯 설은 먼 이국 땅에 와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진정 행운이라고 여겨집니다. 왜 다른 이들은 이 때가 ‘인생의 생활’ 부담에 더 열심히 현실적인 것들에 매달려 살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런 것에서 벗어나 약간은 초연하게 세상 밖 학생의 시절로 돌아가 책과 더불어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왜 아니 축복이겠습니까? 진심으로 이런 기회를 맞을 수 있게 한 많은 사람들과 인연들에 감사 드립니다. 오늘 아침엔 학교 근처 샘물이 나오는 언덕에 주전자 들고 운동복을 차려입고 이 생각 저 생각하며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평소에 차로는 보통 10여분 걸리는 거리인데 좀 빠른 걸음으론 30분 정도 걸렸지요, 그런데 오늘 따라 마음이 여유로워져 천천히 주변의 아름드리 나무와 잡목 숲, 그리고 잘 단장된 정원들을 감상하며 걸었습니다. 가끔 씩 개와 함께 산책하며 지나치시는 머리 허연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눈인사도 하였습니다. 그리곤 산책로마다 무성한 숲과 그 숲의 나무들을 보며 이날 따라 평소와 다르게 그 나무들에게서 “물살”을 느꼈습니다. 나무는 80% 이상이 수분이라지 않습니까? 나무의 뿌리가 있는 땅에서 솟구치는 물의 기운은 소용돌이를 이루어 분수 모양의 나무들의 생김새와 그들의 잎새와 꽃들을 지어냅니다. 한편 그것은 물 기운이면서도 또 빛 기운이기도 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됩니다. 물과 빛의 합작품 - 순간 ‘물빛’이라는 우리말이 참 아름답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빛이라는 말 그 자체로 수많은 빛깔(색)을 엮어냄을 깨닫습니다. 물론 나뭇가지에 달려 있는 잎들의 잎새돌이와 빛깔은 빛 기운이라기 보다 물 기운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잎새들의 끝에 접촉한 하늘 기운은 잎새 속의 삶의 기운과 더불어 온통 파란기운으로 하나가 되지 않습니까? 기회가 되면 여러분도 잘 살펴보십시오. 이 세상의 신기하고 기묘한 모든 나뭇잎과 풀잎, 그리고 꽃받침과 떡잎과 어린 열매들은 서로 누가 더 하늘빛을 닮는지 내기들을 하여 온통 푸른빛으로 노래합니다. 그네들은 서로 내가 더 파랗다 내가 더 푸르다하고 다투어 하늘 빛깔조차 파랗다고 우겨 하늘과 자기들이 하나임을 애써 강변합니다. 우리말의 ‘파랗다’나 ‘푸르다’가 하늘을 가르키기도 하고 초목을 가르키기도 하며 심지어 바다를 가르키기도 하는 이치를 알 것 같습니다. 얼마 안 있어 그들은 정말로 천상의 하늘 빛깔을 닮은 “꽃”을 피워냅니다. 심지어 그들의 자손들인 과일과 씨앗들조차 하늘의 모양과 하늘의 빛깔을 닮게 하려고 형형색색, 갖가지 “열매”를 열어 해님이 가시는 ‘갈(가을)’ 무렵에 씨앗을 남겨놓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 내년에 보자고 ‘봄’을 기약하며 하늘의 따님이 부르시는 ‘땅결’로 돌아가 겨우내 휴식을 취하며 잠도 자기 위해 모습을 감춥니다. 이런 느낌들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었으나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실었습니다. 슈타이너의 형태 그리기Form drawing를 하다가 받는 느낌과도 비슷한 것이었지요.
<사람 학이기도 한 슈타이너의 동물학>
한동안 동물학을 배웠습니다. 이 부분은 기존의 지식에 대비해 고민하지 마시고 그냥 편안하게 읽으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도 슈타이너의 글을 읽고 많이 고민하게 됩니다만 언제나 결론은 결국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저 세상은 모든 근원이 사람이요 모든 결과가 사람이다라고 말할 수 있지요. 슈타이너의 관점에서 동물들은 완벽한 사람으로 가는 도정에서의 하나하나 신의 선물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의 발(바닥)은 물고기에 해당합니다. 그 다음 사람의 무릎은 염소, 허리는 전갈, 가슴은 사자, 어깨와 배는 황소, 팔다리는 말, 목은 양이며 이마는 코끼리나 곰입니다. 신성한 동물인 양과 코끼리와 곰이 나름대로 사람이 되기 위한 직립시도를 해왔습니다. 동물에 대한 이러한 인상은 먼저 번에 올린 글 "나무에 대한 근원적인 생각"에 이어집니다. 식물이 물빨더듬이(뿌리)를 갖고 빛 몸과 물 몸을 거쳐 빛 분수(나뭇잎이나 화려한 꽃들)로 둔갑했듯이 동물도 물 몸 속에서 한참을 생각하는 세월을 지내며 움직이는 물빨더듬이 시절을 보냅니다. 수중 원생생물인 박테리아와 해파리 등이 그 시작입니다. 차츰 이들이 사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데, 그것은 다름 아닌 불가사리입니다. 불가사의하지요? 그 이유는 바로 그 폼에 있답니다. 불가사리를 세워놓으면 별 모양이 되는 데 슈타이너의 인지학에서 사람의 폼은 바로 별입니다 제일 위의 것이 머리요 밑의 두 개는 두 다리요 중간의 두 개는 두 팔입니다. 이곳에서 배우는 유리드미 춤도 별 모양의 자세로부터 시작하지요. 그러나 불가사리는 단지 사람을 꿈꾸는 초급 단계에 불과합니다. 이제부터 머리를 만들어 내기 시작해야겠지요. 그래서 생겨나는 게 물고기 종류입니다. 물고기가 되기 위한 첫 시험이 뼈를 얻는 시험입니다. 물고기의 뼈에는 칼슘과 염분이 침투하게 되어 좀더 활발한 기관-지느러미-이 생겨납니다. 아울러 물 몸에서 산소를 잡아내는 아가미를 갖게되고 폐호흡단계의 전초기지를 마련합니다. 물고기의 몸에 있는 부레는 육상으로 나올 때 기능이 전환되어 폐가 됩니다. 이 때가 양서 파충류(개구리 악어 도마뱀 공룡 뱀)의 단계이며 차츰 빛의 고향인 하늘로 날개를 달고 올라가 새들로 변합니다. 이 단계에서 많은 민족들은 하늘의 영광을 새를 통해 얻기도 하고(까마귀 신화) 때로 좌절하기도(날개를 잃어버리는 이야기)합니다. 새는 이제 두 가지 방향으로 가닥을 잡지요 계속 빛을 향한 일직선 전진(독수리)과 다시 땅으로 내려와 호흡을 가다듬는 1보 후퇴(타조, 닭 등 날개 기능이 퇴화하는 것들) 2보 전진(포유류 등 장차 일어서기에 적합한 건강한 다리를 얻음) 이 그것입니다. 슈타이너는 이를 비교해 많은 민족들이 처음에 해가 떠오르는 지역에 머물다가 다시 해가 지는 쪽으로 이동하여 살고 문명이 일어나기 전 한 무리는 계속 서쪽으로(오늘날의 캐나다와 미국 인디언들-조류를 신성시함, 특히 독수리 까마귀 등) 또 한 무리는 동쪽으로(오늘날의 대다수의 유럽, 아시아 사람들- 사자, 소, 호랑이, 코끼리, 곰 등을 신성하게 여김) 이동하여 오늘날의 사람세상이 되었다 합니다. 아무튼 일직선 전진을 죽어라고 했던 맹렬 조류들은 지나간 화려했던 영광을 노래하며 맹렬 포유류들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밖에--- 왜냐하면 너무 성급하게 사람이 되기 위해 그저 위로만 치솟아 방향이 다른(틀린) 길을 들어섰으니까요. 그래서 "새 대가리"라 하나 봅니다. 새에서 후퇴한 포유류들은 난생(알을 낳는 것)에서 드디어 포생(새끼 베는 것)으로 전진합니다. 왜 아무리 무시무시한 공룡들도 난생이지 않습니까? 다리가 잘 발달한 염소나 말과 소화기관이 잘 발달한 소, 순결한 마음의 양, 탐욕스러운 늑대, 약은 지혜를 갖게된 여우(이 부분에서 사람의 혈기와 유사한 동물의 아스트랄 체-감정체가 발달하게 됨) 귀와 머리부분이 잘 발달한 코끼리, 날렵한 표범과 정말 무서운 그러나 위엄이 있는 사자와 호랑이(이 단계에서 나중에 사람의 심장기능에 침투하는 빛몸이 들어옴) 미련하지만 참을성이 많은 곰(이 때 장차 사람의 자기인식이 생겨남 - 기다려라 그대 사람이여! 기다림을 터득치 못하면 사람-자기인식이 물러가느니---)등이 차례대로 나름대로의 장점들을 장차 생겨날 사람들에게 전수하여 줍니다. 그러다 정말 척추가 일어서기에 적합하게 되기 시작합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나라의 곰 신화는 사람이 직립(일어섬)의 구조를 갖기 시작하는 단계의 이야기입니다. 원숭이와 침팬지 등의 원인류 들은 그 형상이 자못 사람과 흡사하지만 그 근본은 다릅니다. 그들의 유전인자는 사람의 유전인자와 아주 다릅니다. 사람의 폼을 형성하는 데까지는 같이 따라 왔으나 천상의 커넥션(연결고리-자기인식)을 갖기에는 신은 유인원을 택하지 않았습니다. 이 광대한 우주의 처음과 끝, 즉 온통 사람(빛 사람)을 택한 것이지요. 그 이가 서양에선 빛의 다른 이름인 예수(아담에서 비롯된)요, 동양에선 석가(부처가문의)입니다. 그리고 각 민족마다 사람탄생의 신화가 있어 그 이름들이 다 각각이지요. 그래서 슈타이너의 학문을 사람에 관한 학문 "인-지-학"이라 합니다. 슈타이너는 원숭이 종류를 비롯한 사람직전의 모든 동물들은 자아인식이 없고 다만 동물 종족 그룹으로 집합 혼(짐승 맘 얼)은 있다고 합니다.
<아이리쉬 펍에 다니다>
한 번은 생동농법Bio-dynamic 유기농 과정의 학생들과 함께 맥주 집에를 갔습니다. 그 술집의 이름은 “아이리쉬 펍”이었는데 목요일마다 아일랜드 출신 음악가들이 와서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고 합니다. 일본인 여자 학급동료 구미꼬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유기농 과정 학생 “맥”과 친하게 지내는 처지라 함께 왔더군요. 먹고 싶은 술은 각자가 알아서 시켜 셀프로 가져와서 먹습니다. 저는 맥주와 포도주를 시켜 먹고 사람들이 흥겹게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구미꼬가 저에게 한국노래를 좀 들려달라고 해 기타를 빌려 노래를 하였습니다. 제가 잘은 못 부르지만 분위기는 잘 타는 편이라 아리랑을 비롯한 민중가요 5곡 정도를 신나게 불렀습니다. 그러고는 영어 쓰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로 놀라운 은총Amazing grace을 부르기도 했답니다. 제게 대한 인상이 좋았는지 다음에도 또 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노래하고 한 한 시간쯤 그곳의 아일랜드 출신 단골 손님과 한참을 미국얘기, 호주얘기, 영국얘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날 기분이 좋아 주절주절 술기운 실어 고국의 아내와 통화를 오래 동안 하였습니다.(으 정보통신료 올라가는 소리가 막 들립니다) 이 때로부터 목요일이면 “아이리쉬 펍”에 가서 맥주 한 잔씩 기울이다 오곤 하였습니다.
<프로젝트 수업>
마지막 학기를 맞았습니다. 이젠 1년 동안 슈타이너 그림시간에 그렸던 그림과 수공, 목공작품들 그리고 프로젝트 수업자료(논문)등을 완성도 높게 마무리해서 전시도 하고 연극과 음악회준비를 해야할 때입니다. 제가 넘어야할 마지막 관문으로 지리Geography에 대한 프로젝트 수업 발표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원래 3번 째 학기에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다른 학생과 바꾸게 되어 제가 뒤로 밀려 늦게 발표를 하게 된 것이지요. 저는 한 달 집중 준비기간을 정하고 매일 교실이나 도서관에 남아서 자료 수집과 논문 쓰기 작업을 했습니다. 홍콩학생 모리스와 인데라가 중국에 관한 글을 많이 도와주어 잘 마무리지을 수 있었습니다. 논문은 양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자기가 알아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내용을 채워 가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시나 이야기를 지어 가급적이면 예술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수업발표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또 인데라에게서 중국의 민요 한 곡을 배워 제가 만든 곡과 함께 발표에 추가하기로 하였습니다. 막판에 일본동료학생들이 도와주어 수업 보조 활동으로 땅따먹기 게임도 도입부분에 집어넣게 되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학생 중에 제일 처음 만났던 치코가 아이디어를 내어 땅따먹기를 경쟁적으로만 도입하지 말고 서로 협력하여 공의로운 신천지를 개발하는 식으로 하면 좋겠다고 제의를 해서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전 두 가지 방식(경쟁과 조화)을 다 취하여 학생들 스스로 그 게임을 하고 무엇인가 느낄 수 있게끔 준비하였습니다. 치코는 그렇게 남을 잘 배려하고 좋은 해결방안을 잘 제시하는 마음이 따듯한 동료였습니다. 이야기시연Story telling은 발표 전날 친하게 지내는 누이Sister 글리니스Glynis를 찾아가 발음도 더 교정 받고 그 앞에서 구연도 여러 번 해서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다음날을 기다렸습니다. 정원사인 글리니스와는 이제 서로 시스터와 브라더로 호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저보다 7년이 연상인데 우연치 않게 생일이 같은 날이었습니다. 참 신기한 일이더군요. 제가 프로젝트 수업 발표하는 시간에 그녀도 와서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고 잘 하라고 응원하며 참관도 하여주었습니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 덕분에 전 수업발표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그 다음 날이 목요일이라 아시아계 사람들과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이리쉬 펍”에 가서 맥주를 마셨습니다. 물론 노래도 몇 곡 불렀답니다. 같이 간 사람들과 함께--- 인데라에게 배운 중국노래도 말입니다.
<졸업여행>
어느 날 학급동료인 죠니Johnny가 청소시간에 도랑에 낀 낙옆 더미를 걷어내면서 옆에 있던 몇 사람에게 텐트를 갖고 어디 가서 자고 오자고 제안을 하였습니다. 그는 두 다리가 불편한 장애인이면서 자연주의자요 환경보호운동가였습니다. 항상 동식물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대화를 하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그와 전 제가 사는 강화도 얘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또 환경보호 및 조류먹이 주기 활동을 하는 아내에게 관심을 많이 갖고 따듯하게 대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이제는 본국으로 가고 없지만---(아내는 열심히 강화도 환경보호를 위해 다시 일을 하고 있다고 연락을 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몇 명의 학생들이 그러자고 하여 학급회의Forum 시간에 정식 안건으로 올렸더니 절반이상이 가겠다고 동의해서 학사일정에는 없던 졸업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주말을 이용해 가는 것으로 결정을 보고 텐트와 취사도구와 장소 등을 결정했습니다. 장소로는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허모아나Hermoana바닷가였습니다. 아이들을 셋이나 둔 케렌이 선뜻 텐트 두 개를 가져가기로 하고 토니Tony는 그곳에 아버지 친구가 숙박업을 하니 물과 도구를 쓸 수 있도록 연락을 해보겠다고 하여 벌써부터 바닷가에 와있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일주 후에 예정대로 차 세 대로 나누어 타고 허모아나 바닷가로 갔습니다. 전 날 바람이 많이 불고 비가 올 것 같았는데 막상 가서 텐트를 치고 저녁을 준비해서 먹고 나니 날씨가 흐리긴 했지만 바람도 덜 불고 비는 오지 않았습니다. 이 날 우리는 밤샘을 하자고 내기를 하였습니다. 누가 더 늦게까지 남아 잠 안자고 버티나 보기로 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잠에 빠져든 사람은 인데라였습니다. 그녀는 밥을 많이 먹고 모닥불을 피워 따듯해지니까 저절로 자버린 것 같았습니다. 이 날 우리는 각자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타루나 대학에서 있었던 잊지 못할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었습니다. 결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몇 년에 결혼했는지 알아 맞추기 게임도 했습니다. 치코가 가져온 소원지가 주렁주렁 달린 대나무도 모닥불에 태워져 우리들의 마음이 숙연해 지기도 했습니다. 밤새 노래도 하고 이야기도 하면서 아쉽고 아름다운 밤 바닷가의 예쁜 추억들을 만들어 저마다의 가슴속에 심고 또 심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밤이었습니다. 밀물에 파도소리 멀리 들리고 새벽녘이 되어 썰물에 구름에 가리웠던 별들이 되살아 왔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하나둘 씩 텐트로 들어가고 끝까지 졸린 몸 추스리며 다 꺼져 가는 모닥불 옆에서 자지 않고 남아 있던 사람은 일본인 마사노리씨와 저였습니다. 그는 한기가 들어 슬립핑 백에 들어가 있었고 저는 두터운 외투를 겹으로 입고 담요를 두르고 모닥불 옆 평지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잠깐 졸았던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새벽이 오기 전 더욱 까만 밤하늘에 언뜻 언뜻 맑은 별들의 얼굴들이 구름들 사이로 비추이는 것이었습니다. 정신을 가다듬어 자세히 보니 그들은 황소자리와 양자리 별들이었습니다. 저는 얼른 건너편 슬립핑 백 속에서 자고있는 마사노리를 깨워 별을 좀 보라고 다급히 얘기하고는 별자리에 관해 이런 저런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졸업여행을 온 목적 중에 남반구 밤하늘의 별 구경도 포함되어 있었지요. 구름이 잔뜩 끼어 못 보는가 했는데 드디어 밤새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은 그 별들이 자신들의 얼굴들인 듯 경이로운 마음이 되어 그 황홀하고도 신비로운 새벽을 함께 지새웠습니다. 그 일본인 친구는 그 때의 느낌을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둘 중 어느 한 사람이 이성이었다면 그 날 밤 서로 사랑하게 되었을 거라고--- 저도 그 말에 동감을 합니다. 그 새벽 순간적으로 맑은 하늘이 되어 또렷한 별들의 자태를 볼 수 있었던 그 신비로움, 그 경이는 일생을 두고 잊지 못할 것입니다.
<졸업연극>
타루나 대학 드라마 강좌의 평가는 졸업연극입니다. 학교현장에서도 연극만큼 좋은 수업은 없을 것입니다. 굳이 연극배우나 전문연기자가 아닐 지라도 순수하게 자신을 연기로 표현하는 것은 두려우면서도 뭔가 매력을 느끼는 큰 공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언제나 밝고 쾌활한 로빈 드라마 선생님은 차근차근 저희를 배우로 만들어 갔습니다. 연극제목은 겨울이야기-winter's tale이었지요. 셰익스피어의 비극작품중 하나입니다. 그 내용을 잠깐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시칠리아 왕 리욘티Lyontes가 이 보히미아의 왕인 친구 폴릭스니Polixnis를 초대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아내인 여왕과 가까이 지내는 것을 목격하자 질투심에 사로잡혀 여왕을 감옥에 가두고 임신한 자신의 자식도 다른 남자의 자식이라고 생각하여 옥중에서 출생시킨 뒤 내다버리게 하였습니다. 그 딸은 어느 가난한 양치기 노부부가 주워서 키웁니다. 딸도 잃고 성에서 쫓겨난 여왕은 비록 한을 품고는 있었으나 한없이 선량한 성품으로 인하여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하고 죽습니다. 마지막에 가서는 왕도 잘못을 뉘우치고 그 흘린 눈물이 죽어 동상이 된 여왕에게 닿아 결국 여왕이 살아나고 잃었던 자식도 찾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로빈 선생님은 7명이나 되는 저희 아시아계 학생들에게 여왕이 쫓겨나는 대목이 들어있는 제 4장을 따로 떼어 각자의 언어로 대사를 말하는 연기를 하게 했습니다. 물론 영어로 하는 다른 신도 연습을 했습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차츰 익숙해져 대사도 나름대로 익히고 의상도 발도르프 학교에서 빌려와 성황리에 연극공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연극무대로는 타루나 대학의 정원이었는데 계절이 봄이어서 그런지 짙은 녹음과 꽃들이 만발하여 야외무대로는 더 없이 좋은 곳이었지요. 친하게 지내는 교포 손성목씨 가정을 초대했더니 첫째 날 와서 구경하고는 저더러 연기를 해본 것처럼 잘한다며 오랜만에 연극구경을 하게되어 고맙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연극이 끝나면서 저는 졸업 날만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정말 가족들이 보고싶었습니다.
<콘서트 그리고 졸업>
대학의 마지막행사로 학생들이 준비한 콘서트가 있어 슈타이너 학교의 학생들이 즐겨 부를 법한 동요를 발표하기로 하고 연극연습 짬짬이 노래연습도 하여 준비를 하였습니다. 꼼꼼한 미셸이 총책임을 맡고 학년별로 지휘자를 정하여 우리나라 노래 ‘아리랑’과 일본노래 ‘사꾸라’ 중국노래 ‘톈샹지 친친’ 도 곡 리스트에 넣어 연습을 하였습니다. 졸업 전날 열린 이 콘서트는 다른 과정의 학생들도 참여해 참으로 뜻깊은 행사였습니다. 제가 만든 이별노래인 “타루나 가든Taruna garden”을 독창으로 부르곤 정원사인 글리니스에게 이 곡의 악보를 그림을 곁들여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녀는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하여 참 고마워 하였습니다. 제가 가는 날 터미널까지 짐을 실어주고 헤어지면서도 계속 작별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요. 이역만리 타국에서 지내는 동안 어느새 그녀와 정이 들었나봅니다. 귀국 후에 아이들과 함께 편지도 쓰고 전화도 한 통했습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 지 참 궁금합니다. 어쨌든 콘서트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날 졸업식을 하였습니다. 그 곳 슈타이너 공동체의 많은 사람들과 뉴질랜드 슈타이너학회 회장이신 한스 선생님도 나오셔서 축하해 주셨습니다. 저는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 중 잘된 작품 하나를 액자로 만들어 대학에 기증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졸업소감을 간략하게 고국에 있는 아내에게 감사한다는 말로 대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이끌어주신 많은 교수님들과 직원들 또 함께 울고 웃고 했던 동료들과 진한 포옹들을 하며 마지막 타루나의 밤을 아쉬운 듯 늦게까지 함께 보냈습니다. 이 날밤은 정말 제 인생에서 잊지 못할 추억거리였습니다. 그러나 내일이면 고국을 향해 오클랜드공항으로 떠나는 날입니다. 저는 아쉬움들 뒤로한 채 평소 즐겨 찾던 타루나 도서관에서 잠시 잠을 잤습니다. 안녕 타루나여! 도서관 벽난로 위에 걸려있는 초상화의 주인공 슈타이너 선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