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 기운이 있어서 종일 잤습니다. 깨서 보니 여동생이 부재중 전화.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쓰레바의 차운 감촉을 느끼면서 본채로 건너갔지요. 현관문을 열자마자 여동생이 오빠하고 부르는 소리.나는 직감적으로 엿이 다 됐음을 알았지요. 미친년,고생했구나. 부엌으로 가서보니 남동생도 와서 엿을 할쭉이며 먹고 있었고 위층에서 만들어 김치통 작은거에 퍼갖고 내려와 있었어요. 내주는 숟갈을 받고 접시를 달라고해서 적당량을 떠서 맛을 봤지요. 내처 잠을 자서 그런가,제맛을 느끼지 못하는건 그 탓이었고요.토종닭을 세마리 넣었다는데 지극히 먹을만 했어요.어릴적에 자주 먹지는 못했지만 어쩌다 먹게되면 아이들에게 단맛을 주면서 독특한 향으로 오래도록 입맛에서 지워지지 않는 향수를 제공한게 바로 이 엿입니다.기실 집안에 붙어있는 날이 얼마 안되는 누이가 이걸 만드는데는 까닭이 없을리가 없지요. 조그만 건축회사를 운영하는 매제가 평소에 꿩엿을 자주 사먹곤했드랬지요. 몇숟가락을 담은 한병의 가격이 오지게 비싸게 느꼈던지 결국 마누라한테 여러번 떼를 쓰고 하소연한 결과물이 오늘 제가 먹은 엿이었습니다. 조금만 덜 졸였더라면 정말 금상첨화였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늘 모자란 2프로는 다음 만들때를 대비하기 위한 적금이라 생각해야지요, 간단하게 레시피를 볼까요. 용담로타리 서쪽 100미터 지점 길가에 물론 남쪽입니다.창만상회가 있습니다. 거기에서 엿을 만든다고 찹쌀 한말을 달라고하면 골기름 3천원짜리 세봉지를 줍니다. 도함 9천이겠지요.찹쌀은 아마 한말에 3만원 정도 할거예요. 찹쌀로 밥을 짓고서 한 삼십분 뜸을 들인 후에 밥을 주걱으로 저어가면서 골을 뿌려댑니다. 손목을 부드럽게 살살 뿌려서 골고루 뿌렸다고 생각을 하면 위를 덥습니다. 이제는 뭘 하느냐? 삭힙니다. 동생은 세시간간을 삭혔다는데 넉넉히 여섯 시간을 삭히면 어떨까 싶군요. 제대로 삭혔다고 생각이되면 그만한 대야를 하나 더 준비해서 골섞은 찹살밥을 체에 받쳐서 대충한번 걸러냅니다. 다 걸러냈지요? 찹쌀밥과 골이 비벼진 수분은 아마 누런 갈색이지 않을건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오늘은 못봤지만 어렸을 적 기억을 더듬어 본다면 그랬던 것 같아요. 수분이 나온 물을 따로 덜어두고 이번에는 삼베에 대충 걸러나온 찹쌀골밥을 다시 한번 짜낼만큼 담아서 비틀어 쥐어짭니다. 내게 상처를 주었던 이 땅의 모든 원수를 생각하면 일도 덜 힘들고 의욕도 납니다. 대략 이 시간이 찹쌀 1말로 밥을 짓게되면 한 시간이 소요된다고 누이가 귀뜸했습니다. 아마 누이는 매제에 대한 분풀이를 쥐어 짜는데 사용했을 겁니다. 다 하고나면 시간은 어느새 쏜살같이 지나있을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그 수분을 큰 솥에 넣고 열두 시간을 달여냅니다.이때 내 누이처럼 엿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되면 너무 되게 되버려서 안되기 때문에 약간 묽은 정도로 졸여내야 합니다. 엿은 묽게 졸였다 하드라도 식게되면 묽음의 정도는 생각보다 되게 되어 있지요. 그런 이유로 달이면서 나무 밥자로 수시로 저어주되 간간이 국물을 들고 내려보면서 어느정도 졸였는지 육안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작업이 마무리 하기 두 시간전에 마늘을 넣으면 마농엿,꿩을 넣으면 꿩엿, 도라지를 넣으면 도라지엿, 속이 안좋아 느릅을 넣으면 느릅엿. 갖가지 기호에 맞게 내용물을 넣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냥 입맛 없을 때 먹을 용도로 달일거라서 만일에 만들게되면 현미를 넣을것이고 그것도 아주 걸쭉하게 달일 것입니다. 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누이 흉을 봤군요. 그녀도 엿을 만드는 동안 눌러붙지 않도록 저어주는 나무 밥자에 건들거리는 오빠의 삶을 몰래 흉보느라 힘의 분배가 불규칙했으리라 여겨지는군요. 엿먹을 때 아주 희미하게 느껴지는 쓴맛의 일부분은 아마 그 탓이 분명할겝니다. 실행에 옮기는 이들이여 솥 태워먹는 불상사가 없도록 행운을!
첫댓글 레시피를 읽다 말았습니다. 도저히 제 수준에선 불가할 것 같아서...그냥 안 먹으려고요. 샘 덕에 큰 솥에 이런저런 약초들을 캐다 엿을 만들던 모습이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나도 엿 먹고 이렇게 된 건데...
약골이라고 철철마다 꿩엿 돼지엿 염소엿...
먹여준 엄니때문인지 덕분인지...
사시사철 입맛 떨어질 때가 없어유~^^
아직까지도 만드는 것엔 관심없고
오직 먹는 것만!
ㅎㅎ 재밌게 잘 읽어수다^^*
제주도의 벽초 홍명희, 김세홍 선생의 글, 턱 괴고 읽었습니다.
엿 드세요.
엿 만든 당일, 늘크랑허게 엿먹어부난 그 후 이삼일간은 얼큰한거 먹고싶어서 혼났어요.그래도 꼭 한번 내 손으로 만들어 먹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