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산하를 다시 걷다] 제2부.
4. 행정복합도시와 ‘도시개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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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도시 꿈꾸는 겨울들판 원수산(254m)에서 조망하는 장남평야. ‘다기능 복합 자족도시’ 의 꿈을 이 겨울 들판은 어떻게 꾸고 있는 중일까 <사진작가 황헌만> |
도시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개발의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이런 질문은 거창한 답변을 요청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도시들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또 만들어져왔다.
‘도시 개발’은 일상적인 풍경화를 이루고 있는데 옆으로 뻗는 것만 아니라 위로 솟구치고 있다. 신기루와 마천루의 정글을 헤매면서 ‘욕망의 공간’과 ‘공간의 욕망’에 대한 갈증을 한꺼번에 채우려는 ‘신밧드의 모험’과 같은 일, 그것이 ‘도시탐사’가 되기도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을까. ‘행정중심 복합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만 각양각색 명망가에 취리배(取利輩)들이 온갖 소문과 풍문을 퍼뜨린다. 그리하여 이 계획도시는 각종 담론 생산기지로 돌변되어 있다.
이데올로기성 담론, 정치권력성 담론, 국토효율성 담론, 국토균형성 담론, 재(財)테크 투자성 담론, 그리고 환경주의 담론 등등.
문청 시절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전세방 구하러 돌아다니다가 서울의 온갖 집 구경, 살림살이 구경에 엉뚱하게 맛을 들였던 일이 있다. 그러면서 ‘환경과 인간’의 오묘한 적응력을 새김질해보게 되던 것인데 지금 또한 그러하다. 먼저 이 계획도시의 ‘개념도’부터 확인해보아야겠다.
#‘다기능 복합형 자족도시’의 인문지리
이 도시의 컨셉트는 행정의 ‘다기능’을 담아내는 복합형의 공간구성이로되, 인구 40만~50만명이 상주하는 쾌적한 ‘자족도시’라는 것이다. 이 3박자를 우선 새김질해본다.
이 도시의 전체 얼개는 이전되는 관공 부처들이 들어서는 ‘예정지역’과 편의시설 및 공원으로 조성될 ‘주변지역’으로 구획되는 ‘복합형’이다. 중심권은 고밀도의 ‘유비쿼터스 형태 공간’이겠고 주변권은 저밀도의 ‘DMZ 형태 녹색공간’이겠는데 처음 보는 단어를 벌써 만나게 된다. ‘연담화’(連擔化·con-urbanization)를 예방하겠다 한다. 각종 철도들과 다종 도로들이 종횡으로 통과하고 있어 ‘접근성’은 썩 좋은 편이지만 자칫 ‘자주성-독립성’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듯하다. 대전과 청주는 각기 10㎞ 정도밖에는 떨어져 있지 않고 공주시는 그냥 다붙어 있기도 하다.
이 행정도시의 권역이 되는 충남 연기·공주 일원의 면적은 어떻게 되는지 꿍꿍이셈을 해본다. ‘예정지역’은 여의도 면적의 8.5배가량 되고, 그리고 ‘주변지역’은 27배가량이다(서울 전체의 면적은 여의도의 70배).
널찍하게 터닦이를 하는 쪽은 아니다. 이성계와 무학대사, 정도전, 하륜 등이 ‘즐거운 논쟁’을 하던 시절과는 영판 다르게 국토현실이 워낙 난해해져 버렸다.
원래는 후보지가 네 곳이었는데, 연기·공주가 ‘당선’된 것은 다음의 다섯 가지 기본평가 항목을 통틀어 득표수가 높았기 때문이다. 국가 균형발전 효과, 국내외에서의 접근성,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 삶의 터전으로서의 자연조건, 도시개발 비율 및 경제성.
이중에서 삶의 터전과 자연조건을 대비시키는 관찰과 평가는 도시유기체성 체계의 확인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 풍수지리의 도시개념과 최첨단 ‘테크노폴리스’의 환경공학을 함께 고려해보아야 하는 일이 되는데, 전자보다는 후자에 무게중심이 실려 있다. ‘배산임수의 원리’ 같은 것이야 얼마든지 도시공학적으로 창출해낼 수 있다고 살피는 것인가.
#‘도시개념’과 포스트모더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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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념 당선작 행정도시 도시개념 공모 당선작. 송복섭의 ‘30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도시’. | 여러 우여곡절을 겪어 금년 1월1일부터 이 도시건설 전담의 ‘건설청’이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에 청사를 마련하여 업무를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이 도시는 몇십년 걸려야 완성이 되는 장기 프로젝트다. 정부 부처 등 관련기관이 이전하는 시기는 2012년부터 3년간이다. 주택과 상가 및 각종 시설들을 완비하여 제대로 된 도시로 완성되는 시기를 2030년으로 잡고 있다.
‘건설청’은 토지매입 및 보상을 비롯하여 이미 기본계획의 수립에 착수하고 있다. 새로운 도시의 표정과 개성 그리고 브랜드와 로고의 이미지 생산 몫도 중요하리라. 건설청 추진위원회는 ‘도시개념’의 국제 공모를 실시한 바 있기도 하다. 작년 5월7일 이를 공고하여 7월11일 마감한 결과 세계 25개국으로부터 121편의 작품이 출품된다. 11월25일 5개의 작품을 뽑았다. 당선작들의 ‘도시개념’은 기본계획과 개발계획에 반영시킬 것이라고 건설청은 천명하고 있다.
언론에 공개된 당선작들의 ‘공간 예술성’을 살펴보면 그 작가정신들이 충분히 이채롭다. 자연경제 시대의 전형적인 농촌취락구조의 강마을을 대담하게 해체시키고 또는 변용시켜 ‘공상과학 영상’을 표출시킨다.
‘도시개념’ 당선작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발휘하고 있는데 1990년대 한국문단에 잠시 등장되다가 곧 시들해지고 말았던 ‘논쟁’을 연상해보게 되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실상 문학 아니라 건축 쪽에서 먼저 수용코자 했던 것이었다. 이 조류의 공과 과를 건축계에서는 어찌 파악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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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병산 해맞이축제 금병산의 신년 해맞이축제 소지 태우기. 대전과 행정도시 건설예정지의 경계선에 놓인 금병산에서 신년 발복 행사가 벌어지고 있다. |
#국토의도시화율과 ‘도시개념’
현직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에 ‘권력-부(富)-문화’의 분산을 위해 ‘수도 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그러나 이 정치담론이 ‘이상적’인 비전 제시에서 더 나아가 ‘현실적’인 과업의 실천에 얼마나 충실한지 의심하는 이들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항담론’이 워낙 막강하다. 개발이익과 투기이익을 국토에서 찾아내려 하는 ‘국토권력’의 실력자들은 이미 충분히 정치화되어 있다. ‘여-야’가 따로 없고 ‘관-민’이 따로 없다.
이 계획도시를 포위하고 있는 대전광역시(1백45만 인구), 청주(64만), 공주(13만), 천안(52만) 등의 지자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토지보상으로 풀리는 돈의 단위부터 몇 조원이라 하니 이의 행방이 궁금할 밖에 없겠다. 전북-경북-경기의 속내 사정도 단순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전국에 배치되는 기업도시와 혁신도시들이 작년에 확정되었는데, 올해부터 여의도를 124개 합산시킨 면적(1억1천만평 이상)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각종 개발공사들이 벌어지게 된다. ‘신국토 디자인’의 로드맵이 어떠한 기준과 원리로 작동되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이 요청된다.
국토의 통계자료를 들여다본다. 수도권에 사는 인구가 전체의 48.1%에 달해 5년 전보다 6.5% 늘어났고, 전국 도시화율은 이미 1990년대로부터 80%대의 수치를 넘어버린 형편이다. 홍콩이나 싱가포르와 비교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은 ‘도시국가’이고 전국은 ‘서울특별시’ 권역과 그 주변부의 ‘서울보통시’ 권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여 왜곡된 관찰이 아니다. 그러므로 중심의 ‘해체’는 아니고 일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 변화되려 하는 단계이다.
환경파괴의 ‘개발연대기’는 확실하게 지나갔음을 인식케 하여 ‘친화적인 환경’이 곧 모든 사회활동의 기초자산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행정복합도시 프로젝트는 ‘새로운 시민철학’의 청신호이기를 바라고 싶은데, 이러한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
‘쿠오바디스’의 물음을 묻게 된다. 토지 공개념을 썩 물리쳐버리고 ‘시장 맞춤형’에 오로지 내맡겨놓고 있는 우리 국토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박태순/소설가〉서울고 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