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 김조민
암시暗示는 아닙니다 외
우리를 띄어 읽기 전에 체크해야 할 것이 있어요
최저가 햇빛에는 사랑이 옵션이었으니까 아침마다 배회하는 먹구름 베이스 사이에 적당한 상상력을 뿌려 두셨나요
엎드린 이들에게는 멀리 아름다운 목소리가 꽃처럼 피어났겠죠
맞잡은 손바닥에는 몇 소절의 노래가 남았을 거구요
완벽하진 않지만 목청껏 대답하는 첫 번째 저녁을 맞았다면
다음 채도는 서로의 기억이었을 거에요
틀림없어요
어느 귀에도 닿지 않은 메아리가 몇 번의 저녁과 아침을 넘나들며 흘렀나요
마음속으로만 되돌아가는 전진이었죠
그럭저럭 밝아오는 달빛에 기대 울음이 무성해질 때 다음 아침을 기대했을 거에요
모든 시작은 차근차근 다가올 어긋남을 감추고 있다는 주의사항을 알고 있었을 거에요
건너뛰기 위한 베일을 두르세요
서두르세요
준비는 끝났습니다
처음의 우리는 잠깐 설렜던 한 발걸음에 자꾸 낯설어질 거에요
그때 비로소 우리의 헛된 띄어읽기는 처음부터 알아차리지 못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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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점
까마귀가 날아오르는 것을 보았어요
이미 아침은 무거웠고 명백함은 흔들리지 않죠
내일의 할 일들을 하나씩 지울 때마다
의자 밑에 두었던 발등이 조금씩 사라져요
철자와 발음이 맞지 않아 제외된 것들은
세련되지 못한 혼란으로 남아 두리번거리겠죠
단 한 번
쓸모없는 구분에 대해 생각했어요
어제는 연필 끝에서 태어났다가 흐려졌던 함정이었을까요
오늘은 멈추지 않는 것들 위에 놓인 채 각각 떨어지거나 퍼지는 흔적일까요
의심이나 확신의 한가운데
빽빽하게 세웠던 것은 바람이나 흔적
그 어떤 것도 지나가기 위한 것이겠죠
아침에 날아올랐던 까마귀가 피뢰침 끝에 앉아 움직이지 않아요
돌아오지 않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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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조민
2013년 《서정시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미래서정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