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아들의 영 -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됨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들의 영'이 증거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영'은 '하나님의 영' 또는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성령'을 가리킨다. 성령은 약속대로 오순절 다락방에 강림하신 이후에 모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양자됨'을 증거한다. 아바 아버지 -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으며, 그들은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예수 당시의 유대인들 중에 실제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 아버지'라고 불렀을때 불경하다고 말한 것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과 성령의 내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로워졌고 그 새로워진 관계를 '아바'라고 표현했다.
'아바'는 아람어로서 '아버지'를 뜻하며 탈무드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어린아이가 '아빠'라고 하는 것처럼 아버지를 더욱 친근하게 부르는 표현이다. 바울은 이말을 사용하여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주 가까운 것임을 증거한다.
[갈 4: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유업을 이을 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클레로노모스'는 '상속자', '후사' 등의 뜻을 가진다. 본문에서 이말은 '종'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누리는 모든 축복을 소유한 자를 의미한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성령의 내적증거로 말미암아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는 특권을 소유하게 되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본서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약속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3:26)등의 모든 방편들을 포괄하는 표현이다.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이 양자됨이 자신의 행위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 은혜의 결과라는 것을 상기시키려 하고 있다
[갈 4: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하였더니 -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이교도로 있을 때의 상태를 지적한다. '하나님이 아닌 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 우신 데오이스'는 문자적으로 '신이 아닌 자들'이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이를 '귀신' 또는 '신이라 칭하는 자'(고전 8:5)라고 표현하기도 했으며 이것들은 제우스, 아폴로 등과 같이 인간의 상상력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들을 의미한다
이처럼 인간이 만든 형상을 섬기는 것은 우상 숭배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를 분명하게 금지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본성적으로 우상의 노예가 되게 마련이다.
[갈 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 '이제는'은 '그 때에는'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면서 갈라디아 교인들의 상태 변화를 설명한다. '알다'의 헬라어 '그노스덴테스'는 '기노스코'의 부정 과거 수동태로 '오이다' 등과는 달리 보다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 속에서의 앎을 나타낸다. 즉, 하나님을 아는것은 믿음을 통하여 경험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며 나아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하신 은혜에 의하여 수동적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 - 본 구절은 율법을 빗대어 말하는 표현으로 3절에서 언급한 '초등 학문'의 특성을 지적하고 있다. '약하고'의 헬라어 '아스데네'는 율법은 무력하고 빈곤하여서 인간을 대속하고 속량할 능력이 없다. 또한 '천한'의 헬라어 '프토카'는 원래 사람들이 절대적인 궁핍으로 인해 구걸할 수 밖에 없는 '결핍 상태'를 의미한다. 본 구절에서 이러한 의미의 단어를 사용한 것은 초등 학문인 율법은 항상 결핍이 있고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율법이 갖고 있는 초라함은 '그리스도의 풍성함'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그리스도를 떠난 사람들의 초라함과 천박함을 동시에 시사하고 있다.
[갈 4: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거짓되고 외식적인 율법주의를 책망하고 있다. 본절과 유사한 문구는 골 2:16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당시 이방인 교회속에는 거짓된 외식적 율법에 의하여 상당한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의식적으로 지켰던 율법의 규례들은 다음과 같다. (1) '날'.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지켰던 금식일과 안식일을 뜻한다. 그리고 여기에 하루만 지키는 절기가 포함된다.
(2) '달'. 매월 초하루에 지키는 월삭과 달의 반복적 운행과 관련된 절기들, 즉 정월로서 추수가 시작되는 아빕월, 2월이며 꽃의 계절인 시브월, 비의 계절인 7월과 8월, 즉 에다님월(왕상 8:2)과 불월 등을 가리킨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에 있어서 달에 대한 절기는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월력이 달랐으므로 그들의 문화권에서 혼란을 초래했던 것으로 보인다.
(3) '절기' 레위 율법이 규정하는 3대 절기, 곧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의 전통에 의하여 추가된 나팔절, 수전절, 부림절 등을 말한다. (4)'해'. 매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과 매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상에서 언급한 종교적 절기들을 충실히 지킨 사실만으로 갈라디아 교인들을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바울은 그들이 율법의 참된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을 구원의 방편으로 삼는 왜곡된 신앙을 소유함으로 더 큰 멍에와 굴레에 빠져 헛된 열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책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