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먹을 건데”
“대갱이”
“맛있어?”
“글쎄...”
“짜장면 먹고 싶다.”
“... ...”
군밤
아내가 먹고 싶다는데 당연히 먹어야죠.
차와 다식
아내가 쉬었다 가자는데 당연히 쉬어야죠. 이런 거라면 얼마든지 좋습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고 유람에 푹 빠져 점심끼니를 걸렀습니다. 걸신의 단계를 벗어나 해탈의 경지로 입문하나 봅니다. 송광사 입구에서 먹은 군밤, 순천전통야생차체험관에서 마신 차는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수차 언급했듯이 ‘우연히 눈에 띈 찻집에서 머물기도 하고, 마주치는 주민들에게 괜한 농도 치고, 주민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소소한 물건이라도 하나 더 거래하는 느린여행을 추구합니다.
대갱이
대갱이를 검색해 보니 많은 이들이 ‘에어리언’을 닮은 기괴한 건어물로 묘사해놨습니다. 나 역시 그들의 의견에 동조합니다. 대가리의 생김새, 특히 주둥이에 난 무시무시한 이빨이 영화 속 에이리언의 이미지를 연상시킵니다. 그러고 보니 대갱이는 대가리의 방언(전라, 제주, 충청)입니다.
아내의 여행에 순순히 따라 나선 것은 나 나름의 속셈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갱이를 맛보는 것도 그 속셈 중 하나입니다. 대갱이가 주로 잡히는 순천에서는 문저리, 운저리로도 부른다는데 문저리는 망둥어의 방언(전라)이고, 운저리 또한 문절망둑의 방언(전라)입니다. 어느 것이든 우리가 흔히 망둥이 또는 망둥어라 부르는 망둑어과에 속하는 물고기를 일컫습니다. 그 중 개소겡이란 학명으로 불리는 것이 바로 대갱이입니다.
망둥어포 구이
서울 옥경이네 건생선집에서 먹었었습니다. 가미를 안 한 것이라 고유의 맛을 음미할 수 있었습니다. 사골곰국의 기름짐이 살짝 가미된 노가리 맛이랄까. 전주 전일슈퍼나 을지로 오비베어의 불량스런 소스에 찍어 먹으면 맛나겠습니다.
뚜거리(꾹저구)탕
양양의 천선식당에서 먹었었습니다.
우리가 알만한 망둥어과 물고기로는 서산이나 강화도의 문절망둑, 말뚝망둥어 등과 동해 강릉의 꾹저구(양양에선 뚜거리라 부름), 순천의 짱뚱어 등이 있습니다. 주로 회나 탕으로 먹습니다.
송광사 편백나무 숲
공기가 맛있습니다.
대갱이는 장어처럼 기다란데 건조시킬 때 꼬챙이를 주둥이로 집어넣어 뒤통수로 빼내서 널어 말립니다. 그러면 몸통이 밑으로 축 늘어져 곰방대 형태가 됩니다. 말린 대갱이 묶음을 보니 괜히 송광사 편백나무 숲이 떠오릅니다. 대갱이도 아내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길 바랍니다.
대갱이 구이
북어포보다 조금 더 꼬습달까...아내는 그 게 그 거랍니다.
대갱이무침이 순천의 전래음식이라지만 순천에서 대갱이무침을 맛보는 게 그리 호락하지 않습니다. 대갱이를 메뉴로 내건 식당이 없을뿐더러 대갱이가 뭔지도 모르는 주민들도 숱합니다. 간혹 한정식집이나 향토음식점에서 반찬으로 내주는데 그 가짓수가 많아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또 기껏 먹어놓고도 북어포무침이나 멸치볶음으로 착각하기 십상입니다.
짱뚱어
탕을 끓이면 얼마나 맛있게요.
“안 먹을래.”
“그럼 짜장면이라도 먹고 올래?”
“아니.”
“배고프잖아.”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대갱이의 괴기스런 모습에 아내가 식욕을 잃었나 봅니다. 주문한 대갱이를 손질하는 동안 아내와 함께 벌교시장과 별교역전을 한 바퀴 둘러봐도 아내 혼자 들여보낼만한 식당이 마땅찮았습니다.
“그럼 대갱이는 숙소로 가져가서 먹고 여기선 짱뚱어탕을 먹을래?”
“싫어.”
어제 휴게소에서 먹었던 아점부터 중식, 석식, 야식에 오늘 조식, 간식까지 무려 여섯 끼를 아내가 원했던 대로 순순히 따랐던 것은 대갱이를 맛보기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와서 대갱이를 포기할 순 없습니다. 혹시 짱퉁어탕이라면 또 모를까요. 하지만 아내에겐 대갱이나 짱뚱어나 도긴개긴일 겁니다.
대갱이무침
“무쳐놓으니 맛있어 보이는데.”
“읭?!‘
“먹어볼래?”
“응.”
옳다구나! 이제 됐습니다. 과정은 험난했지만 완성된 대갱이무침은 맛깔나 보였습니다. 그러니 아내도 선뜻 맛을 보겠다는 게지요.
대갱이 두들겨 패기
대갱이 굽기
대갱이 살을 발라 찢기
대갱이 무치기
대갱이무침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니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닙니다. 북어마냥 딱딱하게 마른 대갱이를 하나씩 나무방망이로 두들겨 패서, 불에 굽고, 살을 발라 잘게 뜯고, 약간의 채소와 고추장, 양념을 더해 벌겋게 무칩니다. 조리에 30분가량 걸렸습니다. '냉장고를 부탁해'에는 출연하지 못하실 스피드입니다. 할머니에겐 스피드보단 손맛을 기대하렵니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식당이 바쁠 땐 대갱이무침을 못해 주신답니다. 간간히 소정의 삯을 받고 해주는 일이라 식당일이 우선이랍니다.
동막식당의 백반
“어때?”
“맛있어.”
막상 대갱이무침을 먹어보니 아내도 입맛이 동하나 봅니다. 할머니의 노고에 보답하려 백반 한 그릇이라도 더 팔아주겠답니다. 백반 1인분이나 2인분이나 밥 하고 국만 추가될 뿐 나머지는 그대로이니 할머니에겐 그 만큼 이득입니다. 말린 대갱이 한 두름(20마리)에 1만원(마리당 5백원), 무치는 삯 5천원, 백반(5천원) 2인분에 1만원해서 총 2만5천원이 나왔습니다. 3만원을 드리고 거스름을 사양했더니만 할머니께서 냉장고에서 막걸리 두 병을 꺼내주십니다. 미리 덜어둔 대갱이무침과 함께 담았습니다. 어젯밤 삼겹살집에선 단감 네 개를 얻었었습니다. 오늘 아침엔 산에사네에서 커피 두 잔을 얻어 마셨었구요. 남도의 가을볕이 유난히 포근합니다.
<갑판장>
& 덧붙이는 말씀 : #짱뚱어탕#먹고말테다#언제?
첫댓글 봉천동 가야겠다. ㅎㅎ
가을이니 동네 추어탕집에서 마나님과 한 잔 하시라요.
문절구는 맛이 심심한 생선이라, 말려야 맛이 응축되어 겨우 먹을 만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도시락 반찬으로 먹던 문절구 무침을 여기서 보는군요.
짱뚱이는 고향 떠난지 30년 넘은 자에게 고향이 떠오르는 맛이랍니다. 짱뚱이는 여름에 드셔야 생물을 드실 수 있습니다. 나머지 계절에는 냉동입니다.
말씀을 듣고보니 이번에 짱뚱어탕을 못먹고 온 것이 새삼 아쉽습니다. 젠피가루 톡톡 뿌렸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신안 증도에서 뛰노는 짱뚱어를 보고 영암에서 탕을 먹고 그 맛에 반해 봉천동 남도포차에서 먹어 보았는데 역시 가서 먹는게 나은듯 합니다,,,무침에 침이 동하는데 목포에 있을란지 의문입니다,,,
예전에 대원식당 등에서 이미 맛봤을 겁니다. 그쪽 한정식집이나 향토색 짙은 식당에서 종종 반찬으로 내줍니다. 몰라봐서 그렇지..
대갱이..짱뚱어..기필코 먹어보리라 필승!!
아이들은 잠시 잊고 두 분이 홀연히 다녀오시길 바라요. 이틀이면 천만리장성을 쌓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