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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작곡가 조상욱입니다. 화백님에 대해서는 서울의지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서울의지와 연을 맺게 된 것은 의수를 빌리고자 간절한 소망을 담아 간곡히 부탁을 드리게 되면서였습니다. 그 부탁 드리는 과정에서 저는 제가 엄지손가락 하나만 사용한 피아노 연주 동영상을 보내드렸습니다. 멜로디만 연주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화음도 손색없이 들어가게 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 시작되었습니다. 손가락 하나가 보다 빨리 보다 높이 보다 힘차게 움직여야 열 손가락 모두 사용되는 연주, 최소한 다섯 손가락이 사용되는 한 손 전체의 연주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연주가 될 수 있기에 많은 노력과 공이 필요했지요.
그런 발상의 시작은 태어나는 과정에서 뇌 세포가 떨어져나갔는지 잘못 되면서 그만 한쪽 신경이 반응할 때 다른 쪽 신경이 반응하게 되면서 양손이 각각 다르게 움직이는 것 대신 대칭을 중심으로 거의 같은 식으로 움직이게 되었고, 아기 적엔 그냥 손을 장난스럽게 움직이는 것인가 보다 생각하셨다가 뭔가 이상하고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드신 어머니께서 제게 주전자와 쟁반을 각각의 손에 들라고 하셨고 제가 쟁반에 담긴 것을 쏟는 것을 보시고 서울대 병원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평생 고칠 수 없다는 의사선생님 말씀에 저의 어머님께서 오열하셨죠. 그러나 지푸라기 잡겠다는 심정이셨던지 혹시 피아노나 기타를 배우게 되면 고칠 수 있을까 궁금하여 의사선생님께 여쭈셨고 의사선생님의 답변은 고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손을 쓰는 것이 조금씩 나아질 것은 확실할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시면서 제게는 15년 정도 열심히 피아노를 배우면 고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셨습니다. 국민학교 입학을 얼마 앞둔 때인 저는 그 말씀을 무조건 믿었습니다. 문제는 저희 집에 돈이 없어 피아노 레슨을 동네 학원에서 받는 것조차 불가능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교회 장로님 집안의 따님이시고 수녀가 되겠다고 하셨다가 집안의 반대로 수녀 되시는 것은 포시하시는 대신 착한 일 많이 하시며 사시겠다고 결심하셨던, 피아노 전공자는 아니셨지만 피아노 두 대 구입하셔서 피아노 학원을 가정집에 차리셨던 분께서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피아노를 가르치셨는데 저의 사정을 아시고 가뜩이나 싼 비용에서 1976년 당시의 돈으로 1000원을 깎아주셨습니다. 가뜩이나 레슨비까지 깎아야만 할 정도로 가난한 저희 집에 피아노가 있을 턱이 없고 피아노 위치를 외운 후 집에서 종이 피아노로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게 된 피아노 선생님께서 기꺼이 당신 집에서 피아노 연습을 하게 해주셨고 키가 작은 제가 피아노 건반을 누를 수 있도록 방석도 만들어주시고 제게 없는 피아노 교재까지 사주셨지요. 그 은혜 어떻게 갚을까 너무 감사하고 미안해하시는 저희 어머니께 그분께서는 기회가 닿게 되면 음악을 공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는 이들에게 무료로 레슨을 해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음악을 공부하게 될 경우에요.
장애 고치는 것이 15년 후에는 가능할 것이라는 사실만 믿고 열심히 신나게 피아노 연습을 매일 하던 제게 저희 아버지께서 4년만에 빚을 내셨는지 어쨌든 피아노를 마련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더욱 많이 웃으며 피아노를 쳤지요. 그러던 어느 날에 문득 제게 그림자가 생겼습니다. 저보다 2년 나중에 피아노 배운 또래의 친구들이 저를 앞서갔습니다. 그것도 제가 5년째 피아노를 칠 때 그들은 3년만에 저를 능가했습니다. 제가 더욱 열심히 쳤는데도요. 1년 후에는 저보다 3년이나 늦게 피아노를 시작한 또래의 친구들이 저를 능가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제게 장애가 있다는 비극적인 사실을요. 미친 듯이 열심히 피아노 치던 어느 날부터 음악이 좋아졌고 저는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지경에도 이르렀습니다. 다른 이들과 비교하지 않고 오직 제가 목표한 것에만 집중해 매일, 매주 목표를 달성하면서 꿈을 키울 생각을 품으며 열심히 연습하던 어느 날부터인가 제게는 더욱 비극적인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실력이 더는 늘지 않는 것이었지요. 피아노를 칠 때 얼마나 화가 나면 건반을 때려부수듯 쳤고 저의 어머니의 걱정은 심해졌습니다. 급기야 사춘기가 겹치면서 저는 이성 문제 혹은 진로 문제가 걱정이 아니라 장애로 인해 밖에 나가는 것조차 부끄러워야만 하게 되고 장애로 인해 취직이 되지 않아 도장을 파고 시계를 수리하며 살아야 될 텐데 문제는 손에 장애가 있고 제대로 마음 먹은 대로 움직여주지 않아 그런 일도 못하게 되는, 집에 있는 돈과 쌀만 축내게 되는 천덕꾸러기가 될 거라는 생각에 한강대교에서 투신할 생각까지 갔고 실제로 한강대교 남단에서 한강을 바라보고 뛰어내릴까 하고 결심하고 뛰는 가슴을 안기까지 했었죠. 기적이랄까, 당시 물이 너무도 지저분한 상태라서 저는 자살방식을 달리 생각하고 그날은 귀가했습니다. 얼마 후에 음악 전공 원하지만 절대로 손의 장애로 악기를 전공할 마음조차 포기해야 될 거라는 생각으로 인해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진 아들을 위로하는 마음에서였는지 어머니께서 작곡 공부를 권하셨습니다. 취미라도 좋으니 시작만 해보라면서요. 음악가 하면 베토벤과 모짜르트 등의 작곡가부터 떠올리게 되지 않겠냐면서요. 난생 처음 제게 손의 장애과 관계없는 것을 배우게 되면서 제게 활력이 생겼고 그로 인해 자살 충동은 잠시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저는 그냥 음악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제가 좋아하는 음악 직접 만드는 재미에 빠졌고 음대 작곡과에 합격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자살까지 생각했던 과거를 포함해 옛 일을 잠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외갓집에 갔었고 거기서 흑백 텔레비전을 통해 보게 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선상에서 신나는 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즐겁게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때 제 눈을 사로잡은 장면은 갈구리를 양손에 낀 선원복 입은, 지금 생각해보면 선장님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피아노 친지 1년 조금 넘었을 무렵이고 저보다 훨씬 피아노를 잘치는, 갈구리 손을 가진 그 사람의 솜씨에 충격을 받게 되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영화니까 가능했겠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 장면은 이후에도 제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이후 저는 사고로 팔을 하나 잃게 된 사람을 위해서 뭔가 해보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은 채 생일축가 연주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부터요. 왼손 하나의 연주가 양손 연주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게 하는 편곡을 제대로 해내기 위해 저 스스로 왼손 하나만 사용하는 연주를 시작한 것은 1995년입니다. 그리고 이후에는 오른손 하나만을 사용하는 연주도 시작했고요. 나날이 실력은 늘게 되었고 저는 14년만인 2009년에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게는 시각 장애로 인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커지고 용기는 작아지던 후배 음악가에게 멘토 역할을 해주던 때였고 저는 새로운 도전을 직접 해낼 테니 용기 다시 내고 꿈을 절대 잃지 말라고 하면서 엄지손가락 2개만 사용한 피아노 연주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엄지손가락 2개로 피아노 연주하는 것은 텔레비전 통해서 보게 된 갈구리 2개로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해내는 것이 영화가 아닌 현실 속에서 얼마든지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내고 싶어서였습니다. 목표를 10년, 안 되면 10년 더, 그래도 또 안 될 경우 추가로 10년 더, 이런 식으로요. 그리고 마침내 5년 후에 어느 정도 실력이 붙자 거기서 더 실력을 늘리는 대신에 더 힘든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엄지손가락 하나만 사용한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 당시 제게도 정말 말도 안 될 것 같은 것이었습니다. 화음까지 넣으려면 손가락이 너무도 바쁘게 피아노 건반 사이를 날아야 하고 절대로 실수도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 도중에 팔에 힘이 빠져도 안 된다는 절대적인 조건이 붙기 때문이었죠. 그래도 그걸 해낼 수 있다면 그땐 갈구리 양손에 낀 사람에게 "당신들도 얼마든지 피아노를 멋지게 칠 수 있다는 것 느끼실 겁니다. 엄지손가락 하나만 사용해 피아노늘 치는 저에 비해 당신들은 손가락을 두 개 가진 셈이니 최소한 2배로 멋진, 사실상 3배 이상 멋진 연주를 해내실 수 있습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꿈꾸면서요. 그리고 그렇게 손가락 하나만을 사용해 피아노 연주하는 것을 시작한 2014년에 10년 후에는 손가락 하나만 가지고 피아노를 치면서도 여유가 넘칠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미친 듯이 연습에 매달렸습니다. 눈이 너무 바쁘게 움직여야 되어 너무도 빨리 몸이 지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주를 위해서는 서서 피아노를 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맞았습니다. 그래서 정말 신나게 연습하고 연습하길 거듭하는 어느 날 몸에 이상이 왔습니다. 페달을 밟는 오른쪽 발과 홀로 힘차게 제 몸을 지탱하던 왼쪽 다리의 무릎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오랫동안 치료 받게 될 정도로요. 그렇게 저는 손가락 하나로 피아노 치는 실력을 얻게 되었고 그 실력을 토대로 꿈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손을 잃게 된 후 갈구리를 끼게 되거나 선천적으로 기형적으로 태어나거나 사고를 당해 손가락을 잃게 되거나 손가락이 양손에 각각 하나씩만 있게 되는 사람들에게 그저 그림의 떡이 되어버린 실용음악이 진짜로 실용적인 음악이 되고 실용적인 피아노 음악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게 될 준비가 갖춰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주 멋진 장면 하나를 떠올렸죠. 손가락 두 개 가진 사람 혹은 갈구리 손 두 개 가진 사람이 한 손으로 다른 이의 손을 잡은 채 그 사람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의미로 생일축가를 연주해주는 것을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니 당연히 음악은 세상에 나온 기존의 음악보다 훨씬 아름답게 들려야만 하고 그러자면 정말 멋지게 되도록 심혈을 기울여 편곡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품고 난생 처음 작곡을 배우게 되고 편곡을 배우게 된 것이 그토록 감사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연주를 처음 듣게 된 대상은 저의 어머니셨습니다. 저의 어머니 살아생전에 아마도 제가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를 마지막으로 듣게 되실 때 생일축가를 쳐드릴 생각을 늘 품고 있었습니다. 저의 어머니 생신이 아니라도요. 그리고 제가 드릴 말씀 또한 늘 마음에 담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었으니 평소에 어머니로 불러드리나 그날만큼은 다시 예전 아이 기억을 되살려 엄마라는 호칭을 쓸 생각도 했고요.
"엄마! 손가락 하나만 사용해도 이 정도 피아노 칠 정도로, 이제 내가 손가락 10개 다 사용하면 장애 없는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피아노 칠 수 있게 되었어. 이제 나 보통사람이야. 그러니 이제 더는 아들 장애 가진 것 때문에 슬퍼하지 마. 그리고 작곡 공부 할 수 있게 해줘서 정말 고마워! 덕분에 편곡도 하게 되어 이런 음악 들려줄 수 있게 되었고 작곡 공부하는 동안에 나 너무도 행복했어! 엄지손가락 치켜들 정도로 최고였던 엄마! 저의 어머니로 태어나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 말씀 드릴 때 제가 그렇게 장애 극복하기 위해 애썼고 제가 장차 손을 잃게 되어 갈구리 끼게 되는 이들, 그리고 선천적으로 손가락이 몇 개 없는 이들 위해 무료로 피아노 레슨 해줄 계획을 가져준 것에 대해 정말 많이 뿌듯해하셨고 정말 많이 기쁘게 우셨어요.
첫 녹음 곡은 생일축가, 그 다음 녹음 곡은 배가 있어야만 갈 수 있는 먼 바다 건너 있는 섬까지 배가 없어진 상황에서도 기어이 혼자 힘으로 헤엄쳐서 간 여인의 이야기가 전설로 내려오는 음악인 "Pokarekare Ana"였습니다. 그 다음 녹음을 생각하는 곡은 별을 보며 소원을 비는 배경이 담긴 "When I wish upon a star"(영화 <피노키오> 주제음악)입니다. 이 곡을 의수의 손가락 하나를 사용해 연주하는 것을 보여주면서 손이 절단된 이들에게 피아노 연주가 결코 그림의 떡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서울의지를 찾게 되었고 반자동 상박의수를 보게 되면서 화백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멋진 예술가로 살아가시는, 하나님 섬기시며 진정한 승리자로 살아가시는 화백님께 진심으로 존경심을 가지며 더욱 용기를 내고 더욱 실력을 키우면서 절단 장애로 인해 누렸던 행복을 잃고 꿈까지 잃게 된 이들이 다시 꿈을 가지게 되고 희망을 가지게 되고 음악을 통해 다시 밝은 웃음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재능을 매우 기쁘게 감사하면서 사용할 것입니다. 이렇게 서면을 통해 만남을 가지나 정말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1969년생입니다. 그리고 화백님께는 예술가 후배입니다. 기회가 허락된다면 직접 얼굴 뵙고 정식으로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긴 소개 글을 통해 가입 인사를 드립니다. 언제나 주님 안에서 최대한 기쁘고 행복한 삶을 누리시길,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시며 살아가시길 바라며 기도드립니다.
조상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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