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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잠언 29:14 16:12 로마서 13:1-7
제목: 영원히 견고하게 세우는 방법
일시: 2020. 6. 7
장소: 라이프찌히교회
I. 이스라엘은 원래 왕이 없었고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사가 있어 잘못을 바로잡고 문제를 풀며 위기를 극복하고 살아갔다. 사사기는 히브리어로 쇼페팀, 영어로는 Judges로, 사사들은 평화 시기에는 사회질서를 위해 재판을 하며 국가적 위기상황에서는 외세에 맞서 전면에서 싸우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사시대는 각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혼란의 시기였다. 사사기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로 끝맺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왕이 세워지게 된다. 그러나 왕을 세워도 혼돈의 시대는 계속되었다. 왜냐하면 왕이 제대로 통치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왕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라를 통치하지 않고 자기의 소견대로 통치를 하게 되면 백성들은 고통을 받게 된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3대 왕으로 왕이 어떠해야 함을 알았다.
II. 통치자가 할 일이 무엇이었는가? 예나 지금이나 바로 재판이다. 솔로몬이 왕으로 지목을 받고 하나님께 구한 것은 재판을 잘 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8-9). 재판은 돈이 비싼 로펌에서 변호사를 살 수 있는 사람, 법을 많이 공부한 유식한 사람, 살아있는 권력과 실세를 인맥으로 가진 사람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수 있다. 솔로몬은 그러한 외적인 요소들로 판단력이 상실될까봐 재판을 진실 되게 할 수 있는 분별력을 달라고 한 것이다. 문제와 갈등이 없고 재판할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사람 사는 곳에는 그런 일들이 늘 있게 마련이다. 솔로몬은 그런 일들을 바란 것은 아니었지만 바로 그러한 일들을 위해서 자신이 왕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난한 자, 눌린 자, 억울한 사람이 없으면 좋겠지만 솔로몬은 자신이 왕이 된다는 것은 바로 그런 사명을 가졌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예)목회도 늘 좋은 것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어렵고 힘들 때 피곤한 일이 생긴 것이 아니라 “드디어 목회자의 존재이유가 여기에 있구나”라고 생각한다. 돌잔치, 생일잔치, 결혼식은 빠져도 초상집은 가야 한다. 편하고 쉽고 즐거운 일은 빠져도 어렵고 싫고 힘든 곳은 빠지지 말아야 한다. 물론 존재이유를 증명하기 위해서 문제가 발생할 필요는 없다. 차 보험도 찾아 먹기 위해 사고 낼 필요가 없다. 의료 보험을 찾아먹기 위해 아플 필요는 없다. 차보험이든 의료보험이든 손해를 보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을 때 바로 이때를 위함이라고 알아야 한다. 팔을 걷어 부치고 달려들어야 한다.
보통 재판을 하게 되면 누가 재판을 받으려고 오는가? 재판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약자를 위한 것이다. 오늘 말씀에 “가난한 자”라고 하는 말은 물질적 경제적인 약자일 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하소연할 데 없는 사회적인 약자이다. 부자가 억울해서 법정으로 끌고 갈 일은 별로 없다. “내가 별일도 안했는데 이렇게 돈을 벌다니 이것은 부당합니다. 세금이 왜 이리 적게 나왔습니까”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때린 사람이 아니라 맞은 사람이 의사 진단서를 가지고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돈을 떼인 사람이 권리를 찾으려고 법정에 호소하는 것이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법에 나아간다. 부당하고 억울한 사람이 법에 호소하는 것이다. 바로 이때 재판하는 왕은 권력자나 부자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런 “가난한 자”를 위해 재판을 하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 “신원하면” 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은 "공정하게 재판하다"는 뜻이다. "Ein Koenig, der die Armen treulich richtet." 진실 여부를 잘 가려서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이다. 솔로몬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왕의 첫발을 떼었으니 얼마나 나라를 잘 다스렸는가!
그런데 종종 왕이 가난한 자와 함께 있지 않고 귀족들과 힘 있는 자들과 함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왕은 가난한 자들 위해 군림하게 된다.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이런 왕은 나쁜 왕이다. 이런 통치자는 자신의 군사력과 권력을 어디에 쓰는가? 총과 칼, 전투기와 탱크 등 무기들은 외부로부터 오는 적을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가난한 자와 함께 하지 않는 나쁜 왕은 자신의 권력과 힘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압제하여 내부통제를 하기 위해 사용한다.
예)나는 87년도에 군생활을 했다. 충남지역 특히 해안선을 최전방으로 사수하는 32사단 505여단 기동타격대에 배치되었다. 현역이 아닌 방위병이지만 전투병이었기에 보통 하는 일들은 전투훈련이었다. 행군, 특공무술, 총검술... 그 가운데 충정훈련이라고 하는 훈련이 있었는데 데모진압훈련이었다. 50분 훈련 10분휴식 하루 8시간이 법적 근무시간이었다. 왼손에는 방패를 잡고 오른손에는 곤봉을 들고 오와 열을 맞추어 군화발로 땅을 두드리며 구호는 “압”이었다. 압압... 사단 충정훈련 대회에서도 늘 1등이었다. 워낙 국민적인 데모가 많던 시절이었는데 나라가 군사를 훈련을 시키는 것이 바로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일반 경찰들이 질서를 잡다가 어려워지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그리고 우리가 나가는 것이었다. 그때는 총을 가지고 나가게 된다. 자기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군사력을 키우는 가장 최악의 나라가 바로 북한 김정은이다. 핵을 만드는데 그 이유는 미국이 덤빌까봐가 아니라, 자신들의 “체제유지”를 위한 것이다.
내가 낸 세금으로 내가 최루탄을 맞고 내가 곤봉으로 맞으면 얼마나 아이러니하고 비극적인 일이 어디있는가? 슬픈 일이다. 후진국은 국민들을 압제하기 위해 군대를 키운다. 후진국의 법은 약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강자를 위한 법이다. 그래서 백성은 고통을 받고 억울하다. 그러나 선진국은 복지가 좋은 나라이다. 가난한 자가 없는지 살피고 그들의 불만 억울함을 풀어주는 나라이다. 솔로몬은 권력자들을 잘 챙기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이 자신의 왕위와 이스라엘을 영원히 견고하게 세우는 방법임을 알고 있었다.
III.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민주주의도, 사회주의도, 귀족정치도 아니라, 사실 신정정치에 의해 유지되는 나라였다. 즉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였다. 사람들이 각자 자기 소견대로 행하고 서로 이해관계와 불만이 쌓이게 되자 그들은 하나님께 왕을 요구하게 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왕을 허락하신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왕은 국민투표로 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하나님의 택하심에 따라 임명되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사울이다. 그가 왕으로 될 때 사무엘이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삼상10:1). 그리고 이후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다(삼상 16:13절).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왕으로 세우셨다는 말이고 왕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로 나라를 통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이 기름을 붓지 않은 나라들의 왕은 될대로 되라고 아무렇게나 팽개쳐 버리고 계셨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느브갓네살왕이나 페르시아의 고레스를 사용하시고 애굽의 바로를 사용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을 잡은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런 통치자들을 세워서 어떻게 역사를 진행시키는지 가만히 봐야 할 것이다. 조국 대한민국의 문재인대통령, 일본의 아베, 중국의 시진핑, 미국의 트럼프, 러시아의 푸틴... 그리고 북한의 김씨 왕조 김정은... 다들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다.
예)제가 81년도에 전두환대통령이 10.26사태 이후 정권을 잡았다. 당시 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를 계엄사령관이었던 전두환소장이 잡고 일어선 것이다. 하나 둘 때려잡다 보니 권력을 잡을 것 같았던 것이다. 그때 가정 예배를 드렸다. 아버님이 택한 말씀이 로마서 13장 1절의 말씀이다.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라.” 그러니 그 권력과 권세를 어떻게 풀어나가나 보자라는 것으로 말씀을 맺으셨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권세를 주어 세워진 통치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잠언 16장 10,11절 말씀을 보라.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의 입이 그르치지 아니하리라 공평한 저울과 접시 저울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가 지으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어야 한다. 아무리 왕이라도 자기 얘기가 아니라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게를 잴 때 그람수가 일정해야 하고 접시저울을 사용할 때도 발란스가 맞아야 한다. 저울을 속이는 것은 신뢰의 문제다. 사회가 공의와 신뢰의 상실할 때 불안정해진다. 이중잣대가 적용될 때 억울한 사람이 늘어난다. . 예)“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말이 있다. 발란스가 깨졌다는 것이고 사회가 무너질 수 있는 것이다. 왜 여당과 야당이 있는가? 어느 한쪽만 있어도 잘하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인간은 본성 상 잘할 수가 없다. 다른 능력은 몰라도 죄지을 능력은 충만하게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터질 때를 기다리고 있는 폭탄과 같이 죄지을 환경만 조성되면 유감없이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저는 공금을 횡령하고 싶은데 문제는 착해서가 아니라 그런 공금을 횡령할 돈이 없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특별히 나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라 죄짓기 좋은 환경에 있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다. 뇌물을 먹을 좋은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입술에 가져오지 못할 왕이라면 성숙하지 않은 왕이요 그 자리에 서지 않는 것이 사회에 유익이요 사회에 기여하는 일일 것이다. 오늘날 그러한 정치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직 성숙하지 못하는 아이가 엄마 뭘 도와줄까? 라고 하면 뭐라고 하는가? “너는 가만있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야”라고 한다.
오늘 말씀에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한다”고 했는데 그 말은 신뢰가 있고, 진실하고, 발란스가 맞다는 말이다. 왕이 하나님의 저울을 사용하여 발란스를 잘 맞추게 되면 왕은 신뢰를 얻고 그의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수 있다. “가난한 백성들”의 부족함과 억울함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왕이라면 간이라도 빼어줄 것이다. 그런 왕에게 충성할 수 있는 것이요 그 권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권력이요 백성을 위하는 권력이기에 영원히 견고하게 설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나라를 선진국이라고 한다. 후진국은 발란스를 맞추지 못해서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억울함과 사회적 분노가 언제나 차고 넘치지만 선진국은 정의와 신뢰를 가지고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면 끝까지 책임져 주는 나라이다.
예)22살 대학생 웜비어가 북한을 방문했다가 체포되어 북한에서 의식불명이 되어 미국으로 돌아와 죽었다. 얼마나 억울한 죽음인가? 그는 미국시민권자이고 종족으로는 유대인이었다. 이 두 조합이 끝까지 그의 억울함을 해소했다. 웜비어 가족은 지난 2018년 말 미국법원을 통해 북한이 웜비어 가족에게 약 5억 달러(약 6120억원)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아냈다. 다들 그렇게 재판이 나온들 실제적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그들은 외국에 있는 북한의 자산을 끝까지 추적하여 차압을 시켜 버렸다. 미국 은행 3곳에 동결돼 있던 2379만 달러(약 291억원) 규모의 북한 관련 자산이 드러났다. JP모건체이스에 1757만 달러(약 215억원), 뉴욕멜론에 321만 달러(약 39억원), 웰스파고에 301만 달러(약 37억원)... 북한이 2019년 중국으로 수출한 물품의 총액이 약 2억 달러라는 점을 감안하면 북한에겐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북한은 정말 임자를 만난 것이다.
솔로몬은 가난한 자를 돌아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미션을 이루는 것임을 알았다. 정치인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민심이다. 국민들의 표이다. “민심은 천심이다”는 말이 있다. 바로 그 말은 민심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고 역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민심을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돌아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저울로 삼는 것이요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위를 견고하게 해 주실 것이다. 솔로몬의 지혜는 민심을 알았다. 또한 천심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솔로몬은 인류의 역사에서 부귀영화와 최고의 권력을 누린 왕으로서의 아이콘이 된 것이다.
IV. 6월 첫 주를 맞으면서 나라를 특별히 생각한다. 어제 6월6일은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분들을 기념하는 현충일이었다. 87년 6.10항쟁이 있었다. 최고의 잇슈는 대통령 직선제 국민투표였다. 이전에는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장충체육관에서 대통령을 뽑았다. 그리고 노태우후보의 6.29선언이 있게 되고 국민투표를 하게 된다. 그리고 6월에는 6.25한국 전쟁이 있다. 역사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들이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듯 조국을 사랑했다. 오늘 글씨도 “주님 사랑 나라 사랑”이라는 슬로건을 내 걸었다. 주변의 국제정세를 본다. 북한 김씨 왕조는 언제나 마이웨이이다. 트럼프는 사업가처럼 때리고 시작하는 사람이다. 아베는 우리하고 영원히 원수처럼 지내려고 하는가보다. 시진핑은 역대 중국왕 중에서 신격화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와 경제 등을 생각할 때 바람 잘 날이 없고 어떻게 나아갈지 마음에 걱정이다. 조국 전법무부장관 뉴스, 윤미향의원과 이용수위안부할머니 이야기, 북한 김여정이 대북풍선 띄우는 것을 문제 삼으며 하는 위협들, 코로나 위기와 실업 등으로 인한 추경예산과 그 빚에 대한 걱정, 출산의 문제...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입술에 두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저울은 공정했고 발란스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어떻게 통치해야 하나님이 주신 왕위가 오랫동안 설 것임을 알고 있었다. 바로 “가난한 자를 성실히 신원하는 것”이었다. 민심을 천심으로 알았고 천심 하나님의 말씀으로 민심을 다스린 것이다. 이번 한주간도 나라를 세우는 기도를 하라. 세우신 정치인들, 경제인들, 사회지도자들, 그리고 국민으로서 내 자신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최선의 삶을 살아가기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