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재벌그룹과 연기금은 계열사간의 지분조정과 투자목적으로 빈번하게 대량의 지분거래를 해야 한다. 시장가치가 수천억, 수조 원에 이르는 회사라면 한 번에 회사 지분의 1%만 거래해도 그 금액은 수백억에서 수천억 원에 이를 수 있다. 만약 거래당사자들이 필요한 지분을 시장에서 전부 사고 판다면 어떻게 될까. 잠잠하던 회사의 주가가 이런 대량거래가 있는 날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물론 직접 개별주식에 투자하는 개인들은 운 좋게 수익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높아지는 것은 시장의 안정성 측면에서 좋은 현상이 아니다. 또 대량거래를 해야 하는 기업과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도 평균 매입가격과 매도가격을 가능한 안정적으로 단일화하는 것이 거래위험을 줄이는 길이다.
그래서 시행되는 제도가 흔히 시장에서 `자전거래(自轉去來)'라 부르는 대량매매제도다. 자전거래는 통상 대기업간 지분이동, 국민연금같은 큰 손들의 대량 주식투자에 주로 활용된다. 이는 증권거래법령이나 증권거래소 규정상의 용어가 아니고 시장에서 관행적으로 쓰는 용어여서 종종 하나의 계좌로 대량의 매수-매도를 반복해 시세조종을 시도하는 가장매매와 혼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의 자전거래는 `대량 지분거래를 위해 증권거래소에 사전 신고하고 이뤄지는 매매'로 국한된다.
`사전에 약속하고 신고하는' 대량 주식거래
자전거래는 대량으로 주식을 거래할 때 매매를 중개하는 증권회사가 같은 주식을 동일 가격으로 동일 수량의 매도·매수 주문을 내어 거래를 체결시키는 것이다. 이 때 `대량'의 기준, 매매가 가능한 시간대와 가격폭, 신고해야 하는 채널은 한국거래소가 정한 기준에 따라야 한다. 어떤 거래가 대량인가에 대해 거래소는 두 가지 기준을 제공한다.
먼저 해당거래가 거래단위의 500배 이상인 경우 대량매매로 할 수 있다. 현행 규정상 5만원 미만인 주식은 10주, 5만원이 넘으면 1주가 거래단위다. 따라서 5만원이 안 되는 주식은 5000주, 5만원이 넘으면 500주가 대량거래의 최소단위인 셈이다. 이 기준에 미달해도 거래금액이 1억 원을 넘으면 대량매매로 신고할 수 있다. 다음 자전거래가 가능한 시간대는 장중인 오전 9시~오후 3시, 장외시간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약정이 가능한 대량매매의 거래가격은 당일 가격제한폭으로 제한된다. 이는 해당종목 전일가격의 상하 15% 수준을 한계로 하기 때문에 사실상 30%까지 차등을 두는 것이 가능한 셈이다. 자전거래의 가능 시간부분에 대해서는 시간외 종가 매매, 시간외 단일가매매 등과 혼돈이 있지만 이 거래규정과 자전거래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게 한국거래소의 설명이다. 강병국 한국거래소 조사역은 "대량매매의 거래 가능시간은 장중과 장외를 따지지 않는다"며 "다만 거래가격과 규모 등 세부사항은 규정을 준수해 미리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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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의 ‘금융기관 검사 및 제제규정 시행세칙’에 따른 집합투자기구의 자전거래 제재양정기준(2010년 1월 개정 기준)
자전거래에 나서는 증권사는 매매가 이뤄질 경우 이 내용을 케이블럭(K-block)으로 불리는 거래소 시스템에 등록해야 한다. 케이블럭은 대량매매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모니터링 한다. 다만 자전거래가 하나의 증권사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배후에 어떤 기업이나 투자자가 이 같은 대량거래에 나섰는지는 앞에 드러나지 않는다.
주가급등락 막고, 기관거래도 늘리고
자전거래는 시장 내에서 이뤄지는 거래와는 별개로 일어난다. 이는 주가 급등락을 야기하는 대량주문을 신속하고 원활하게 처리하는 장점이 있다. 대신 자전거래가 시장 외에서 행해지기 때문에 시장 내 경쟁매매에 참가하는 주문량을 줄이는 단점도 따라붙는다. 주식시장의 거래주체가 풍부하지 않은 상황에서 자전거래, 즉 대량매매는 오히려 기존 시장을 위축시킬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미 코스피 2000을 넘기고(2011년 1월 현재) 개인의 직접투자와 펀드투자, 외국인과 기관매매가 늘어난 우리 시장의 경우 자전거래는 시장가격의 급등락을 어느 정도 제어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한 해 수조 원의 주식투자에 나서는 연기금 펀드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큰 손들이 시장가격을 조성하는 사태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연기금 투자가들 입장에서도 자전거래는 매입가격을 낮추고, 매도가격을 높이는 도구 역할을 한다. | |
미리 매수가격과 매도가격, 거래 상대방을 맞춰놓고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국민연금이 시장에서 특정 A주식을 1000억 원 매수하는 상황을 가정하자. A회사의 규모가 아무리 커도 연금의 매수는 시장가격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국민연금 입장에선 평균 매입단가가 자신의 많은 매수물량 때문에 올라가는 부작용을 감수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미리 매도 상대방을 구해 매수가격과 물량을 약정했다면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고, 시장가격의 변동폭도 줄일 수 있다. 이 때 매도주체는 자사주를 보유한 해당회사가 될 수도 있고, A사 주식을 대량 처분해야 하는 또 다른 기관투자가 일 수도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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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래는 하나의 증권사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배후에 어떤 기업이나 투자자가 이 같은 대량거래에 나섰는지가 앞에 드러나지 않는다. <출처:wikipedia> | |
주식가치 현실화 수단, 대기업 지분이동 시 창구로도
주식의 시장가치를 안정화하고, 기관투자가들의 매매편의를 제공한다는 기능에 더해 자전거래는 재벌이나 대형그룹이 계열사끼리 지분을 주고받을 때 편의를 제공하기도 한다. 기업 지배구조 안정화를 위해 계열사끼리 주식매매에 나설 경우 약속된 가격에 거래하면 불확실성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대기업들이 주식매매를 이 같은 자전거래로 하는 빈도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지분이동 자체의 노출을 꺼리는 재벌그룹의 성격상 대규모 거래가 드러나는 자전거래, 대량매매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까닭이다. 실제로 일부 대기업의 경우 몇 개의 증권사를 고용해 지분이동을 표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하기도 해 편법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자전거래는 이외에 특정회사가 보유주식의 장부가격을 현실화하기 위해 주식을 매도한 뒤에 곧바로 동일한 가격과 수량으로 되사는 형태로도 활용된다.
시세조종용 가장매매와는 구분돼야
하나의 계좌(거래대행자)를 통해 하나의 주식매매가 대량으로 이뤄진다는 점에서 자전거래는 시장에서 종종 시세조종에 악용되는 가장매매와 혼용된다. 장중 대량매매를 가장매매와 혼동해 사용되는 경우도 나온다. 그러나 인위적인 가격부양을 위해 동일인이 주식 사고 팔기를 반복하는 가장매매와 자전거래는 사전신고와 거래의 목적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다. 자전거래를 `거래소에 사전 신고하는 대량 주식거래'로 정의할 경우 이는 가장매매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가장매매는 동일인이 동일종목의 매도와 매수 주문을 동시에 냄으로써 그 주식의 매매가 활발한 것으로 보이게 하거나 자신의 의도대로 시세를 조정하는 매매를 말한다. 또한 2인 이상이 공모하여 행하는 가장매매를 통정매매라고 한다. 가장매매는 시세조종 수단으로 이용되거나 매매거래 상황을 오도해 공정거래를 방해하고 가장매매자에게 부당이득을 주기 때문에 현행 증권거래법은 이를 금지하고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