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8. 05;00
산길에서 '금마타리'를 만났다.
이 시간 어제 이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또 만났다.
비소식이 있었고 하늘엔 두툼한 먹구름이 오간다.
일기예보가 잘 맞지 않아 우산을 챙기지 않았는데 산책이
끝날 때까지 무사하려나.
발걸음이 빨라진다.
골전도 이어폰에서는 스트레스, 우울증 등 부정적인 감정을
완화시키는 음악이 나오며 치유를 하라고 한다.
한 시간 정도 계곡 물소리가 함께 나오는 음악을 들었더니
배터리가 20% 정도 소모 되었다.
< 금마타리 >
매일 산길에서 마주쳐 얼굴이 익숙한 아주머니가 꽃을 가리키며
꽃이름을 묻는다.
'으아리'와 '큰꽃의아리'를 구분하여 설명을 하고,
내친김에 옆에 있는 '칼퀴나물꽃'과 '고삼나무꽃'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
내가 카메라로 야생화와 나무를 촬영하는 걸 눈여겨 보았다는데,
이럴 때 꽃과 나무의 이름을 몰랐으면 망신당했겠다.
사진은 블로그 연재용이며 현재 방문자가 1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와!~ 하고 탄성을 지른다.
06;00
사탕을 한 개 까서 입에 넣자 달콤한 맛이 입안에 돌기 시작한다.
10년도 더된 낡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사실 나는 글을 잘 못쓴다.
그래서 처음부터 나를 한껏 낮춰 필명에 졸필을 덧붙였다.
졸필(拙筆)이라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자기가 쓴 글씨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글씨'란 글 즉 문장이 아닌 '글자'에 더 비중을
두는 말이 아닌가.
예전엔 글씨를 잘 쓰는 편이었다.
펜글씨를 잘 쓴다고 인정을 받아 21사단 66연대 S-4에 배속이
되었고, 주택은행 인사부에도 발탁이 되어 근무를 했다.
붓으로 쓰는 서예도 일제강점기시절 '전일본 서예대전'에서
장원한 아버지의 DNA가 조금 섞였는지 잘 쓴다는 소리를
들었다.
원인불명으로 31세에 오른팔이 마비가 되어 글씨를 쓰는 건
포기를 하였고, 먼 훗날 뇌종양으로 판명이 되었지만 지금은
이름 석자조차 쓰기가 버겁다.
06;30
다행히 컴퓨터 자판은 독수리 타법으로 잘 두드린다.
은퇴 후 산(山)과 노변정담(爐邊情談)을 테마로 글쓰기에
도전하여 '느림의 미학'이 어느새 755회가 되었고 지금 글이
756회째다.
친구들이나 가깝게 지내는 지인들은 책 출간을 권유하고,
매달 등산을 함께 즐기는 전직 은행장께서도 유튜버를
권장한다.
내 글은 소설도 아니고 산문 형식의 평범한 에세이(essay)에
불과한데 책을 출간하면 수익성이 있으려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내가 쓴 책이 팔릴까,
안 팔리면 수입도 없는데 많은 비용을 어떻게 감당할까,
이 생각 저 생각에 간은 쪼그라들고 소심한 사람이 돼버렸다.
가끔 10여 년 전에 쓴 글을 읽어보지만 별로 고칠 곳이 없어
교정을 하지 않는다.
예전 내가 가졌던 생각과 심정을 읽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고, 굳이 따지자면 그때는 길게 썼고 지금은
짧게 쓴다.
어느 지인은 책을 많이 읽느냐고 묻는다.
사실 눈이 망가지기 전까지는 책벌레였다.
서재에서는 물론, 침대, 화장실, 식탁 등에서 조금이라도 틈이
나면 장르(Genre)를 가리지 않고 다독(多讀)을 했으며 내손에서
책은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은퇴 후 느닷없이 찾아온 황반변성은 책을 읽는 즐거움을
내 인생에서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뇌종양은 팔을 마비시켜 글씨를 못쓰게 만들었고,
황반변성은 책을 읽는 즐거움마저 사라지게 만들었으니 참으로
얄궂은 황혼인생이다.
< 으아리 >
07;00
독서를 못해도 스마트폰은 나에게 메모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틈틈이 생각나는대로 메모를 하고, 방송을 보다가도 메모를 하고,
심지어는 자다가도 특별한 생각이 나면 일어나서 메모를 하는데
그게 글 쓰는데 큰 도움이 된다.
가끔 나의 기억력만 믿고 메모를 하지 않을 때가 있다.
다시 그 기억을 살리려면 한참 애를 먹기에 요즘은 머릿글자만
외우기도 한다.
머릿속에 다 들어 있다는 교만(驕慢)은 글 쓰는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며, 또한 생각과 기억을 글로 쓰지 않으면 아무런
문장도 성립되지 않는다.
머릿속에 있는 글은 글이 아니고 그냥 생각일 뿐 그 생각을
끄집어 내 써야만 비로소 글이 되는 거다.
쓰다보면 기억의 창고 깊숙하게 보관하였던 기억도 튀어나오고,
처음의 의도와 달리 다른 글까지 쓰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오늘도 짧게 쓰려고 했다.
일단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하면 생각은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은 다시 글로 이어진다.
신기하게 나의 손과 나의 의식은 나를 다른 쪽으로 이끈다.
비록 독수리타법이지만 나의 생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756회까지 쓰면 원고가 대략 1만 페이지가 넘으니 초보가
쓰기도 많이 썼다.
요즘 책은 통상 280~500페이지 정도라 책을 내려면 20권이
넘을 거 같아 출간은 당분간 포기를 해야겠다.
비록 글 쓰는 재주는 미흡하지만 애당초 느림의 미학으로
1,000회를 목표로 하였으니 책출간은 나중의 문제이고,
그냥 내 감정에 충실하고 졸필이지만 마냥 '글을 쓰는 사람'이
되면 언젠가는 목표를 달성하겠지.
2023. 7. 8.
석천 흥만 졸필
첫댓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