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뱀장어에게서 영감을 얻은 '신축성있고 투명한 동력원(power source)'이 인체 내에 삽입된 전기장치, 예컨대 심장 페이스메이커, 이식 가능한 센서, 심지어 보철장기(prosthetic organ)에 동력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Nature》 12월 13일호(참고 1)에서 기술된 이 동력원의 원형(prototype)은 소금물 속에서 작동하지만, 연구자들은 미래의 버전이 체액으로부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가 개발한 인공 전기장기(artificial electric organ)는 전통적 배터리에서 볼 수 없었던 특징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라고 이번 연구의 공동저자인 미시간 대학교의 토머스 슈뢰더 박사(화학공학)는 말한다. "이것은 바람직한 물리적 특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성도 없고, 갱신 가능한 전해질 용액의 흐름 속에서도 작동한다."
생체적합성이 높은 동력원을 설계하기 위해, 슈뢰더 박사와 동료들은 최대 600볼트의 전하를 이용하여 자신을 방어하고 먹잇감을 기절시키는 전기뱀장어(Electrophorus electricus)에서 영감을 얻었다. 전기뱀장어는 전기생산세포(electrocyte)라는 전문화된 세포를 이용하여 강력한 쇼크를 일으키는데, 이 세포는 기다란 몸을 따라 배열된 기관 속에 존재한다. 전하를 운반하는 이온의 흐름이 생기는 것은, 전기생산세포 속에 존재하는 전해질의 농도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각각의 세포들은 겨우 몇 볼트밖에 생성하지 못하지만, 전기뱀장어는 수천 개의 세포들을 직렬로 연결함으로서 모든 전압을 플러스하게 된다.
【참고】 전기뱀장어는 어떻게 전하를 생성하나?
독자들은 『자연의 발명』에서, 독일의 위대한 과학자이자 탐험가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200년 전 남아메리카에서 말떼를 이용하여 전기뱀장어를 잡았다는 대목을 흥미롭게 읽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그걸 꾸며낸 이야기라고 믿고 있었지만,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의 생물학자 케네스 카타니아는 미국 학술원회보 2016년 4월 28일호에 기고한 논문에서 그게 사실이었음을 입증했다(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272764&SOURCE=6).
전기뱀장어는 남아메리카의 강에 살며, 길이는 2미터, 몸무게는 20킬로그램까지 성장할 수 있다. 이름에는 ‘뱀장어’라는 단어가 들어 있지만, 길이가 워낙 길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을 뿐, 사실은 메기의 가까운 친척뻘인 칼고기과에 속한다. 그들은 낮은 전압을 이용하여 혼탁한 서식지에서 길을 찾는데, 딱딱한 물체에서 튕겨져나오는 전기장을 탐지하는 방식을 취한다. 그러나 그들이 유명한 것은, 600볼트 이상에 달하는 충격적인 전하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전하를 생성하는 기관은 꼬리의 근육구조 속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세포들에 존재한다. 이 세포들은 생성된 전기를 - 마치 배터리처럼 - 저장하고 있다가, 필요할 때 한꺼번에 모두 방출한다. 전기뱀장어가 내장하고 있는 테이저건(전기충격기)은 먹이를 기절시키거나 죽일 수 있으며, 달갑잖은 침입자들을 쫓아내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독자들은 강력한 전기뱀장어들이 자신이 생성한 전기에 감전되지 않는 비결을 궁금해할 것이다. 일단은 감전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방조직층이 절연체로 작용하여, 자신의 칼끝에 희생되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뱀장어들은 가끔 자신의 전기에 감전되어 몸을 비비 틀기도 한다.
※ 출처: 조너선 밸컴, 『물고기는 알고 있다』, p. 87
대단한 물고기
슈뢰더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폴리아크릴아마이드(polyacrylamide)와 물로 구성된 네 개의 상이한 하이드로젤(hydrogel)을 이용하여 전기생산세포를 모방한 다음, 약 2,500개의 유닛을 이어붙였다. 이러한 합성시스템은 110볼트의 전위차를 만들었지만, 총출력은 전기뱀장어 한 마리에 비해 100~1000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기뱀장어의 세포는 매우 얇아서 저항이 훨씬 더 작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인공 배터리가 만드는 전력은 기존의 초저출력 장비, 이를테면 일부 심장 페이스메이커를 구동하는 데 충분하다"고 슈뢰더 박사는 말한다. 그러나 연구진은 - 예를 들면, 하이드로젤막의 두께를 줄여 저항을 감소시킴으로써 - 인공 배터리의 성능을 극적으로 향상시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기뱀장어는 대사 에너지를 이용하여 전기생산세포들 간의 전해질 농도차를 유지하는데, 슈뢰더 박사는 궁극적으로 그 능력을 모방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언젠가 우리가 만든 인공 전기장기를 인체 내의 체액 속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MIT의 마커스 뷜러 박사(재료과학, 공학)는 이번 연구결과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것은 전통적 사고를 초월하는 흥미로운 진보다. 나는 가까운 미래에 이 기술이 실전에 활용되기를 기대한다"라고 그는 말했다.
【동영상】 전기뱀장어의 배터리를 모방하라
칼고기과(knife fish)에 속하는 전기뱀장어는 동물계에서 문자 그대로 '가장 쇼킹한 재능'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감각이나 먹잇감 공격에 사용하기 위해, 전기뱀장어가 체내에서 생성된 전기를 저장하고 방출하는 능력은 수 세기 동안 과학자들을 매혹시켜 왔다. 이제 모든 종류의 미래형 기술(예: 몸에 두르거나 심지어 몸속에 이식하는 장치)에 동력을 공급할 수 있는 '신축성 있는 바이오 배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그것을 모방할 수 있게 되었다.
전기뱀장어에서 영감을 얻은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제일 먼저 이해해야 하는 것은 '뱀장어가 전기를 만드는 과정'이다. 먼저 전기생산세포(electrocyte)라는 전문화된 세포를 알아야 한다. 이 세포는 막(膜)을 갖고 있는데, 휴지기에는 이 막이 특정한 전하를 지닌 이온을 통과시킴으로써 중성상태(neutral state)를 유지해 준다. 전기뱀장어가 활동을 개시할 준비가 되면, 세포 한 쪽의 채널이 열려 양이온이 몰려어와 전류가 찌릿 하고 흐른다. 그건 멋모르는 먹잇감들을 파멸시킨다.
각각의 전기생산세포들은 겨우 150밀리볼트를 생산하지만, 커다란 전기뱀장어는 수천 개의 전기생산세포를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다. 마치 배터리처럼 말이다. 게다가 전기뱀장어들은 약간 똑똑한 신경계의 타이밍을 이용하여, 모든 세포들을 한꺼번에 활성화시켜 엄청난 쇼크를 일으킨다.
스위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의 과학자들은 이러한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인공 전기장기(artificial electric organ)를 만들기로 했다. 그들은 하이드로젤 방울을 이용하여 각각의 전기생산세포를 모방했는데, 노란색과 녹색 방울들은 선택적 투과성막(selectively permeable membrane)으로 작용하고, 빨간색과 파란색 방울은 상이한 농도의 이온을 포함하고 있다.
전기뱀장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온들은 이 막들을 통과하여 전류를 생성한다. 네 개의 방울로 이루어진 그룹은 전기뱀장어의 전기생산세포 하나와 맞먹는 전기를 생산한다. 또한 과학자들은 - 전기뱀장어와 마찬가지로 - 인공세포들을 차곡차곡 포개어 전압을 증가시키고 싶어했다. 그런데 어떻게 한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는 프린팅이었다. 하이드로젤이 인쇄된 시트가 겹겹이 포개질 때, 여러 개의 유닛이 길게 이어져 약 100볼트를 생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 있었다. 전기뱀장어는 최대의 전압을 생성하기 위해 모든 전기생산세포들을 동시에 활성화시키는데, 과학자들도 그렇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높은 전압을 얻으려면, 모든 젤들이 동시에 접촉해야만 했다. 시트들은 그 과정을 빠르게 해줬지만, 진정한 동시연결을 위해 연구자들은 또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건 접기(folding)였다. 시트를 접을 경우, 모든 바이오젤 방울들이 거의 동시에 접촉하도록 할 수 있었다.
진짜 마지막으로,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있다. 전기뱀장어는 배터리를 체내에서 생물학적으로 재충전할 수 있지만, 이번에 만들어진 인공 배터리는 외부 동력원에 연결되어야 한다.
연구자들은 인공 배터리를 이용하여 '디스플레이가 통합된 콘택트렌즈', 생물학적 센서, 심지어 웨어러블 디바이스에 동력을 공급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인공 배터리를 생물학적으로 재충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 물론 그렇다. 왜냐고? 전기뱀장어가 할 수 있다면, 우리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참고문헌 1. Schroeder, T. B. H. et al., “An electric-eel-inspired soft power source from stacked hydrogels”, Nature (2017); http://dx.doi.org/10.1038/nature24670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 증권사, 대기업 기획조정실 등에서 일하다가, 진로를 바꿔 중앙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하고 약사면허를 취득한 이색경력의 소유자다. 현재 서울 구로구에서 거주하며 낮에는 약사로, 밤에는 전문 번역가와 과학 리포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풍부한 인생경험을 살려 의약학, 생명과학, 경영경제, 스포츠,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을 번역 출간했다. 매주 Nature와 Science에 실리는 특집기사 중에서 바이오와 의약학에 관한 것들을 엄선하여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