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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으로 보는 복의원리: 백성욱박사
모든 사람들이 잘살기를 바라고 원합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잘 살 원인을 지어야 합니다. 무단히 복 짓기를 발원하고 실행이 이어지면 자기의 복 그릇이 커지게 됩니다. 또한 복은 물질로 나타나기도 하기에 물질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이 바로 복이 되는 것입니다. 돈을 헤프게 쓰거나 함부로 쓰면 돈의 신이 나갑니다. 음식도 전기도 무엇이던지 소중하게 여겨서 절약하는 마음에 복이 들어옵니다. 복은 누구에게 달라고 기도하거나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은 적극적으로 지어야 하며 그 지은 만큼 받을 뿐입니다. 대부분 복은 몸으로 짓습니다. 한 번의 절이 한 톨의 쌀이라고 하는 이치입니다.
어떠한 사업을 하기 전에 우선 자기의 복력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돈이란 복력에 의해서 벌어지는 것이지 생각과 의욕만으로 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복 짓는 마음으로 복 짓는 생각으로, 복 짓는 생각으로 복 받을 일을 하면 복을 받는데, 그것이 미래의 복력을 당겨쓰는 지혜이며 복 지으며 복 받는 방법입니다. 일에 대한 탐심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는 그런 마음을 내지 마십시오. 부산에 간다고 서울역이나 터미널에서 아무 차나 올라타거나 차를 몰고 엑셀레이터만 밟는다고 부산에 도착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시중의 성공도서가 말은 그럴듯한데 시작과 끝이 다른 경우가 바로 이 경우입니다. 나의 체력, 능력, 시간으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가가해보고 아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시간과 여유를 두고서 하여야 합니다.
무조건 밀어 붙인다고 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을 할 때 마음이 조급해지면 마음에 탐심이 일어나서 반드시 실패합니다. 그 때는 그 마음을 내려놓고 혹은 관세음보살님께 바치고 금강경을 읽거나 마음을 쉬게 하여 차분하게 원을 세운 다음 다시 시작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일은 마음이 성취하는 것이지 몸이 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급해서 되는 일이 없으나 바로 그 마음을 쉬게 하여 탐심을 제거하여야 만 일이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장사하는 사람이 장사가 안 될 때 손님이 없다고 하는 그 짜증스러운 마음을 자기가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으면 그 일으 킨 마음이 일으킨 파장이 가게 안팎을 짜증스러운 분위기로 가득 채워서 손님이 오고 싶다가도 그 파장을 느끼면 손님은 발길을 돌립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영물 스럽고 예민하기가 그지없어서 그 가게에 오지 않게 되고 온다고 하여도 얼른 일어나 나오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됩니다. 짜증스런 마음이나 끙끙 대는 마음을 어서 털어 버리고 바치는 것이 손님이 오게 하는 실행이 됩니다. 또 장사가 안 된다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며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더더욱 금물이며 입 밖에 내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누가 물을 때도 항상 잘된다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항상 잘된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잘된다고 생각하고 잘된다고 말하는 것은 잘된다는 것을 연습하시는 것이기에 결국 그 마음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음의 법칙입니다. 이 우주법계의 살림살이가 펼쳐지는 것은 각자 자기 마음 닦은 대로의 표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체 유심조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집착할 때 법계의 살림살이에 대해서 그대로 캄캄 절벽하게 되며 여러분이 집착과 탐착, 그리고 애착에서 벗어날 때 법계의 살림살이는 그대로 밝게 여러분 앞에 드러납니다.
이 법계는 모든 것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구하는 정도는 다 충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구함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이유는 스스로의 마음속에 안 된다는 초조하고 성내는 마음의 찌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 된다는 마음만 내려놓으면 일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모든 일이 다 그렇듯이 도통하는 것도 사전에 준비가 있어야 됩니다. 세상 모든 일이 준비성 있는 발원과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그에 상응하는 철저한 준비가 있으면 그 일에 임해서 여유가 있고 생각하는 힘이 생겨 일을 성취 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를 구하거나 친구를 사귈 때, 혹은 직원을 고용 할 때도 복이든 지혜든 같은 정도끼리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말 그대로 유유상종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여러분과 저도 잠재적인 복그릇과 지혜그릇이 다 유유상종이리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를 만나는 것도 장사가 잘 되고 못 되는 것도 다 복 지은 정도에 달려 있습니다. 복력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다 자기가 복 지은 정도만큼 받고 자기가 복 지은 정도만큼 사람을 만나는 것인데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 하겠습니까 그러니 오늘과 내일을 위해 우리에게 법계의 살림살이를 가르쳐주신 부처님 전에 복 많이 짓기를 발원하고 부지런히 원을 세워 닦아 나갈 일입니다. 원을 세우면 복을 지어야 되겠다는 자각이 생기고 또 복을 지을 수 있는 여건이 자꾸 자꾸 만들어 집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해야 되는데 안 되는 일이 있을 때 바로 그 때 원을 세우십시오. 자기의 복에 넘치는 것은 당장 이루어지지 않지만 자꾸 복을 지어서 그 일이 이루어 질 만큼 복 그릇이 차면 그 일은 꼭 성취됩니다. 법계의 살림살이가 참으로 불가사의해서 아무리 자기의 마음에 없는 말이라고 해도 부처님 앞에 혹은 법계에 크고 밝은 원을 세우면 그것이 결국에는 현실로 나타나게 됩니다. 자기가 지은복은 남 주질 못하고 남의 복은 절대로 자기가 갖지 못합니다. 단지 그 복 지은 사람의 그늘에서 그 사람이 혜택을 입기는 합니다. 수양산 그늘이 강동 팔십리라고 가족 중에 혹은 같이 근무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도 복 지은 이가 있으면 그 복력의 혜택을 여러 사람이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복을 남에게 절대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자기 복은 늘 지어야 합니다. 또 재앙이 닥치면 복 그릇에 구멍이 뚫리므로 아침저녁으로 금강경 잘 읽고 방심하지 않는 마음으로 잡스러운 업식들을 잘 바쳐야 담긴 복 그릇 속에 복이 잘 유지되는 것입니다. 월급쟁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월급을 받을 때마다 봉급의 세배를 자기 회사에 벌어준다는 마음으로 일 해야 합니다 일은 꼭 그렇게 한다라기 보다는 마음을 그렇게 쓰면 모든 일에 세심한 신경을 쓰고 철저를 기할 수 있게 됩니다. 모두 원인 지은대로 결과를 받기에 이러한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공부하는 사람, 마음 공부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태도는 주위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주어 본인과 함께 여러 사람을 같이 복 짓게 할 것입니다. 더더구나 그렇게 지은 복은 남이 받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받기에 어디가서 자기가 복 지었다고 말할 필요도 없고 생색 낼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그 물건이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려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계시고 보시는 받을 수 없고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하십시오.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 하시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보수나 댓가, 인사를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자신의 탐심을 닦기 위해 준다는 마음을 갖되 자신에 대해서는 철저히 하십시오. 무엇이든 남에게 준다는 연습을 자꾸 하셔야 복 그릇이 점점 커져 다음에 자신의 복 그릇에 채워질 복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원인을 지금도 내일도 모레도 현재도 미래도 계속 지어나가고 심어나가셔야 합니다. 그것이 법계의 살림살이를 아는 사람의 행동입니다. 사람이 평생을 먹어야 쌀 40가마밖에 먹지 못한다고 합니다. 가난한 이도 부자도 끊임없는 자신의 탐심을 따라 다니기보다는 이제는 무아도 알게 되셨고 몸도 무아이고 마음도 무아인줄 알아서, 들어서, 배워서, 깨쳐서 아시는 여러분들은 스스로가, 동료가, 경쟁자가, 고객이, 옆 사람이,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들이니 탐심도 적정선에서 만족하고 자신의 복 그릇을 채워나가는 것이 이 법계의 살림살이에 이치를 아는 총명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 됩니다. 혹시 살다가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주더라도 받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고 준다는 생각으로 빌려주고 그 다음은 절대 생각하지 마십시오. 물건을 누구에게 주더라도 절대로 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주지 말고 법계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 준다는 것을 절대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법계의 살림살이도 모르는 이가 즐거워 해보아야 그것이 참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은 이제 여러분이나 저나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법계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주는 것이지 그 사람을 위해서 준다는 생각은 버리실 때도 되었습니다. 우리도 법계는 아니지만 법계의 일부이고 그 사람도 법계 그 자체는 아니지만 법계의 일부이므로 법계를 즐겁고 순조롭게 하기 위해서 주어야 하며 나의 아까워하는 그 인색한 마음을 버리기 위해서 주어야 하며 내 마음을 닦기 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빈 마음이라도 주는 마음을 부지런히 연습하면 마음이 넓어지고 물질에 대한 애착도 없어져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탐진치가 다 닦이게 됩니다. 직장생활을 하고 장사를 할 때에도 나나 내 가족을 즐겁게 하기 위해 일한다기 보다 법계를 위해, 법계를 즐겁게 하기 위해 일을 하면 여러분의 종자식인 제8식 아뢰야식에 좋은 종자가 심어져서 그 좋은 종자가 여러분의 몸과 기세간을 좋게 하기에 육신과 가족이 다 고통을 쉬고 편안하게 되는 것이 법계의 이치요, 법계의 살림살이라는 것을 이미 다 배우셨을 것입니다. 복은 각자가 자기 마음에 짓는 것입니다. 부처님 전에, 관세음보살님 전에, 지장보살님 전에 공양을 올릴 때 그 올린 마음에 그대로 복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부처님 복을 옹호하고 남에게 법계의 살림살이의 이치가 담긴 금강경의 가르침을 전하고 자신의 마음이자 부처님의 마음인 도량을 만들고 가꾸는 일, 이러한 일들이 다 자기 마음에 복을 지어놓는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복을 짓겠다는 그 간절한 마음 그 발심이 서고 어느 순간 공경심과 환희심이 나는 순간 그 순간에 큰 복이 지어집니다. 항상 중생을 구제하시겠다는 보살들의 간절한 서원이 성취되는 순간 그 마음이 그대로 우리에게 전해져서 환희심과 공경심이 그대로 나오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항상 웃고, 항상 밝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제 무아를 아셨으니 나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자기가 복 짓는다는 그 한 생각마저 다 내려놓으시면 그것이 수행이 됩니다. 아상을 녹이고 반야를 증득하고 부처를 증득한다 함은 마음 닦는 이는 자신이 지는 복을 탐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은 복은 끈에 묶인 장난감처럼 당기면 언제든지 끌려옵니다. 시간과 관계없이 끌려옵니다. 그런데 그 복을 자신이 받을 마음을 내면 줄어들고 법계에 바치려고 하면 더 큰 복을 짓게 되어 자기 마음에 부처님을 증득하게 됩니다. 이때 마음이 밝아지고 아상이 녹아내리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신해오증 (信解悟證) 혹은 신해수(修)증, 네 단계로 나눠서 설명하는 데 여러분들은 금강경에 대한 믿음으로 이 자리에 계시니 금강경에 대한 믿음, 즉 신(信)이 있으신 것입니다. 또 저와 같이 공부하신 이해 즉 해(解)를 하고 계신 것이고 이제 20분부터 23분까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스펀지처럼 의심 없이 다 받아들여지면 법계의 이치와 내가 누구이고 남이 누구인지 아시게 되기에 깨달음을 얻는 것이기에 깨달을 오(悟) 혹은 깨달을 바를 닦아 나간다고 해서 깨달을 수(修)입니다. 그것이 돈오돈수 혹은 돈오점수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증(證)이라는 것은 어떠한 생각이나 느낌이 마음에 새겨지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저와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막연하나마 그려진 부처님이 가르쳐주신 부처님의 법이 여러분의 마음에 심인(心印)이 찍히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사진기가 어떤 모습을 찍어두듯이 마음에 어떤 인상과 인식을 그려 놓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을 증이라고 하고 그것이 점점 명확해지고 확신을 하게 되면 언젠가는 현실이 되어서 풀려나오는데 그것을 득(得)이라고 합니다. 스님들 법문에 부처님을 증득(證得) 한다 함은 그러한 것입니다. 우리들처럼 세간에서 생활하는 재가 불자들이 마음에 한 달에 얼마로 살아야 되고 그 액수가 얼마라는 액수가 나중에 필요하고 육십까지 살려면 얼마가 필요하고 칠십까지 살려면 얼마가 필요하고 백 살까지 살려면 얼마가 필요하고 인간의 평균수명이 얼마고 자녀 양육비가 얼마얼마 하는 식으로 보험회사 혹은 금융기관에서 자산관리 영업하는 사람들이 광고하시는 것을 종종 보시고 접하시게 될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마음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좋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내가 앞으로 얼마로 살아야한다, 내가 얼마가 부족하다 라는 것은 그 강박관념을 머리에 그대로 그려 넣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족하다, 없다라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그러니 그 마음이 얼마나 시시각각 절박해지겠습니까. 금강경공부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마음에 증(證)해놓고 없다는 마음만 계속 증(證)해놓고 있다는 마음은 부지런히 닦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기가 사진 찍어둔 그 없다는 마음 그대로 계속 궁핍하게 살게 되고, 그 다음 생에도 궁하게 살게 됩니다. 그러니 설혹 당장 물건이 없거나 돈이 없거나 직업이 없거나 생계를 위한 물질이 없더라도 그 마음 쓰기를 있는 마음을 배우셨으니 그 있는 마음을 계속 증(證)해 나가시면 마음에 넉넉한 여유가 생겨 그 마음 따라 필요한 물질, 필요한 일등을 득(得)하게 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증득이고 부처님을 증득하고 반야를 증득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은 먹고 사는데 있습니다. 일단 먹는데 있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중생의 마음은 먹고 사는데 있습니다. 일단 먹는데 있다고 하여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식사대접을 받으면 마음이 누그러져 버립니다. 그러니 사람들을 보거나 만날 때 대접하십시오. 누구에게 밥을 사면 마음과 먹는 음식 두 가지를 그 사람이 대접받게 되는 것이고 밥을 사거나 베푸는 사람에게는 그 때 복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남이 행복해하는 순간, 그 순간 바로 복이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풀이나 나무같이 식물을 죽이는 것보다 곤충이나 벌레를 죽이는 것이 죄가 크고, 곤충이나 벌레보다 개구리나 물고기를 죽이는 것이 죄가 크고, 물고기나 파충류보다 개나 소나 노루, 코끼리, 곰 같은 포유류를 죽이는 것이 죄가 크고 동물을 죽이는 것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죄가 큰 것처럼 복을 지을 때도 그러합니다. 도둑놈 천명 밥 먹이는 것보다 착한사람 한 사람, 착한사람 천명보다 마음 닦은 한 사람, 마음 닦은 사람도 덜 닦은 사람보다 많이 닦는 사람에게 밥 먹이는 공덕이 크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한 도인에게는 무조건 빚을 지워 놓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생에 있건 복이 있는 사람과 지혜가 밝은 사람이 복 지어 놓은 우리를 제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을 지을 때 분별심이나 차별심을 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공부하면 할수록 그렇게 도반들의 수준이 같이 높아지고 만나는 선지식의 수준이 같이 높아져서 제대로 복 지을 기회가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인과 공부한 사람들은 정성과 공경심으로 올리는 물건이어야 흔쾌히 받지 그렇지 않은 물건은 받지도 않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가 부처님과 보살님과 일체세간 천․인․아수라와 스님들께 공양드리는 이치입니다. 금강경 제1분부터 19분까지 자신이 알건 모르건 복을 지어 오신 우리 도반님들이 그 복력으로 가행정진하시어 깨달음의 길인 금강경 제 20분 이색 이상 분으로 들어 가시길 바라겠습니다.
나는 조부모와 고모, 아버지까지 열댓 명의 대식구가 모여 살던 시골의 유복한 집안 출신이다. 특별한 종교가 있는 집안은 아니었다. 때문에 어려서는 불교와는 가까이 지내지 못했다. 다만 어머니의 위패를 모신 홍성의 절에 가끔 갔던 기억은 난다. 수학여행으로 자주 수덕사를 찾아가 만공스님을 친견하고, 일엽스님의 말씀을 듣기도 했다. 그땐 불교를 잘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절이, 스님이 좋았다. 인생에 대한 괴로움에 빠져있던 나는 가족 그 누구에게도 그 괴로움을 토로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삶의 고민을 짊어지고 가출을 했다. 서울에서 친척집과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조계사로 발길이 닿았다. 몇 달을 조계사에서 보냈다. 조계사에서 기도 정진을 했지만 내가 가진 문제들은 전혀 해결이 되지 않았다. 당시 무진장 스님과 친분이 있었는데, 스님이 동국대 대학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스님은 같이 공부를 하자고 했는데 나는 출가를 결심했다. 1966년 즈음이다. 9월1일에 출가를 하려고 마음을 먹고 신변정리를 하고 있었다. 출가를 앞두고 친척집에서 머물렀다. 그날 꿈에 하얀 운동화를 신고 툇마루에 앉은 신사가 나를 보고 부드럽게 웃는 것이 아닌가. 이마에 커다란 점이 마치 백호처럼 보이는 신사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 꿈에 나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날 김재웅씨라고 친구를 만났다. 나중에 포항 금강경독송회를 이끌던 사람이다. 중앙극장 앞에서 고행하다시피 돈을 벌어 여동생 학비를 대던 부지런한 이인데, 출가하겠다고 인사를 하며 꿈 이야기를 해주니 바로 백 박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미 몇 년을 공부하고 있었다는데 나한테는 생전 말을 해주지 않더니, 꿈 이야기에 바로 이야기를 해준 것이다.
“뭐하러 왔어요?”하고 물어보시는데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했더니 바빠서 안 된다고 너 같은 사람 만나줄 시간이 없다고 돌아가라고 하셨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조계사에서 지낼 때는 스님께 3배를 하고 인사를 올리면 스님들은 모두 반갑게 반겨주셨다. 선생님처럼 저렇게 매몰차게 대하는 분은 없었다. 돌아 나오는데 다시 들어오라고 하셨다. 삼배를 올리니 절을 받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도 발원을 해주신다. 선생님을 찾아가면서 질문 세 가지를 품고 갔다. 어떡하면 삼라만상 가운데서 중생을 제도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남북통일이 되어 불국토를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막상 삼배를 하고 마주 앉으니 머리가 하얘지는 것이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질문을 만들어온 것은 기억이 났는데, “누구얏!” 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질문 내용은 다 잊어버린 거다. 마치 맞은 것처럼 온 몸이 노곤했다. 아마 호법신장이 내 자만을 질타하며 후려친 것이 아닐까? 선생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출가자와 재가자는 어떻게 다릅니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갑자기 왜 튀어나온 질문인지도 몰랐다. 갑작스런 질문에 선생님은 “출가자는 생각이 부처를 향하고, 재가자는 생각이 세상을 향하는 것이 차이”라고 설명해주셨다. 이 얼마나 간결한 설명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앉아 있다가 또 할 말이 없어 “가겠습니다” 하니 선생님이 앉으라하시곤 금강경 강의를 30분 해주셨다. 그리고 나서야 가라고 하셔 3배를 하고 나오다가 선생님께 “한 달에 한두 번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하고 여쭈었다. 선생님은 “금강경만 읽으면 언제든지 시간을 내주겠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렇게 매몰차던 분이 말이다. 그때 든 느낌이 ‘아, 이게 선지식을 만나는 절차구나’하는 생각이었다. 덕산스님의 방, 조주스님의 할처럼.
선생님과의 인연은 이렇게 신묘했다. 선생님은 독립운동가이자 불교수행자, 정치가, 교육행정가의 삶을 사셨다. 1917년 동국대학교의 전신인 불교중앙학림에 입학해 학생 신분으로 3.1 만세운동에 동참했던 선생님은 이후 상해 임시정부에서 독립운동 자금조달을 하다가 프랑스와 독일로 유학을 했다. 프랑스와 독일 유학을 떠나 철학박사를 받았는데, 우리나라 불교학 1호 박사이다. 광복 후 건국운동에 참여한 선생님은 대한민국 제4대 내무부장관, 동국대 제2대 총장을 역임했다. 소사로 한 달에 한번 찾아뵙던 것이, 일주일에 한번이 되고 결국 아예 들어가 살았다. 선생님은 안쪽 방에서, 우리는 바깥방에서 방석 하나 깔고 참선을 하며 살았다. 물론 수행만 한 것은 아니다. 선생님은 혼자 계셨다. 그 집에는 우사가 있어 소를 여섯 마리 키우고 있었다. 우사 안에 숙직실 같은 방이 있었는데 나는 거기서 머물렀다. 파리가 날아다니고 냄새 또한 말도 못했다. 나중에는 면역이 되었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에도 떠날 생각이 없었던 것을 보면 인연은 인연인가보다. 늘 참선만 할 수는 없었기에 선생님은 평소에는 미륵존여래불을 가르치셨다. 일상에서 항상 외며 걸을 때도, 일을 할 때도 미륵존여래불을 외우라 하셨다. 소사에서의 삶은 녹녹치 않았다. 농기구로 산을 개간하고, 아침에는 소젖을 짜는 것이 일과였다. 해보지 않은 농사로 손등이 다 팅팅 부었다. 소젖을 짜다가 꼬리에 맞거나 뒷발질 당하는 것도 예사였다. 화가 나서 소를 때리기라도 하면 선생님은 그걸 다 아셨는지 혼을 내셨다. 선생님과 함께 살면서 상식적으로 이해 못할, 신기한 일이 많았다. 선생님은 모르는 게 없으셨다. 비오는 날이라야 나도 쉴 수 있었다. 하루에 두 끼를 먹었다. 세시쯤 점심을 먹고 나면 저녁은 먹지 않고 물만 먹었다. 한 보름은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 고생이 많았다. 이런 고된 삶은 스님들도 버티지 못했다. 선생님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스님들도 일이 고되니 하루 이틀 넘기지를 못하고 떠나기 일쑤였다. 선생님은 우리가 복을 지은 것이 없어서 몸으로 지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일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복과 혜가 겸해져야 지혜가 나오는 법이다. 선생님은 모든 일어나는 생각을 부처님께 바치라고 하셨다. 이미 열반하신 부처님은 형체가 없으니 밝은 우주의 광명으로 몸을 보이신다고 했다. 선생님과 함께 지내면서 서른이 넘은 어느 날. 중신이 들어왔다. 한때 출가를 생각했던 나였기에 중신은 버거웠다. 선생님을 찾아갔다. 방에서 참선을 하고 계셨다. 절을 하고 “서울 구경을 가겠습니다”하고 나왔다. 나오니 어디 갈 데가 있나. 친척집과 친구 집을 전전하며 지냈다. 목동 노릇을 하고 살았으니 옷도 제대로 맞는 게 없었다. 허름한 꼴을 보고 친구가 옷을 줬다. 얻어 입고, 얻어먹으며 지냈다. 그러다 친구 하나가 퇴계로에서 결혼을 한다고 해서 갔다가 친구어머니를 만났다. 선생님께 가서 공부를 하는 분이셨다. 친구어머니는 백 선생님이 오라하셨다며 나를 꼭 붙잡는 것이 아닌가. 5.16이 나고 자유당 때 장관을 지냈던 선생님은 집행유예 1년을 받았다. 그 후로 소사로 들어가 외출 한 번 하지 않으시던 분이 서울에서 열린 내 결혼식에는 참석하셨다. 그만큼 선생님은 나를 아껴주셨다. 6월6일 현충일에 결혼을 했는데 선생님과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영광이라는 생각을 했다. 신접살림은 노량진에 차렸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살던 집인데 200여 평 규모의 집이었다. 나는 별채서 공부를 하며 지냈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너희 집 가서 《금강경》 강의를 해야겠다”시며 100일 동안 《금강경》 강의를 해주셨다. 방이며 거실까지 실내에 한 60명 정도가 앉을 수 있었는데, 사람이 워낙 몰려와 마당에 스피커를 연결해 마당에서 강의를 듣는 사람도 많았다. 그때가 선생님이 일흔 하나쯤 되셨을 때다.
특별한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인의 집에서 이렇게 강의를 해주실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것이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가 됐다. 이후 선생님은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소사를 떠나 서울로 오셨다. 아현동과 동부이촌동에서 아파트를 얻어 생활하셨다. 제자들이 선생님을 찾아뵈면 참 반가이 반겨주셨다. 돌이켜보면 선생님은 과거 현재 미래가 없는 분이셨다. 숙명통이 터져 모든 걸 훤히 보고 계셨던 분이다. 부처님이 성도하신, 마음을 깨닫게 해준 것이 바로 《금강경》이라며 우리에게 열심히 강의해주셨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선생님은 나에게 “오는 사람 잘 가르치고, 가는 사람 잡지마라, 인연에 따라 가르치면 된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씀대로 찾아오는 사람에게만 《금강경》 강의를 한다. 요즘도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강의를 하는데 금강경독송회 회원들은 수는 적어도 공부는 영글어 있는 이가 많다. 그렇게 후학들은 선생님을 닮아가고 있다. -김동규 이사장 (사)금강경독송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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