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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비평의 문제점과 새로운 방안 모색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I. 열며
19세기 문학이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내용 및 형식의 측면에서 많은 도전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작금의 수필비평은 19세기 풍을 버리지 못해 객관적인 가치체계에 의거하기보다는 비평가 자신의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인상비평으로 흐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이런 경향성은 버틸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염려되는 것은 점차 독자와 수필가의 의식과 수준이 변하는데 대한 비평적 대응 방안과 전략이 없다는 것과 아직도 수필비평가들의 본격수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다양한 실제의 삶을 토대로 글로 표현하는 장르인 수필의 위상 강화를 위해 21세기 대두되고 있는 문학의 위기 속에서 수필비평의 활성화가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면 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고 방법을 반영하는 개성의 문학을 요구한다. 급속한 사회 변화, 특히 인간과 시설이 기계화되는 환경 속에서 함축적인 표현인 시라든가, 장황한 소설은 빠른 템포를 원하는 새로운 독자들을 강하게 매료시키지 못한다. 만약 그것들이 새로운 독자들의 욕구를 만족시켰다면 이러한 문학의 위기 또한 거론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수필 또한 예전의 고루한 방식을 고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디지털 사이버 문화의 등장으로 문학에 있어서 장르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사멸의 위기의식이 고조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장르는 문학정신을 담는 그릇인 만큼 그릇의 변용이나 파괴가 곧 정신까지 파괴할 것으로는 믿지 않는다. 수필장르는 미개척된 황금대륙으로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고, 그 발전가능성이 바로 21세기에 빠르게 변화하는 문화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을 힘이 된다.
이러한 가능성에 접근하여 수필비평계가 좀 더 나은 진로를 확보하려면, 수필비평계 스스로 자기 정화를 통해 보다 체계적인 개혁과 변화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수필가들의 수필에 대한 인식 변화도 중요하겠지만, 수필발전을 선도하는 수필비평가로서의 비평 활동을 하려면 무엇보다 신변잡기 같은 글들이 넘쳐나는 우리 수필계 현실을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비평적 위기는 한 작가, 한 작품, 한 시대에 있어서 가치가 확립되어 있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글은 이러한 문학의 위기상황에서 설상가상으로 수필의 정체성과 전통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편견들로부터 야기된 수필비평의 부재와 빈핍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수필 비평가의 역할과 수필비평계의 발전 방안을 제시하는 데 그 목적을 둔다.
당면한 과제는 일차적으로 수필잡지사와 비평가들에게 있다. 따라서 이 글은 고급문학으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당대 수필비평가들을 향한 몇 가지 제안과 수필평단의 개혁적 방안 제시가 그 내용이 될 것이다. 고급문학으로서의 수필에 대한 이론모형을 확보하여 얼마나 빠르게 전파하느냐와 수필비평가가 프로의식을 갖느냐 여부에 수필의 발전 여부가 달려있음을 역설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시대 변화에 따른 바람직한 수필비평문학의 개혁을 위해서는 장르의 본질성을 만들어내는 문학적인 정체성과 장르의 내구성을 확고히 하는 문장론적 지식 배양을 양극으로 하여 수필가와의 긴장된 관계를 올바로 인식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고급문학의 생산을 촉진하는 프로 비평가적 인식이 필요함을 논증하고자 한다.
Ⅱ. 시대 변화와 문학의 위기
21세기는 위기의 시대라 해도 그리 과장된 표현은 아닌 듯싶다. 위기상황을 도처에서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존층의 파괴, 멸종 식물의 증가, 생태계의 파괴 등이 불러오는 생태학적 위기가 그렇고 비브리오, 사스와 같은 오염 관계의 질병이 나타나는 위생 위기 또한 그렇다. 또 실업과 구직 기회의 감소가 몰고 오는 경제적인 위기나 범죄증가와 공동체의 붕괴 등 사회적 위기가 그렇다. 그리하여 위기 재편설이 상식화되어가는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이러한 위기에 개혁을 논하는 것과 문학이 없어지리라고 판단하는 것은 별개다. 문학의 기능이 약해졌다고 해서 문학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21세기 새로운 시대를 맞이한 지금 문학은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위기에 놓여있다. 1980년대부터 몇몇 이론가들이 ‘문학의 위기’를 거론하더니 1990년대부터는 아예 ‘문학의 죽음’을 거론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20세기 후반부터 문학은 영상-전자 매체의 도전을 받는다. 이 도전은 그 성격과 영향력에서 그 이전의 도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지금까지 철학을 비롯한 도덕과 윤리 그리고 정치의 도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그 위력이 크다. 흰 종이에 박힌 검은 글씨와 비교해 보면 모니터나 스크린에서 움직이는 이미지는 눈이 부시다 못해 정신을 잃을 정도다. 영상-전자 매체는 세계를 좀 더 넓게 그리고 빠르게 조망할 수 있게 해주며 정보저장 능력이 뛰어나다는 점에서 큰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대로 문학에 닥친 위기를 보고만 있을 것인가?
수필비평도 이런 세상의 변화나 문학의 위기를 맞아 나름대로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 변화는 유연하게 흐름을 타는 것이지 무작정 유행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작가층의 무분별한 확대로 문인의 자질과 작품의 질적 저하가 초래되는 현실이라고 해서, 수필 인구가 빠른 속도로 팽창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우려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수필인구의 증가 자체를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될 것이다. 일부에서 문예지들이 등단을 많이 시킨다고 우려하지만, 등단자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고 숫자만 가지고 많다 적다를 논하는 건 옳은 태도가 아니다. 문예지사의 입장은 일부의 우려하고는 정반대다. 수필의 경우도, 요즘 들어와서는 응모자가 많은 편은 아니고, 수필평론 부분은 응모자가 거의 없다. 이런 결과는 수필평론 외면 현실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이런 현실은 수필 지망생에게 방향 전환을 재촉하는 촉매 구실을 하고도 남을 만한 내용이다.
수필 응모자 수도 줄고, 수필평론 부분의 응모자가 거의 없다는 것은 수필의 위기이자 수필비평의 위기를 말해 준다고 하겠다. 독자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는 수필의 효용론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지만, 연구 가능한 문학으로서의 수필비평의 존재조차도 문단에서는 별로 인정해 주지 않고 있는 현실은 이해할 수 없다. 대학에서 수필을 연구하는 전문가도 없고, 그럼으로써 수필의 이론에 대한 연구가 불충분해지니, 수필비평 문예작품 응모에 지원자를 찾아 볼 수 없고, 그래서 전문화된 수필비평가도 배출되는 길목이 좁다는 것이다. 그러나 케네디 대통령이 말했듯이 위기는 곧 기회가 아닌가.
Ⅲ. 방안 모색의 필요성과 개혁의 저항 요인
시대와 사회가 변하는 만큼 문학도 변한다.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삶의 현실이, 그 현실 속에 몸과 마음을 던져 놓고 있는 인간의 구체적인 모습들이 바뀌는데 그 삶의 모습을 어떤 형태로든 드러내는 문학이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대를 풍미했던 서사시가 전성기를 누렸던 장르의 힘을 유지 발전시키지 못하고 그 전통의 뿌리를 소설과 서정시에 넘겨준 것은 장르의 정체성을 변화하는 시대정신 속에서 계승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세의 로맨스가 전성기의 힘을 유지하지 못하고 그 뿌리와 전통을 소설에 빼앗긴 것도 장르의 전통을 새로운 시대정신에 맞게 진화시키면서 능동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필비평의 운명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수필 창작에 대한 새로운 정보, 고급문학으로서의 새롭게 변신한 수필이론에 대한 지식을 얻지 못하고, 구태의연한 감상문을 쓰는 방식으로, 또는 시필을 적는다는 식으로 수필비평을 써서는 평론가 집단에서 비주류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새롭게 다가오는 시대정신이나 대중의 욕구에 교통하면서 변화된 수필장르의 이론모형을 수용해서 고급문학으로서의 수필 정체성을 계승 발전시키는 데 동참하지 않으면 같은 수필비평가로 명함을 내밀기 힘들어질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수필비평의 개혁은 전통과 정체성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도 고급문학으로서 당대인들의 예술 철학적 욕구를 반영시킬 수 있는 수필의 고급화 방안의 틀 속에서 비평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격을 높이는 것이다.
시대정신과 역사의식을 반영하지 못하는 문학 장르나, 새로운 시대의 철학적 이념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문학 장르는 결국 살아남지 못한 채 소멸될 것은 자명한 이치다. 수필비평 개혁은 바로 위에서 제기한 바와 같이 문학의 위기에서 자신의 본질과 정체성을 살리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지고 만다는 것에서 개혁의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 짧음의 미학으로 문학의 중심에 우뚝 선 수필을 비평해야 하는 이유는 왜 찾아야 하는 걸까? 지금 수필비평계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는 수필비평의 발전 방안에 대한 폭넓은 논의다. 타장르 비평에 비해 비평적 가치가 폄하되고 있는 현실에서 수필비평의 발전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된다. 이 문제는 곧 수필비평의 오랜 전통과 정체성을 유지 발전시키면서 장르 차원에서의 자기 변혁을 위한 모색의 길과도 연결된다. 이러한 개혁은 수필비평가 집단의 공감대 속에서 형성되는 게 바람직하다. 한 개인의 노력에 의해 수필비평계 전체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고급문학으로서의 수필에 대한 인식을 갖춘 수필비평가들의 왕성한 창작활동과 이를 따르지 못하는 작품들에 대한 비평가들의 날카로운 비판, 수필 전문 이론가들의 이론적 체계화 작업 등이 상호보완적으로 진행될 때, 수필비평계도 바로 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 수필비평의 현재는 어떠한가. 저급 수필비평의 영향으로 우리 수필비평이 점차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보화시대의 수필비평가로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기 위해서는 수필에 대한 지식은 물론 비평에 대한 바른 지식이 있어야 한다. 21세기 사회에 있어서는 수필비평에 관한 지식만이 의미 있는 자원이다. 비평 배경으로서의 지식은 앞으로 수필비평의 본질이 될 것이다. 비평문학의 위기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수필에 대해 공부하는, 수필비평의 전문적 지식에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학문적인 면과 함께 철학적인에 바탕을 둔 비평작품이 창작되어야 한다. 철학성은 비평의 질을 높일 수 있는 힘이다. 우리 수필비평은 고도의 세련된 지적 성찰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고급수필비평은 수필에 대한 부정적인 양상을 깨우치고, 그것과 싸우도록 만드는 역설적인 기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수필비평은 그런 역설 기능을 통해 자기 가치를 고양하지 못하고 오도된 이론에 멍든 채, 서슴없이 순응하고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저급 비평의 잘못된 영향을 없애기 위해서는 저급 비평과 고급 비평의 차별화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런 차별화 전략의 차원에서 수필비평의 발전적인 미래를 열기 위한 개혁의 길목에 저항 요인들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먼저, 일선 수필비평가들의 수필론에 대한 지식 또는 정보 부재가 문제다. 수필비평가는 표면을 보고도 숨겨진 내부의 것도 알아야 하고, 내적인 소리, 소리 없는 소리를 듣기 위한 영적인 귀, 미세한 소리나 울림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수필비평을 뒤처지게 하는 요인은 교육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교육 현장에서 ‘수필’이란 것을 명확하게 이해시켜 주지 못하기 때문에 비평가조차도 수필을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라 여긴다. 때문에 그들은 수필을 ‘주제’나 ‘제재’ 중심의 문학이 아니라 ‘개성’의 문학이라고 이해한다. 수필 비평쓰기는 고도의 전문화된 이론적 바탕에서 가치 평가 차원으로 발전해나가야 하는데, 현재의 수필비평은 그렇지 못한 형편이다. 수필비평을 쉽게 여기는 소위 무늬만 ‘수필비평가’인 사람들이 비평을 ‘평가’가 아닌 ‘감상’ 정도로 인식하는 것도 문제다.
수필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서 수필에 대해서 안다고 30년대식 구태의연한 수필론을 재탕 삼탕하는 비수필 전공의 수필비평가들의 형태도 문제다. 이들이 수필비평의 일선에서 이론서를 내고 비평을 주도하는 것은 수필의 변화를 차단하고 있는 저항 요인이다. 바르지 못한 문장으로 수필비평 같지 않은 비평문을 써놓고도 명수필비평 쯤으로 알고 있는 문장론적 지식 부재의 수필비평가도 수필비평 개혁의 저항 세력 중 하나다. 수필이론에 대해선 배울 필요도 없고, 내 식대로 하면 된다는 수필비평고문단, 글 같지 않은 글을 써놓고 사회적 지위나 인생 연륜으로 비평의 원로나 대가 노릇을 하려는 사람들의 큰 목소리도 개혁의 걸림돌이다. 작가 자신의 끊임없는 자기 정진은 통해 새로운 창작 이론체계를 수용하고, 자기 한계를 인식하고 배우려는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수필비평 개혁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수필비평 쓰기는 싸움을 피하는 방법 차원에서 행해지는 게 문제다. 분석과 가치 평가 차원이 아닌 ‘감상’ 과 ‘인상’ 비평 차원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다.
수필비평의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수필 이론과 비평의 장이 필요하다는 주위의 충고에도 아랑곳 않고 지면을 창작 작품으로만 채우는 일부 문예전문지 경영 사업주도 개혁의 저항 요인에 속한다. 이들은 왜 수필비평을 소외시키고 있는가? 비평의 부재와 빈핍도 수필개혁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일부 수필잡지 경영인들은 글에 대한 비평을 인간에 대한 비평으로 잘못 받아들이는 풍토를 두려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필 문예지를 내는 분도 수필비평을 기피하고, 문학평론가들도 수필에 대한 비평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수필비평을 고급문학의 차원으로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서는 비평을 인간에 대한 비평과 동일시하는 풍토를 무엇보다 개선해야 한다. 내 글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일부 성숙하지 못한 수필가들의 잘못된 형태도 수필비평 개혁의 걸림돌이다.
수필비평가도 문제다. 괜히 원수질 필요 없이 적당히 듣기 좋은 소리로 윤색을 가하여 서로 선심 쓰고 위로 받으며 사는 풍토에서 콩나물은 자랄지 몰라도 풍악을 견디는 소나무와 해풍을 견디는 측백나무는 자라지 못한다. 지금까지 수필평은 사랑의 매로 인식해 왔다. 그래서 월평은 가지각색 제멋대로였다. 수필문학의 길을 밝혀주어야 할 월평이 잡초 같은 잡문을 명수필이라고 추겨세우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문학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수필을 옹호하고 향상시킬 작가적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급문학으로서의 이론모형 체계가 없어 명수필 창작에 관한 방법론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좋은 수필의 가치 척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평가기준이 없기 때문에 오는 불가피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Ⅳ. 수필비평의 과제: 개혁의 실천 방안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부터 문학의 위기설이 꾸준히 나돌았다. 문학작품을 비롯한 인쇄매체가 제공하던 재미와 지식을 영화, 텔레비전, 컴퓨터 화면이 대신하면서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 제기된 것이다. 이것은 문학의 기능이 확연히 저하되고 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문학의 죽음 또는 자살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어왔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런 보편성 외에도 인문학 경시, 시험 위주 교육 등 한국의 폐단까지 가세해 문학을 더욱 위기상태로 몰아가는 것이다. 이에 맞서 문학적 상상력을 더욱 깊고 넓게 하여 변화한 시대상을 제대로 담아내려 노력하는 작가도 있다. 그러나 저속함과 상업성에 굴복한 대다수의 사이비 문인들은 한국 문학의 총체적 위기를 불러오고야 말았다. 뿐만 아니라 외적으로는 세계화와 시장원리의 강풍이 몰아쳐 우리 문학의 정체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흔들리는 문학을 우리는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하는가. 문학의 위기에서 수필비평을 구조하려면 보다 현실의 토대를 다지면서 문제의 원인을 정확히 짚어 하나하나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 수필비평계 내부로 눈을 돌려보자. 오늘날 같이 수필이 대량으로 발표되고, 출판되고 수필문학인이 문학가의 서열을 차지하고, 수필에 대한 설명과 이론이 많은 때는 없었다. 그러나 양적 생산이 반드시 질적 향상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문학가의 서열을 차지했다고 반드시 질적 향상을 뜻하는 것은 아니며, 문학가의 서열을 차지했다고 반드시 수필이 문학작품으로 향상된 것도 아니다. 때문에 본격수필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적인 전문 비평가의 양산 방안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렇다고 해서 수필비평의 대중화와 수필비평가 인구 증가만이 능사는 아니다. 종전의 주례사 비평은 신세대 독자들은 단호히 외면할 것이다. 왜냐하면 수준 높은 컴퓨터 세대 독자들은 세련되어 본격비평과 주례사 비평을 가려낼 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격수필비평을 위해선 우리 내부로부터 먼저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위대한 비평가는 결코 수필가의 기호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성에 더한층 걸맞게 품위 있는 다른 요구를 생각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현대적 수필창작이론을 확립하고 이 본격수필창작이론이 국문학계에 파급되어야 한다. 현재의 수필은 여타 문학 장르에 비해 모호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좋은 수필이 어떤 것인가를 가르치고 깨닫게 할 수 있는 교본, 즉 창작이론 모형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하겠다. 시, 소설, 희곡 등과 같이 수필 역시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수필은 더 이상 시나 소설의 하위 장르쯤으로 취급당해서는 안 된다. 수필은 필자가 글의 표면에 나서서 서술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세상에는 수많은 글들이 이런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문학적 체계가 뚜렷하고 학술적인 글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수필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다 보니 소위 말하는 ‘잡문’이 유독 수필에만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수필의 정체가 모호하기 때문에 ‘붓 가는 대로’, ‘아무나 쓸 수 있는’ 등의 말이 나오게 되고 수필이 수필문학으로써 위상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자화자찬이나 자기 현실에 빠진 이가 하는 독백과 같은 공허하게 읽히는 글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제대로 된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이 동네 문화센터에 모여서 손쉽게 써보는 글 때문에 수필의 질이 떨어지고 수필의 정체가 모호하게 됐다’는 푸념보다는 ‘수필이 바로 서게 된 연유에는 제대로 된 수필비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문학으로서의 수필비평에 대한 정체성의 재확립이다. ‘수필비평 정체성 확립의 주체’는 ‘비평가 자신’이다. ‘수필비평의 정체성’은 ‘작가정신’ 또는 ‘비평가정신’이다. 수필비평가는 진정한 의미의 수필 작가 탄생, 아마추어가 아닌 작가정신에 입각한 프로가 출현하도록 도와야 한다. 완성된 수필비평이 중요한 게 아니라 비평가로서의 실력 완성이 중요하다. 21세기 문학의 위기, 수필비평의 위기를 담당할 사람은 바로 비평가 자신이다. 그렇기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비평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데 있고, 나아가서는 그것에 수필문학의 미래가 걸려있다고 할 수 있다. 문학의 새 세기가 수필에 의해 주도될 것이라는 예견은 일찍부터 있어왔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데 고지식한 이론에 머문다면 수필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이러한 수필 외적 변화는 수필문학의 내적 충실도 곧 문예성 및 전문성을 견고히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셋째 수필비평도 문학이다. 문학이 목표로 하는 것은 미의식이다. 그리고 미란 감각적인 것이다. 단순히 지적이고 또는 의지적인 표현만으로는 문학 작품이 될 수 없다. 지적이고 의지적이며 훌륭한 어떤 내용이 있어도, 그것이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미와 감정적으로 인간을 감동시킬 수 있는 맛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맛있는 수필비평이 되게 창작해야 한다. 향기를 주는 글맛도 있어야 한다. 사람의 냄새도 풍겨야 한다. 당연히 비평의 관점은 가치를 판단하는 일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비평은 가치평가의 회피, 칭찬 일변도, 작품과 직접 관계가 없는 문학 일반론의 관점 등으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 공정한 평가를 위해 어떤 선입견과 편견도 버려야 한다. 고급수필비평으로서 비평의 맛은 전체적으로 무엇보다 천박하지 않은 데서 찾아야 한다. 경박하고, 우쭐거리고, 갈 길을 찾지 못해 허둥댐의 비평은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 수필비평가는 무자비하게 결점을 들추어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사항에 대하여 그 가치, 진실, 정당성 또는 그것의 미나 기교에 대한 감식을 포함한 합리적 의견을 말하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넷째, 비평의 활성화다. 건전한 비평문화가 자리 잡아 선도적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정실비평이나 찬사 일변도의 주례사와 같은 비평이 아닌 철저한 검증과 분석적, 진로를 제시할 수 있는 비평문화가 형성되어 옥석이 가려질 때 수필의 발전이 촉진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 단계로서 수필 비평의 방향이 바로 서야 한다. 어떤 종류의 문학을 막론하고 문학을 논하는 사람은 논자로서의 입장이 다르다. 그러나 그 어느 것이든 고급문학으로서의 수필문학관의 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학의 무슨 주의나 비평의 어느 유파를 내세우지도 편들지도 않는 중용의 태도가 필요하다. 따라서 수필계는 정부 지원 또는 민간 지원을 받아 학문적 성과를 바탕으로 비평 활동을 하고 있는 전문가를 중심으로 이론연구를 전담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수필문학연구원이 설립되도록 해야 하고, 여기서 자주 전문가 워크숍을 열어 수필문학의 창작이론 체계를 확립해서, 국문학계가 연구 성과를 정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고 본다.
기타 캠페인성 사업으로 각 신문의 신춘문예 응모 장르에 수필 및 수필비평 분야를 신설하게 하거나, 대학의 국문과, 문창과 등에 ‘수필창작’ 관련 과목에 ‘수필비평론’ 등의 교과가 교과 과정에 편성할 수 있도록 한다든지, 이러한 제반 사업을 위한 ‘기금모금’ 방안, 또는 가칭 ‘수필비평바로세우기운동본부’를 설립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Ⅴ. 닫으며
지금까지 우리는 문학과 수필비평의 위기와 그에 대한 방안을 살펴보았다. 비난과 비판 속에서도 중요한 것은 비평작품의 질이 문제이고, 이에 의해 평가되고 판단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는 수필가가 많지 않다. 중요한 것은 수필비평가의 수가 아니라, 과연 그들에 의해 만들어진 비평문이 시대와 독자가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며, 그들이 만들어낸 감동이 수필가의 정신 고양과 수필의 질 개선에 얼마나 기여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다. 수필비평의 위기에서 헤어날 수 있는 방안으로는 수필 비평의 활성화로 수필의 창작이론 모형을 교본화하는 작업이 급선무라고 본다. 수필비평계의 과제는 수필비평론의 부재로 인해 생긴 문제인 만큼 수필가를 뒤쫓아가는 개혁이 아니라 수필가를 이끄는 개혁이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비평가의 권위를 회복해서 수필가들을 고급독자로 만들어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수필가와과의 긴장을 의미한다.
고급비평은 진정으로 살아있는 음성이다. 진지한 삶의 돌아봄이다. 작품의 가치, 문학성, 문학적 미추를 비평하여 논하고, 작품 속 내재된 도덕성이나 사회성, 혹은 인간이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치밀하게 따지고 밝혀내는, 문학적 비평행위가 수필평론이다. 수필비평은 지나간 시간의 기록이 아니라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미래를 향해 펼치는 사랑의 향연이고 언어의 축제여야 한다. 수필 작품이 수필비평의 품에 뿌리내릴 때, 우리 수필도 빛날 수 있다.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건전한 비평의 풍토를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필의 문학성을 새롭게 구축해야 할 것이다. 사람은 옛 선현이 남긴 말을 통해 삶의 난관을 해결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받곤 한다. 좋은 수필비평, 감동을 주는 수필비평을 써서, 그것을 정보화 환경을 이용해 대중화한다면 변화된 정보화시대가 수필비평을 살리는 효자가 될 것이다.
수필비평의 미래와 개혁 방안에 대한 논의는 지금껏 별로 없었다. 따라서 수필비평에 대한 획기적인 개혁안보다는 현실성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필자는 급작스런 개혁보다는 수필비평가를 보듬어 안고 가는 점진적 개혁이 되어야 함을 전제하였다. 구속력이 없는 현실 속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는 아이디어로 끝날 공산이 크기 때문에 개혁 방안을 짜면서도 현실적 타당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본고의 개혁안이 특별한 혁명적 개선책이 아니라 차선책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본고의 개혁 방안이 많은 우리 수필비평가들의 공감대 위에서 실천적으로 반영되어진다면, 오도된 수필론을 배워 수필을 쓰고 있는 수필가에게 비평문이 창작의 길라잡이가 되고 수필문학의 위상을 강화하는 힘으로 작용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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