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기 10장 화 최인전[花技十章和崔仁田]> 이학규(李學逵 1770∼1835) 壬申 1812년. 고영화(高永和)
낙하생은 나이 31세 때인 1801년(순조 1) 신유사옥에 삼종숙(三從叔) 승훈(承薰) 등과 함께 구금되었다. 조사결과 천주교와는 무관함이 밝혀졌으나, 전라도 능주(綾州:지금의 화순군)로 유배되었다. 이해 10월 내종제(內從弟)인 황사영(黃嗣永)의 백서사건(帛書事件)으로 다시 국문을 받은 뒤, 김해로 이배되었다가 1824년 4월 아들의 재청에 의하여 방면되었다. 저자는 유복자로 태어나 외가인 성호(星湖) 이익(李瀷) 가문에서 자랐으며, 1801년에 일어난 신유사옥(辛酉邪獄)과 황사영(黃嗣永) 백서(帛書) 사건에 연루되어 24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의 유배지 배소는 現 부산시 강서구 가락동 죽도 서낙동강 강창(江滄) 인근 강변에 위치했는데 김해부성에서 남쪽으로 10리 떨어진 곳이다. 그의 시에서 자주 언급한 김해시 불암동(佛巖津)은 배소에서 북북동 방향 강변 10리쯤에 위치하고 있다.
낙하생 이학규 선생은 <화기10장[花技十章]>이라는 5언 한시를 통해 김해(盆城) 귀양살이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서울의 화원(花園)에 있는 꽃가지(花枝)에다 자신을 투영시켜 귀양살이 고독과 궁핍함,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 불안정한 유배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그가 유배 4년째 되는 해에 어린자식이 죽고 15년째 실인(室人 부인)이, 19년차에는 노모가 잇달아 죽었다. 집안 노비 서너 명도 죽거나 다른 집으로 옮겨가매, 속수무책 가세는 기울어, 처절의 극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화기10장[花技十章]>은 1812년 작품이라, 아직 집사람과 어머님이 멀리 서울에서 살고계신 때였으며, 선생은 적소(謫所) 생활에 조금 적응한 시기로 보인다. 이에 먼저 죽은 자식을 그리며, “나무가 황토에 젖어 새끼물고기가 동풍에 곡한다.” 또는 “살구 열매가 아직 덜 익어 신맛을 내는 살구(자식)가 죽었다. 늙어 마른 복숭아(자신)는 어디에 쓸꼬”라며 통곡한다. 그리고 “이슬로 키우신 은혜에 근심은 저 멀리 어머니에게 있다며, 바라건대 무탈 하소서”라고 읊조리며 어머님에 대한 걱정과 불효자식에 대한 한탄을 드리운다. 또한 “빈숲에서 홀로 남은 꽃(부인)과 기약했는데 그 약속 멀어지니 가여운 석류의 정(精)”, “해마다 목필(木筆)의 향기 피우니 꽃이슬에 적시어 긴 편지 쓸까보다.”라며, 두고 온 부인에 대한 사랑도 빼놓지 않는다.
김해부사로 부임한 수령은 선생의 집주위에 울타리를 치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군졸을 두어 지키게 하였다. 또한 집주인을 관아에 불러들여 곤장을 치기도 했으며, 지방토호 세력이나 호족들은 그를 적대시하여 갖가지 수난을 겪게 하였다. 이에 시어(詩語) ‘흰나비, 땅거미, 유다, 전춘라, 비바람’ 등은 그를 괴롭히고 모욕하는 모든 존재로 대입시켜 비유한 것이다. 마무리에서, 그래도 삶이 계속 이어져야할 이유와 희망을 읊고 있다. “만일에 화분의 화초가 아름답게 핀다면, 빌려다가 봄날 난간에 옮겨 놓으리라.”고 노래했다.
花枝復花枝 꽃가지 중에 꽃가지
憶在西園時 생각건대 서쪽 동산에 있을 때
無媒嫁與風 바람 넣는 이는 물론, 중매하는 이가 없어
獨守空林期 빈숲에서 홀로 기약하였다.
生憐石醋醋 가여운 석류의 정(精)이여
罵座封家姨 좌중을 꾸짖듯 이모처럼 살폈다.
花枝遭惡雨 꽃가지가 비바람을 만나
蔌蔌粉淚滋 바람에 흩날리니 눈물이 흐르네.
擧族委黃土 온 나무가 황토에 젖었는데
獨萼那自持 홀로 남은 꽃만 어찌 스스로 버틸까.
子(夫+隹)哭東風 새끼물고기(子稚)도 동풍에 곡하구나.
一日十二時 하루 온종일 동안....
花枝離故根 꽃가지가 옛 원뿌리와 이별하여
英華黯不茂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무성치 못하네.
死恨離孃草 이별의 한에 죽는 아가씨 풀이로다.
它鄕強獨秀 타향에서 굳세게 홀로 빼어나랴.
蠲憂在北堂 근심은 저 멀리 어머니에게 있구나.
庶以慰如疚 바라건대 무탈 하소서.
花枝上苑牆 꽃가지가 정원 담장 위에 걸쳤는데
憶近春臺仗 가까운 봄날 누대에 기대어 추억하며
扶持貴氣濃 기운을 두터이 가지면서 참고 견뎠다.
竦擢恩露養 이슬로 키우신 은혜 우뚝 솟았으니
何須膽甁供 구태여 꽃병을 받들 필요가 있으랴.
寂寞登書幌 적막한 서재로 나아간다.
花枝但看色 꽃가지 색채를 한갓 보니
色衰誰貴重 시든 꽃을 누가 귀중하다 하리오.
結子盡含酸 열매가 전부 신맛을 머금어도
尙擬筐筥供 바구니에는 가득 담긴다.
杏殤不復計 살구가 어려 죽으니 다시는 셈하지 않겠지만
桃梟念底用 마른 복숭아는 어디에 쓸꼬.
花枝零落盡 꽃가지 다 떨어졌으나
尙念繁華時 아직도 번성했을 적 생각한다.
銀燭遂不照 밝은 불 비추지 않으니
粉蝶那更窺 흰나비가 어찌 엿볼 수 있으랴.
橫行土蜘蛛 횡행하는 땅거미들
又來縈絡之 기어와서 얽어매네.
花枝古盆城 꽃가지, 옛 분성(김해) 땅에서
托根非故土 뿌리 내렸으나 고향땅이 아니구나.
油茶翦春羅 유다와 전춘라 풀들
雜種敢余侮 잡종들이 감히 나를 모욕한다.
安借東南風 어떻게 동남풍 빌어다가
吹向漢山隖 한양 언덕 향해 날아갈까
花枝裊迎人 꽃가지가 반가이 환영해 준다고
隱約當壚處 은약하고 술파는 술청에 앉았는데
生憐落溷花 가엾게도 꽃이 어지러이 떨어져
死傍黏泥絮 진흙 묻은 버들개지 옆에서 시드네.
猧兒曉撼起 강아지가 새벽부터 나를 깨웠는데
風雨人歸去 비바람이 사람들 다 돌아가게 하는구나.
花枝小平衆 꽃가지, 작은 꽃봉오리 고르게 피어나고
春雨虹橋滑 봄비에 무지개다리가 미끄럽네.
相迎茅屋底 손님을 맞이하는 초가집 아래에서
自愛桐屐齾 절로 생긴 사랑에 오동나무 나막신의 흠집이 생겨났다.
秊秊木筆香 해마다 목필(木筆)의 향기 피우니
花露寫長札 꽃이슬에 적시어 긴 편지 쓸까보다.
花枝復花枝 꽃가지 중에 꽃가지
嘆息委路歧 갈림길에서 시들어 탄식하노니
重陰晦花魄 짙은 그늘 속, 꽃의 혼백이여~
白嶽天之涯 북악산 하늘 끝 물가에서
惟將綠盆種 만일 화분의 화초가 아름답게 핀다면
乞借春檻移 빌려다가 봄날 난간에 옮겨 놓으리.
[주1] 석작작(石醋醋) : 당(唐) 은성식(殷成式)의《유양잡조(酉陽雜俎)》에 나오는 석류의 정(精).
[주2] 춘대(春臺) : 날씨가 좋은 봄날에 올라가서 좋은 경치를 바라다보는 곳으로, 태평성대를 뜻한다.
[주3] 유다 전춘라(油茶 翦春羅) : 유다(油茶)는 차의 일종으로 한 해 동안에 꽃이 세 번 피고 결실을 두 번 맺는데 그 열매로는 기름을 짠다. 전춘라(翦春羅)는 털동자꽃, 석죽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주4] 은약(隱約) : 말이 간략하나 뜻이 깊음. 희미하다. 어렴풋하다. 은은하다. 은약하다. 또늠 窮困 혹은 憂苦의 뜻.
[주5] 목필(木筆) : 연필. or 목련꽃은 꽃봉오리가 처음 생길 때 붓의 끝부분처럼 생겨서 목필(木筆)이라고 하기도 하며 꽃이 가장 일찍 피기 때문에 영춘(迎春)이라고도 한다. 또한 북쪽 찬 지방에서는 음력 2월에 꽃이 피는데 목필(木筆)이라 하고, 남쪽 따뜻한 지방에서는 정월에 피는데 영춘(迎春)이라 부른다.
[주6] 걸차(乞借) : 다른 고을의 목민관이 선정을 베풀어서 백성들을 잘살게 해주므로 이웃 고을에서 그 목민관을 자기 고을로 보내 달라고 임금에게 청원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