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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부활신앙으로 승리하자/고전15:1-11
서은철목사설교
오늘 부활주일에 주님께서 주신 고전15:1-11을 통해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으로 승리의 삶을 살자]라는 제목으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큰 은혜의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고전13장이 사랑장이라면 15장은 부활장으로 가장 아름답고 확신에 찬 내용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임을 입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경의 예언이 성취된 결과입니다(3-4).
둘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자들이 생존해 있었다(5-8)
셋째로 바울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돌아 오게됨(9-11)
바울이 부활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은 영혼의 불멸성을 인정하면서도 육체의 부활은 결코 인정하지 않는 헬라철학의 영향으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과연 부활이 있는가? 부활한다면 어떻게 다시 살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는 질문이 제기되었고, 기독교 복음의 핵심은 은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임을 주지시키고자 함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역사적 확실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먼저 언급하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 성도들 역시 부활의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으로 승리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첫째로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임을 믿고 전하라 (1-4)
바울사도는 자신이 알고 있는 복음의 핵심진리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확고히 심고자 한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진리가 무엇을 말하나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이 깨닫기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3-4절에 나와 있는 대로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즈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시지낸바 되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 이것이 바울이 전한 복음의 핵심인 것입니다.
흔히 복음이라고 하면 ‘복을 가져 다 주는 소식’이라고 알고 있어 예수 믿고 기독인이 되면 누구나 복을 받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행복을 위한 것이지만, 기독교의 복은 현제적인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내세적인 것입니다.
기독교의 복은 현세적인 것을 무시하지 않지만, 그 초점은 내세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복음이 말하는 복을 현제적인 것으로 만 생각하고 신앙의 초점을 오직 능력을 받고 기쁨을 얻고 감동을 받고 물질의 복을 누리고,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 , 대기업에 취업되고 좋은 사람과 결혼하고 아들 딸 잘 두는 것에 두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성도들이 세상적인 복을 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 부요한 하나님이시오 은혜 베풀기를 즐겨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여 그분의 풍성함을 누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핵심은 예수를 믿으면 세속의 복을 받는데 있지 않습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마지막 때에 부활하여 영생복락에 들어간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궁극적인 복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감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족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세속적인 복도 구하되 그것을 신앙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주어질 영생 복락이 복음의 핵심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과 그로 말미암아 주어질 영원지복을 위해서라면 때론 세속적인 복마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서라면 스스로 고난도 감수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 생활을 하다가 회의가 들어서서 신앙이 점점 더 자라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2절 말씀은 주의 말씀을 믿고 지키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며,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말씀을 믿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잘못된 사상을 전하는 자들의 그릇된 복음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전한 바로 그 복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게 돌 것이라는 말입니다.
너희가 구원을 얻으리라(σώζεσθε)는 말은 구원이 지금 현재적으로 구현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즉 자신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구원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완성은 비록 미래에 온전히 이루어질지라도 현재에도 실현되고 있으며 보장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2절에서“ 굳게 지키고 (κατέχετε) 헛되이 지키지 아니하였으며”는 잠시 동안 믿다가 시험의 때가 오면 믿음을 저버리고 아무렇게나 믿는 것이라면, 이 말씀은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됩니다.
여기에서 카테고는 억누를다,보유하다 간직하다는 의미로 님의 말씀을 그저 은혜로만 받아서는 안되고 소중ㅇ하게 간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긍정적인 진술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부정적인 진술에 부정적 답변을 기대하는 이중적인 확인을 통해 자신이 전한 복음을 잘 지키라고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없이 은혜가 있을 수 없어 짙은 회의, 불신, 원망, 불평만이 남게 되는 것이므로 쉽게 불신으로 치달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허무 자체이며 허무를 즐기는 허무덩어리입니다. 이런 회의와 허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말씀으로 무장해야 될 줄 믿습니다. 이러한 회의와 허무를 물리치는 믿음은 오직 말씀을 들음에서만 남게 되므로, 매일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마음에 각인되도록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설교 말씀을 듣는 예배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설교 테이프나 방송을 통해서 자주 말씀을 접하되 날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절에서 복음 전파는 성도가 세상을 향해야 하는 제일 순위 사역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전한 것은 십자가와 부활이었습니다.
십자가는 헬라인에게는 어리석은 것이요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지만 십자가를 전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었으며, 부활을 전하는 것은 믿음의능력과 소망이 된 것입니다. 자신들의 은사와 능력이 사람들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고린도 교인들이었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능력을 주시고 물질을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고 있지는 않으시는지요?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기에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기적이나 능력이나 빵이나 약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이란 복음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음을 바로 알고 복음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으로 승리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둘째로 부활신앙은 화해와 용서의 정신임을 믿으라 (5-8)
부활하신 예수께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열두제자에게 보이셨다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실을 가장 먼저 안 것은 여인들이었습니다.
눅24:1“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5어찌하여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 나셨느니라 7 십자가에 못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셧느니라 ”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뵌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마28:8)
그럼에도 본문에서 바울은 게바 즉 베드로에게 가장 먼저 부활하신 모습을 보이신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은 바로 베드로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가장 최선봉에 정점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당하실 때 모든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수제자로써 부끄럽긴 하지만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좇아갔다가 오히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기가 막힌 잘못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9눅22:55-62)
이정도면 수제자는 커녕 제자로써의 자격도 이미 상실한 것입니다. 더 이상 자신이 예수님의 수제자 아니 제자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의 주님이 어떻게 하셨다구요? 그를 찾아 주시되 제일 먼저 찾아 주셨다는 것입니다.눅24:34 “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 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 지신 것을 말하더라”
예수님의 부활은 무엇을 말합니까? 바로 화해와 용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부활 주일을 맞이해 서로에게 서운한 것이 있거나 잘못이 있으면 서로 용서하고 마음으로부터 진정한 화해가 있는 부활주일이 되기 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신앙을 가진 성도라면 부활의 정신인 화해와 용서의 삶을 살아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배반한 제자들을 책망하기보다
그들을 먼저 찾아오셔서 안심시키고 사도의 직분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8절에서 바울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합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 바울은 난봉군, 훼방자, 핍박자, 포행자, 죄인중의 괴수였지만 바울을 만난 예수님은 저주대신 정죄하기보다 동일하게 그에게도 화해와 용서의 메시지를 던지신 것입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부활은 단순히 교리적인 것이거나 미래적인 것만이 아니라 먼저 현재적인 것이어서 화해와 용서를 말합니다.
사실 예수님의 부활은 성도간의 화해와 용서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님이 죄인들을 용서하신 사실에 대한 확증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그들과 화해하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셨고 ,또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일으켜 부활시키심으로 그 사실을 확증하신 줄 믿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은사와 성령의 역사가 풍성했음에도 성도들 간에 용서와 화해의 정신 사랑의 실천이 없었기 때문에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들 상호간에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기 위해서는 복음으로 돌아가야 하며,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이요 , 부활에는 용서와 화해의 정신이 담겨 있음을 명심하라 하십니다.
성령의 은사와 능력이 용서와 화해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설령 성령의 은사가 없을지라도 성도간의 화해와 용서의 정신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활신앙, 부활정신은 화해와 용서의 정신임을 분명히 깨닫고 십자가와 부활신앙으로 무장한 사랑과 화해와 용서의 용사가 되어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으로 승리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됨을 결정짓는 사실상의 왕임을 믿으라(9-11)
9절에서 자격미달의 사람이 받는 것이 하나님 주시는 직분의 특징입니다.
바울 자신이“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다” 하는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 변호를 위해 처절할 정도로 싸우고 있는 상태임에도, 여기에서 사실상 자신에게는 사도의 직분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고 솔직히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직분은 사실상 자격 없는 자에게 은혜로 주시는 선물인줄 믿습니다.
사도중의 사도 제자중의 수제자라 하는 베드로조차 예수님을 배신하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베드로 사도조차 사도의 자격미달이었다면 다른 사도들인들 오죽했겠습니까?
교회의 직분에 대해 교회의 직분이 맡겨질 때 자격을 이유로 지나치게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직분 받기를 거절하는 것은 언뜻 보기에는 외양은 겸손이지만 실제로는 교만이라는 것입니다. 암3:8“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면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혹은 자격이 있든 없든 성도는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순종하고 자신의 생명을 걸고 충성해야지 스스로 자격미달이라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지 않고 뒤로 빠지는 것은 불순종입니다.
특히 교회에서 직분을 받음으로 자신이 다 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직분을 받기 전에 겸손하던 사람이 직분 받은 후 목에 힘이 들어가고 목회자에게 도전하고 불순종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분을 주심은 충성되이 여겨 잘 섬겨줄 것을 기대하고 맡기는 것인 줄 알아 직분을 받기전 보다 더 겸손하게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대해야 될 줄 믿습니다.
10잘에서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의 모든 성도됨을 결정짓는 사실상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온전한 자신이 되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바울은 부끄럽고, 방정맞고, 바보 같았던 자에 대한 고백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예를 들어보면 자신이 못나보이고, 혐오심과 증오심에 몸을 부르르 혼자 떨기도하며 자기가 온전한 자가 되지 못함을 야속해 합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것조차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의 나 된 것은 바울 자신이 온전한 자신이 됨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의 특징은 성도가 잘나고 가장 온전한 자아를 성취하는 부분에서 가장 못난 부분까지 하나님의 은혜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잘되는 것도 은혜요 못되는 것도 은혜입니다. 사업이 성공하는 것도 은혜요 망하는 것도 은혜인줄 믿습니다. 성도는 은혜의 통치아래 있고 은혜의 다스림 속에 살아가고 있는 줄 믿습니다.
자연 재앙은 이 세상에 한정되어 있지만, 하나님 주시는 진노의 재앙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절제해야 하며, 아낌없이 투자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은혜되고 우리 가운데 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투자해야 하는데, 물질, 시간, 재능도 투자해야 합니다. 기도도 하고 전도도 해야 합니다
말씀도 듣고 봉사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신앙으로 승리의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첫째로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임을 믿고 전하라 (1-4)
둘째로 부활신앙은 화해와 용서의 정신임을 믿으라 (5-8)
셋째로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됨을 결정짓는 사실상의 왕임을 믿으라(9-11)
바울 같은 자가 성도가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 못하듯이 교만하지 않고 항상 섬기는 겸손의 자리에 일하시므로 . 위대한 복음의 전도자되기로 일사각오하신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