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현순 선생님께
선생님. 자은도 황선영이에요. 건강하신지 안부가 제일 궁금합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전라도 이곳저곳 떠돌이 생활하다, 지금은 목포에서 지냅니다. 나이가 40이 넘어, 세월이 빠른 것도 실감하고요. 정말 엊그제 같아요. 자은서초등학교가 저희를 마지막으로 폐교되고 30년이 지났네요.
2012년 제가 광주에 살 때, 편지 보낸 적 있는데 기억하세요? 답장도 주셨고요. 그때는 교육청 홈페이지 같은 데서 선생님 성함을 검색하니, 근무하는 학교가 나오더라고요. 다시 그 방법으로 찾으려니 안 되네요. 필체도 그대로고, 제 할머니 안부까지 물으셔서 놀랐어요. 그만큼 자은도가 선생님께도 특별했다고 하셨죠. 섬 생활을 사모님과 어린 자녀까지 같이하셨잖아요. 사택 가서 밥도 먹었던 기억이 나요.
또 10년이 지나고야 글을 올립니다. 그 사이 할머니 두 분 다 돌아가셨고, 저는 아이가 넷 됐어요. 스승의 날, 아이들 담임과 면담할 때, 가끔 고향에 들러 터만 남은 자은서초등학교를 지나면 꼭 선생님 생각이 납니다. 받기만 하고 무엇으로도 갚지 못해 늘 죄송한 마음이에요. 졸업하고 강산이 몇 번을 바뀌었는데 1994년 그해는 손에 닿을 것 같아요. 나눈 추억이 진해서 그렇겠지요. 저뿐 아니라 6학년 여덟 명 친구들이 다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두봉산에 간 일 기억하세요? 섬 가운데 솟아 있어 날마다 보고 사는데도 한 번도 오를 생각을 못 했어요. 좀 쌀쌀한 계절 같아요. 휴일도 반납하시고 저희 데리고 산에 가셨었잖아요. 지금은 등산코스가 잘 닦여 있다, 하더라고요. 그 당시는 오솔길 수준이었을 텐데 어떻게 올랐을까요. 아무튼 온종일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전혀 힘들지 않았고, 마냥 재밌어서 깔깔거린 것과 정상에서 먹었던 밥과 간식이 꿀맛이었던 것만 선명합니다.
그 해 어린이날. 도시처럼 무슨 행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도 그날을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아요. 5월은 농번기라 어른들이 바쁘고요. 사는 게 그랬던 시절이죠. 이런 저희가 짠했는지 마을 가까운 바다에서 놀아 주셨잖아요. 해변에서 게임도 하고 고동도 따고 소라도 찾아보고요. 점심때가 되어 각자 가지고 온 찬으로 밥을 먹었어요. 저는 할머니가 강다리(황석어) 조림을 싸주셨어요. 선생님께 내보일 반찬이라 예쁘고 먹음직스러운 것을 원했는데, 냄새나고 볼품도 없는 생선이라 부끄러웠어요. 가는 길에 버릴까 했지만, 양심은 좀 있었나 봅니다. 창피한 마음으로 도시락을 열었는데, 선생님 젓가락이 제 반찬을 제일 먼저 집으셨어요. 제 마음을 아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추위가 지금과 달라서 동상 든 애들이 있었어요. 변변한 장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겉옷이 보온이 잘 되지도 않았고요. 그렇게 겨울이면 학교에 한 시간씩 걸어 다녔으니 어린 손이 얼 만도 해요. 섬에 병원도 없고 할머니가 데리고 뭍으로 데리고 나갈 형편도 안 되고 해서 그냥 낫기만 기다리는데 선생님이 어떻게 아셨을까요. 그때 어디 기관 초청을 받아서 6학년이 여행을 갔었어요. 도시에 나와 짬을 내 병원에 데려가 주셨잖아요.
선생님에게 배우던 모든 시간이 다 재밌었어요. 특히, 일기를 정성스레 썼어요. 지금 용어로 댓글을 꼭 달아주시니, 좋았거든요.
6학년쯤 되니 세상이 삐딱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사춘기 시작이었나 봐요. 조물주가 나한테만 불리한 것을 준 것 같고요. 예민하였을 때 선생님처럼 적절하게 배려하는 분을 만나서 행운이었습니다. 그래서 엇나가지 않고 그 시기를 잘 지났습니다.
선생님. 천사대교를 건너보셨어요? 배를 타고 3시간 가까이 가야 했던 곳을, 이제는 차를 타고 자유롭게 드나듭니다. 나이 들면 고향이 그립다고 하는데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바다로 막혀 답답했거든요. 그래도 선생님과 우리 여덟 명이 생활했던 그 1년은 몹시 그립습니다. 다시 그 한날로 가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선생님. 추억할 거리를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2023년 5월 28일
황선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