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여기는 딱 하나뿐인 우주타운입니다
2008년 《아동문예》 동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천선옥 시인의 다섯 번째 동시집. 특히 이번 동시집 『여기는 우주타운』은 2024년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문학창작기금(문학 창작산실)사업에 선정된 작품집이다. 앞서 네 권의 동시집 『안개의 마술 학교』 『블랙박스 책가방』 『해바라기가 된 우산』 『우주꽃의 비밀』을 낸 바 있는 시인에게 문삼석 선생이 보낸 출간 축하 편지글을 인용하면 “감동이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천 시인님이 맞는지 의심을 할 정도”라고 할 만큼 천선옥 시인 지난 네 권 동시집에서 보여준 자신의 시를 새로이 갱신해 보여주고 있어서 독자들의 기대감을 한층 키우고 있다.
목차
시인의 말_여기는 우주타운입니다
1부 늑대와 교신 중
여기는 우주타운 / 어린 왕자 / 달고나 행성
달린다, 달린다 / 늑대와 교신 중 / 다들
나는 자작나무가 되어 가는 중이다 / 빨간모자는
태풍 온 날 / 감천마을 / 남수단 톤즈에서
엄마 마음 / 벼슬 / 왜냐면 / 외로움씨
2부 구름 샤벳
아름다운 철물점 / 구름 샤벳 / 색연필을 깎는다
가을 하늘 / 할미꽃 / 오월 / 그림의 떡
지뢰 / 초봄 / 전시회 마지막 날 / 양산
더운 날 / Y / 사과 한 개를 먹는 동안
노랑부리백로는
3부 빠딱한 AI씨
꽁꽁 얼었다 / 맘대로 / 꽃무늬
땅값 / 내 귀가 따갑다 / 삐딱한 AI씨
빨리 타! / 살살 / 시나몬빵 굽는 날
싹, 감자 / 휙 / 봄볕 / 잠을 깨우다
왜 그런 줄 알았다 / 벌 서는 중
4부 씨앗들의 탈출기
겨울잠 / 가로수 / 꼴라쥬
다시 오나 봐라 / 씨앗들의 탈출기
살렸다 / 지렁이 / 숨은그림 찾기
엄마 앞치마에 / 약속
책 속으로
우리 마을에 딱 하나뿐인 철물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철물점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은 철물점
그런데도 엄마는 내게 심부름을 시킨다
- 철물점에 가서 욕조 거름망 좀 사와
- 또 없으면?
투덜투덜 철물점에 갔는데, 또 허탕이다
노을이 내려앉는 저녁
철물점 양철지붕 위로 은행잎들이 후두두둑 떨어진다
저 이름 누가 지었을까?
참, 잘 지었다
--- 「아름다운 철물점」 전문
‘쟤는 항상 혼자야!’
라고 말하지만
난 혼자였던 적이 없어
나한테는 외로움씨가 있어
말이 없지만
함께 있어주는 외로움씨
내가 멍 때리고 있을때
함께 멍 때려주는
내가 노을을 볼 때
함께 바라봐주고
내가 집으로 걸어올 때
내 어깨에 앉아
함께 오는 외로움씨
네 눈에는 안 보이지?
--- 「외로움씨」 전문
나무가
자꾸
하늘을 밀어낸다
땅에서 점점 멀어지는 하늘
그래서 하늘이 맑은가 보다
너희가 애쓴 덕분이다
--- 「가을 하늘」 전문
볍씨 실컷 주워 먹고 날아가던 철새들
구름을 날름날름 먹는다
철새들도 우리 엄마처럼 밥 배 디저트 배 따로 있나?
그 많던 구름 다 사라지고
하늘이 파랗다
--- 「구름 샤벳」 전문
오월이
들꽃 한 무더기를 등에 업고
나비를 머리에 이고
벌과 잠자리를 어깨에 얹고
바람과 꽃향기를 품에 안고
연두와 연두 사이로 온다
--- 「오월」 전문
구름이 내려앉는다
새들이 낮게 날아간다
소나기가 한바탕 지나간다
뒤이어
햇살이 쫘악 퍼진다
흰둥이가 컹컹 짖는다
감나무에 앉은 새들이 짹짹 대답한다
사과 하나를 먹는 동안의 일이었다
--- 「사과 한 개를 먹는 동안」 전문
출판사 리뷰
“우리 마을에 딱 하나뿐인 철물점”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염두에 두는 시적 영역이다. 딱 하나뿐이라는 것은 예술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그런 철물점이라면 필시 「아름다운 철물점」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갈망하던 철물점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철물점”이고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은 철물점”이다. 시는 언제나 있었고 시는 언제나 완벽하지 않다. 그래서 없는 게 더 많은 철물점이 된다. “없는 게 더 많은”은 ‘가진 게 없는’과는 엄연히 다르다. 없는 게 더 많은 상황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없지만 실망하지 않는, 그럴 줄 아는 그러한 발길의 되돌림. 하지만 이야기로 가득 차올라 돌아오는 길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내게 심부름을 시킨다” 뻔히 알면서도 걸음을 해보는 거기에 시는 깃든다. “노을이 내려앉는 저녁/ 철물점 양철지붕 위로 은행잎들이 후두두둑 떨어”질 때 몸과 마음에 빛 하나가 반짝거린다.
“저 이름 누가 지었을까? 참, 잘 지었다” 이렇게 시도 완성이 된다면 참 좋겠다.
언제나 아침이면 사과를 먹을 수 있는 시절이면 좋겠다. 사과 한 알이 주는 충만함. 그것은 신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한 일. 「사과 한 개를 먹는 동안」은 “구름이 내려앉”고 “새들이 낮게 날”고 “소나기가 한바탕 지나”가야 한다. 그 일들을 겪어낸 “뒤이어 햇살이 쫘악 퍼”져서 그것 또한 참 다행이다. 미약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다만 바라볼 뿐. 거기에 더해 “흰둥이가 컹컹 짖”고 “감나무에 앉은 새들이 짹짹 대답한다”
“사과 하나를 먹는 동안의 일이었다” 사과 한 개를 먹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은 아니므로. 그것은 또한 하나의 기적으로 여겨진다.
굳이 이런 「숨은그림 찾기」는 하지 않아도 괜찮은 일인데도 외면할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니까 그렇다. 세상은 본디 “눈부신 소금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니?”와 같아야 한다. 하지만 하는 수 없이 숨은 그림은 찾아지고야 만다.
“플라스틱, 비닐, 빨대, 옷, 사탕 껍질이/ 소금 속에 다 들어있어요”
시인의 말
여기는 우주타운입니다
그동안 우주타운을 맘대로 설계해 봤습니다.
이 우주타운에
늘 달고나 행성이 떠 있게 했습니다.
오징어별
손바닥 하이파이브별
우산별
토끼별
세모네모 별별별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우주타운에
어린왕자가 우주에서 온 겁니다.
어린왕자는 빙글빙글 도는
모빌 아래 누워
떠나온 별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런 어린왕자가 너무 슬퍼 보였습니다.
삐딱한 AI씨를 초대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벼슬을 달고 있는
사춘기 언니도 있습니다.
때론 슬프고 삐딱하고 까탈스러워도
모두 함께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주타운에는
바람도 불지 않는데
노란 별조각이
호도독호도독 떨어지고 있습니다.
떠나온 별을 그리워하는 어린왕자와
삐딱한 AI씨
사춘기 언니
그리고
달리고, 달리는
내 마음에도
별 조각이 하나씩 반짝반짝 빛났으면 좋겠습니다.
또
『여기는 우주타운』에 담긴 동시를 읽는
여러분 마음에도
별 조각 하나씩 빛나기를 바랍니다.
“이 작품집 속에서는 맑고 투명한 목소리가 샘물처럼 솟아나오고 있다.”고
격려해주신 문삼석 선생님께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림으로 동시에 날개를 달아주신 나다정 그림 작가님, 브로콜리숲
모두 고맙습니다.
2024년 여름
우주타운 꽃모종하는 마을에서 천선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