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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 데살로니가전서 4 장 )
성경을 배우는 것은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주님의 뜻에 맞는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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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
성도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을때는 색욕을 좇아 가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듣고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뜻은 그러한
이방인들과 같이 색욕을 좇을 것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성적인 거룩만이 아니라 우리도 이 세상의
탐심을 따라서 이 세상의 풍속을 좇아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모습들이 우리안에
있으므로 이러한 모습들을 함께 지적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단지 성적인
음란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주님앞에서 음란한 것이면 역시 간음인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세상의 없어질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부정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점검하여 보는 기준이 무었이겠습니까?
모든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는가? 보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가? 원치 않으신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읽고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나의 뜻을 관철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입니다.
1. 하나님의 뜻.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데살로니가전서 4 :1-2)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미 바울에게서 교훈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주신 교훈들은 오늘날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은 하나님의 권위로 주어진 말씀입니다.
바울은 이제 그들이 그 교훈대로 행하기를
더욱 많이 힘쓰라고 권면합니다.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으로 되지만, 인간편에서도 성실히 힘써야 합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더욱 많이
힘쓰라고 권면한 까닭은 그들이
주 예수께서 그를 통해 주신 명령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들의 교훈과
명령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로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데살로니가전서 4 :3-4)
성도들이 마땅히 행할 바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바를 더욱 많이
힘써야 할 이유는 하나님은 뜻이 그들의 거룩함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세상의 근본 문제이므로 죄로부터의 거룩함은
모든 문제의 해답입니다. ‘곧 음란을 버리고’라는 말씀은
거룩함이 무엇보다 음란, 곧 성적 부도덕을 버리는 것임을 보입니다.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안다’는 말씀은
음란에 떨어지지 않고 바른 부부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아내 외에 다른 여자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음란의 죄이기 때문
입니다. 성도는 부부의 관계를 거룩하고 존귀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
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
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4 :5-6)
성도의 거룩한 삶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과 대조됩니다. 이방인들은 색욕을 좇아 음행을
행하지만, 성도들은 부정당하고 과도한 욕망을 통제하고 죄악된
욕망을 버리고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를 취해야 합니다.
성도는 부부의 아름다운 관계를
거룩하고 존귀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분수를 넘어서’라는 말은 ‘탈선’과 ‘외도(外道)’를 가리킵니다.
‘형제를 해한다’는 말은
문맥상 성적인 탈선과 외도로 형제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가 이런 잘못에 떨어지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 모든 일에 대해 주께서 보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다윗이 자기의 충성된 신하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고의적으로
전쟁터에서 죽게 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간음죄와
살인죄 때문에 다윗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을 것을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징벌은 무서웠습니다. 다윗의 집에는
오빠가 이복 여동생을 강간하고, 동생이 이복 형을 살해
하는 일이 벌어졌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역하는 일이 일어났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데살로니가전서 4 :7-8)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거룩한
영이십니다. 그는 거룩한 영이시기 때문에 구원받은
성도들 속에 거룩한 생각과 거룩한 감정과 거룩한 의지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음란과 불결에 대해
보응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이
우리를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우리를 거룩케 하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향, 하나님의
부르심의 방향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죄로부터
거룩함으로이지, 죄와 부정(不淨)과 불결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과 부르심에 합당하게 거룩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성도의 삶.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과 뜻을 멸시하고 거부하고
저버린다면, 우리는 사람을 저버린 것이 아니요 우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린 것이므로 그 잘못은 매우 큽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데살로니가전서 4 :9-10)
형제 사랑의 대상은 제한이 없습니다. 우리는 몇몇 사람들만
사랑하면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택하신 모든 사람들,
즉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사신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온 마게도냐의 모든 형제들을 사랑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그들이 더욱 많이 사랑할 것을 권면합니다.
"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4 :11-12)
우리는 불필요한 말을
삼가며 조용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언 10 :19)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들은 지상에서도 바르게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결코 게으르거나 낭비하는 생활을 하지 말고,
또 버는 것보다 적게 쓰며 노후를 위해 지혜롭게 저축해야 합니다.
3. 슬퍼하지 말라.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4 : 13)
‘자는 자들’은
죽은 자들을 묘사한 것입니다. 잠자는
자가 잠에서 깨듯이 죽은 자도 마지막 날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고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영혼의 불멸과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기 때문에 죽음을 자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도의 죽음 이후의 삶과 마지막 부활의 진리는
모든 성도들이 알아야 할 진리이며 소망의 내용입니다.
‘소망 없는 다른 이’는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내세(來世)나 부활이나 영생에 대한
소망을 갖지 못하고 죽음을 인생의 끝으로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소망이 없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슬퍼할 뿐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소망을 가진 성도들은
믿는 가족이나 다른 성도들의 죽음 앞에서 너무 슬퍼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죽음은 한편으로는 이별하니까 슬프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계신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
부활 때까지 참된 안식을 누리는 기쁘고 복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 :14)
우리가 다른 성도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를 데리고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기본입니다.
사람은 입으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어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믿고
죽은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그로 말미암아 함께 데리고 오셔서 부활시키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
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 :15)
주님의 재림 전에 죽은 자들이
뒤에 남아 주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고
오히려 그들이 살아있는 사람들보다 먼저 부활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데살로니가전서 4 :16)
사도 바울은 성도들이
부활할 때를 말합니다. 그날에
예수님은 친히 호령을 하시고 천사장이 예수님을 호위하며 오십니다.
승리를 알리는 하나님의 나팔이
울리며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친히
강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강림하셔서 죽은 자들을 먼저 일으키십니다.
우리 산자들도 변화되어
구름 속으로 들림 받아 그곳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부활의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데살로니가전서 4 :17-18)
주의 재림 때 일어날 두 번째 일은
살아 있는 성도들의 변화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린도전서 15 :52)
재림의 주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영광의 주님과 함께
거하는 곳은 아무 부족이 없는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곳이 될 것입니다.
주님을 모신 곳이 곧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요한계시록21 :3-4)
주님의 재림과 영광스런 부활은 성도들에게
큰 소망과 위로입니다. 성도들은 이 진리와 소망으로
인하여 동료나 가족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않고 위로를 받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지지만, 우리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를 행하며 더욱 많이 힘쓰는 자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정과 부부관계의 존엄성을 지켜
거룩하게 유지하도록 성령님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의 삶가운데 부지런함을 더하게 하셔서
나태하고 게으른 자 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확신하고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여 자신을
통제하고 절제하며 거룩하게 살기를 소원하여
주님 다시 오실 때에 주님과 함께 안식하며 영광을
누리는 복된 삶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2024. 10. 23.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