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11월 (15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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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3
11월 초1일 (기사) [양력 12월 1일]
874
새벽에 망궐례를 행했다. 느지막이 나가 공무를 봤다. 사도첨사가 나갔다.
875
함평 ∙ 진도 ∙ 무장의 전선을 내어 보냈다.
876
김희번(金希番)이 서울에서 내려 와서 조정의 공문과 영의정의 편지를 바쳤다.
877
투항해 온 왜놈들에게 술을 먹였다.
878
오후에 방답첨사와 활 일 곱 순을 쏘았다.
879
11월 초2일 (경오) 맑다. [양력 12월 2일]
880
곤양군수 이수일(李守一)이 와서 봤다.
881
11월 초3일 (신미) 맑다. [양력 12월 3일]
882
황득중(黃得中)이 들어와서,
883
"왜선 두 척이 청등(거제시 사등면 청곡리)을 거쳐 흉도(거제시 동부면)에 이르렀다가 해북도(통영시 용남면)에 정박하여 불을 지르고 돌아가서는 춘원포(통영시 광도면 예승포) 등지에 이르렀다."
884
고 전하고서 그는 새벽에 지도로 돌아갔다.
885
11월 초4일 (임신) 맑다. [양력 12월 4일]
886
새벽에 이종호(李宗浩) ∙ 강기경(姜起敬) 등이 들어와서 봤다. 변존서(卞存緖)의 편지와 조카 봉 ∙ 해 형제가 본영에 이르렀다고 했다.
887
11월 초5일 (계유) 맑다. [양력 12월 5일]
888
남해현령 ∙ 금갑도만호 ∙ 남도포만호 ∙ 어란포만호 ∙ 회령포만호 및 정담수(鄭聃壽)가 와서 봤다.
889
방답첨사 ∙ 여도만호를 불러 와서 이야기했다.
890
11월 초6일 (갑술) 맑다. [양력 12월 6일]
891
송희립(宋希立)이 들어왔다. 띠풀 사백 동 ∙ 칡 일백 동을 베어서 실어 왔다.
892
11월 초7일 (을해) 맑다. [양력 12월 7일]
893
하동현감(최기준)이 교유서에 숙배했다.
894
경상우수사가 순찰사 있는 곳에서 왔다. 미조항첨사 ∙ 남해현령도 왔다.
895
11월 초8일 (병자) 맑다. [양력 12월 8일]
896
새벽에 조카 완(莞)과 종 경(京)이 본영으로 돌아갔다.
897
저녁나절에 김응겸(金應謙) ∙ 경상도순찰사의 군관 등이 왔다.
898
11월 초9일 (정축) 맑다. [양력 12월 9일]
899
여도만호 김인영(金仁英)이 들어왔다.
900
11월 초10일 (무인) 맑다. [양력 12월 10일]
901
새벽에 경상도순찰사의 군관이 돌아갔다.
902
11월 11일 (기묘) 맑다. [양력 12월 11일]
903
새벽에 선조임금의 탄신 축하례를 행했다.
904
본영 탐후선이 들어왔다. 주부 변존서(卞存緖) ∙ 이수원(李壽元) ∙ 이원룡(李元龍) 등이 왔는데, 그 편에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하니 기쁘고 다행이다.
905
저녁에 이의득(李義得)이 와서 봤다. 금갑도만호 ∙ 회령포만호가 나갔다.
906
11월 12일 (경진) 맑다. [양력 12월 12일]
907
발포가장(鉢浦假將)으로 이설(李渫)을 정하여 보냈다.
908
11월 13일 (신사) 맑다. [양력 12월 13일]
909
도양장에서 거둔 벼와 콩이 팔백스무 섬이었다.
910
11월 14일 (임오) 맑다. [양력 12월 14일]
911
11월 15일 (계미) 맑다. [양력 12월 15일]
912
아버지 제삿날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홀로 앉았으니 그리워서 마음을 달랠 길 없다.
913
11월 16일 (갑신) 맑다. [양력 12월 16일]
914
투항해온 여몬레니(汝文戀已) ∙ 야지로(也時老) 등이 와서,
915
"왜놈들이 도망가려 한다."
916
고 보고했다. 그래서 우우후를 시켜 잡아다가 그 주모자 준시(俊時) 등 두 명의 머리를 베었다. 경상수사 ∙ 우후 ∙ 웅천현감 ∙ 방답첨사 ∙ 남도포만호 ∙ 어린포만호 ∙ 녹도만호가 왔 는데, 녹도만호는 곧 내어 보냈다.
917
11월 17일 (을유) 맑다. [양력 12월 17일]
918
11월 18일 (병술) 맑다. [양력 12월 18일]
919
어응린(魚應麟)이 와서,
920
"소서행장이 그 무리를 거느리고 바다로 나갔는데 거처를 알 수 없다."
921
고 전했다. 그래서 경상수사에게 전령하여 이를 수륙으로 정탐케 했다.
922
저녁나절에 하응문(河應文)이 와서 군량 잇대는 일로 보고했다. 조금 있으니 경상수사 ∙ 웅천현 감 등이 와서 의논하고 갔다.
923
11월 19일 (정해) 맑다. [양력 12월 19일]
924
이른 아침에 도망갔던 왜놈이 제발로 와서 현신했다.
925
밤 열 시쯤에 조카 분(芬) ∙ 봉 ∙ 해와 아들 회가 들어왔다. 어머니께서 평안하시다고 하니 기쁘고 다행이다.
926
하응문(河應文)이 돌아갔다.
927
11월 20일 (무자) 맑다. [양력 12월 20일]
928
거제현령 ∙ 영등포만호가 와서 봤다.
929
11월 21일 (기축) 맑다. [양력 12월 21일]
930
된바람이 종일 불었다.
931
새벽에 송희립(宋希立)을 내 보내어 견내량에 있는 왜적선을 찾아내게 했다.
932
이 날 저녁에 반대좀(碧魚) 일만 삼천 이백 마흔 두름을 곡식과 바꾸려고 이종호(李宗浩)가 받아 갔다.
933
11월 22일 (경인) 맑다. [양력 12월 22일]
934
새벽에 동지 하례로 북향하여 임금께 숙배했다.
935
저녁나절에 웅천현감 ∙ 거제현령 ∙ 안골포만호 ∙ 옥포만호 ∙ 경상우후 등이 왔다.
936
변존서(卞存緖)와 조카 봉이 모두 갔다.
937
11월 23일 (신묘)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12월 23일]
938
이종호(李宗浩)가 하직하고 나갔다.
939
이 날 견내량 순찰하는 일로 경상수사를 정하여 보냈으나, 바람이 몹시 사나와 출항하지 못했다.
940
11월 24일 (임진) 맑다. [양력 12월 24일]
941
순라선이 나갔다가 밤 열 시쯤에 진으로 돌아왔다.
942
변익성(邊翼星)이 곡포권관이 되어 왔다.
943
11월 25일 (계사) 맑다. [양력 12월 25일]
944
식사를 한 뒤에 곡포권관의 공식 신고를 받았다.
945
저녁나절에 경상우후가 와서 투항해온 왜놈 여덟 명이 가덕도에서 왔다고 전했다.
946
웅천현감 ∙ 우우후 ∙ 남도포만호 ∙ 방답첨사 ∙ 당포만호가 와서 봤다.
947
조카 분(芬)과 이야기하다 보니, 밤 열 시쯤이 되었다.
948
11월 26일 (갑오) 아침에는 흐리다가 저녁나절에야 개었다. [양력 12월 26일]
949
식사를 한 뒤에 나가 공무를 봤다. 광양도훈도가 복병하러 나갔다가 도망간 자들을 잡아와서 처벌했다.
950
오정 때에 경상수사가 와서 투항한 왜놈 여덟 명 및 그 인솔자 김탁(金卓) 등 두 명이 왔다. 그래서 술을 먹이고 김탁(金卓) 등에게는 각각 무명 한 필 씩을 주어서 보냈다.
951
저녁에 류척(柳滌)과 림영(林英) 등이 왔다.
952
11월 27일 (을미) 맑다. [양력 12월 27일]
953
김응겸(金應謙)이 두 해 먹은 나무를 베어 올 일로 자귀장이(耳匠木手) 다섯 명을 데리고 갔다.
954
11월 28일 (병신) 맑다. [양력 12월 28일]
955
나라제삿날(睿宗의 祭祀)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956
류척(柳滌)과 림영(林英)이 돌아갔다.
957
조카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밤이 깊어졌다.
958
11월 29일 (정유) 맑다. [양력 12월 29일]
959
나라제삿날(仁宗 仁聖王后 朴氏의 祭祀)이라 공무를 보지 않았다.
960
11월 30일 (무술) 맑다. [양력 12월 30일]
961
남해의 투항해온 왜놈 야에몬(也汝文: 彌右衛文) ∙ 신지로(信是老: 信次郞) 등이 왔다.
962
경상수사가 와서 봤다.
963
체찰사의 전세(田稅)로 군량 서른 섬을 경상수사가 받아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