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끓인 커피잔을 쟁반에 놓았다. 매끈한 네모
가장자리에 반듯한 굽이 둘러진 쟁반은 찻잔 두 개를 놓기에 안성맞춤이다. 요즘 시대에 맞게 원목에다 옻칠만 몇 번 올린 게 맘에 든다. 짙지
않은 담갈색이라 거실에 있는 소파와도 잘 어울린다.
통영옻칠미술관 앞이다. 넓은 주차장에는 차가 한 대도
없고 찬바람만 휑하니 불고 있다. 흰 타일의 왼쪽 건물이 비스듬히 뻗어있고 가운데 전시실은 바깥손님이 궁금한지 복판 창이 빼꼼히 열려있다.
통유리로 된 본관이 그 옆에 있고, 오른쪽의 실습실도 개방중이다. 방문객이 많지 않아 허전한 듯 모두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외벽 가장자리를 따라 옻칠공예품과 예술작품들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칠예품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사라져가던 전통공예품을 한번쯤 보겠다고 왔는데, 깔끔하게 앉아 뿜어내는 옻의 광채에 눈이 번쩍
뜨인다. 흙으로 빚어낸 듯 정교한 작품들 중 색이 다른 한 쌍의 다리가 시선을 잡는다. 한쪽은 강렬한 원색으로 쫙쫙 뻗어나가며 남성의 힘을
드러내고, 다른 쪽은 붉고 동그란 무늬가 종아리로 퍼져 올라 매끄럽고 유연한 여자의 마음을 보여준다. ‘인연’이란 작품명처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때로는 의미 없는 말들이 끓어 넘쳐서 정신이 혼미한 이 시대에, 침묵의 작품들을 마주하니 마음이 경건해진다. 여운이 흐르는 공예품을
보며 작가의 마음을 헤아려본다.
다음 전시실에는 옻칠회화작품들이 가득했다. 작품의
크기에 놀라고 그것이 풍겨내는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하나하나 감상하며 천천히 돌다가 작은 조개가 수많은 별로 박힌 ‘밤하늘’을 만났다. 걸음이
저절로 멈췄다. 까마득히 먼 어린 시절의 여름밤이 떠올랐다. 칠흙같이 어두운 날 냇가 큰 아카시아나무 아래서 멱을 감은 후, 요리조리 뻗어 박힌
나무뿌리를 더듬어 딛고 제방에 올라섰다.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갔다. 넙적한 바위에 걸터앉아 고개를 들자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잠자고 있던 감성의 물결이 살아나며 어릴 적 고모와의
밤 외출이 생각난다. 건너 마을에서 몇몇 친구와 만난 고모는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에 속에 빠졌다. 이슥해서야 돌아오는 깜깜한 길은
무섭고 아득했다. 무지개다리를 건너오는데 아래에서 찰찰거리는 물소리가 났다. 예부터 밤늦은 거랑에는 찰찰이 귀신이 목욕한다는 소리를 들었던 게
생각났다. 나는 겁이 나서 자리에 맥없이 주저앉아버렸다. 고모가 하늘을 가리키며, 찰찰이가 우리를 해치지 못하게 저 별이 지켜준다고 했다. 그날
은하수 위에 놓인 궁수자리는 더 총총히 빛났다. 나는 고모의 팔을 꼭 잡고 집으로 올 수 있었다.
그 별이 지금 내 앞으로 내려왔다. 수많은 색으로
반짝이며 몸을 에워싸 하늘로 떠오르는 듯 황홀하다. 은하수를 밝게 드러내는 궁수자리 찾으려고 동공을 키우자 여남은 개의 별이 다가온다. 그중
똑똑하고 착하다는 신화속의 케이론을 잡아보려고 팔을 뻗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헤어짐이 아쉬워 오래도록 서서 옻별을 하나하나 눈 속에 담았다.
반대편에는 공예품과 생활용기들이 여기저기 둘러앉아
방문객을 반긴다. 일상에서 쓰이는 식기와 수저, 찬기, 술잔들을 보니 옛 친구를 만난 듯 기쁘다. 문득 한켠에 우두커니 선 네모 쟁반 하나가 내
눈길을 붙든다. 가운데로 흐르는 나뭇결을 들여다보니 마치 은하수마냥 길을 내고 있다. 그때 여기저기서 별들이 튀어 올라 반짝인다. 옻별 은하수가
이곳에 내려앉았다. 가장자리에 굽이 있어 별이 밖으로 쏟아지지 않겠다. 차 쟁반으로 쓰면 좋겠다 싶어 얼른 구입하였다.
옻칠은 기원전 2세기부터 전해져오던 전통문화 예술이다.
옻나무의 수액을 채취해 칠을 하고 말리기를 반복하여 뛰어난 광채와 장식성이 잘 보존된다. 합천해인사의 팔만대장경 판이 천년을 이어오고 있는 것도
옻칠 덕분이다. 조선시대에는 누구나 한번쯤 갖고 싶어 했던 나전칠기였지만 광복이후 찾는 사람이 줄어들어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천년의 전통이
단절되고 몇몇 작가에 의해 명맥이 유지되었다.
안타깝게 여겨 옻칠을 살리는데 앞장선 분이 이곳 관장인
김성수 선생이다. 학창시절 전통 칠기 법을 배운 그는 꾸준히 작품을 만들고 기량을 연마했다. 끊임없는 연구로 옻칠예술을 발전시켜 국제시장으로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옻칠화순회전을 열어 그것의 진가를 세계에 알리고 옻칠회화의 창시자가 된 것이다.
여든이 넘은 고령의 스승이 전시실 옆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작업실은 옻칠의 전통복원을 위한 스승과 제자의 열기로 달아오른다. 그에 못지않게 완성되어가는 옻칠작품들도 천연광채를 더 빛내고
있다.
사람은 태어나 걸음마를 배우면서 모든 가능성을 갖춘다.
자라면서 나름의 꿈이 생기고 노력해서 자신감을 갖는다. 실패에 부딪혀도 열심히 하다보면 세찬 바람에서까지 힘을 얻는다. 누군가가 관심을 가지고
그 가치를 알아주게 되며, 그럴 때 자신의 능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나의 하루를 반기는 빈객이 생겼다. 차 쟁반의
옻별이다. 커피, 녹차, 쌍화차뿐만 아니라 다기, 유리, 나무잔과도 고르게 어울리며, 소박한 다과와도 조화를 이룬다. 무엇보다 어릴 때부터 나를
지켜주던 궁수자리별이 함께한다. 그것은 화려한 듯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고 검소하지만 당당하게 반짝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