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의 비유, 차유(差喩) - ① 차유(差喩, transphor)/ 동아대 명예교수 신진
① 차유(差喩, transphor)
전통의 비유―은유, 환유 등은 언어 표현이 갖는 선동력을 이용하여 화자와 청자 간의 소통 내용을 일치시키기 위한 기능을 한다. 언술의 주지와 매재 사이, 상호간의 기표와 기의 사이의 동일성, 유사성, 인접성에 초점을 맞추는 수사(修辭)이다. 질서와 균형을 우선시하는 사회적 윤리, 중앙 중심의 원본우선주의적 사고가 낳은 동일성 지향의 언어이다. 시에 있어 시적 주체가 자기 밖의 세계를 자아의 세계로 동일화 한다는 인식, 조동일의 ‘세계의 자아화’라는 논리의 저변 역시 이런 동일성의 원리에 입각해 있다. 어떤 서정시이건 동일화 지향성이 어느 정도 개입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척적인 입장, 들뢰즈(Gilles Deleuze)에 의하면 우리가 창의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예술작품이란 것도 모두가 시뮬라크르(simulacr)―원본을 알 수 없는 복제물이긴 하지만, 그러나 플라톤의 원본 우선주의적 복사논리와는 다르게, 원본, 이데아, 중심 따위는 알 수도 없거니와 이미 알 필요도 없어진, 원본 탈피적 복제물이다. 따라서 근대 예술은 부지불식간에 원본을 재현하면서도 원본을 탈피하는 차이성을 향하게 된다. 동일성지향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라고 할 수는 없어도, 부단하게 차이 나는 새로운 원본을 생산함으로써, 원본을 파악하기 어렵거나 불가능하게 되고, 나중에는 그렇게 할 필요조차 없게 되는 것이다.
특히 시 쓰기 행위는 개별성의 표현이요 시시각각 제각각 새로운 세계의 탐색―세계에 대한 차이 나는 마음을 표현하는 행위이므로 원본 자체 분간할 수 없는 것이 대개의 경우이다. 그것은 살아 있는 창작적 시뮬라크르라 할 수 있다.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외부 세계와 자아 사이의 다양하고 변화무상한 긴장상태를 탐색하고 체험하는 것은 시적 차이성을 낳는 시발점이다. 동일화의 언어 외에 ‘차이화’의 언어―모순, 불합리, 비상식, 왜곡, 과장, 공상 등등의 전략들이 이를 표현하는 데 동원된다. 이 역시 비유의 의미론적 구조―이미 언중들이 알고 기성의 언어를 이용하긴 하지만, 기성의 언어들을 새로운 위치에 놓음으로써 보다 차이 나는 의미를 구현하고자 하는 구조를 갖는다.
이런 성향의 언어를 지칭하고자 필자는 2003년의 한 논문(신진, 「시적 기능의 세 번째 축, 차유론」 『한국문학총론』 제34집)에서 차유(差喩, transphor)라고 부를 것을 제안한 바 있다. 시어란 시적 대상을 차이 없이 인식하기 위한 동일화로 표현하기보다, 주체의 생명, 개방성, 창의의 구현, 미적 탐색과 도전이라는 차이의 측면을 소중하게 여기는 언어라는 점을 강조한 용어이다. 현대시 쓰기와 읽기의 논리중심을 재고(再考)해보자는 의도이기도 했다.
주지와 매재 간의 유사성을 기반으로 하는 은유, 인접성에 의한 환유(재유포함) 등 동일성 위주의 비유와 함께 텍스트 내외의 상황과 언어의 연계를 전제로 하는 차이성 위주의 비유―언어유희, 무의미, 환상, 자동기술, 유목성, 차연, 아이러니, 풍자, 몽타주, 역설, 과장, 낮춘진술, 미언법, 차유는 최소한 은유, 또는 환유, 재유 등 동일성 위주의 비유의 상대 축으로서 비유적 언어생성의 양대 축을 이룬다 할 수 있다.
모든 은유, 환유의 언어가 동일성만 지향하는 비유라는 말은 아니라는 점도 분명하고, 상대적으로 차이성이 강한 은유, 환유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차이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은유, 환유 등도 차유와 구분할 수 없는 지경이 이르기도 한다. 가령 “꽃은 책이다”라는 비유는 은유적으로 쓰인 언어이지만 ‘꽃은 책이 아니’라는 전제 자체의 심각한 차이성에서 차유의 레벨에 깊이 발을 담고 있는 비유인 것이다.
시인의 태도 면에서 보자면, 동일성의 표현에 만족하는 한, 시인은 원본의 단순한 재현자, 또는 세계의 복사자(複寫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그의 지성과 감성이 온갖 편의에 오염된 현재에서 끝나지 않고, 순정한 본질, 삶의 진실을 향한 이행을 시도할 때 시인은 원본 복사와 재현을 뛰어넘어 차유의 축에 가까이 가게 된다 할 수 있다.
차유는 기존의 시학과 문학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방안의 중심이기도 하다. 가르치는 이나 배우는 이나 비유적 표현이라고 하면, 은유, 의인, 직유, 환유, 제유 등 사물을 그대로 동일화하고 공유하는 데 치중하지, 정작 창의와 그 표현, 본질의 미적 구현이라는 원래적 양식적 의의는 돌아보지도 않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다. 차이 나는 표현이 이루는 이 영역은 의외로 외면당하고, 미답의 특수 상태의 예로 취급되고 있는 것이 교육 현장의 현실인 것이다.
차이성 제고의 과정에도 문제가 없지 않다. 차이성이 존중받다 보면 난삽한 언어유희와 수사적(修辭的) 모작(模作)이 융숭하게 대접받게 되고, 이렇게 되다 보면 비창의적 모방, 차이를 위한 차이를 맹목적으로 받드는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차유는 어디까지나 창의적 인식을 전제로 하는 사회적 표현 즉, 독창성과 보편성이라는 양 측면을 함께 존중하는 개념이다. 차이만이 시적 언어의 전모라고 주장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일성에 이르는, 언어적 소통력 또한 존중한다. 동일성과 차이성―동아시아적 논리로 말하자면 무릇 존재의 생성은 음과 양, 이(理)와 기(氣) 둘이 분할적 합일이 아니라 융합과 탈피의 변화무쌍한 생성적 통합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동일성과 차이성, 이는 시적언어, 비유의 언어란 음양의 조화나 이기의 통일성과도 같이 다름의 한결같음에 그 본질이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꽃이 피면 떠날 수 있겠지. 그대 집 처마 아래서 한 구절 경전을 읽고 그리고 꽃이 피는 만발의 세상,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꽃피는 세상은 놀라워라 어린 새들이 하늘을 날아 구름 속으로 가는 일, 나는 숙연해진 경전 한 구절을 더 읽네 성급하게 핀 꽃들이 조금은 어색해도 세상에는 그렇게 꽃들이 핀다네
―조의홍, 「서투른 기록·93」 전문
이 짧은 산문을 연작시 중의 한 편으로 승화시키는 힘도 상당 부분 차유에 있다.
봄의 생명력을 경전으로 받아들이는 핵심 모티프 자체가 그렇거니와, 서두 ‘꽃이 피면 떠날 수 있겠지―’는 처음부터 불합리한 표현이다. 기왕 떠날 입장이라면 꽃이 피지 않는다고 떠나지 못할 리 없다. 남다른 인식과 언어가 시성(詩性)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말미에서는 ‘조금은 어색해도 세상에는 그렇게 꽃들이 핀다네.’ 하며 꽃들이 핀다는 사실만 적시한다. 새로 피는 꽃들이 성급하고 어색해 보일지라도 떠날 때가 된 존재는 기꺼이 떠나야 한다.
꽃들이 피고 지는 일, 어린 새들이 하늘 높이 날아다니는 일은 이승의 기쁨이자 또 슬픔이다. 그들을 만나 잠시 머뭇거리다 사랑하는 이승을 떠나게 된다는, 노년적 상상력을 만날 수 있다. 꽃, 경전, 어린 새, 구름 등 은유적인 축과 함께 경전을 읽은 후에는 떠나게 되는 자연의 순리를 모순의 차유로 보고 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꽃
―고은, 「그 꽃」 전문
고은 시집 『순간의 꽃』의 다른 시들이 그렇듯 제목 없이 실린 시지만, 이 시 속의 끝행을 제목으로 하여 편의상 「그 꽃」이라 부르는 시이다.
독자들의 호응을 받은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길이가 짧아서 외우기 쉬워서라거나, 명성 있는 시인의 작품인 까닭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올라갈 때 못 본 꽃을 내려갈 때 보’다니, 말이 안 될 것 같은 표현(매재) 내면의 상황적 맥락(주지)이 씹을수록 맛을 내는 자질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성취를 위한 욕심에 오를 때에는 아름다움이며 향기며 나눔이며 하는 세상의 진면목을 알 수 없다. 아래쪽으로 내려갈 때의 여유를 가지고서야 만날 수 있다. 우리네 삶의 아이러니다. 욕망은 우리의 눈을 가리고 겸허와 연민이야말로 향기로운 삶의 눈을 뜨게 하는 묘오지경(妙悟之境)의 시라 할 만하다.
차유의 표현적 불합리성은 상황적 맥락이나 내적 문맥에 의해 이해된다. 비유적 원리를 갖되, 내부적, 상황적 맥락에 의해서 주지가 형성되는 것이다.
조나단 컬러(Jonathan Culler)도 시는 내면의 반영이나 화려한 언어 솜씨이기 전에 특정 사건(event)의 표현이라고 했다. 시인이 특정 상황을 설정하고 그에 적합한 언어를 찾아 배치하는 특별한 언어가 시라는 것이다. 문학 텍스트의 특수성을 차이 속에서 찾고, 가변적 구조의 지평을 강조할 뿐 아니라, 시 쓰기와 읽기에 있어 특정의 사건이나 상황이 가장 먼저 생성되고 파악되어야 하는 선결조건으로 본 예이다.
전통적 문채 용어상 광의의 아이러니도 이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지만 차유를 아이러니라 칭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수사적 장치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언어, 심지어 은유, 환유 속에도 깊숙이 개입되어 작용하는 언어 원리의 한 축이 되기도 하고, 전통적인 아이러니나 역설의 범주를 넘어, 상식 파괴의 언어, 비현실적 환상, 언어유희와 문법 파괴, 장르패러디 등등 독특한 정황을 반영하는 원리이기도 한 까닭이다. < ‘차이 나는 시 쓰기, 차유의 시론(신진, 시문학사,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