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빅토리아3라는 기쁜 소식덕분에 새로운 주제를 정하다가 일단 쓰던걸 마무리해야된다는 기억이 떠올라서 급하게 작성했습니다.
읽기전에 읽어보세요!
1편. 왜 하트오브스틸이 아니라 하트오브아이언일까?
https://cafe.daum.net/Europa/LPSd/6863
2편. 왜 역설사는 인도를 그렇게 좋아할까? feat. 다마스커스및 일본도 (장문주의)
https://cafe.daum.net/Europa/LPSd/6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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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400년, 유럽에서는 1000~1200도의 온도로 철을 반쯤녹여 단조를 통하여 철을 제련하는 공정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방법으로 생산된 철은 탄소가 적게 들어있었으며, 여기에 불순물을 제거하고 강철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장인이 철을 수없이 두들겨야했습니다. 이 공정은 단철법이라 부르며 비생산적이었으며, 생산된 철의 탄소의 함유량도 낮았습니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는 1500도라는, 진정한 철기문명의 태동을 알리며 용광로에서 쇳물을 뿜어내며 최초의 주철을 생산해냅니다. 이 주철은 약 4%대의 탄소를 가져 잘 깨진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생산력이 타 공정에 비해 월등했기때문에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갑니다. 이 공정은 용광로제철법이라 하며, 생산력이 우수했지만, 고도의 기술력을 필요로 했고, 생산된 철의 탄소의 함유량이 높았습니다.
그리고 인도인들은 이 두 개의 기술을 융합하여 이 제철법을 개발해냅니다. 이 기술은 시대를 2000년정도 앞서간 슈퍼 기술입니다. 우츠강 제조의 핵심이었습니다.
도가니 제철법
본론으로 돌아와서, 생산력이 우수하면서도 철에 탄소가 적게 들어간 강철을 생산할려면 어떻게 해야될까요? 인도인들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단철법과 용광로제철법을 결합하기로 합니다. 철에 탄소가 들어가지 않게 1000도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단철을 만듭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철을 용광로에 넣어 1500도까지 가열하여 철을 용융시킵니다. 단, 1500도의 온도를 유지하면서, 철과 탄소가 접촉하면 안됩니다.
말은 간단하지만, 여기서 두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1. 1500도까지 올릴수있는 기술력이 있다면 처음부터 1500도까지 올려서 바로 철광석에서 철을 추출하면 되는것 아닌가?
2. 1500도의 온도에서, 철과 탄소를 어떻게 접촉시키지 않을것인가?
1의 의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2에 대한 해결책을 알아야합니다. 2에 대한 해결책은 역시나 인도의 지리적 특성덕분에 발생할수 있었던 방법입니다. 유럽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는 방법이죠. 그건 바로 도자기입니다
인도인들은 도자기에 철을 넣음으로서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백자의 경우 제작과정 자체가 1400도에서 이루어지며, 세라믹이라는 현대에서도 최첨단에 속하는 재질로서 내열성이 매우 좋은 재질입니다. 그렇기때문에 제철과정에서 발생하는 초고온의 환경을 충분히 견딜수있을뿐더러 중탕과 비슷하게 도자기가 그릇의 역할을 해주면서 탄소와의 접촉을 차단시켜주었습니다. 심지어 인도에는 이로인하여 발생한 부족한 양의 탄소는 인위적으로 집어넣는 기술까지 존재했습니다. 2에 대한 해답은 도자기에 있습니다. 도자기 안에서는 불순물의 분리가 제대로 이뤄질수없고, 부피가 작아야 하기때문에 철광석에서 불순물을 최대한 제거한 단철의 형태로 도자기에 집어넣어야했던겁니다.
그렇게 인도인들은 도자기를 이용하여 인류 공학의 역사적인 기념비를 하나 세웁니다. 세계 최초의 강철의 대량 제조법을 터득한것이죠.
하지만 우리의 인도인들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도자기를 사용한 덕분에 단철에서 제거하지 못한 '불순물'들이 배출되지 못하고 철에 그대로 스며듭니다. 인도의 우츠지방에서 나오는 철광석에 함유된 크롬, 바나듐, 니켈, 망간등 현대의 합금강의 기본원소들이 그대로 철에 스며들게됩니다. 만일 용광로제철법으로 만들었다면 불순물으로 제거됬을것들입니다.
인도인들은 도자기를 이용하여 인류 공학의 역사적인 기념비를 또다시 세웁니다. 세계 최초의 합금강 제련기술을 터득한것이죠.
정리해봅시다! 인도인들이 도자기안에 단철을 넣음으로서 아래의 두 가지를 수행해냅니다.
1. 강철의 대량생산
2. 합금강의 대량생산
결론: 밸런스 ㅄ겜수준
결과물만 놓고 보자면 인도인들은 기술을 2000년정도 건너뛰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기술의 발전이 선형적이지 않다는 좋은 사례...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지리학적 위치, 자원적 특성, 기술적 특성등 온갖 우연과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산물이기때문입니다.
어느분이 전에 글에서 다마스커스강이랑 초기 산업시대의 강철이랑 공존하면 어떤 세상이였을까에 대해 물어보셨는데, 지금 답변하자면 다마스커스강이 압도적으로 우세입니다. 산업시대의 강철은 합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럽인들은 중동에 군사를 보내며 이 우월한 다마스커스강에 기겁하며 이를 모방하고자 노력합니다. 그 결과 탄생한게 패턴 웰디드 다마스커스강(Pattern-welded damascus steel)입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강철은 일반적인 철과 다르지 않았으며, 합금도 아니고, 제조법또한 다마스커강과 달리 단조를 통한 접쇠였습니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은 이 도자기를 이용한 제철법은 몰랐을까요? 유럽인들도 우수한 과학문명이 존재했기때문에 약 18세기 초반에 이와 유사한 도가니제강법이라는것을 발명해냅니다. 참고로 우츠강의 생산시기는 기원전 3세기로 추정합니다.
결과적으로 현대에 이르러서 진정한 다마스커스강의 생산은 이뤄지지않습니다. 약 16세기경에 합금강의 원소가 들어있는 광물들이 고갈되었기때문입니다. 다마스커스강과 비슷한 강철은 20세기, 세계대전을 거치며 전기로기술이 확립되고 제강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며 합금강 기술이 탄생하며 생산됩니다. 그 전의 기술로는 우츠지역의 광석이 없는 이상 만들수도, 흉내낼수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패러독스사가 왜 인도를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았습니다. 사실 인도는 기원전 3세기에 18세기 수준의 문명을 자랑하는 슈퍼-하이 테크놀로지 문명이였던겁니다. (농담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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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편 예고
빅토리아3 특집! 일본은 어째서 한반도를 이익선으로 규정하고, 한반도를 그렇게 탐냈던것일까? 를 철과 연관지어 알아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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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일본의 철은 사철이어서 좋은 철이 아니었죠. 온갖불순물이 같이 붙어서있어서요.
재료가 좋지 못해서, 제조기술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고 들었습니다. 결과물이 좋은편이지만, 최고등급까지는 아니였다고 하더군요. 맞나요?
@Ricotta 근성으로 재료의 질이 안좋은데도 불구하고 쓸만한 수준까지 올렸으니 옳은 말을 하셨습니다
결과물은 재료의 질과 비교하면 좋은편이었지만 일본도의 경우 잘 만들어진경우
안에는 연철을 넣고 밖에는 강철로 둘러싼 경우여서 한계점이 분명히 있었죠.
현대 이전의 도검인 전근대의 도검은 다 가진 한계점이었지만요.
@Ricotta 다음편에 다룰 내용이기도합니다. 자원 개운빨갓겜을 즐긴 인도가 있다면 자원개좆망겜을 즐긴 일본이라는 나라도 있거든요
스포오반데.. 글쓴이 울어요
엌ㅋㅋㅋㅋㅋㅋㅋㅋ
본래 문명은 스타팅 포인트 망겜이라
???:단군님?왜 저기 황하에 자리안잡고 요동에 자리를 잡으셨죠?
단군:거기는 이미 문명이 있었다고!
단군은 스타팅포인트를 잘못잡았다고 읍읍
@노스아스터 만주도 엄청나게 비옥한땅.. 스타팅은 잘잡았지만 못지킨 후손탓
@케르온 상고 시대 적 만주에 농사가 가능했나요? 화학비료 시대가 와서야 만주에 대규모 농사가 가능했다고 어딘가에서 줏어들어서용
@khs200456 농업의 경우는 겨울이 길기 때문에 논 농사는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의지의 조선인들은 이주해서 논농사를 짓고야 만다. 하지만 남북 길이 약 1000km, 동서 너비 약 400km에 달하는 중국 최대의 평야 지대이자 전 세계에서도 비옥하기로 손꼽히는 둥베이 평원이 위치하고 있어서 옥수수, 콩, 조, 밀, 사탕무, 등을 재배하는 대규모의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고대에 부여가 몹시 추운곳에 위치함에도 당시로써는 상당한 국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고구려와 발해때도 둥베이 평원에서 농사를 지어서 국력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정도. 대두의 원산지 중 한 곳이라고 추정되기도 한다 1910년대에 유럽이 전화를 겪으면서 이 지역에서 재배된 대두와 곡물이 엄청나게 팔려나갔고, 중개무역를 한 일본 상인들도 돈을 많이 벌었다. 당시 만주로 건너간 조선인들 또한 이런 식으로 돈을 번 이들이 꽤 있다.
출처는 나무위키
만주는 상상이상으로 비옥한땅입니다. 지하자원, 비옥한 땅, 드넓은 평야 등등..
일본이 만주를 충분히 개발할수있었다면 미국의 턱 밑까지 쫒아갈수있었다고 합니다.
@페니실린 언급하신 사례는 농업기술이 상당히 발전한 19세기~20세기초의 시점이기 때문에 만주라는 환경에서 농사가 가능했던 겁니다. 발해 이전 시대에 만주는 순수하게 농업에 기반한 국가가 형성되기 힘들었습니다. 고구려가 요동지방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요동에서는 반농반목이 한계였고, 대동강까지 내려와서야 확고한 농업기반 국가를 이룰 수 있었죠. 장수왕이 괜히 평양으로 천도한 게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