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종식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던 이념의 망령들이 유독 한반도 남쪽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권위주의적 압제 아래 국가의 일방적인 통제가 정당화되는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 인류 지성사의 고전적인 갈림길 앞에 다시 서 있다. 바로 "홉스냐, 로크냐"의 문제다.
이는 단순히 과거의 정치 철학을 묻는 질문이 아니라, 체제의 노예로 순응할 것인가, 사유하는
자유인으로 저항할 것인가를 결정짓는 실존적 선택이다.
<홉스의 공포와 리바이어던의 함정>
토마스 홉스는 인간을 오직 자기 이익만을 쫓는 본능적 존재로 상정했다. 그에게 자연 상태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이었으며, 인간은 서로에게 늑대와 다름없었다.
이러한 상호 불신과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홉스는 '리바이어던'이라 불리는 절대 권력에게
개인의 모든 권리를 양도할 것을 촉구했다.
오늘날 홉스적 공포를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는 권위주의 세력들 역시 '사회혼란을 바로잡고 국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시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개인을 국가라는 거대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킨다.
'법치와 민주질서를 수호한다'는 그들의 선전은, 실상 입법과 사법권을 넘어 언론까지 장악한 소수
권력층의 지배 논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자유를 억압하고 인간을 부품화한 체제의 끝은 필연적인 파멸일 뿐이다
<로크의 이성과 저항권>
반면 존 로크는 인간을 이성적인 존재로 보았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자연권, 즉 생명과 자유와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로크에게 국가는 이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로 세워진 계약의 산물일 뿐이다.
로크 사상의 핵심은 '저항권'에 있다.
정부가 시민의 자연권을 보호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침해할 경우, 그 정부는 정당성을 상실한
'반란 집단'에 불과하다.
이때 시민의 저항은 사회를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라, 망가진 계약을 정상화하려는 정당방위다.
로크는 이를 통해 권력이 위정자의 전유물이 아닌, 언제든 주권자에게 반환될 수 있는 가변적인
것으로 보았다.
<시민 불복종과 표현의 자유>
로크의 저항권은 현대에 이르러 '시민 불복종'과 '표현의 자유'라는 세련된 형태로 진화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실천했던 시민 불복종은 부당한 권력에 대해 비폭력적 '양심적 거부'로 맞서는
현대판 저항권이다.
국가가 안전을 빌미로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거나 기본권을 제약할 때, 깨어있는 시민들이
행동하는 것은 로크가 부여한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것과 같다.
특히 표현의 자유는 권력의 폭주를 미연에 방지하는 '상시적 저항'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기록하며 전파하는 자유는 권력의 오남용을 감시하는 가장 날카로운 창이다.
오늘날의 권위주의 체제들이 인터넷과 언론을 통제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된
사회에서 시민의 저항권은 결국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지털 시대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리바이어던의 귀환을 막는 가장 민주적인 저항의
실천이다.
<왜 로크인가?>
자유민주주의와 공산 전체주의가 대립하는 한반도에서 로크의 길은 더욱 자명하다.
홉스의 논리를 극단화한 북한은 인민을 예속시켰으나 참혹한 빈곤을 낳았고, 로크의 가치를 지향한
대한민국은 자유를 바탕으로 번영을 일구었다.
최근 AI와 빅데이터가 국가의 전방위적 감시 도구로 변질될 위험 속에서 우리는 다시 로크를 불러
내야 한다. 알고리즘에 의한 정교한 통제는 '디지털 리바이어던'의 출현을 예고한다.
이러한 때일수록 권력은 시민의 자발적 동의에서만 나오며, 개인의 고유한 존엄성이 국가의
효율성보다 앞선다는 로크의 선언은 더욱 절실해진다.
<질문하는 시민이 자유를 지킨다>
결국 로크의 정신은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홉스가
두려움 때문에 복종하라 했다면, 로크는 그 두려움을 이성적 의심으로 바꿔 권력을 감시하라고 한다.
질서라는 미명 하에 자유를 억압하는 길은 붕괴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할 뿐이다. 우리는 단호히
로크의 길을 선택해야 한다.
부당한 권력에 침묵하지 않는 용기, 대중 선동에 휩쓸리지 않는 비판적 사유,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도록 감시하는 눈길이 바로 현대판 저항권의 실현이다.
노예의 안락함보다 자유인으로서 겪는 고난이 인류를 더욱 위대하게 만든다.
<오늘의 팝송> Graveyard Angel / Louise Tucker
Louise Tucker는 오페라를 전공했지만 대중가수로 전향했다. 베토벤의 비창을 팝으로 부른 'Midnight Blue'가 히트해 이름을
알렸다. 토마소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를 사용해서 만든 Graveyard Angel(묘지의 천사)도 같은 앨범에 수록됐는데 크게
히트하지는 않았다. 외로움과 상실속에서 위로와 구원을 찾아 헤메는 마음을 노래했다. 장중하고 가라앉는 분위기의 곡이다.
알비노니는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로 후대에 바흐에 영향을 준 이탈리아의 작곡가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선율이 슬프고도
상당히 서정적이어서 팝이나 록 음악에서 많이 사용되었다. https://youtu.be/NFyhOWIZVXo
삭제된 댓글 입니다.
로크의 사상이 우리나라 헌법에 그대로
녹아 들어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헌법정신이
훼손되고 있어 걱정입니다. 감사합니다. 비우미님.
"홉스는 개인을 국가라는 거대 기계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킨다."
공산주의 이론이 강합니다.
"로크의 저항권은 현대에 이르러 '시민 불복종'과 '표현의 자유'라는 세련된 형태로 진화했다."
"자유인으로서 겪는 고난이 인류를 더욱 위대하게 만든다."
대접받으며고민을 해야 큽니다.
그것도 자유롭게...
어떤 명문으로도 개인의 카톡내용을 들여다본다든지
이런 저런 내용을 얘기하면 않된다고 표현의 자유를
제한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단호히 저항해야합니다.
감사합니다. 시니방장님.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골자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모든 사람을 자유롭게하는
현대판 저항권입니다.
감사합니다. 심심타파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