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일국 훈독경 제9권 24일
신(神)과 우리
날짜 : 1982. 2. 1(월)
장소 : 미국 벨베디아수련소
인간은 신(神)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를 역사적으로 수없이 논의해 왔습니다. 그것이 지금까지 논란의 중심이 돼 있지만 해결되지 못한 채 쭉 인류의 역사 가운데 남겨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신을 중심삼고 논의하는 중심기구가 종교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고 있습니다. 신이 있고 그 신이 인격적인 신이라는 결론을 짓는다면, 그 신은 인격적인 구상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내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그러면 그 신이 갖고 있는 구상이나 이상은 어떤 것이겠느냐? 이것이 지금까지 인류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져 있습니다. 그 신과 나, 신과 우리가 어떻게 접근하느냐 하는 문제는 역사적인 과제요, 인류의 금후의 숙명적인 과제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신은 그렇게 두고, 이제 나라는 존재를 생각해 보자구요! 철학적인 문제에 들어가 가지고 내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기껏해야,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을 뿐입니다. 그렇게 생각을 존재의 기원으로 설정하고 들어갔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각은 어디에서 나오느냐? 정신을 통해서 나옵니다. 생각의 근거지가 어디냐? 어떤 사람은 머리에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가슴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내가 가슴에 있는 거예요, 머리에 있는 거예요? 그것만도 아닙니다. 이렇게 보면 내가 존재하고 있는데, 이렇게 존재하는 것은 결과적인 것이니까 내가 어떻게 해서 생겨났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기원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게 문제입니다.
내가 어디서부터 시작됐느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인간이 동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방편적인 이론입니다. 논리적인 연결을 짓기 위해서 방편적으로 갖다 붙인 말이지 진짜 진화했느냐 하는 것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신적인 밑바탕이 아메바에서부터 시작되었느냐? 우리의 정신적인 조상이 아메바냐 이거예요. 진화론에서는 아메바에서부터 출발해 가지고 전부 다 발전했다고 합니다.
아메바가 정신의 근거지였어요? 어떻게 조그만 아메바의 정신이 확장될 수 있었을 것이냐? 아메바는 유기체인데, 그것에 인간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개재되어 있느냐? 그것이 어떻게 확장되었느냐? 이게 다 문제입니다. 정신적인 기원이 아메바에 있었겠어요, 없었겠어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신, 인간의 정신이라는 것이 진화과정에 있어서 어느 때 투입됐느냐 이거예요. 어느 때 개재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정신적인 구상력을 갖고 있는 인간이고, 방대하고도 굉장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현세에 알고 있습니다. 작은 아메바에 정신적인 기원이 있었으면, 거기서부터 진화과정에서 정신적인 것이 플러스되고 플러스되어서 확대되고 확대되었다는 논리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진화하는 데 있어서 진화하는 그 자체가 진화될 수 있는 보다 큰 힘을 발생시킬 수 있는 주도력을 갖느냐? 그건 있을 수 없습니다. 진화되어야 할 그것이 진화할 수 있는 힘의 모체를 발생시킬 수 있느냐? 그렇게 창조해 내서 플러스시킬 수 있느냐고 할 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볼 때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제3자권에서부터 투입하는 길밖에 없다는 논리가 벌어집니다. 그걸 누가 공급하느냐? “그건 모르지만 덮어놓고 진화다” 하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진화하고 단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발전할 수 있게 하는 정신적이고 동기적인 힘의 모체가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고는 진화된 결과물이 나올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메바에 생각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아메바 자체들이 모인 것에서 정신적인 기원이 발생할 수 있었겠느냐?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메바가 아무리 단순하더라도 내적인 구조와 외적인 구조의 형태가 있겠어요, 없겠어요?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적인 구조와 외적인 구조가 같이 운동하느냐, 따로따로 운동해 가지고 어느 하나는 부체로 작용하는 외곽적인 형태를 갖느냐? 이런 여러 가지의 문제가 복잡합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중심이겠어요? 내적인 구조가 중심입니다. 여기에서 철학적으로 유물론 사상이니, 유심론 사상이니 하면서 갈라진 것입니다. 역사에 큰 문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117-68)
내적인 것이 먼저
철학적으로 볼 때 의식이 먼저냐, 존재가 먼저냐 이거예요. 외적으로 볼 때는 존재를 중히 여기지만, 내적으로 볼 때는 의식을 중요시합니다. 여기서 선후관계가 거꾸로 되면 천하가 뒤집어집니다. 내적인 구조와 외적인 구조가 서로 주장하면 투쟁개념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내적인 것이 먼저다, 외적인 것이 먼저다” 하고 주장하다 보면 투쟁이라는 개념이 부식(扶植)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것이 먼저고, 어떤 것이 나중이라는 것을 결정하지 않고는 투쟁개념을 제거할 수 없습니다.
이게 지금 큰 문제입니다. 내적인 것이 먼저인 동시에 주체이고, 외적인 것은 부체이고 상대입니다. 이것을 하나의 개념으로 세워 놓는다면 우리 자체 내의 투쟁개념을 제거할 수 있지만, 대등한 거리에서 서로 동등한 자리를 주장하게 되면 투쟁개념이 부식됩니다. 어떻게 그 개념을 제거하느냐 이거예요. 공산주의자들은 물질이 중심이고 의식은 물질의 부산물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언제나 문제됩니다. 우리는 의식이 먼저냐, 존재가 먼저냐 하는 것을 중심삼고 어떻게 선후관계를 결정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원자면 원자, 전자면 전자를 보더라도 반드시 양자를 중심삼고 전자가 돌아갑니다. 내적인 운동체와 외적인 운동체가 있어 가지고 내적인 양자를 중심삼고 전자가 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내적인 운동체와 외적인 운동체가 합해 가지고 하나의 원자를 구성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프로톤(proton;양자)은 프로톤 자체가 작용하면서 일렉트론(electron;전자)을 상대로 삼고 있다고 봐야 됩니다.
그러면 운동을 같이 시작했느냐? 아니면, 누가 먼저 시작했느냐? 먼저 시작한 것이 주체입니다. 그런데 양자가 운동을 개시했다고 전제하지 않고는 논리가 형성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아메바 자체도 내적인 요소와 외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셀(cell;세포)에도 세포핵이 있습니다. 그 핵의 작용과 부체의 작용이 합해져 가지고 세포를 구성합니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볼 때, 아메바에도 내적인 형태와 외적인 형태가 있는데 어느 것이 먼저예요? 내적인 것이 먼저입니다. 왜 내적인 것이 먼저냐? 내적인 입장에 있는 것은 동서남북을 통할 수 있는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동서남북을 완전히 통합니다. 그래서 사방의 중심에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핵이라는 것은 중앙에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요즘에 104개 이상의 원소들이 있다고 하는데, 그 원소들 자체도 전부 다 다릅니다. 그러면서 균형적인 형태를 무엇으로 갖추느냐? 그 자체의 핵을 중심삼아 가지고 균형이 취해짐으로 말미암아 원소권의 계열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 모양이 다름으로 인해서 원소권이 달라진다고 봐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자핵의 모형과 위치에 따라서 부체의 형태가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식물세계에서부터 동물세계까지의 모든 존재세계는 핵 자체의 다름에 따라 가지고 모든 존재층이 확정됩니다. 그것이 여러 단계를 확정하는 것입니다. 식물도 수천 가지의 종류가 있습니다. 동물도 수백 수천 가지의 종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핵 자체의 위치에 따라 가지고 존재권이 결정된다고 보면, 진화라는 계통적인 발전이론이 파괴됩니다. 배추면 배추를 중심삼고 무를 아무리 연결하려고 해도 안 됩니다. 절대로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117-70)
진화론을 주장하려면
그거 왜 안 되느냐? 핵 구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핵 구성이 다른 걸 중심삼고 부체의 형성이 다르기 때문에 근본이 안 맞습니다. 인간하고 원숭이가 같은데 무엇이 같으냐? 모양이 같다고 합니다. 개도 귀가 있고, 토끼도 귀가 있고, 고양이도 귀가 있습니다. 그것들이 전부 다 눈이 있고 코가 있으니까 다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합할 수 있겠느냐? 합할 수 없습니다. 왜 합할 수 없어요?
앞에서 얘기한 원칙에 의해서 그렇습니다. 그것들의 핵을 중심삼은 기원이 다르기 때문에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부체적인 형태의 관계는 연결될 수 있지만, 그것이 근본적으로 다를 때는 절대로 연결이 안됩니다. 이것이 존재물을 중심삼은 현실적인 세계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원숭이의 핵이 인간의 것과 다른데도 불구하고 원숭이로부터 인간이 진화되었다는 논리는 엉터리입니다.
그러면 근본에 들어가 가지고 내적인 형태와 외적인 형태, 핵과 부체 중에서 어떤 것이 먼저냐? 그것들의 선후를 가릴 때 부체가 먼저일 수 없고 핵이 먼저입니다. 왜 그러하냐? 이론적으로 보게 된다면, 핵은 사방성의 힘을 규합할 수 있는 중심이니 만큼 사방성의 힘을 규합할 수 있는 동기가 그렇지 못한 부체의 동기보다 먼저여야 된다는 것이 이론적입니다.
그렇게 핵은 사방에 작용을 다 하는데 한꺼번에 사방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면에서 먼저 시작해 가지고 사방을 갖춘다고 보는 것입니다. 사방에 한꺼번에 힘을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면, 동쪽에서 시작하든가 해 가지고 순차적으로 사방을 메워 나간다고 봅니다. 그러한 운동작용을 해야 됩니다. 그 사방 가운데서도 동쪽이 처음이든지 남쪽이 처음이든지 해서 전부 다 다릅니다. 시작하는 게 다릅니다. 모든 원소 자체가 다르다고 봐야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핵의 모든 작용이 부체보다 앞서 있다는 논리를 추리해 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내적인 것이 먼저여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잖아요? 여러분이 먼저 되려면 먼저 작용하든가 해야 됩니다. 여기에 와 앉더라도 먼저 와서 앉아야 첫째입니다. 모든 이치가 그렇게 돼 있습니다. 핵이 부체에 영향을 미치지 부체가 핵에 영향 미칠 수 없습니다. 통일교회의 중심이 레버런 문이면 통일교회 교인들이 레버런 문 앞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통일교회 레버런 문이 통일교회 교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이 핵의 입장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의 이치입니다. 그래서 내적인 것이 먼저라는 이론을 여기서 확정지을 수 있습니다.
진화론을 주장하려면, 진화될 수 있게 하는 힘을 어디서부터인가 보충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핵의 변화형태를 그 자체가 갖출 수 있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화론은 인정될 수 없습니다. (117-72)
인간은 우주의 인격을 완성하기 위한 세포와 같아
화학실험실에서 원소를 연구하는 교수가 “야, 이놈아, 이 원소하고 저 원소하고 합해라” 하고 아무리 해도 안됩니다. 자기 상대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절대 합하지 않습니다.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상대의 주체가 되어야 합합니다. 이런 것이 원칙입니다. 무책임하게 진화론을 이 우주의 형성에 갖다 붙였는데 그것은 엉터리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존재에 내적 작용의 힘을 일으킬 수 있는 본연의 우주력이 있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고 들어가야 됩니다.
레버런 문이 생겨나는 데는 진화과정의 법칙을 통해서 생겨났겠어요, 핵적 작용의 확산에 의해서 생겨났겠어요? 레버런 문 자신이 생겨날 때 진화과정을 통해서 생겨났겠느냐, 레버런 문의 핵적인 존재가 있어 가지고 그것을 확산시키는 작용에 의해 가지고 생겨났겠느냐? 핵적인 작용에 의해서입니다.
핵적인 요인을 중심삼은 확산작용에 의해서, 그것이 부체를 확대시겨서 지금의 레버런 문이 구성된 것이지, 진화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레버런 문이 좋아하는 게 다른 사람과 다릅니다. 레버런 문은 핵이 다르니 만큼 좋아하고,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 핵의 힘의 원천에서 부체를 흡수시켜 가지고 레버런 문이 형성된 것입니다. 주체인 핵의 힘에 의해서 부체를 흡수하여, 음식물을 통해서 확대시킨 것이 레버런 문입니다.
그래서 레버런 문 핵하고 레버런 문 부체가 균형이 될 때는 그 이상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레버런 문보다 더 클 수도 없고, 더 확장도 안 됩니다. 왜 안 되느냐? 누가 힘을 가해서 핵을 갖다가 보충할 수도 없고, 떼어 갈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떼어 가면 핵이 있는 한 또 보충하는 것입니다. 주체와 대상이 균형을 이룬 하나의 형태를 갖추면 우주의 존재 보호권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온 우주의 인간들은 뭐냐? 우주의 인격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세포와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본질적으로 통할 수 있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인간의 공통성이 뭐냐? 인간은 좋아지기를 바라고 높아지기를 바라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은 좋은 부체와 관계 맺든가, 높은 부체와 관계 맺든가, 또는 좋은 핵심과 관계 맺든가, 높은 핵심과 관계 맺으려고 하는 작용입니다. 그것은 부체 형성이라든가 핵심 형성의 필요성에 있어서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우주사적인 본성의 선의 핵심체, 최고로 높은 가치적인 핵심체가 있게 될 때, 인간은 부체로서 작용하든가 해서 핵심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하는 논리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양심작용이 수시로 나에게 언제나 좋은 일을 하고 고차원적인 위치로 올라가라고 하는 것은 어떤 핵심적인 주체에 접근하라는 우주적인 작용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우주 핵 앞에 하나의 부체로서 연결됐기 때문에 인류는 공통적인 소성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세포체라고 하는 논리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우리가 부체로서의 작용을 하려니 “높고 선하자. 크고 선하자”고 하는 양심작용이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공통적인 소성이 있는 것입니다. (117-74)
참사랑만이 전체를 완성시켜
그러면 여러분, 흑인 백인은 뭐냐? 한 사람에게 있어서 백인이 눈의 흰자위 세포라 한다면 흑인은 발바닥 세포와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눈 세포가 낫고 발바닥 세포가 덜 낫다는 게 아닙니다. 공동운명입니다. 부부는 뭐냐 하면, 셀(cell;세포)에 있어서 하나의 핵이 되어 가지고 작용하는 체입니다. 대우주 인격을 두고 보면 우리는 같은 존재라는 이런 논리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전체 작용을 시킬 수 있고, 전체 세포를 좋게 하고 희열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그 총체적인 힘이 무슨 힘이냐? 그것은 사랑의 힘입니다. 우주에 있어서의 단 하나 참된 사랑의 힘만이 전체 세포 작용을 원활히 할 수 있고, 완전한 작용으로 전수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의 힘이 귀한 것입니다.
사랑의 힘을 가지게 되면, 남자나 여자나 모든 세포가 집약됩니다. 그래서 사랑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극은 최고의 총합적인 자극인 것입니다. 그때에야 몸과 마음이, 부체와 주체가 완전히 주고받는 것입니다. 이 작용이 보통 때는 그저 순리 법도대로 작용하지만 사랑하면 다릅니다. 보통 때는 자연적인 작용을 하지만 사랑의 힘을 가지게 되면 백 퍼센트 폭발적인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그 충격적인 자극에 취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랑이 좋다는 것입니다. 술 먹는 것보다도 아편 주사 맞는 것보다도 어떤 무엇보다도 자극적인 것이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고 여자는 남자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그 이론이 통합니다. 한 몸뚱이가 “와-” 하고 좋아서 작용하면 다른 몸뚱이도 자극을 받고 그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사랑만이 전체를 완성시킬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성립됩니다. 한 부서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전부 공감합니다. 전부 번져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이 어디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전체에 바이브레이션(vibration;진동을 일으키겠느냐? 핵에서부터 작용을 시작해야 전체에 바이브레이션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핵을 통한다 하는 논리를 우리는 추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통로는 핵의 중심이기 때문에 참이 아니면 통할 수 없다는 이론이 성립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참이 아닌 길을 통할 수 없기 때문에 참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 완성을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이런 논리가 전부 다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인간이 사랑을 필요로 하고 모든 동물이 사랑을 필요로 하고 만물이 사랑을 필요로 한다면, 핵의 기원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여기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나 만물이나 동물들이나 전부 다 사랑을 좋아한다면, 그 논리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에 핵의 중심을 결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참된 핵의 바탕을 연결시킬 수 있는 그 기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랑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핵의 출발이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이래야 이론이 타당합니다.
왜 그러냐? 사랑은 이상이기 때문에 이상을 중심삼고, 이상으로 말미암아 핵도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과 관념이 먼저라는 이론을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 이상으로 말미암아 핵 존재의 기원이 확정됐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상(思想)이 먼저다 하는 논리, 사상은 존재보다 앞선다는 논리를 여기서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이상은 반드시 사랑을 관계로 해 가지고 모든 핵이 형성되기 때문에, 우주와 동거하기 위해서는 나는 참사랑의 주인이 돼야 합니다. 참사람이 참사랑에 존재해 있으면, 모든 존재물은 근원과 관계 맺기 위해서, 그 핵과 관계 맺기 위해서 입을 벌리고 작용하고 싶어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존재냐? 참사랑의 중심에 있고, 전체의 내용을 가진 인격자입니다. 사랑을 가진 인격자로서 우주를 포용하고 우주를 동화시키고 우주를 소화하고 우주를 감동시킬 수 있는 사랑의 주체입니다. 우리 인간이 왜 존재해야 되느냐? 사랑의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그 주체 앞에 대상의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나는 사랑의 부체이고 하나님은 사랑의 핵입니다. 이게 얼마나 멋져요! 이렇게 둘이 하나되어야만 하나님도 사랑 이상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들이 필요하고 인간은 하나님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이론적 귀결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진짜 사랑의 맛을 가지게 되면 남아나는 게 없습니다. 눈도 사랑을 보기 시작하면 뛰쳐나가려고 하고, 코도 사랑의 냄새를 맡게 되면 자빠지려고 하고, 귀도 사랑의 소리를 들으면 터져 나가려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 여자들이 주고받는 것으로 끝나 가지고는 이러한 작용을 잘 모릅니다. 서로 완전히 하나되어야만 비로소 핵의 사랑과 관계를 맺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가 필요하고 여자는 남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완전히 하나되어야 이상적인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통일교회에서 말하는 원력(原力)이 도대체 뭐냐? 핵을 연결시킬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핵을 연결시킬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논리적인 추리로 볼 때 불가피합니다. (117-76)
사랑 이상 때문에 태어난 모든 존재
선생님의 말을 들어 보니까 내적이 먼저예요, 외적이 먼저예요? 내적인 것이 먼저인데, 이상적인 사랑의 요소하고 존재인 핵의 요소하고 어떤 것이 먼저예요? 관념이 먼저예요, 존재가 먼저예요? 관념이 먼저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거 믿을 수 없다. 나는 믿을 수 없다”고 할 때는 그거 어떻게 증거할 거예요?
그때 좋은 예가 있습니다. 우리 눈 얘기를 잠깐 하자구요. 눈의 조상의 조상, 조상의 조상 해서 올라가면 눈의 맨 처음 조상이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눈이 생겨날 때 “내가 이렇게 생겨나고 싶다”한다고 눈 자체가 그렇게 생겨날 수 있나요? “나는 돌아가야 되겠다. 눈꺼풀이 깜빡깜빡하는 그 속에 들어가야 되겠다. 물 뿌려 줘 가지고 축이는 놀음을 해야 되겠다. 공기에는 먼지가 있기 때문에 여기 눈썹으로 스크린을 만들어야 되겠다” 이렇게 눈이 생각해서 태어났어요?
속눈썹이 있는 걸로 볼 때, 눈썹이 이 세상에 공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겠어요, 몰랐겠어요? 이렇게 된 것을 누군가 알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입니다. 벌써 눈으로 생겨날 때 이 우주의 공기에 먼지가 있다는 걸 알고 생겨났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바람이 불고 먼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몰랐어요? 눈 자체가 알고 생겨났어요, 모르고 생겨났어요? 눈 자체는 몰랐지만, 누군가가 알아 가지고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렇게 만든 것 아니에요? 그리고 이 지구상에 생긴 복사열에 의해서 수증기가 증발된다는 것을 알고 그걸 방어하기 위한 장치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눈 자체가 그것을 알 수 있어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눈이 생겨나기 전에 이 우주적인 지식을 가진 배경적 관념이 있었다 하는 논리를 추리할 수 있습니다. 박물학적인 지식의 논리성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눈썹을 보라구요. 눈으로 먼지가 들어가면 큰일납니다. 얼마나 잘돼 있어요! 땀 흘리는 것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다 알고 장치했다는 것입니다. 눈썹이 자기가 알고 여기 와 붙었어요? 눈 자기가 알고 눈썹을 갖다 붙였어요? 자기가 알고 여기에 수증기를 갖다가 뿌려요? 전부 박물학적인 지식 배경을 갖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하는 미치광이들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의 원칙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상의 근원은 뭐예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통일교회가 이러한 이론적 기반 위에서 사랑의 이상을 들고 나왔다는 것은 지극히 놀라운 사건이며, 역사적인 기적적 사건입니다. 나의 존재는 어디서부터예요? 핵적인 하나님, 하나님의 인격이 이상인데, 아까 구상이 있어야 되고 이상이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신의 이상이 무엇이라구요?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랑 이상 때문에 태어난 것임을 알아야 됩니다.
관념에서 출발해 가지고 이상적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영원한 생명의 길을, 일생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찾아야 이상에 도달할 수 있는 기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혼을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영원한 상대 이상의 길을 가는 것이니 이혼이 있을 수 없습니다.
순간적인 사랑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때려죽이라구요. 순간적인 사랑을 원해요, 영원한 사랑을 원해요? 왜 영원한 사랑을 원해요? 무엇을 중심삼고 영원을 추구하느냐 하면, 사랑을 중심삼고 추구합니다. 그 이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히 몸뚱이를 가지고 살 수 없습니다. 사랑을 영원히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두고 보더라도, 문학 소설을 보더라도 사랑을 영원한 것으로 추구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화적 구성물이 아니고 창조적 조화물이라는 사실은 불가피한 결론입니다. 어떤 게 좋아요? 진화적 구성물이길 원해요, 창조적 조화물이길 원해요? 창조적 조화물이기를 원합니다. 원숭이 사촌을 원해요, 하나님의 아들딸 되는 것을 원해요? 하나님의 아들딸을 원합니다. 어째서 그래요? 원숭이에게는 참사랑이 없지만, 하나님에게는 참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117-78)
모든 구성요소의 근원은 사상적 존재
이제 우리는 마음이 먼저고, 사상이 먼저고, 신이 먼저라는 관념을 여기서 알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사상적 주체가, 모든 구성 요소의 근원을 보더라도 이상적인 구성의 근원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그 동기적 자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주체를 우리는 신이라고 명명하는 것입니다.
이런 추리를 통해서 하나님이 있다는 이론적 구성을 우리는 끝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주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주체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뭐예요? 우리는 부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와 동등한 자리에 올라가기 때문에, 최고의 선의 욕망을 충당하고자 하고, 최고의 높은 자리를 갖고자 하는 내적 욕구를 완전히 충족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최고로 선하려고 하고, 최고로 높아지고자 하는 우리 마음의 두 가지 욕망을 완전히 충족시킬 수 있는 자리는 그 자리밖에 없습니다. 이 큰 선과 높은 자리 그 자체는 사랑으로써만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신이 있다고 해야 되겠어요, 없다고 해야 되겠어요? 선생님은 세수할 적마다 얼굴을 보고는 “야, 신비로운 얼굴이구나! 이게 어떻게 이렇게 생겼을까? 귀가 어떻게 이렇게 생겼을까?” 한다구요. 생각하면 신비롭습니다. 몸이라는 것은 신비의 왕국입니다.
눈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눈은 하나님의 상징이기 때문에 높은 데를 차지했고, 코는 남자 여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간판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우주입니다. 우주 가운데 중심인 아담 해와의 상징이 코입니다. 그 다음에 입은 만물을 상징합니다. 이마는 하늘을 상징하고, 이 세상을 다 쭈욱 통하는 것입니다. 코의 두 구멍도 남자 여자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운데에서 하나되어 있고, 제일 높습니다. 아담 해와의 상징입니다. 입은 만물을 상징합니다. 사 팔은 삼십 이(4×8=32), 이빨은 서른 두 개입니다. 이것은 만물을 상징합니다. 귀는 사방으로 통합니다. 그 다음에 밑으로 기관이 있고 다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소생, 장성, 완성입니다.
엄지손가락은 누구를 상징하나요?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우주 가운데 하나님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주 존재세계의 만물 박물관에 전시된 최고 걸작품이 인간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 박물관 걸작 표본 대표 구성체가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아메바에서 발전한 것이 아니라, 거쳐 올라왔기 때문에 진화과정의 형태는 맞지만, 진화론의 내용은 그릅니다. 만물 자체가 어떻게 스스로 발전시켜서 연결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연결시키는 자체도 하나님에 의해서 하는 것입니다. 연결시킬 수 있는 제3의 힘의 작용에 의해서 연결됐다는 것입니다. (117-80)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랑 이상을 완성한 인간이 돼야
이제 하나님이 계신지 알았지요? 하나님이 있는 줄 알게 되면 어떤 죄도 지을 수 없고, 나쁜 일을 하라고 해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눈을 볼 때 여러분의 눈이 하나님이 되어서 “이놈” 하는 거예요. 거울을 볼 때 눈이 나를 보고 “이놈”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눈을 볼 때 부끄러움을 느껴야 됩니다. 내가 내 코를 보기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됩니다. 이 손 보기에, 내 다리 보기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녀석이 다리를 부려먹을 수 있어요? 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어요? 입을 벌릴 수 있어요? 이놈의 입이 먹겠다구요? 만물 보기가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게 되면 밥은 입으로 안 들어가겠다고 “아, 나 살려줘” 한다는 것입니다. 도적놈들이요, 강도들입니다. 그런데 참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지닐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입도 벌리기 전에 “벌려라. 벌려라. 들어가겠다. 들어가겠다”고 합니다. 어째서 그러냐? 사랑의 부체가 됐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할 수 있는 사랑의 부체가 됐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념을 가진 인간과 오늘날의 동물적인 인간과는 차원이 얼마나 달라요!
통일교회 레버런 문과 오늘날 동물적 인간들을 볼 때, 누가 누구를 반대하느냐 하면, 동물적인 인간들이 레버런 문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뭐예요? 하나님 중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중심으로 하려 해도 그게 쉬운 게 아닙니다. 하나님 중심이 다 안 돼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을 이제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노력을 계속할 거예요, 스톱할 거예요? 누가 하라고 했다고 해서는 안되고, 자진해서 해야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권 내로 흘러 들어가기 위해서, 하나님권 내의 사랑으로 화한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이상을 걸고 영원히 도야(陶冶)하고 수련을 받아 가지고 가는 행로에 지금 들어서 있다는 것을 알고 가야 된다구요. 순간이 아닙니다. 본래 타락하지 않았다면 인간세계에 살아 있는 생명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죽어서는 안됩니다. 살아 있는 동안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타락하지 않았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죽기 전에 어떠한 탕감을 치러서라도 그 기준에 도달하지 않으면 큰일납니다. 대학교가 문제가 아니고 명예가 문제가 아니고 출세가 문제가 아니라 이게 문제입니다.
이래서 나는 하나님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랑 이상을 완성한 인간이 됐다고 생각해 봐요! 인간의 욕망 중에 그 이상의 욕망이 어디 있겠어요? 세계 대통령이 되는 것에 비교가 되겠어요? 레버런 문은 그것을 알고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논리적이고, 머리가 참 좋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출세하지 않고, 그것을 다 버리고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이 다 갖다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멋져요!
여러분은 주일에 선생님이 나타나서 얘기하는 게 좋아요, 다른 누가 나타나서 얘기하는 게 좋아요? 왜 선생님이 좋아요? 어째서 그래요? 참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그럴 거예요. 선생님이 여기 있으면 꽉 찬 것 같지만 없으면 텅텅 빈 것 같을 것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드느냐? 사랑이 그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추리적인 면에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 이상을 가지고 우리 인간 세상에 찾아오는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마운 복음이에요! 이 이상의 뉴스가 어디 있겠어요?
신과 우리는 만나야 되겠습니다. 신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에 접해 보겠다는 그게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24시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접하는 것이 영원한 소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에 접근할 때는 어떠한 일이 벌어지느냐? 자기 자신의 손을 보면 손이 번쩍번쩍하고, 몸뚱이에서 빛이 납니다. 얼마나 좋겠나 생각해 보라구요! 모든 세포 전부가 최고의 만족을 느낄 것입니다. 그 자리는 영원히 살고 싶은 자리일 것입니다. 잔다면 그 자리에서 실컷 영원히 자고 싶고, 먹는 데는 영원히 실컷 먹고 싶고, 춤을 추게 되면 영원히 춤을 추고 싶을 것입니다. (117-83)
참사랑의 사람이 되어 참된 하나님을 만나러 가자
우리가 지상에서 차원을 높여야 올라가는 것입니다. 사랑의 자석이 되어야 “휘익, 째까닥” 하고 올라가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플러스 자석, 우리는 마이너스 자석이니 재까닥 만나 하나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우주선과 같은 작용이 벌어지는 지는 것입니다. 사랑의 자력선이 작용한다고 생각해 보라구요! 다 그런 이상적인 자리를 찾아 나왔다는 걸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 길을 간다고 생각하면 죽는 자리에 가더라도 지치지 않습니다. 죽어서 내가 꿈으로 그리던 확장된 그 세계에서 무한대로 활동할 걸 생각해 보라구요. 제한된 세계에서 확대된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러 가야 되겠습니다. 내가 사랑을 준비해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러 가자는 것입니다.
그 기지가 홈 처치입니다. 홈 처치는 인공위성이 점화돼 가지고 점핑해 날아가는 기지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홈 처치를 중심삼고 사랑을 그려 가는 길에 있어서 일화를 많이 가져야 됩니다. 사랑의 길을 찾아서 사랑을 그려 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일화를 많이 가져야 되겠습니다. 스릴 있는 장면이라든가 반대하고 죽이고 살리고 하는 것이 나쁜 게 아닙니다. 일들을 많이 가져야 됩니다. “참사랑의 사람이 돼 가지고 참된 하나님을 만나러 갈지어다. 아멘” 그러겠다는 사람 손들어 보자구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117-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