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장,
김재숙은 느닷없는 시어머니의 방문을 받고서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반가워하는 표정도 그렇다고 못마땅하다는 표정도 아니다.
“잘 지내고 있었니?”
“........................”
“시원한 물을 한잔 주겠니?”
김재숙은 아무런 말도 없이 주방으로 향한다.
그리곤 쟁반에 바쳐서 물을 한 컵 가져다 말없이 시어머니 앞에 놓는다.
김 여인은 목이 말라서 한 컵의 물을 다 마신다.
“막내야!
애비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이냐?“
“어머님!
저희 집에 왜 오셨는지 알고 있습니다.
허지만 이것은 저희들 부부문제 입니다.
어머님께서 관여하실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나도 그러고 싶다.
허나, 다른 것도 아니고 산 다 못산다 하는 말들이 오고 가고 있으니 내 어찌 모른 척 귀를 막고 있을 수가 있겠니?“
“살고 못사는 것은 그이에게 달려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내가 알아듣도록 말해주면 안 되겠니?”
“어머님!
한 가지만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을 해 보거라!”
“그이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고집이 센 사람이었습니까?”
“우리 종원이는 고집이 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 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고집이 센 것이 아닙니까?
직장 생활 해보아야 무엇을 하겠습니까?
고작해야 밥술을 먹고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까?“
“안에서 알뜰하게 생활을 한다면 남에게 없는 소리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지 않겠니?”
“저는 그런 생활이 싫습니다.
남보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습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직장생활보다 장사를 하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막내야!
장사를 아무나 하는 것이라던?
그리고 지금 네 남편의 나이에 가지고 있는 직위와 봉급이 적은 것이 아니지 않니?“
“아무리 많아봐야 월급 거기서 거기입니다.
장사를 하면 그 보다 많은 수익을 가질 수가 있고 경제적인 여건도 훨씬 좋아질 수가 있다는데 왜 못한다고 하세요?“
김재숙은 자신의 생각을 반드시 관철 시키고야 말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네 남편이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어쩌겠니?
모든 일에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이 있지 않겠니?“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결혼을 해요?
차라리 혼자 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나 하고 살지요.“
김재숙은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그렇다고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았잖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오는 사람이 아니더냐?“
“더 낳은 방법을 왜 마다하고 처자식을 고생을 시키고 있어요?
얼마든지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일러 주는데도 자신의 고집만을 내 세우고 있으니 그런 사람과 어떻게 살아 갈 수가 있겠어요?“
“막내야!
너라면 하기 싫은 일을 하라고 하면 할 수가 있겠니?“
“가족을 위해서는 내가 하기 싫더라도 해야 되는 것이 아닙니까?
무슨 남자가 야망도 없고 꿈도 없는지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네가 하고 싶은 방법이 무엇이냐?
어떤 방법으로 장사를 하려고 그러니?“
“네!
이 집을 빼서 가게를 얻으면 내 친정언니가 물건을 대 주는데 못할 것이 무엇이에요?“
“그럼 가족들은 어디서 생활을 하고?”
“지금 어머님은 그 넓은 집에서 혼자 사시고 계시잖아요?
우선 어머님 댁으로 들어가면 될 것이 아니에요?“
“네 혼자만의 생각이잖니?
네가 언제 그런 일들을 나하고라도 상의를 해 보았니?“
“어머님이 자식인 저희들을 받아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큰 형님 댁도 어려울 때 함께 사시지 않았습니까?“
김재숙은 자신의 생각을 의논하지도 않고 결정해 버린 후였다.
김 여인은 할 말이 없다.
“막내야!
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억지로 붙잡지 말고 너 혼자서 해 보면 어떨까?“
“아뇨!
여자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할 수 있다 해도 혼자서는 안 합니다.
그까짓 직장이 뭐가 대단하다고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김재숙은 남편의 직장을 대수롭지 않게 치부를 해 버린다.
“어머님!
부부간의 일을 가지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시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제 저도 그이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
“어차피 오셨으니까 제 솔직한 마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그이에게 아무런 미련도 없고 함께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뭐?
그럼, 네 자식들은 어떻게 하고?“
“저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키울 수가 있습니다.
이혼의 조건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지금 살고 있는 이 집과 아이들의 양육비로 월급의 반을 주면 됩니다.“
“그렇게는 안 된다!
이혼도 네 마음대로 할 수도 없으려니와 행여 아이들을 네가 키울 생각일랑은 말아라!“
김 여인은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 며느리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무모한 일임을 깨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이들은 저도 결코 양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네 마음대로 해 보거라!“
김 여인은 아들의 집을 나와 차를 타러 걸어가면서 눈물을 흘린다.
아무리 이혼이 흔한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자식이 이혼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다.
김 여인은 자신의 집으로 가지를 않고 큰 아들 종엽이네로 발길을 돌린다.
성경화는 자신의 집으로 오신 시어머님의 안색을 먼저 살핀다.
“나 냉수 한 그릇만 다오!”
“어머님!
지금 막내 동서를 만나시고 오시는 길이지요?“
물을 떠서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오면서 성경화가 묻는다.
“에미야!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구나!“
“어머님!
마음을 조금 진정하세요.
동서하고 말이 통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잖아요?“
“그래도 어찌 그렇게 이혼이라는 말이 쉽게 나올 수가 있는지..........”
“어머님!
막내서방님이 오실 시간이 거의 다 되었으니 함께 의논을 해요.
막내서방님도 무슨 생각이 있으실 것이 아닙니까?“
“휴!”
김 여인은 깊은 한숨을 내 쉰다.
“나 잠시만이라도 누워야겠다.”
김 여인은 그대로 방바닥에 눕는다.
성경화는 얼른 이부자리를 봐 드린다.
김 여인은 눈을 감고 잠이 든 척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한다.
어디서 가닥을 잡고 해결해 나가야 할지 눈앞이 아득해져 오는 것이다.
막내며느리는 이미 이혼을 하려고 결심이 선 모양이었다.
말린다고 들을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던 탓이었는지 아들들이 들어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엄마!”
종원이가 엄마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언제 왔니?”
“지금 왔어요.
형님하고 전화를 해서 함께 들어 왔습니다.“
“그랬구나!
시장할 텐데 어여 밥이나 먹고 나서 이야기를 하자!“
“네!”
그들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상에 둘러앉는다.
밥상은 안방에 차려 놓는 성경화다.
식탁이 비좁기도 하지만 나이 드신 시어머니를 생각해서였다.
“에미야!
네가 고생이 많구나!“
“고생은요 무슨?
그냥 먹던 상에 수저만 하나 더 놓을 뿐인걸요.“
“아니다!
객식구 한사람의 시중이 얼마나 많은지 남자들은 알지 못한다.
빨래도 더 해야 하고 집안도 더 어질러지고 이것저것 손가는 일이 많다.“
“어머님!
신경을 쓰시지 마세요.
삼촌이 있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더구나 삼촌은 아이들하고 잘 놀아 주시거든요.“
“다행이구나!”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지만 김 여인은 밥알이 쓰디쓴 소태만 같다.
저녁상을 치우고 나서 성경화는 차와 과일을 가지고 들어온다.
아이들은 저녁을 먹고 나서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 공부를 하느라고 조용하다.
“내 오늘 막내네 집엘 다녀왔다.”
“.......................”
“종원아!
너희들 어떻게 이야기들이 된 것이냐?“
“엄마!
전 장사를 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결코 이 직장에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이 상태로 인정을 받고 계속 승진을 하면 사장 자리도 바라볼 수 있는데 무엇 하러 직장을 그만 두고 해보지도 않던 장사를 하겠어요?“
“이혼을 당해도 말이냐?”
“네!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닙니다.
제가 성취하고자 하는 일이 있는데 왜 다른 길을 가야만 합니까?“
“그래도 네 아내가 그렇게 원하는 일인데 들어 줄 수는 없니?”
“엄마!
이번 문제만 가지고 그러는 것이 아니에요.
그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사람과 함께 살기가 너무나 힘이 듭니다.
무엇이든지 자신의 생각에 맞추려고만 드니 어떻게 견디겠어요?“
“처음부터 네가 선택한 길이 아니었니?”
“그래서 지금까지 많은 것들을 양보하면서 맞추어 주었어요.
그러나 제 직장까지 자신의 마음대로 하려는 사람하고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도 이혼을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휴!
꼭 그렇게 밖에는 할 수가 없는 일이냐?“
“죄송합니다.”
잠시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침묵이 지나간다.
“휴!
그럼 네 자식들은 어떻게 하고?“
“제가 키워야지요.”
“너 혼자 어떻게?”
“............... 아무리 힘이 들어도 자식들은 제가 키우겠습니다.”
“서방님!
서방님께서 먼저 이혼을 하시자고 하셨어요?“
성경화가 입을 연다.
“아닙니다!
이혼 이야기는 벌써 그 사람이 했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해서든지 그 사람의 마음을 돌려놓으려고 제 나름대로 노력을 했습니다만 그럴수록 더 거세지기만 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서방님께서 절대로 이혼을 하시겠다고 말씀을 하시지 마세요.
만일 그랬다가는 동서는 반드시 위자료를 청구하고 나설 것입니다.“
“지금도 위자료로 그 집을 주고 아이들 양육비로 매달 월급의 반을 달라고 해요.”
“세상에?
절대로 승낙을 하지 마세요.
먼저 이혼을 요구하면 위자료를 청구할 권리가 없는 겁니다.“
“.......................”
“그리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주제 넘는 일인 줄 압니다만 아이들 걱정은 하지 마세요.
서방님의 아이들은 제가 맡아서 키우겠습니다.“
“형수님!
말씀만으로도 힘이 나고 고맙습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 다섯 정도는 제가 키울 수가 있습니다.
아무런 걱정도 하시지 마시고 절대로 동서의 뜻에 따르지 마세요.“
“네!”
김 여인은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든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좋은아침 입니다
잘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맡며누리 역활 잘 하내 ㅡㅡㅡㅡ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