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시식을 시작한 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수많은 구명시식을 하였지만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고 구명시식을 못할 때가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나름대로 징크스가 있다. 구명시식 전 상갓집에 다녀오거나 장의사차를 보면 영락없이 구명시식을 못한다. 또 구명시식에 온 참관자 중에 상주(喪主)가 있다든지 49재를 마치지 않은 가족이 있어도 할 수가 없다. 아마도 구명시식에 써야할 염력을 다른 쪽에 미리 빼앗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되도록 구명시식 전에는 매사 조심하지만 사람 일인지라 항상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특히 절친한 지인들이 상(喪)을 당하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조문(弔問)을 가게 된다. 영능력자인 필자의 조문이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언론계에 있는 절친한 지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고민이 앞섰다. 구명시식 때까지는 날짜에 여유가 있었지만 안심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나를 형제처럼 생각하는 지인의 마음을 생각하니 안 갈 수도 없었다. 일부러 모든 걱정을 무시하고 조문을 다녀왔다.
조문을 다녀온 그 주, 나는 구명시식을 하는 도중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최대한 의식에 몰입하며 쓰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숨이 탁 막히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날 참관자 중 의사가 있어 급하게 응급조치에 들어갔다. 그는 어떤 의료기구도 없는 법당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치료했다.
그의 도움으로 간신히 정신을 되찾았지만 답답한 내 운명에 가슴이 아팠다. 악천후에도 길을 떠나는 나그네처럼, 구명시식 도중 내게 벌어질 일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상갓집에 갈 수 밖에 없고, 구명시식을 할 수밖에 없다니.
가만히 눈을 떠 천장에 매달린 연등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옛 이야기가 떠올랐다. 일본에 육효점(六爻占)을 매우 잘 치는 스님이 있었다. 스님은 매일 육효점으로 그날의 운세를 치곤 했는데 하루는 먼 길을 떠나는데도 점을 치지 않아 제자들이 물었다. “오늘은 왜 점을 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스님은 결연한 표정으로 “설사 불길한 괘가 나와도 나는 가야 한다”고 답했다. 그렇게 길을 떠난 스님은 자객의 칼에 맞아 돌아가셨다.
“법사님 이제 괜찮으십니까?” 나를 회복시켜준 의사는 갑자기 기절한 이유에 대해 의학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구명시식은 공기가 통하지 않은 밀폐된 법당에서 향과 촛불을 피워 놓는데다가 참관자들도 많아 시간이 흐르면 이산화탄소가 증가하는데 폐가 좋지 않은 내게는 최악의 환경이라며 걱정했다.
그는 의사로서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마음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6개월 전 교통사고로 큰아들을 잃은 뒤 많은 번민을 해왔다. 자식을 허망하게 잃은 자신이 남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고통스러웠다. 정말 의사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일을 그만 두고 마냥 놀 수도 없었다.
누구에게도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지 못했던 그는 겨우 기력을 되찾은 내게 고백하듯 말했다. “법사님도 이렇게 어렵게 구명시식을 하시는데, 저도 다시 환자를 봐야겠습니다.” 순간 그의 눈물이 법당 다다미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웃으며 그를 위로했다. “이런 게 우리 일이지 않습니까. 열심히 일합시다.” 비록 모두를 위한 구명시식은 못했지만 단 한 사람의 구명시식은 성공리에 마쳤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그동안 구명시식은 여러 가지 이유로 도중에 중단됐다. 개인의 구명시식보다 국가에 긴급한 일이 발생했을 때는 양해를 구하고 중단해야만 한다. 이런 저런 이유 중에 가장 황당하면서도 치명적인 것이 바퀴벌레 사건이다. 생전 나의 어머니, 무위심 보살은 구명시식 때마다 항상 수호신처럼 나를 지켜줬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구명시식에 들어와 성심을 다해 기도했고, 돌아가신 후에도 영가가 되어 나를 보호해준다.
그런데 그날은 큰 실수를 했다. 구명시식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어머니가 그만 영가의 장난에 속은 모양이다. 구명시식은 고도의 기(氣) 집중 의식이다. 영가를 초혼하고,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영가들을 일일이 컨트롤하며 천도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피를 말리는 고난도의 영적 작업이다.
만약 여기서 작은 실수라도 한다면 참관자는 물론이요, 나 자신이 치명타를 입는다. 영가의 공격방법은 너무도 다양해 아무리 예방해도 구멍이 뚫릴 수 있다. 지금까지는 잘 막아왔지만 그날처럼 막지 못한 날도 있다.
당시 구명시식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천도가 쉽지 않은 영가들을 대면하는 시간이 다가오면서 온몸의 기를 한곳으로 집중했다.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탁!’ 하며 누군가 다다미 바닥을 내리쳤고 나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구명시식은 중단됐다. 거의 죽는다고 봐야 하는 최악의 상황. 그러나 아직 할 일이 남아있었는지 영계는 나를 살려줬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누가 다다미 바닥을 손으로 내리쳤습니까?”라고 물었다. 뜻밖에도 어머니였다. 화가 치밀었지만 화를 낼 수 없었다. 어머니는 어디선가 바퀴벌레가 나타나 손으로 살짝 잡는다는 게 이렇게 될 줄 몰랐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구명시식을 훼방 놓으려고 영가가 바퀴벌레에 실린 겁니다.”
구명시식은 시작부터 끝까지, 단 1분 1초라도 의식이 분산되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바퀴벌레를 잡으려 했던 어머니의 사소한 동작으로 피를 토하고 쓰러진다는 것은 일반인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구명시식이다. 나도 바퀴벌레 한 마리 때문에 죽음의 문턱까지 가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구명시식 중단 사례는 미국 뉴저지 후암선원에서도 발생한 적이 있다. 구명시식 직전, 몸이 좋지 않은 나를 위해 누군가 양파주스를 갈아준다며 믹서를 돌린 모양이었다. 영가를 초혼하기 위해 기(氣)를 모으던 중 ‘윙~’ 하는 요란한 믹서 진동음이 들리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 강력한 전파가 나를 공격한 것이다.
구명시식 중 핸드폰이 울려도 중단된다. 핸드폰의 전자파 때문이다. 이제는 전원만 끄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배터리까지 분리해달라고 당부한다. 배터리를 분리하지 않은 채 전원만 끄면 영가의 장난으로 제멋대로 켜지는 경우가 많다. 코드를 뽑은 유선 전화기에서 벨이 울리기도 하니 영가의 장난은 한도 끝도 없다.
구명시식은 하얀 칼 날 위에서 춤추는 것과 같다. 아무리 조심해도 당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당할 수 있다. ‘오늘도 무사히’를 가슴 속에 새기며 되도록 안전운행을 하지만 옆의 차가 갑자기 끼어들면 사고를 피할 수 없다. 바퀴벌레 사고처럼 상상도 못한 변수가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이제는 ‘생사(生死)는 필연(必然)’이라는 마음으로 구명시식에 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