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사야25:1
우리의 삶은 예기치 못한 슬픔과 상실, 죽음이라는 그늘에 가려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비의 하나님은 시온에서 풍성한 구원의 잔치를 베푸시고 인간의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완전히 삼켜 버리실 것입니다. 이 승리의 잔치를 아는 자만 환난에서도 찬송을 할 수 있습니다. 공주야! 그날(종말)은 축제와 심판의 날인데 궁극적으로는 ‘혼인잔치’로 비유된다. 하늘의 군대와 땅의 왕들을 멸하시고 시온 산의 왕이 되신 여호와께서 친히 잔치를 배설하시고 민족들을 손님으로 초대하신다.
There are times in our lives when our lives are overshadowed by the shade of unexpected sorrow, loss, and death. But the merciful God will at Zion bestow a plentiful feast of salvation and will utterly swallow up death, the last enemy of man. Only those who know this feast of victory can sing praises even in tribulation. Princess, that day (the end) is the day of the festival and judgment, but ultimately it is likened to a “wedding feast.” The LORD, who destroyed the armies of heaven and the kings of the earth and became king of Mount Zion, himself will host a feast and invite peoples as guests.
-
문맥에 따르면 땅의 심판이 역설적으로 민족들에게 여호와로 나아가는 문을 열어준다. 땅의 심판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승리가 된다. 당신의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사건이다. 악한 세력들의 거처는 돌무더기와 황무지가 되고, 그들은 여호와의 위용에 두려워 떨 것이다. 그의 승리는 빈궁한 중에도 하나님께 신실하였던 사람들에게 주신 승리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피난처가 되어 주시는 승리가 될 것이다.
According to the context, the judgment of the earth paradoxically opens the door for the nations to come to the LORD. The judgment of the earth is a victory for God and His people. It is an event in which, through your faithfulness and sincerity, you protect and guard your people. The dwelling place of the evil forces will become a heap of stones and a wasteland, and they will tremble in fear of the majesty of the LORD. His victory will be a victory given to those who remained faithful to God even in poverty, and a victory in which God becomes their refuge.
-
자기 힘을 의지하던 자들의 입에서 노래를 끊으시고 의인들이 여호와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시는 그 나라가 완성되면,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온 세상에서 자기 백성을 여호와의 잔치에 초대하실 것이다. 거기에는 풍요와 기쁨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더는 사망이 없을 것이니 눈물도 없을 것이다. 자기 백성의 수치도 제거해주실 것이고, 영원히 당신의 보호와 돌보심 안에서 생명을 만끽하게 하실 것이다.
He will cut off the song from the mouths of those who relied on their own strength, and the righteous will praise the LORD, the God of my people. When the kingdom in which God reigns is completed, He will invite His people not only to Israel but to all the world to the Lord’s feast. There will be abundance and joy there. There will be no more death, so there will be no tears either. He will also remove the shame of His people, and He will let them enjoy life forever in His protection and care.
-
우리 주님이 다시 오셔서 이루어지는 그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이 이미 구약에서부터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는 점진적으로 성취되었다가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에 완성될 것이다. 오늘은 우리의 믿음으로 이 잔치를 벌이고, 믿음으로 죽음을 이기고, 믿음으로 눈물을 닦아주고 수치를 용서해주는, 그 나라의 ‘맛봄’으로서의 누림을 예수 공동체를 통해서 이루어야 할 것이다.
The promise of the kingdom, the new heavens, and the new earth, in which our Lord will return and accomplish His will, has already been given in the Old Testament. This kingdom will be accomplished gradually and will be completed on the day the Lord comes again. Today, through the community of Jesus, we must realize the joy of being the nation’s “Taste Bom” by celebrating this feast in our faith, overcoming death through faith, wiping away tears with faith, and forgiving shame.
-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모압으로 대변되는 대적들에게는 심판의 손이 될 것이다. 아무리 능한 손이라도 하나님이 빠트린 심판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스스로 만든 죄악의 구덩이 일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할 때에 여호와의 손은 교만한 자를 땅바닥에 드러날 정도로 낮추실 것이다.
The hand of salvation of our God, who saves and protects Israel, will become the hand of judgment against the enemies represented by Moab. No matter how skilled a hand may be, it cannot escape the pit of judgment that God has left behind. No, it must be a pit of sin it created itself. When the children of God rejoice, delight, and praise the God of salvation, the hand of the LORD will humble the arrogant so low that they will be laid bare on the ground.
-
오늘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를 바라며 애쓰는 동시에 하나님이 심판 하실 대적의 악을 보며 분노하고 결코 거기에 동조하지 않는 삶을 살 때, 이 마지막 연회가 우리에게 열릴 것이다. 공주야! 폭풍 같은 악(고난)을 허용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 다가오길 기대하시는 것이며, 빈궁한 자가 되고 환란 당한 자가 되었을 때 주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숙하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As we strive today to become those who are pleasing to God, while also living in anger at the evil of the enemy that God will judge, and never condoning it, this final banquet will be ours. Princess, the reason God allows storms of suffering is that He expects us to draw near to Him, and that when we become poor and face trials, we may seek His help and grow in maturity.
-
주께 피하면 단순히 고통만 피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즐거움까지 누리게 된다. 내게 있어 폭풍과 폭양 가운데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나는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새 창조)을 바라보고 사는가? 우리의 깊은 상처와 눈물을 닦아 주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는가?
If we turn to the Lord, we do not merely avoid suffering, but we also come to enjoy joy and delight. What kind of being is God to me, amid storms and violent storms? Do I live looking toward God’s salvation through suffering (a new creation)? Do we remember God’s grace that wipes away our deep wounds and tears?
-
감사기도(1-5)
a.찬양으로 부름:1
b.경고한 성읍의 멸망:2-3
c.피난처 여호와:4-5
여호와의 종말론적 잔치(6-8)
a.민족들을 위한 잔치:6
b.슬픔의 제거:7
c.죽음의 폐지:8
감사와 모압의 멸망(9-12)
a.이스라엘의 응답:9-10a
b.모압의 멸망:10b-12
-
여호와여(1a)
주는(1b)
나의 하나님이시라(1c)
내가 주를 높이고(1d)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니(1e)
주는(1f)
기사를(1g)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1h)
성실함과 진실함으로(1i)
행하셨음이라(1j)
-
주께서 성읍으로(2a)
무더기를 이루시며(2b)
-
견고한 성읍으로(3a)
황무케 하시며(3b)
외인의 궁성으로(3c)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3d)
영영히 건설되지(3e)
못하게 하셨으므로(3f)
강한 민족이(3g)
주를 영화롭게 하며(3h)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이(3i)
주를 경외하리다(3j)
-
주는(4a)
포학자의 기세가(4b)
성벽을 충돌하는(4c)
폭풍과 같을 때에(4d)
빈궁한 자의(4e)
보장이시며(4f)
환난 당한(4g)
빈핍한 자의(4h)
보장이시며(4i)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4j)
폭양을 피하는(4k)
그늘이 되었사오니(4l)
-
마른 땅에(5a)
폭양을 제함 같이(5b)
주께서 외인의 훤화를(5c)
그치게 하시며(5d)
폭양을(5e)
구름으로 가림같이(5f)
포학한 자의 노래를(5g)
낮추리다(5h)
-
만군의 여호와께서(6a)
이 산에서(6b)
만민을 위하여(6c)
기름진 것과(6d)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6e)
연회를 베푸시리니(6f)
곧 골수가 가득한(6g)
기름진 것과(6h)
오래 저장하였던(6i)
맑은 포도주로(6j)
하실 것이며(6k)
-
또 이 산에서(7a)
모든 민족의(7b)
그 가려진 면박과(7c)
열방의 그 덮인(7d)
휘장을 제하시며(7e)
-
사망을 영원히(8a)
멸하실 것이라(8b)
주 여호와께서(8c)
모든 얼굴에서(8d)
눈물을 씻기시며(8e)
그 백성의 수치를(8f)
온 천하에서(8g)
제하시리라(8h)
여호와께서 이같이(8i)
말씀하셨느니라(8j)
-
그 날에 말하기를(9a)
이는 우리의(9b)
하나님이시라(9c)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9d)
그가 우리를 구원하리로다(9e)
이는 여호와시라(9f)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9g)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9h)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9i)
-
여호와의 손이(10a)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10b)
모압이(10c)
거름 물속의(10d)
초개의 밟힘 같이(10e)
자기 처소에서(10f)
밟힐 것인즉(10g)
-
그가(11a)
헤엄치는 자의(11b)
헤엄치려고 손을 폄 같이(11c)
그 속에서(11d)
그 손을 펼 것이나(11e)
여호와께서 그 교만과(11f)
그 손의 교활을(11g)
누르실 것이라(11h)
-
너의 성벽의(12a)
높은 보장을 헐어(12b)
땅에 내리시되(12c)
진토에 미치게(2d)
하시리라(12e)
-
빈궁한 자의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_God, who becomes the fortress of the poor.
사망과 눈물과 수치를 종식시키는 하나님_God end death, tears, and shame.
피할 수 없는 심판의 손길_the inevitable touch of judgment
-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충돌하는 폭풍과 같을 때에 주께서 빈궁한 자와 환난 당한 빈핍한 자의 보장이시며 폭풍 중에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이 땅에 사망에 매인바 되어 주께 나아오지 못한 백성들을 위해 사망 문제를 해결하신 나의 주를 찬양합니다. 주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셨으므로 내가 오늘도 은혜의 보 좌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하겠습니다. 내 과거를 벗기시고 새 창조하실 그 분을 바라봅니다. 교만하지 않고 교활하지 않는 하루를 드리게 하옵소서.
Thank you for being the guarantee of the poor and the needy, the shelter during the storm and the shadow of the flood, when the spirit of the Prophet is like a storm that strikes the wall. Praise be to my Lord, who has solved the death problem for the people who have been put to death in this land and have not come to you. For you have wiped away tears from all your faces and put aside the people's shame from all over the world, so I am boldly going before the throne of grace today. I will remember the faithfulness of my God. I look at the man who will strip me of my past and create a new one. Let us have a day
without pride and cunning.
2026.8.13.thu. Clay
신학 비평//
나는 고난이 사라지기만을 원하는가, 아니면 고난 한가운데서도 죽음과 눈물을 삼키실 하나님의 마지막 승리를 바라보는가 우리의 삶은 예기치 못한 슬픔과 상실, 그리고 죽음의 그늘에 가려질 때가 있습니다. 이사야 25장의 놀라움은 그 어둠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역사의 마지막 장면을 장례가 아니라 잔치로 묘사한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온에서 만민을 위한 풍성한 연회를 베푸시고, 인간의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영원히 삼키실 것입니다.
-
공주야! 그날은 심판의 날인 동시에 축제의 날이란다. 하나님을 거부하며 자신의 힘과 성벽을 의지했던 교만에는 심판이지만, 폭풍과 폭양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다렸던 빈궁한 자들에게는 구원의 잔치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서로 반대되는 두 사건이 아니다. 악을 끝내심으로 약자를 구원하시고, 죽음을 폐하심으로 생명을 완성하시는 하나의 새 창조 사건이다.
-
특히 “사망을 영원히 멸하시며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신다”는 약속은 이사야의 종말론이 단순한 국가 회복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국경만 회복하시는 분이 아니라 죽음 자체를 폐지하시는 분이다. 이 약속은 훗날 그리스도의 부활과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으로 이어진다. 부활은 죽음을 피해 가는 길이 아니라 죽음을 통과하여 생명이 승리하는 하나님의 방식이다.
-
그러므로 교회는 마지막 잔치를 기다리기만 하는 공동체가 아니다. 오늘 여기에서 그 잔치를 미리 맛보게 하는 공동체여야 한다. 우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수치당한 사람을 다시 일으키며, 가난한 자에게 피난처가 되어줄 때 미래의 하나님 나라가 현재 속으로 조금씩 들어온다. 신앙은 천국을 기다리는 일인 동시에 천국의 삶을 앞당겨 살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본문에는 모압의 심판도 있다. 이것을 단순히 ‘우리 편은 구원받고 원수는 망한다’는 식으로 읽어서는 곤란하다.
-
모압이 상징하는 것은 민족 자체라기보다 교만과 자기 의존의 질서다. 그러므로 심판의 말씀은 언제나 먼저 우리 자신을 향해야 한다. 내 안에도 하나님 없이 스스로 높아지려는 모압의 성벽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사야 25장의 중심에는 의외로 기다림이 있다.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믿음은 고난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폭풍 속에서도 마지막 장면을 알고 살아가는 태도다. 지금 눈물이 있다고 해서 눈물이 마지막은 아니며,
-
지금 수치가 있다고 해서 수치가 나의 최종 이름도 아니다. 지금 죽음이 강해 보인다고 해서 죽음이 역사의 승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마지막 풍경은 무덤이 아니라 잔치다. 그러니 폭풍을 만났다고 하나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하지 말자. 폭풍 가운데 피난처가 되시고, 폭양 가운데 그늘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자.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설명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마침내 그 눈물을 직접 닦으시는 분입니다.
-
오늘 내가 할 일은 마지막 잔치가 열릴 것을 믿으며 작은 잔치를 먼저 시작하는 것이다. 눈물 흘리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고, 수치당한 사람의 자리를 내어주며, 교만한 성벽 대신 누군가의 피난처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사망을 삼키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오늘 누군가의 눈물을 닦으며 산다. 그것이 새 창조를 기다리는 사람의 삶입니다.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