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지혜(智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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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그 쇠사슬을 감은 분이 아버님이셨나?"
독고청청은 험준한 바윗길을 산골 소녀처럼
거침없이 걸어가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앞서가는 하향월이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무저갱을 빠져나올 때 보았던 쇠사슬 감은 시체,
그것이 전륜왕 독고홍이었을 줄이야!
'그것이 마지막 인사였나?'
물이 빠지며 넘어간 모습을 떠올리며 그는 하늘을
보았다. 습기찬 눈에 그 초라한 뒷등이 떠올랐다.
독고청청은 갑자기 매봉옥을 보고 말했다.
"손을 내밀어!"
매봉옥은 얼떨결에 시키는 대로 손을 내밀었다.
"두 손을 다!"
매봉옥은 얼굴을 붉히며 나머지 한 손도 내밀었다.
독고청청은 답답하다는 듯 그의 두 손을 잡아
모으고 자신의 무릅어림까지 내려눌렀다.
그러더니 치맛자락을 들고 그의 손에 한 발을
올렸다.
매봉옥은 그제야 그녀가 뭘 하려는 지 깨달았다.
그녀는 옆에 있는 높은 바위 위로 올라가려 하는
것이다.
'말을 했으면...'
자신이 안고 올려줄 수도 있었을텐데...라고
생각하며 그는 또 얼굴을 붉혔다.
가능하지 않은 일인 것이다. 명문의 규수를 어찌
안을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러나 그녀도 규수답지는 않았다.
매봉옥의 발을 밟고 올라서서 힘겹게 바위 위로
오르는 그녀의 치맛속이 고개를 든 매봉옥의 눈에
가득 펼쳐졌던 것이다.
속에야 물론 바지를 입고 있었지만 매봉옥은 자기가
오히려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독고청청은 바위에 오르더니 북쪽을 향해 단정히 두
번 절하고 다시 내려왔다.
"이젠 됐으니까 빨리 가요! 지금은 서로 싸우느라
정신이 없지만 여긴 어쨌든 안전한 장소가 아니예요!"
먼저 돌아서서 다시 바윗길을 헤쳐가는 것이다.
호절이 노대의 등에 업혀 낮게 욕설을 지꺼렸다.
"뱀같은 계집애군! 아버지가 죽었다는데..."
노대가 어두운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대꾸했다.
"지혜로운 자는 원래 차가운 법이지!"
"왜 우릴 구했을까요?"
노대는 간단히 대답했다.
"우리가 필요했을 테니까!"
호절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우리가 여길 지나간다는 걸 알았지?"
앞서가던 그녀가 고개를 돌려 호절을 보았다.
"궁금한게 많은 사람이군! 녹림맹의 모습을
정탐하다가 우연히 당신들을 보고 필요한 일이 있을
것 같아서 구했을 뿐이야! 이젠 알았겠지?"
"알긴 알았지만..."
호절이 기분이 상해 욕을 하려는데 대도오가 먼저
말했다.
그는 독고청청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내게 빚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걸 기억하나
모르겠군!"
그녀는 전혀 두려운 빛없이 그의 눈을 쏘아보았다.
"작은 일을 중히 여겨 큰 일을 망치는 졸장부는
아니라 믿어요!"
대도오는 씩 웃었다. 비웃는 느낌이 강한 그런
느물느물한 웃음이었다.
숨기지 않는 적의가 그 속에 있음을 눈치 챈
하향월이 한 걸음 옆으로 다가섰다. 안소가 그 옆으로
비스듬히 나섰다.
그리 넓지않은 바위 투성이 길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안됐지만 나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내키는 일을
더 소중히 여기는 졸장부라서..."
짝-!
독고청청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웬일인지 하향월은 말리지 않았다.
자기 오른 손을 바라보며 대도오가 말했다.
"하지만 이건 보복이 아니라 네 아버지를 대신해
내리는 교훈이다!"
돌아서서 가는 대도오의 등을 독고청청은 분노가
가득찬 눈으로 노려 보았다.
"시선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조장은 백 번은
죽었겠군!"
호절이 통쾌한 지 빙글거리며 웃었다.
대도오는 돌아선 채 짧게 말했다.
"네 시선도 포함된 말이냐, 호절?"
호절은 얼굴이 굳었다.
어느 사이에 그에 대한 원한은 까맣게 잊혀지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이를 갈며 주먹을 흔들었다.
"내가 그렇게 볼 때는 등허리에 칼이 박혀있을 줄
아쇼! 화웅의 복수만하면 그 다음은 조장차례야!"
독고청청이 비웃었다.
"욕을 하면서도 조장, 조장하는 걸 보니 무슨
원한인진 몰라도 갚긴 틀렸군!"
호절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냄새나는 계집년, 입이 찢어져 죽고싶으냐?"
순간 그는 섬뜩한 느낌이 목을 찌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동공에 하향월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확대되어
비춰졌다.
하향월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네가 함부로 욕을 해도 좋을 신분이
아니다!"
호절의 목을 누르고 있던 손톱을 슬쩍 그어
목둘레로 돌리며 그는 다시 말했다.
"두 번 용서는 없다!"
호절은 안색이 새파랗게 변해 말을 잊었다.
매봉옥은 도무지 이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참 후에 그가 노대에게 물었다.
"조장이 뺨을 때리는 건 보고 있었으면서 왜 욕하는
건 참지 못하죠?"
하향월의 이해가지 않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었다.
노대가 슬쩍 웃었다.
"뺨은 교훈이지만 욕설은 모욕이기 때문이다.
조장은 이유있는 행위를 했고 호절은 이유없는 행위를
한거야!"
앞서 가던 하향월이 고개를 돌려 노대를 잠시
보았다.
그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을 매봉옥은
놓치지 않았다.
길은 없었지만 그들은 갈 수 밖에 없었다.
싸움터에서, 구륜교든 철기맹이든 그들의
세력권에서 최대한 멀어지는 것만이 그들의 살
길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대로는 그 어느 쪽과도 싸울 수 없다는
것을, 아니 뭔가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하향월일행과 합류한지 사일째 되던 날.
그들은 철기맹을 공격하러 가는 구륜교의
일대(一隊)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곳은 구륜교와 철기맹을 연결하는 일반적인
관도를 크게 벗어나 과거의
서역교통로(西域交通路)였던 주천(酒泉)을 지나가는
관도에서였다.
철기맹과 구륜교를 대신한 종남파와 녹림맹의
싸움은 어제의 철기대와 녹림맹 기마대의 정면 충돌로
촉발이 되어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는 식으로
점점 격화되어가고 있었다.
더구나 그것이 녹림맹이 예상치 못했던
격돌이었다고는 하지만 망해가는 철기맹의 졸개들에게
거의 전멸당하는 모욕을 받고서야 녹림맹
수뇌들로서는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냉희빙은 정면으로 철기맹을 공격해 일거에
밟아버리겠다는 결의를 보였고, 전력을 철기맹이
위치한 난주 부근에 집결시켰다.
그들이 마주친 백여명의 구륜교무리 또한 거기 가는
길이었는데, 일반적인 관도를 택하지 않은 것은
관(官)의 주목을 받지 않기 위해 분산되어 가라는
지시 때문이었다.
아무리 무림이 무법지대라지만 천여명 가까운
대규모의 무리가 길을 가면 관(官)이 손놓고 몰라라
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관의 체면을
살려주는 한 방도(方道)가 되기도 했다.
무리를 이끌고 있던 통천원 강한은 미소를 흘렸다.
'재수가 좋으려니 이런 경우도 있군!'
슬쩍 뒤에 도열한 이백여 수하를 본다.
'하향월이 아무리 고수라도 이 인원 앞에서야...'
다시 정면을 보며 호통을 치는 것이다.
"하향월, 네 잘못을 시인하고 어서 꿇지
못하겠는가?"
하향월이 쓴 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일사자, 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는 것인가?"
강한이 그의 동작에 잠시 찔끔 했다가 다시 뒤에 선
수하들을 생각하고 용기를 얻어 호통을 쳤다.
"교주를 시해하려 시도했다가 실패하자 앙심을 품고
소교주를 납치한 죄를 인정 않는단 말인가? 옆에
증거가 있는데도?"
독고청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향월은 어이 없다는 듯 그를 보다가 툭 내뱉었다.
"그 교주가 가짜라도?"
강한이 흠칫 놀라며 잠시 경악의 빛을 감추지
못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급하니 이제는 별 핑계를 다 대는군! 천하의
하향월이 고작 그런 인물 밖에 안 되었던가?"
하향월이 분노해 눈을 치켜뜨며 외쳤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위인인지 아닌지는 네 뒤에
있는 교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소교주가 여기 아무
제약 없이 있는데도 내가 거짓을 말한다 우길
것인가?"
과연 그 말에 구륜교도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강한은 난처한 빛을 보이기 시작했다.
독고청청이 나서서 그를 손가락질 했다.
"교주가 바뀌었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야!
강한, 넌 알면서도 그러는 거야!"
강한의 안색이 변했다. 우선은 놀라고 부끄러운 듯
하더니 이내 분노한 빛으로 변해 그 원숭이 같이
조그만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하향월, 넌 정말 천인공로할 짓을 했구나!
소교주에게 무슨 약을 썼길래 정신이 희미해 지신
것이냐?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다."
뒤를 돌아보며 호통을 쳤다.
"배교자(背敎者) 하향월을 처단하고 소교주를
구하라!"
그러나 강한에 비하면 하향월의 구륜교내 인망은
훨씬 두터웠다. 교도들은 눈치만 볼 뿐 선뜻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 때, 독고청청이 노대에게 다가가 귀에 뭔가를
속삭였다.
노대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머뭇거렸다.
강한은 이젠 펄펄 뛰었다.
"모두 저 배교자의 말을 믿고 명령을 거역할
셈이냐? 교의 규칙을 어기고 모두 배교자가 될 셈은
아니겠지?"
구륜교의 규칙은 엄했다.
더 상위의 명령이 아니고서는 그들 중 가장 지위가
높은 자의 명령은 교주의 명령과 동격시 되는 것이다.
하는 수 없이 교도들이 무기를 세우기 시작했다.
일제히 덮쳐들려 하는 것이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즐감하고갑니다.~~~~
감사...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해요
즐감
ㅈㄷㄱ~~~~~~~~~~```````````````````
잘 읽었습니다^^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