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독고청청에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강한을 정면으로 보았다.
노대의 입이 벌려지지도 않았는데 강한의 귀에
노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난 꾸짖으려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하려 한다!>
강한이 크게 놀라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의 귀에 다시 말이 들렸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그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놀랄 것 없다. 네 소교주의 말을 전하는 것
뿐이다.>
그제서야 강한은 방금 소교주와 무언가를 속삭였던
노대를 보았다.
이 초라한 중늙은이가 일갑자(一甲子)이상의 공력이
있어야만 시전할 수 있는 전음술(傳音術)을 할 줄은
몰랐다. 그는 절세고수를 만났다고 생각하고 등골이
오싹해졌다.
노대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강한은 표정이 수차례 변하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배교자 하향월인줄 알았더니 그냥 촌부(村夫)와 그
손녀였구나! 너희들은 혹시 의심가는 것이 있느냐?"
구륜교도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그 중
눈치빠른 몇몇이 강한의 말에 대답했다.
"저희들은 아까 전부터 촌부를 데리고 왜
그러시나하고 궁금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교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쪽저쪽에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강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길이 바쁘니 빨리 가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교도 중의 몇몇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들 말은 상태가 좋지 않아 길을 가는데 방해만
되니 여기 버려두고 다른 사람과 같이 타도록 하라!"
지목 받은 교도들이 말을 갈아타고 그들은 다시
먼지를 일으키며 하향월 일행의 곁을 지나
사라져갔다.
그들 중 몇몇은 소교주와 하향월을 지나치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가는 것이었다.
대도오가 고개를 갸우뚱 하며 노대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조화속인가?"
노대가 난처한 표정으로 자신도 역시 잘 모르겠다는
시늉울 했다.
"글쎄요, 저도..."
대도오는 피식 웃으며 노대의 어깨를 툭치고
구륜교도들이 남겨놓은 말을 향해 다가갔다.
"어쨌든 잘됐군! 당분간은 쾌적한 여행을 하겠어!"
"오래는 아닐거야!"
대도오는 말에 훌쩍 올라 타고는 독고청청을
보았다.
"무슨 소린가, 그게!"
독고청청이 하향월의 부축을 받아 말에 오르며
대답했다.
"그 원숭이가 왜 물러갔다고 생각해? 이런 호의까지
베풀면서!"
대도오는 심상하게 대꾸했다.
"네가 무슨 말을 했겠지!"
그녀는 약간은 놀란듯한, 혹은 감탄했다는 듯한
빛으로 그를 보았다.
"돌머리인줄 알았더니 아주 돌은 아니었군! 말
대로야."
매봉옥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무어라고 했는데요?"
독고청청은 그를 힐끗 바라보다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내가 구륜교를 다시 찾으면 살려준다고 했지."
하향월이 갑자기 무뚝뚝하게 내뱉었다.
"그럴 수 없어! 그 놈은 배교자다. 배교자의 종말은
죽음밖에는 없어!"
매봉옥은 아직도 믿어지지가 않은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독고청청에게 물었다.
"그 정도에 순순히 물러났을까요?"
"물론 물러날 사람이 아니지. 교도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니까 그냥 하는 수 없이 물러선 것이야. 거기에
살려준다는 말이 마음을 결정하는데 약간 도움이
되었을거야! 적어도 최악의 경우가 닥치더라도 자기
살 길은 마련해 둔 셈이니까."
매봉옥은 그 말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지혜롭다기 보다 그렇게 냉정하게 사람을 본다는 일이
자신에게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는 독고청청이 언제 그 말을
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럼 노대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노대가 가장 의심스러웠다.
그리고보니 그녀가 노대에게 귓속말을 할 바로 그
때 밖에 그럴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그러나 그도 입을 벌리지 않았잖은가! 그렇다면
노대는 전음술이라도 썼다는 말인가?
'도대체 노대는...'
그는 노대가 대단한 내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전음술을 쓸 정도로 고수라고는 오늘
처음 알았다.
그 내력이 궁금해 죽을 지경이 되었지만 아마도
노대는물어도 대답을 않을 것이다.
매봉옥은 의문을 가슴에 간직해 두는 수 밖에
없었다.
'나도 그렇지 않은가!'
사실 그도 제대로 내력을 밝힌 적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일행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보면 볼 수록 묘한 일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왜, 어떻게 여기 같은 길을
가게 된 것이지?'
자신은 그렇다 쳐도 일행에는 이상한 인연, 이상한
인물들이 가득있었다.
노대!
이름도 내력도 알 수 없는 숨겨진 고수,
'노대(老大)'라는 말은 '노인네' 하는 비칭(卑稱)이지
이름이 아니었다. 뭔가 이유야 있겠지만 그런 고수가
하급무사로 떠도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호절!
대도오에게 사문의 원한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줄창
따라오는 꺽다리.
'태도는 거칠지만 아직도 조장에게 복수하려고 하는
것일까?'
매봉옥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안소!
한 때는 그들의 직속당주였지만 이제는 묘한 입장이
되어버렸다. 당주임을 주장하지도 않고 그저 노대와
대도오가 결정하는 대로 따르며 운기준을 모시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운기준이 있었다!
아마 안소보다 더 묘한 입장일텐데...
'이상한 사람이야!'
매봉옥은 맹주가 미쳤다는 말을 들었던 것을
기억했다.
과연 운기준이 미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상한
사람임에는 틀림 없었다.
정신이 깨어난지 이틀이나 지났는데 그는 한 사람씩
얼굴을 보고는 자세한 사정은 묻지도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인 채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이다.
어제까지의 원수격인 독고청청을 보고도 그의
무심한 태도는 여전했다.
독고청청!
그녀도 이상한 인연으로 동행하게 되었지만
매봉옥에게는 신비(神秘), 그 자체였다. 게다가
운기준과는 원수같은 사이아닌가!
그녀 역시 운기준을 본체만체 하고 있는 것이다.
매봉옥이 보기에 일행중 가장 정상적인 사람은
우습게도 구륜교 최고의 고수인 하향월이었다.
익선관 밖으로 흩날리는 백발에 길게 귀까지 뻗친
백색의 눈썹, 그리고 가슴까지 내려오는 흰 수염!
'도대체 나이가 어떻길래 저렇게...'
얼굴로 봐서는 나이를 짐작할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비쩍 말라 대꼬챙이 처럼 보이는 모습에 긴
손가락과 손톱은 철기맹에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가 여기서는 가장 평범한 내력이라니!
그는 몰락한 가문의 마지막 주인을 모시는 충복이나
다름없는 입장이 되어있는 것이다.
'이 일곱명이 모인 이유는 결국...'
대도오 한 사람에게 걸려있었다.
가장 평범한 모습의 이십대 청년이, 그것도
하급무사를 약간 벗어난 일개 조장이 이제는 무언
중에 일행의 지휘자처럼 되어 버렸다.
매봉옥에게는 그가 불합리의 덩어리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무공도 별로이면서 고수는 도맡아 죽이고, 괴상하게
비뚤어진 성격인데 이상하게도 매력이 있다. 자기보다
훨씬 고수들을 상대로도 당당하기 짝이없지 않은가!
매봉옥은 연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세상에는 정말 이해가지 않는 일들이 많아!'
그는 이런 일들에 대해서 나중에 노대와 이야기해
봐야지하고 생각했다.
주천을 지나면서는 대부분 여정이 황량한
들판이었다. 이제 반나절에 하나꼴로 우물을 중심으로
한 작은 마을만이 있을 것이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서역과 교통하는 대상들의
휴식처가 되었을 텐데 이제는 몰락하여 목초지를 따라
양을 몰고 다니는 유목민들과 변경으로 가는 군사들이
들려가는 곳이 되었을 뿐이었다.
변경의 겨울은 빨라서 이제 시월이 중반을 갖넘었을
뿐인데 찬바람이 옷깃 사이를 파고들어왔다.
하향월은 백발을 날리며 험한 바위산들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관도의 끝을 바라보았다.
쓸쓸한 풍경이었다. 그들은 그 풍경만큼이나 쓸쓸한
길, 목적지도 없는 길을 쫓기듯 가고 있는 것이다.
옷깃 속으로 파고드는 바람보다 더 차가운 바람이
그의 마음 속을 스쳤다.
그때 노대라 불리던 중늙은이가 먼 곳을 가리키며
말하는 것이 들렸다.
"저기 저 장사꾼들이 좋겠군!"
그가 가리키는 길 끝에 등에 짐을 진 몇몇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하향월은 그들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청해나 신강으로 차와 소금을 팔러가는
밀수꾼들일 것이다.
차와 소금은 국가의 전매사업(專賣事業)에 들어가는
품목이라 개인이 거래할 수 없는 품목이다. 게다가
이국(異國)과의 거래는 국가가 오랑캐들을 위협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기에 더구나 엄한 금지사항이 된다.
그만큼 귀한 값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밀무역상들이 가장 선호하는 거래품이 또한 차와
소금이었다.
신강과 청해같은 대규모의 목초지에서는 차와
소금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노대는 무엇때문에 그들을 가리킨 것일까?'
독고청청이 노대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동감을
표시했다.
"그래요! 당신이 말하세요."
노대는 전부 말에서 내리게 하고 그 장사꾼들에게
끌고가 잠시 흥정을 하더니 말 여덟 필을 주고 옷가지
몇 벌을 받아 돌아왔다.
매봉옥이 눈이 둥그레져서 물었다.
"지금 뭘 한거죠?"
노대는 그냥 웃었다.
"별것 아냐!"
그래도 매봉옥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독고청청이
비웃었다.
"멍청하긴...원숭이가 우리에게 말을 왜 줬다고
생각해?"
매봉옥은 독고청청에게는 아무리 당해도 화를 낼
수가 없었다. 그저 얼굴만 붉힐 뿐이었다.
그녀가 설명했다.
"우리를 알아보기 쉽게 준거야! 자기가 다시 오면
소용이 없으니까 녹림맹에 연락을 했겠지. 말을
타고가는 여덟 명을 잡아 죽이라고 말야! 말을 계속
타고 갔으면 녹림맹 애들이 금방 찾겠지! 지금은
군사들의 교대시기가 아니니 이 관도에 말을 타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을테니 말이야!"
매봉옥은 무안해 하다가 억지로 말을 했다.
"그럼 옷을 받은 것은 변장하려 한 것이겠군!"
그녀는 다시 비웃었다.
"너는 정말 둘을 가르쳐 줘도 하나도 모르는 구나!
말을 준 것이 녹림맹 무리가 찾으라고 준 것이라면,
당연히 저 장사꾼들이 잡히겠지! 그들은 사실대로
우리 얘길 할테고...그런데 잡히려고 그 옷을 입는단
말이야?"
"그럼 그 옷은 왜 받아..."
"그냥 말을 주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어?
둘째로는 녹림맹이 다시 이 옷을 입은 여덟 사람을
찾도록 만드려는 거야!"
하향월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걸 짐작하는 소교주도 놀랍고 그렇게 행동한
노대도 놀랍군! 두 사람은 자세한 말도 나누지 않았지
않았던가!'
갑자기 한 사람이 그들을 비웃었다.
"다 쓸데없는 짓이다!"
중인들의 이목이 그 말을 한 사람에게 모였다.
운기준이었다.
그는 입꼬리를 일그러뜨려 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첫댓글 즐감하고갑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감사해요
즐감
ㅈㄷㄱ~~~~~~```````````````
재미 있게 읽고 갑니다
항상 건강 하고 행복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