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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의 참뜻과 주일성수
한국교회는 주일성수의 아름답고 위대한 전통이 있습니다. 기독교 복음이 한국에 전해진 이후에 교회는 주일성수와 우상타파, 순교적 믿음이라는 아름다운 전통을 우리 후대에게 물려주었습니다. 특히 주일 성수는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실천적으로 대변해주는 대명사요 상징이 되었습니다. 참다운 그리스도인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하는 순결하고 순교적 신앙에 자신의 모든 인생을 걸게 됩니다. 그 결과 어떤 손해와 희생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수 없는 신앙의 지조와 절개로서 주일성수 정신을 지켜내어 왔습니다. 한국교회의 성장과 부흥, 발전은 분명히 이와 같은 굳은 절개로서 신앙을 사수한 헌신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후대에 물려주어야 하는 사명과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일면도 있습니다. 그것은 주일성수를 지키되, 복음과 은혜에 입각한 헌신으로서가 아니라, 율법주의와 기복주의와 관련하여 주일을 성수하는 올바르지 못한 관행입니다. 이런 면들이 겉으로는 신앙처럼 보일 수는 있어도, 참다운 복음적 헌신의 결과로서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자기 의’의 결과를 초래하고,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바리새적 신앙이 되도록 만들고 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것은 십계명에서 발원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완성된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먼저 주일이 (1)어떤 날이며, 주일을 (2)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율법적 규범으로서 ‘안식일주의자(제칠일안식교처럼)’가 되거나, 주일을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무형식주의자들’이 될 것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되 율법적 의로서가 아닌, 참다운 신앙헌신의 실천과 열매로서 드리는 것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답고 복된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참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주일성수를 지키지 못하면 구원받지 못하는가?
우리의 의식을 가장 강하게 지배하고 있는 어떤 사고가 있다면 그것은 주일을 올바로 성수하지 못하면 복을 받지 못하고 구원도 받지 못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하는 사고일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는 진실일 수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의무라는 사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늘 백성으로 이 세상을 힘 있게 살아가는 복됨이며,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중요한 증거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주일성수를 미신적, 율법주의적 관점에서 지키는 경우를 발견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주일을 경히 여기고 등산가서 번개를 맞았다거나, 차를 타고 가다가 낭떠러지에 굴러 떨어졌다는 이야기(?)에 익숙한 신앙인들이 주일을 지키는 것을 화를 면하고 복을 불러들이는 근거로 이해하거나, 혹은 자신의 의로움을 강화시키는 요소로 보고 있는 경우들은 드물지 않습니다.
당연히 주일성수 자체가 구원의 근거가 되지 못합니다. 주일 성수는 구원 받은 사람의 감사와 그에 따른 헌신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가의 여부에 따라 그 사람의 구원과 믿음의 진실성을 추적할 수는 있을지라도, 반대로 주일성수가 구원을 결정하는 요소가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배제해야할 두 가지 극단적인 입장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로, (1)주일성수를 해야지만 구원받는다는 율법주의적 입장과 둘째로, (2)주일 성수는 우리의 구원과 전혀 상관없다는 입장입니다.
2.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
주일 성수에 있어서 가장 큰 오해와 혼돈이 있다면,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일 것입니다. 물론 미묘한 관점 차이에 따라서 답이 달라질 수 있지만, 정답부터 말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복음 안에서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입니다. 물론 이 말에는 올바른 정의와 설명이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면 신약 성도인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하는 안식일은 구약의 안식일과 어떤 점에서 연관되어 있고 어떤 점에서 다른지를 살피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a. 안식일의 의미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에서 출발한다.
안식의 원어적인 의미는 ‘중지’입니다. 이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거나 놀고 즐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생업이든 오락이든 엿새 동안 우리가 몰두해 온 모든 일을 중지하고, 인간의 본업인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몰두함으로 인간의 원래적인 질서와 존재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물론, 안식일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안식일 제정을 통해서 ‘피조세계에 대한 자신의 주권을 인정’받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이 의미는 인간에게는 전혀 유익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b. 우리로 하여금 참된 인간의 위치와 역할을 깨닫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안식일 규례를 명하지 않으셨으면, 인간은 자신이 추구하는 일, 오락 등에 함몰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사실 그러한 여러 일들은, 인간들의 생존과 복지를 위하여 주신 일들이기는 하나, 그것들의 본질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주신 일들에 불과합니다. 그것들이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도록 우리에게 맡기시고 허락된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우리 자신의 탐욕과 즐거움을 위하여 사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인간의 올바른 관계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이와 같은 부조리함에 빠질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서 나머지 것들이 올바른 질서와 우선순위를 갖게 하시도록 안식일을 주신 것입니다.
즉, 안식일을 명하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인간에게 명해진 최우선의 임무이며, 이 우선순위에 결코 다른 일과 관심이 개입되거나 결부될 수 없음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그 자체가 최고의 관심과 즐거움과 목적이 되어야 함을 보이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루를 거룩하게 완전하게 분리하여 오직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만 드릴 것을 명하십니다.
c. 안식일 규례의 제정은 합리적이며 인간을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제정하여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 규례는 인간을 결박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을 참 인간되게 하시고 진정한 자유를 주시기 위하여 허락하신 명령입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하나님만 섬김으로 피조물이나 피조세계의 어떠한 일에 종속되지 않고 그것을 다스리고 관할할 수 있는 올바른 지위와 힘을 허락하시기 위하여 주신 규례입니다. 위대한 청교도였던 토마스 왓슨(Thomas Watson)은 하나님께서 '하루'만 우리의 생업을 위하여 주시고 나머지 '엿새'를 예배드리는 종교적인 날로 제정하셨다 하더라도 피조물된 우리는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루만 안식일로 정하고 나머지 6일은 우리의 생업을 위한 날로 허락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안식일 규례는 하나님께서 그의 종 된 인간을 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d. 안식일 규례는 항구적인 규례이다.
안식일 규례는 율법이 제정되기 이전의 규례입니다. 이 의미는 모세의 율법 이전에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이고 영구적이고 항속적인 규례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히 이레 중 하루를 안식일로 택정하여 하나님께 거룩하게 지키도록 명하셨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21장 7항)
그러므로 안식일 규례는 특정 대상(유대인과 같은)에게, 혹은 특정 시기(구약시대)에만 해당하는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규례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거의 모든 인류가 보편적인 의미에서 일주일에 하루를 안식하고 있다는 것이 이 점에 대한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따라서 안식일 규례는 그리스도인이든 그리스도인이 아니든 보편인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복된 명령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집착하는 것은 안식일규례의 본질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세부규정이나 준칙을 지켜야 되는가, 그렇지 않아도 되는가에 대한 여부들입니다. 결국 안식일 규례에 대한 오해와 무지는 신약성도들에게 안식일에 대한 두 극단적인 오해를 낳게 하였습니다.
3. 안식일에 대한 극단적인 두 견해(오해)
안식일이 유대인만을 위한 규례이냐, 아니면 전 인류를 위한 규범이냐에 따라서 두 극단적인 입장으로 나눠집니다.
가. "안식일은 끝났다"
더 이상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고, 모든 날(평일)이 안식일이다. 신약성도는 더 이상 안식일 규례를 지킬 필요가 없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율법주의에 얽매이는 것이다.
나. "안식일은 영원한 규례이다"
이것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지켜져야 한다. 구약의 모세 율법에서 기록된 대로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둘 중에 어떤 견해가 옳은 것일까요? 둘 다 부분적으로 맞고 둘 다 부분적으로 틀렸습니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두 견해 다 부분적인 면만 말하고 있기 때문에 틀린 견해입니다. 안식일은 ‘주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구약의 규범으로서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구약의 안식일의 규범은 신약에서는 폐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이 규범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율법적 규범으로서 안식일은 우리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안식일의 영적 의미, 즉 신학적 의미와 정신은 그대로 계승됩니다. 아니, 오히려 주일을 통해서 완성되었고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일’입니다. 따라서 어떤 측면이 폐기되었고 어떤 측면이 계승되고 발전되었는지에 대하여 명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우리는 위와 같은 두 견해에서 나타나는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참된 성경적인 입장은 무엇일까요?
4. 그렇다면, 어떻게 안식일이 주일이 되었나?
a. 안식일인가 주일인가?
신앙고백서 21장 7항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날은 창세로부터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한주간의 마지막 날이었으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로는, 한 주간의 첫째 날로 바뀌어 졌다. 성경에는 이날이 주의 날로 불리어져 있다. 이날은 세상 끝 날까지 기독교의 안식일로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안식일이 주일로 바뀐 것이 아니라, 단지 ‘호칭’이 바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주일, 즉 주님이 부활하신 날에 안식일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 규례에 부속된 율법의 세부조항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폐지되었지만, 참다운 언약적 규범과 정신으로는 계속 유지되고 계승됩니다.
b. 안식일은 의식법이 제정되기 훨씬 이전에 제정되었다.(창 2:2,3)
안식일 규례가 기록된 십계명은 ‘의식법’이 아니라 ‘도덕법’(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한 규범이라는 의미)입니다. 이 의미는 도덕법으로서 십계명 규례들은 신·구약백성을 망라하고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켜야할 영원한 규례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테면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폐하였다고 해서, 우리가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억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십계명의 규례들을 깨뜨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신 것입니다(마 5:17).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오직 여호와만을 섬기며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발상은 이단 외에는 아무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은 십계명의 규례들을 깨뜨리시기 위함이 아니라, 십자가의 화목 안에서 성취하시고 은혜와 사랑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행하도록 회복시키기 위함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안식일에 관한 세부적인 의식 규례들은 모세를 통해서 정한 의식법에 해당하는 것이지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하는 의무는 도덕법에 해당하는 것이므로 신약백성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러나 이 의무들은 율법적 규범으로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은혜의 법 안에서 지켜야 합니다. 율법적 규범이란 안식일을 지키는 세부조항(예를 들어서 안식일에 나무를 패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같은)들 중 하나라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되지만, 은혜의 법은 그렇게 성도를 구속하지는 않습니다. 은혜의 법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행하게 하는 것으로서 율법적 의무와 같은 죄책과 두려움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감사와 헌신, 사랑으로 주일을 성수하는 것입니다.
c.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을 주의 날(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에 지켜져야 하는가?
한주의 첫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은 초대교회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도 더 이상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어떤 특정일을 안식일로 지켜야 한다는 규정에 얽매이지도 않습니다(롬14:5, 골2:16). 단지 일주일에 하루를 안식일로 지키라는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안식일은 구속과 회복에 대한 의미로서 매우 중요한 날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사건을 통해서 완성되었기 때문에 부활하신 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 자체를 제거하신 것이 아니라 본래의 위치로 회복시켜 주신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신약성도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방식은 바리새인이나 유대인과 같은 율법주의자들이 지키는 방식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지키는 것입니다. 그 근거는 이것입니다. 안식일이 애굽에 있었던 히브리백성들을 해방한 날에 대한 기념이라면, 주의 날은 죄인을 모든 사망과 죄의 권세에서 구원하신 날에 대한 기념일이기 때문입니다.
5.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주일을 지켜야 하는가?(원리적인 측면에서)
a.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안식일은 주님께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신앙고백서 21장 8항) ‘거룩하게 지키다’라는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압축하여 표현하자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게 된 백성들의 신분으로서 하나님께 드려야할 온전한 영적의 상태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거룩하게 지킨다’는 이 말은 ‘원리적’로 다루어야 하며, 성도의 ‘중심문제’이지 어떤 세부 조항(어떤 것은 해도 되고, 어떤 것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은)의 차원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그렇다고 세부준칙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b. 신약적 주일성수의 규범은 ‘원리적’으로 제시되었다.
신약에서는 어떤 본문도 주일성수에 대한 세부규범을 제시주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되었다면, 신약성도는 여전히 율법주의적으로 그 조항들에 매여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성수에 대한 세부 내용을 인위적인 규범으로 정하는 것은 성경에서 제시하지 않은 또 다른 규범을 만드는 것으로 성도로 하여금 복음과 은혜의 감격에 따라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적 규범에 의하여, 죄책과 두려움으로 살게 만드는 결과를 반드시 초래하게 됩니다.
c. ‘중심’이 중요하다.
신앙고백서 21장 8항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를 위하여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을 합당하게 준비하고, 그들의 일상적인 일들을 미리 정돈한 연휴에, 그날에 하루 종일 그들 자신의 일과, 그들의 세상적인 일에 대한 말이나 생각, 그리고 오락을 중단하고 거룩하게 안식할 뿐만 아니라 모든 시간을 바쳐서 공적으로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고 부득이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일과 자비를 베푸는 일을 해야 한다.”
위에 상기된 내용은(세부준칙에 대한 내용일지라도) 원리적인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이미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어떤 세부규정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즉 우리의 중심이 하나님만을 온전히 섬기는 원리로서 확정이 되었다면, 마땅히 이러 저러한 내용으로 주일을 지키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하는 내용입니다. 즉, 어떤 것을 하면 죄고, 어떤 것은 죄가 아니고를 따지는 것은 이미 원리와 상관없는 논의가 됩니다. 예를 들어서 주일에 산으로 놀러가도 죄가 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이미 중심을 상실한 의미입니다. 물론 주일에 산행을 하는 것은 그 자체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목적이 정당하고 필수적인 일이라면 말입니다.(예를 들어 예배당이 산위에 있다는 것과 같이...)
그러나 우리는 주일에 산행을 가는 것이 죄냐 죄가 아니냐를 논하기 이전에, 과연 그것의 목적이 무엇이며 그가 과연 하나님의 백성으로 참된 구원의 은혜 안에 거하는 거듭난 사람인가를 물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의 문제가 죄냐 죄가 아니냐를 따지는 법적 규정의 여부를 따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중심이 그리스도 중심, 하나님 중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과연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지금 나의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주일을 보내야 하는가? 내가 중심인가, 하나님이 중심인가?’의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는 방향으로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6. 주일성수에 대한 실제적 지침
안식일 준수에 대한 극단적인 입장과 유사한 측면에서 주일성수와 관련하여 지양해야할 입장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가 다루어야 할 참된 주일성수는 어떤 것인가를 논하기에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
가. 율법주의적 입장
주일을 지키는 것 자체가 구원의 근거와 내용이 된다는 입장
나. 신앙주의적 입장
믿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는 것은 행위적 공로를 조장하기 때문에 배격해야한다는 입장
다. 미신적 입장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 벌을 받고, 주일을 잘 지키면 반드시 복을 받기 때문
우리의 입장은 이 세 가지 입장 모두 거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일성수는 하나님의 창조주 되심이라는 측면, 그리스도의 구속의 완성이라는 측면, 성령 안에서 원리적으로, 중심적으로 헌신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준수되어야 합니다. 즉 삼위일체적·신앙고백의 입장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로서 표현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성경적인 입장입니다. 여기서 박용기 목사가 서술한 내용을 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에 서술될 내용이 개혁교회가 수납해야할 가장 보편적이고 건전한 내용이라고 이해되어 집니다.
※ 박용기 목사가 제안하는 주일성수의 원리와 방법
가. 새로운 창조와 구속사역을 ‘기념’하는 날로서 성수해야 한다.
-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안식일을 기념하듯 신약 성도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구속사역의 성취와 완성을 기념해야 한다.
- 주일은 하나님의 구속사역과 능력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기뻐하는 날입니다.
나.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고백으로 예배하는 날로 성수해야 합니다.
- 주일성수는 구원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공동체로 모여서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날로 지켜야 합니다.
- 주일성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한 몸 된 교회로서 표현되어야 한다.
라. 자신들의 영적인 성장의 날로 지켜야 합니다.
- 주일성수는 반드시 성도 각 사람의 영적 성장과 관련되어야 한다.
마. 이웃을 내 몸처럼 돌아보는 구제와 봉사의 날로 지켜야 합니다.
- 주일성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날로 표현되어야 한다.
바. 미래에 이루어질 영원한 안식을 소망함으로 지켜야 합니다.
- 주일성수는 온전한 안식이라는 실재를 바라보는 청사진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7. ‘주일’과 다른 ‘평일(육일)’과의 관계
특별한 열심을 갖고 있는 신앙인들 중에는 ‘주일만 거룩하게’ 지키는 분들이 있습니다. 주일은 너무 너무 거룩한 장로, 권사, 집사님인데 평일이 되어서 자신의 가정과 일상으로 돌아오면 세상 사람과 동일한 모습을 나타내는 분들은 신자나 불신자에게 지탄을 받습니다. 이런 분은 그나마 주일이라도 거룩하게 지키고 있기 때문에 평균점이라도 얻게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은 주일의 올바른 의미를 완전히 오해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일 성수는 반드시 나머지 ‘육일’의 건전하고 성실한 땀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a. 주일과 나머지 엿새의 관계
토마스 왓슨은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는 것과 주일과의 올바른 관계를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성도가 직업 없이 살면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종교’는 결코 ‘게으름’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안식일(주일)을 거룩하게 준수하는 것만큼 엿새 동안 힘써 일하는 것도 거룩한 의무입니다. 단지 방향과 기능이 다를 뿐입니다.
b. 그렇다면 주일이 더 거룩한가, 평일이 더 거룩한가?
둘 다 거룩합니다. 주일은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한 날이 되어야 하고, 평일은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거룩한 날이 되어야 합니다. 방향과 기능이 다른 것입니다. 주일은 나 자신을 오직 하나님께만 맞춤으로 거룩과 성결의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을 말하며, 평일은 그와 같은 헌신과 사명으로 세상을 향하여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은 주일대로 거룩하고, 평일은 평일대로 거룩한 것입니다. 이렇게도 설명될 수 있습니다. 주일의 거룩함이 무너지면 평일의 거룩함도 무너지게 되고. 평일을 거룩한 사명자로서 살지 못하면, 주일의 거룩한 제사장 됨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고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8. 결론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된 참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식일을 경히 여기는 것은 현저하게 구원받음의 증거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준수하는 안식일은 유대인들과 같이 율법주의에 근거하여 준수하지 않습니다. 그 증거가 더 이상 안식일을 토요일로 지키지 않고 주일로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이 의미는 이미 충분히 위에서 다루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을 엄숙하게 지키지 않아도 우리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주장을 배격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일로서 주일을 지키는 것이 마땅한 의무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의 중요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참고도서>
김홍만 아더핑크(공저), 주일성수와 십일조, 도서출판 옛적길
박용기, 그리스도인의 주일성수, 예루살렘
이상원, 21세기 십계명 여행, 도서출판 토기장이
G.I 윌리암슨,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강해, 개혁주의신행협회
토마스 왓슨, 십계명 강해, CLC
글쓴이: 이재현 목사
/출처ⓒ† : https://cafe.daum.net/water2432/BvqI/384, 2021. 0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