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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8:1
우리는 본능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공과 명예, 물질적 풍요를 추구합니다. 그러나 선지자는 세상 면류관이 얼마나 덧없고 쉽게 무너지는지를 폭로합니다. 사마리아의 화려함과 유다 지도자들의 종교적 권위조차 하나님 앞에서는 떨어지는 꽃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 공주야! 사람들이 망하는 길로 갈 때 어느 쯤엔가 자신이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을 알까 궁금해진다. 사람이 망하는 가장 큰 길은 무엇일까? 피할 수만 있다면 그 길을 피하고 싶지 않은가?
We instinctively pursue visible success, honor, and material abundance. However, the prophet exposes how fleeting the crown of the world is and how easily it crumbles. Even the splendor of Samaria and the religious authority of the leaders of Judah are but flowers that fall before God. What are we pursuing? Princess, I wonder when will people realize, after they have gone down the path of ruin, that they themselves are going down the wrong path. What is the greatest path to a person’s downfall? If you can avoid it, don’t you want to avoid that p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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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스의 친 앗수르 정책이든 아들 히스기야의 반 앗수르 정책이든 모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정책이니 하나님이 인정하실 수 없다. 세상은 어느 한편의 실패가 다른 편의 정당함을 입증한다고 주정한다. 하지만 유다는 임박한 북 왕국의 멸망에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은 그 어떤 대안도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 없이 누리는 그들의 면류관 같은 영화가 짓밟히는 것은 한순간이다. 내가 만든 논리에서 나 자신이 속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자.
Whether it is Ahasuer’s pro-Assur policy or his son Hezekiah’s anti Assur policy, both are policies that do not rely on God, so God cannot accept them. The world insists that the failure of one side proves the legitimacy of the other. But Judah must learn that not relying on God in the imminent destruction of the northern kingdom means that no alternative can be an alternative. It is only in an instant that their crown-like glory, enjoyed without God, is trampled. Let’s reflect on whether we ourselves are being deceived by the logic we have cre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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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중에도 남은 자, 즉 구원을 받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이제 하나님은 이전의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의 실체를 경험하였고, 자신들의 거짓 환상이 깨졌다. 올바른 인식과 진심 어린 회개의 마음으로 낮아진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새 역사를 이루신다. 그렇게 어린아이가 된 자들에게 진정한 면류관과 아름다운 화관을 안겨줄 것이다. 하나님의 영이 올바른 재판으로 정의와 공의가 서는 나라를 만드실 것이다.
Even as Israel is destroyed, there will be those who remain that is, those who are saved. To them, God is no longer the God of before. They experienced God’s reality, and their false illusions were shattered. With right understanding and a sincere heart of repentance, God accomplishes a new history through those who have been humbled. It will give those who have become such children a true crown and a beautiful wreath. The Spirit of God will establish a nation where justice and righteousness stand through righteous jud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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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특권만 향유하려는 이들은 하나님 나라의 질서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죄를 지적하는 선지자를 조롱한다. 아무도 안 들을 말을 계속 반복하여 지껄인다고 놀린다. 반복하여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들이 일관되게 안 들었으니 심판 앞에서 핑계할 것이 없다고 스스로 증거를 늘어놓고 있다. 가르치는 지도자들이 들을 귀를 갖기가 가장 어렵지 않은가,
Those who have no interest in truth and seek to enjoy only privilege were turning the order of God’s kingdom into a complete mess. Yet they mock the prophet who points out their own sins. They tease me for repeatedly babbling things no one is going to hear. They are listing evidence to themselves, saying that because they have consistently failed to hear God’s word, which they preached repeatedly, they have no excuse before judgment. Isn’t it the hardest thing for teaching leaders to have ears to lis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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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먹이에게나 하는 못 알아듣는 소리로 말씀을 전한다고 이사야를 조롱하는 자들에게, 그들이 못 알아 듣는 앗수르의 말을 들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안식의 길을 선포하는 선지자의 말을 옹알이 정도로 취급한 자들에게 포로의 고통과 이해할 수 없는 말로 떠드는 정복자들의 말을 듣는 괴로움이 올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지 않으면, 이제 들어도 알 수 없는 날이 오고,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는 시련이 다가올 것이다.
To those who mock Isaiah for preaching in the incomprehensible words only a nursing infant can understand, a time will come when they must listen to the words of Assyria, which they cannot understand. Those who treat the words of the prophets proclaiming the way of rest as mere babbling will suffer the agony of captivity and the torment of hearing the conquerors babble incomprehensible words. If we do not listen to God’s word, a day will come when even if we listen now, we will not understand it, and a trial will come when we will have no opportunity to hear the w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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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야! 교만을 벗는 것이 안식을 입는 최고의 비결이다. 휴머니즘이 교만이다.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하다 말씀과 멀어지게 된다. 말씀에 귀를 막는 것이 교만이다. 결국 ‘남은 자’란 교만에 넘어지지 않고 안식을 누리는 자로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 화관(花冠)은 곧 시들어 버릴 것임을 아는가? 나는 무엇을 나의 면류관으로 삼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불편할 때에도 들을 귀를 가지고 있는가? 내 정체성의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좁은 길을 가고 있는가?
Princess! Shedding pride is the best secret to finding rest. Humanism is arrogance. Doing a little here and a little there, you end up drifting away from the words. It is pride to block one’s ears from hearing the word. In the end, the “remnant” will be crowned as the one who does not fall into pride and enjoys rest. Do you know that the wreath will soon wither away? What do I take as my own crown, and do I have ears to hear even when God’s word is displeasing? What is the basis of my identity? Am I walking a narrow path as God’s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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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의 몰락에 대한 경고(1-6)
a.술 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1-4
b.남은 자에게 주는 약속:5-6
이사야를 조롱하는 자들(7-13)
a.제사장과 예언자에 대한 고발:7-8
b.이사야의 선포를 조롱하는 자들;9-10
c.여호와의 심판선포: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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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자 에브라임의(1a)
교만한 면류관이여(1b)
화 있을 진저(1c)
술에 빠진 자의 성(1d)
곧 영화로운 관 같이(1e)
기름진 골짜기(1f)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1g)
쇠잔해가는 꽃 같으니(1h)
화 있을 진저(1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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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주께 있는(2a)
강하고 힘 있는 자가(2b)
쏟아지는 우박 같이(2c)
파괴하는 광풍 같이(2d)
큰물의 창일함 같이(2e)
손으로 그 면류관을(2f)
땅에 던지리니(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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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의(3a)
취한 자의(3b)
교만한 면류관이(3c)
발에 밟힐 것이라(3d)
그 기름진 골짜기(3e)
꼭대기에 있는(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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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의(4a)
쇠잔해 가는 꽃이(4b )
여름 전에 처음 익은(4c)
무화과와 같으리니(4d)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4e)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4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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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에(5a)
만군의 여호와께서(5b)
그 남은 백성에게(5c)
영화로운(5d)
면류관이 되시며(5e)
아름다운(5f)
화관이 되실 것이라(5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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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석에 앉은 자에게는(6a)
판결하는 신이 되시며(6b)
성문에서 싸움을(6c)
물리치는 자에게는(6d)
힘이 되리로다. 마는(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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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다 사람들도(7a)
포도주로 인하여(7b)
옆걸음 치며(7c)
독주로 인하여(7d)
비틀거리며(7e)
제사장과 선지자도(7f)
독주로 인하여(7g)
옆걸음 치며(7h)
포도주에 빠지며(7i)
독주로 인하여(7j)
비틀거리며(7k)
이상을 그릇 풀며(7l)
재판할 때에(7m)
실수하나니(7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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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상에는(8a)
토한 것(8b)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8c)
깨끗한 곳이 없도다(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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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이르기를(9a)
그가 뉘게(9b)
지식을 가르치며(9c)
뉘게 도를 전하여(9d)
깨닫게 하려는가?(9e)
젖 떨어져 품을 떠난(9f)
자들에게 하려는가?(9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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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10a)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10b)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10c)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10d)
여기서도 조금(10e)
저기서도 조금(10f)
하는구나 하는 도다(1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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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11a)
다른 방언으로(11b)
이 백성에게(11c)
말씀하시리라(1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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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12a)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12b)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12c)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12d)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12e)
그들이(12f)
듣지 아니하였으므로(12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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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그들에게(13a0
말씀하시되(13b)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13c)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13d)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13e)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13f)
여기서도 조금(13g)
저기서도 조금 하사(13h)
그들로(13i)
가다가 뒤로 넘어져(13j)
부러지며 걸리며(13k)
잡히게 하시리라(13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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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은 패망의 선봉_Pride is the vanguard of defeat.
남은 자에게_To the rest.
교만해서 망하는 이유_the reason why one is arrogant and ruin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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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 쇠잔해 가는 꽃 같이 될 것임을 말씀하였사오니 경고를 삼아, 세상의 화려한 유혹을 물리치게 하시고 저는 세상의 술에 취해 비틀거리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교만하면 망하고 교만을 벗으면 안식을 누린다는 것을 깨달게 하옵소서. 특별히 지도자가 없는 한국교회를 불쌍히 여기시어 말씀을 사랑하고 적용 하는 바른 지도자를 세워주옵소서.
Ephraim's arrogant crown will be like a flower of decay, so please use your warning to defeat the splendor of the world and help me not to stumble under the influence of the world. Let us realize that pride will destroy us, and pride will rest us. Please have mercy on the Korean church without a leader, and establish a right leader who loves and applies the word.
2026.8.16.sun. Clay
신학 비평//
나는 무엇을 나의 면류관으로 삼고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이 불편할 때에도 들을 귀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본능적으로 성공과 명예, 물질적 풍요를 추구합니다. 문제는 그것들을 소유하는 데 있지 않고 그것들로 자신의 안전과 가치를 증명하려는 데 있습니다. 이사야는 사마리아의 화려함을 “쇠잔해 가는 꽃”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머리에 쓴 면류관이 내일 발밑에 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문제는 단순히 술에 취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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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자기 번영에 취해 있었고 기름진 골짜기와 화려한 성읍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세계가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번영은 안전을 보장하는 성벽이 아니라 시들어가는 화관에 불과했습니다. 이 경고는 유다에도 그대로 이어집니다. 아하스의 친앗수르 정책이든 히스기야 시대의 반앗수르 노선이든, 이사야가 근본적으로 묻는 것은 어느 국제정치 노선이 옳으냐가 아닙니다. 너희가 궁극적으로 누구를 신뢰하는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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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의 실패가 자동으로 반대편의 정당성을 증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한다면 인간이 만든 어느 전략도 궁극적인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지도자들입니다. 제사장과 선지자까지 술에 취해 판단을 잃고, 자신들을 깨우는 이사야의 말씀을 어린아이에게 하는 잔소리처럼 조롱합니다.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그들은 말씀을 몰라서 거부한 것이 아니라 듣기 싫어서 유치한 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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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영적 교만의 무서움입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반드시 말씀을 잘 듣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르치는 위치에 오래 있을수록 “나는 이미 알고 있다”는 확신 때문에 들을 귀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역설적인 심판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을 조롱했던 백성이 결국 알아들을 수 없는 앗수르 정복자의 언어를 듣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안식의 말씀을 거절했더니 제국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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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말씀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설교 하나를 흘려듣는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자유로워지겠다고 했지만 결국 더 강한 세상의 힘에 종속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본문의 한가운데에는 놀라운 약속이 있습니다. “그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남은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사람들은 하나님께 면류관을 달라고 하지만 이사야는 더 근본적인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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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친히 면류관이 되신다" 이것이 ‘남은 자’의 신앙입니다. 남은 자란 단순히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거짓 면류관이 벗겨진 뒤 하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사실을 배운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재판하는 자에게 정의의 영이 되시고, 성문에서 싸우는 자에게 힘이 되십니다. 다만 “휴머니즘이 교만이다”라는 표현은 조금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이웃 사랑 자체가 교만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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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 비판하는 것은 인간을 궁극적인 기준으로 절대화하고 하나님 없이 스스로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자기충족적 인간주의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것은 성경적 신앙의 중요한 열매입니다. 결국 교만이란 단순히 잘난 척하는 성격이 아니고 내가 나의 면류관이 되는 것입니다. 내 돈, 지위, 지식, 신앙경력, 정치적 판단까지 절대화하면서 더 이상 말씀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취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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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에 취해 있는가? 세상의 화관은 아름답지만 시듭니다. 성공도, 권력도, 명예도 결국 떨어집니다. 그러나 거짓 면류관이 벗겨진 자리에서 비로소 발견하는 면류관이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께 면류관을 달라고 요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나의 면류관으로 삼는 삶입니다. 교만을 벗고 말씀 앞에서 다시 어린아이가 되자. 그것이 패망의 길에서 돌아서는 시작이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참된 안식과 상쾌함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